76.10.13 카네기 홀 실황 : 프라이스, 반 담, 베를린 필, 빈 징페라인

83.8.15 잘츠부르크 실황 : 헨드릭스, 반 담, 빈 필, 징페라인

연주에 대한 압도적인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연주에 대한 평을 쓴다는 것은, 건망 속에서 세세한 기억을 복구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연주에서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미화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연주도 나에게 그러한 고민을 던져주었기에, 연주에 대해 쉽게 풀어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카라얀은 브람스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이자 브람스라는 작곡가의 테두리를 여러 번 벗어나는 이 미증유의 걸작에 지속적인 애정을 보였고, 여러 차례의 연주를 남겼다.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클렘페러의 연주가 전통적인 해석으로 버티고 서 있는 상황에서, 카라얀의 연주들은 지속적으로 이 곡에 새로운 지평을 부여했고 이 곡의 거대한 해석 세계 한 축에 서 있다. 지금 소개할 두 실황은 카라얀의 그러한 여러 연주들 중 단연 으뜸이라 할 만하다.

카라얀의 독일 레퀴엠 연주를 설명한다면 어떤 말이 가장 잘 어울릴까? 고도로 정제되면서도 농밀한 현악기, 통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관악기군, 위엄과 박력을 동시에 갖춘 해석, 조화를 추구하는 성악진. 한 마디로 ‘압도적’이라 할 연주다. 그러나 단지 ‘압도적’인 해석만으로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이 가능할까? 슬픔, 절망, 참회, 찬송, 위로, 심판, 그리고 안식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이 곡은 단지 그것만으로는 풀어나가기 벅찰 정도로 너무 크다. 그렇다면 카라얀이 곡의 본질을 정확히 낚아채는 연주는 역시 고도로 통제된 스튜디오 레코딩보다는 연주자의 본질이 잘 묻어나오는 실황 녹음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라얀의 관현악은 카네기 실황과 잘츠부르크 실황 둘 다 매우 뛰어나지만, 역시 카네기 실황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카네기 실황에서의 카라얀은 악구를 통제하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작곡가가 음표를 적어 내려가며 느꼈을 감동과 눈물을 그대로 발산하고자 한다. 그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6악장에서 바리톤 독창이 끝나고 ‘최후의 나팔 소리’에 따라 관현악이 투티로 몰아치는 부분, 마치 그리스도의 죽음에 애통하듯 예루살렘 성전 장막이 둘로 찢어진 것과 비견할 수 있을 만한 그 거대한 충격파 부분을 꼽을 수 있겠다. 그 부분은 정말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이 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찻잔 속의 태풍 같은 연주들에서 무슨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을 받는단 말인가?

1악장과 7악장 말미의 하프 독주도 카네기 실황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만드는 부분이다. 1악장과 7악장을 하나로 묶어주는 하프의 독주는 잘츠부르크 실황보다는 카네기 실황에서 좀 더 두드러지게 들린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하프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카네기 실황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만든다.

다만 카네기 실황은 개인이 몰래 녹음한 탓인지 음향 상태가 별로 좋지 않고, 뒤의 악장으로 갈수록 그런 문제는 더욱 심해진다. 세세한 디테일을 찾고 싶다면 역시 잘츠부르크 실황 쪽이 더 좋을 것이다. 4악장과 7악장의 섬세한 코랄에서 그 장점이 매우 두드러진다.

바리톤은 76년의 연주와 83년의 연주 모두 호세 반 담이 맡았는데, 그는 심판의 날에 대해 설교하는 느낌의 피셔-디스카우와 대척점을 이룬다. 반 담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회하는 것 같은 통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3악장은 그런 반 담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부분이다. 6악장의 바리톤 독주에서도 피셔-디스카우가 담담하게 정경의 구절들을 읽어 내려가는 느낌이라면, 반 담은 정말로 브람스가 배치한 급진적인 전조처럼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절망 속에서 구원을 찾아 헤매는 선지자의 느낌이 강하다.

소프라노는 헨드릭스보다는 프라이스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83년의 헨드릭스는 너무 교태 떠는 것 같은 목소리라 5악장에서 의도한 거대한 위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이 아니라 가식적인 사촌 누나의 목소리에 가깝다. 담담한 프라이스의 노성은 5악장이 참으로 독특하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문제 많은 빈 징페라인이지만, 적어도 <독일 레퀴엠>에서만큼은 카라얀의 해석에 문제없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들을 수 있다. 물론 합창단은 76년보다는 83년이 더 세세한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래서 징페라인은 83년의 연주가 더 좋아 보인다.

결론 : 압도적인 카네기 실황. 그러나 잘츠부르크 실황도 좋은 보충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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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기를 위한 교향곡 (Symphonies pour instrements a vent)

작곡 시기 : 1920년 11월 30일 완성. 1947년에 출판하면서 개작.

출판 : 처음에는 「르뷔 뮤지칼」지 소재의 코랄 부분만의 피아노 편곡판. [루리에에 의한 전곡의 피아노 편곡판] 1926년. [1947년 개정의 총보] 1952년, 부시 & 호크사. 원곡의 악보는 미출판.

악기 편성 : 플루트 3(3플루트는 피콜로 겸), 알토 플루트, 오보에 2, 잉글리시 호른, 클라리넷(B♭) 2, 알토 클라리넷(F), 파곳 3(3파곳은 콘트라파곳 겸), 호른(F) 4, 트럼펫(B♭) 3, 트롬본 3, 튜바. 총 연주자 24명

1947년 버전은 연주자가 한 명 줄고 편성이 약간 바뀌었다. 플루트가 피콜로를 겸하지 않고 알토 플루트가 없어졌으며, 클라리넷이 3대로 늘고 알토 클라리넷이 없어졌다.

(프랑스의 음악잡지 르뷔 뮤지칼이 드뷔시 추도 특별호를 개재하면서 10인의 작곡가를 선별, 드뷔시의 추도음악을 싣게 했을 때, 스트라빈스키는 코랄을 실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중 7번째 코랄을 발전시켜 이 교향곡을 만들었다. 결국 굳이 이 교향곡의 헌정자를 찾자면 이 곡의 원형인 코랄을 헌정 받은 고故 클로드 드뷔시가 되는 셈이다. 클라리넷이 리듬과 악센트의 지표를 담당하며, 소리가 매우 두드러진다. 스트라빈스키의 특징인 차가움과 객관적인 성향을 모두 갖추고 있으나, 툭툭 튀어나오는 거친 소재들은 리듬에 대한 작곡가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돕는다. 작곡가는 이 교향곡을 ‘동종의 악기들의 서로 다른 모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짧은 연도(Litaniae)로 풀어 가는 엄숙한 의식’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한 편 음악학자 막스 해리슨은 “3개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들의 대비”라는 문장으로 이 곡을 설명하고 있다. 두 개의 파트로 나뉜 악기군은 같은 악기라도 다른 위치와 다른 악기 사이에 놓였을 때, 그리고 다른 패시지를 연주할 때 전혀 이질적인 음향을 들려주고 있다. 제목은 교향곡이지만 1부와 2부로 나눠 볼 수 있는 이 악곡은 전통적인 교향곡의 구성과 닮은 점이 전혀 없다. 1921년 6월 10일,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의 지휘로 런던 퀸즈 홀에서 초연했다.)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을 작곡하기 전해인 1919년에 스트라빈스키는 디아길레프의 권유로 페르골레지(1710~1736) 외의 악보에 의한 발레음악 《풀치넬라》를 작곡했다. 이 곡에서 들을 수 있는 남국적인 정취, 투명함과 단정함은 그 때까지의 스트라빈스키 작풍과 선을 그었고, 나아가서는 후의 《관악 8중주곡》(1923)에서 선언하게 되는 <신고전주의>를 예고하는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스트라빈스키뿐만 아니라, 양식의 변천 및 수립은 단번에 또한 직선적으로 이행ㆍ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 곡은 과도기에 위치하면서도 그 민족적 분위기, 율동과 음향운동의 격렬함에서 오히려 《봄의 제전》과 《결혼》의 계보에 속하는 작품이다. 현악기를 생략한 편성은 순조로움과 표정의 풍부함을 배제하며, 때로는 메마르고 거칠며 장중하다.

단일악장 전체는 2부로 크게 나눌 수 있고, 전반에서는 선율 소재의, 후반에서는 동적 및 정적 음향소재의 각각의 교체, 대조가 구성요인을 이룬다. 서로 소재 사이에는 음정, 화성, 율동의 여러 요소에 동일 또는 근친성을 지니게 하여 전곡을 통일하고 있다.

1부(연습번호 (42)의 앞까지)의 구성을 도식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도입부 (연습번호 (6)까지)

주부 A ((6)~(8))

주부 B ((8))

삽입부 : Ep. Ia((9)~(11)) - Ep. Ib((11)~(15))

주부 C ((15)~(26))

Ep. II ((26)~(29))

주부 C ((29)~(37)) (재현)

Ep. III ((37))

주부 B ((38)~(39)) (재현)

Ep. IV ((39)~(40))

주부 A ((40)) (재현)

Ep. V=d' ((41))

1부(도입부 및 각 에피소드의 주체를 이루는 소재는, 조는 일정하지 않지만 모든 것에 균등하게 마디마다 교체하는 박자의 변화와 주선율을 담당하는 클라리넷의 날카로운 음색을 특징으로 한다(밑의 악보).

도입부에서는 위의 악보에 이어 바로 밑의 악보를 투티로 연주한다.

이것은 그 코랄 양식과 화성 및 동기 X에 의해 끝의 코랄과의 관련성을 얻는다.

서두 악구의 반복에 이어 나타나는 1/2음가의 짧은 소악구(밑의 악보)는 코랄과 함께 2부를 지배하는 악구의 요약이다. 이같이 II부의 두 주요 소재는 미리 도입부에서 나타난다.

다시 투티 악보를 반복한 후, 밑의 악보가 도입부를 닫지만, 이 프레이즈는 접미 또는 접두구로서 이후 가끔씩 쓰인다.

주부 A(바로 밑의 악보) 및 B(그 밑의 악보)는 모두 목관악기로 계속해서 연주하고, 주제의 성격은 《불새》 이후 스트라빈스키가 지속적으로 인용한 러시아 민요를 연상케 한다.

 

A는 핵을 이루는 장2도 음정에 의해 후반부의 두 소재와 또 연관된다. 에피소드 Ia는 도입 악보와 동기 X로 이루어지고, Ib에서는 약간 움직임을 지닌 셋잇단음 동기가 이 부분의 특징을 이루며 전개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도 동기 X는 저성부에서 들린다.

주부 C의 선율도 다시 민요적 성격을 갖추고 목관으로 연주하지만, 표기법은 다성적인 경향이 농후하며 후반에서는 역시 2도가 핵을 이루는 상황에서 동기가 대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율 소재는 A-B-C 순으로 점차 도약 횟수를 늘린다. 도입부를 닫는 악구를 접두 및 접미 악구로 하는 에피소드 II는 역시 도입 악구와 동기 X로부터 형성한 것이며, 여기까지가 제시부에 해당한다.

아래의 재현이 에피소드를 끼워 제시와는 반대 순서, 즉 C-B-A의 순서로 이루어진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이것은 면대칭을 이루는 활 모양 형식의 일종이다. 2부의 구성은 다음 도식에 따른다.

e((42)) - d' - d((44)) - d' ((45))

주부 D((46)~(56))

e((56)) - d' ((57))

주부 D ((58)~(64)) (재현)

d' ((64))

주부 E ((65)) 이하

d', d 및 e는 2부의 주부를 이루는 동적 악구 D, 코랄 E의 각각에서 파생한 악구로 예고 또는 간주의 역할을 맡는다.

1부에서의 에피소드와의 차이는 주부와의 근친성이 짙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부의 선율의 우위에 대하여, 여기에서는 음향체가 구조를 주도한다. 그러나 2가지 소재 D와 E는 음정 Y에 의해 느슨하게 맺어졌다고 하지만, 전자의 격렬한 율동적 움직임과 후자의 숙연한 화음형의 정지성은 현저하게 대조를 이룬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거칠고 불협화적인 울림과 파행적 악센트의 강한 타격은 마치 《봄의 제전》 중 마지막 곡인 <신성한 춤, 선택된 처녀>를 듣는 느낌마저 든다.

한바탕 타격이 끝나면 드디어 단편적인 형태로만 계속 나타나던 코랄이 제 모습을 갖추고 등장한다. 이 코랄은 애도의 감정을 상징하는 것이며, 정교한 리듬으로 짜여진 첫 부분, 중간부 러시아 민요의 토속성, <봄의 제전>풍의 거친 후반부 분위기를 오고가던 이 기악곡 저변에서 계속 흐르고 있던 것이다.

조용함은 격렬함을 제압하고, 애도의 비장한 음악은 고요한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코랄은 마디의 구분에 관하여 원곡과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템포도 바뀌고 있다. 또한 이것은 앞서 적은 화이트가 지적하고 있는 것인데,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에는 3종류의 템포 지정이 있고, 그것들은 ♩=72, ♩=108, ♩=144와 같이 원래 템포와 1.5배, 2배 관계에 있으며, 각 소재는 항상 셋 중 하나의 템포를 지니고 있다.

 

참고 문헌

음악지우사 간 <스트라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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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Piano Sonata No.14 in C sharp minor, Op.27-2 "Moonlight")

작곡 시기 : 1800년에서 1801년

출판 : 1802년 3월 (빈의 카피사)

헌정자 : 줄리에타 귀차르디

(두 곡의 피아노 소나타 Op.27은 1801년에 작곡했다. 베토벤이 30세를 전후하던 시기로, 교향곡 1번과 현악 4중주 Op.18이 등장하던 무렵이다. 즉, 이 피아노 소나타는 베토벤이 작곡가로서 본격적인 첫걸음을 내딛기 시작하던 시기의 작품이라는 얘기다. 두 곡 모두 《환상곡풍 소나타 Sonata quasi una Fantasia》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베토벤이 이 두 곡에 부여하려 했던 음악적 성격과 방향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를 통해 다양하고 폭넓은 음악적 시도를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이 두 곡은 그 전형적인 한 예라고 볼 수 있다. 이 곡은 전통적인 1악장 중심제를 버리고 종악장에 곡의 중심을 두었는데, 장기적으로 보아 이것은 고전적인 형식을 무너뜨리고 형식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참고로 <월광>이라는 별명은 베토벤 생전에는 없던 것이다. 베토벤이 죽고 3년 뒤인 1830년, 시인 렐슈타프(1799-1860)가 이 곡의 1악장을 가리켜 “스위스 루체른 호수의 달빛에 흔들리는 작은 배와 같다.”는 평을 남겼고, 그 후로 이 곡은 <월광>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곡은 출판 당시부터 많은 인기를 끌었으나, 베토벤은 이 곡의 인기를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았다. E♭장조의 자필악보는 소실되었으나 C#단조의 자필악보는 본의 베토벤 하우스에 보존되어 있다. Op.27의 두 곡은 1802년 3월 빈의 카피(Cappi) 사에서 출판했다.

곡을 헌정받은 줄리에타 귀차르디(1784-1856)는 한 때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배웠던 소녀로, 한 때 그녀가 ‘불멸의 연인’이 아니느냐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으나 신빙성이 적어 잦아들었다. 하지만 베토벤이 그녀에게 호의를 보였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베겔러에게 보낸 1801년 11월 16일자 편지에서는 “이러한 심경의 변화는 매력 넘치는 한 여인 때문입니다. 그녀는 나를 사랑하며, 나도 그녀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2년 만에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 것입니다. 결혼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서로 신분이 다릅니다.”라고 쓰고 있다. 편지 뒷부분의 씁쓸한 구절처럼 그녀는 1803년 11월 갈렌베르크(Wenzel Robert Gallenberg, 1783~1839) 백작과 결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로 가버린다. 베토벤은 론도 Op.51의 두 번째 곡을 그녀에게 헌정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리히노프스키 공작부인에게 헌정했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베토벤은 1823년 당시 케른트너토어 극장의 악보관리 책임을 맡고 있던 갈렌베르크로부터 《피델리오》 악보를 빌리려고 제자인 쉰틀러를 보냈으나 빌릴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두 사람 사이에 썸씽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베토벤이 한 때 피아노를 가르쳤던 소녀에게 자신의 곡을 헌정할 리는 없었을 테니.

이 곡과 외면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키워드는 귀차르디라는 여인의 존재지만, 모든 작곡가가 가지고 있는 새로운 악기에 대한 동경은 이 곡을 이해할 수 있는 또다른 키워드다. 1801년, 당시 10살이던 체르니가 베토벤의 제자가 되기 위해 그를 찾아갔을 때, 베토벤의 방에는 당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발터제의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베토벤은 이 피아노에 만족하지 않고 발터제의 피아노 제작소에 ‘30다가트를 지불할 것이니 용제는 마호가니와 우나코다(지금의 약음페달) 장치를 구비해야 한다.’ 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도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들 못지않게 악기의 개량과 성능의 향상에 목말라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새로운 피아노는 Op.27의 소나타를 작곡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 당시 음악적 유행의 최전선을 달리던 패기 넘치는 젊은 작곡가에게 새로운 음악적 매체에 대한 관심은 금전적 가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었다.

이 피아노 소나타의 연주가별 템포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악장

음표

체르니

모셀레스

뷜로

슈나벨

1845

1850

1악장

4분음표

54

60

60

52

63

2악장

점 2분음표

76

80

76

56

63

3악장

2분음표

80

92

92

88

88

일단 모든 연주가들이 1악장의 템포를 작곡가의 메트로놈 템포보다 두 배 정도 느리게 지정했다는 것을 지적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체르니의 템포는 1845년에 비해 1850년의 템포가 모두 조금 더 빨라졌다. 뷜로는 1악장과 2악장의 템포를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느리게 잡았다. 가장 현대적인 템포를 보여주는 슈나벨은 1악장이 가장 빠르며 3악장에서는 중간 정도를 유지한다.)

(사견이지만, 이 소나타 전체를 3부로 이루어진 하나의 환상곡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소나타 전체를 아타카로 계속 연주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1악장 셋잇단음표의 하나인 8분음표가 2악장의 4분음표에 해당하며, 2악장 한 마디의 길이가 종악장의 2분음표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곡을 하나로 결합할 수 있는 동기가 될 수 있다.)

 

1악장 (1.Adagio sostenuto 2/2) (C# minor)

(베토벤은 환상곡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소나타 형식 위에 서 있는 첫 악장에 섬세한 지시 사항을 덧붙이고 있다. ‘Delicatissimamente(되도록 섬세하게)’라는 지시사항이 들어 있으며, ‘Senza sordini(금관악기라면 이 지시사항은 ‘약주’가 되겠지만, 포르테피아노에서 이 지시사항은 ‘오른쪽 페달(댐퍼)로 음향을 살리시오’가 된다)‘라는 지시를 두 번이나 넣어 강조하고 있다. 잠시 여기서 설명을 멈추고 그 당시 피아노의 개량 상황을 살펴보도록 하자. 당시 대부분의 피아노에는 페달이 없었고, 대신 무릎으로 밀어 올리는 ’크니헤 벨‘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발로 밟는 페달이 등장한다. 베토벤의 지시사항은 악기의 개량에 발맞추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베이스의 화음, 중성의 셋잇단음, 상성의 멜로디로 이루어진 단순한 음형에 구성은 매우 간명하고 간결하며, 렐슈타프의 감상적인 제목 붙이기가 떠오를 정도로 달빛이 비치는 호수의 정경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1주제와 2주제 모두 마디의 마지막 셋잇단음표에서 제시되는 것이 특징이며, 주제에 점리듬을 붙여 셋잇단음표 반주 및 베이스의 단화음과 구분한다. 1주제는 G#음에서 점음표가 붙어 나타난다. 10마디에서는 반음 높아져 다시 나타난다. 코데타를 포함하고 있는 2주제는 불안정한 B장조 화음이며, 21마디의 나폴리 화음을 거쳐 22마디에서 F#단조의 딸림음인 C#음으로 떨어져 F#단조 화음으로 마친다. 그와 동시에 발전부는 원조로 돌아간다. 주제는 5도 위로 높아졌을 뿐 같은 형태로 등장한다. 발전부에서도 곡을 이끄는 동력원이자 중요한 동기인 셋잇단음인 점점 원래 형태에서 벗어나 고음역으로 올라가면서 불안한 감정을 극대화한다. 발전부 35마디부터 37마디에 걸쳐 딸림음의 오르겔풍크트(G#)가 있는데, 이것이 상성부가 화음권 내에서 움직이게 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43마디부터 재현부로 들어가면 1주제가 51마디까지 선보인 후 C#장조로 2주제 끝부분이 확대되어 60마디까지 재현한다. 참고로 재현부에서는 2주제로 C#단조로 재현한다. 61마디부터 69마디까지는 코다. 코다에는 두 번의 크레셴도/데크레셴도 지시가 있는데, 62-63마디는 오른손 셋잇단음 리듬에 맞추어, 64-65마디에서는 왼손 주제 리듬에 맞추어 들어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 속도 지시는 2분음표에 52~56박이지만 지시사항을 지키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며, 너무 느리게 치지 말아야 한다.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악장임에도 신비함이 감돌며 어찌 보면 순환동기를 떠올리게 하는 구성을 포함해 베토벤이 작곡한 가장 독창적인 악장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2악장 (2.Allegretto 3/4 - Trio 3/4) (D♭ major)

(3부 형식. 미뉴엣도 아니고 그렇다고 스케르초도 아닌 이 소박한 춤곡 악장을 두고 리스트는 “두 개의 늪 사이에 핀 한 떨기 꽃”이라는 평을 남겼다. 중심 조성인 C#의 이명동음인 D♭장조를 조성으로 취하고 있으며(C#/E/G#과 D♭/F/A♭의 차이), 미뉴엣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소박하다. 사실 춤곡이라고 규정짓기에는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느낌이며, 애매하기도 하다. 1부는 레가토와 스타카토가 호응하는 주제로 시작하며, 이것이 변주되어 나타난다. 첫 부분 왼손의 하행하는 리듬은 4마디까지 계속 등장하는데, 이미 1악장에서 선보였던 리듬이다. 이 리듬은 9마디부터 달라진 형태로 나타난다. 주제와 같은 리듬을 지닌 평탄한 중간악절을 사이에 두고 주제를 재현하며, 이어 작은 연결구가 나온다. 다시 중간악절을 반복한 후 트리오로 들어간다. 트리오 또한 D♭장조, 2도와 6도 위주의 움직임을 보인다. 오른손의 동적인 움직임에 비해 왼손은 다소 정체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이 트리오에 특유의 무거운 분위기를 불어넣는다. 트리오에 sf의 당김음이 자주 등장하는데 너무 강조하면 좋지 않다. 간결하게 짜여져 있는 아름다움이야말로 이 악장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악장을 지나치게 해석하는 것은 마르크스(Berhard Marx)가 이 악장에 억지로 같다 붙이려 한 <이별의 노래>, “오—잊을 건가 나를! 잘 가오 부디” 풍의 해석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3악장 (3.Presto agitato 4/4) (C# minor)

(200마디) (네 파트 모두 1주제와 2주제가 교대로 나타나는 소나타 형식의 악장. 코다가 상당히 커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후 베토벤의 소나타 형식은 코다를 매우 웅장하게 강조하며 제 2의 전개부라 불릴 만큼 충실한 것이 특징이다. 1주제는 p로 시작해 격렬하게 상승하며 sf로 끝을 맺는다. 처음 2마디에서 3회씩 동기를 되풀이한 뒤 이것을 압축하여 2회 반복하는 보기 드문 기교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9마디부터 저음 G와 위 2 점 G음이 외성에서 머무르게 하고 내성의 두 성부가 약간 선율적이며 음계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진행하다 14마디에서 딸림음은 G#음으로 페르마타를 동반하며 일단 정지한다. 이 구절은 삽입구 역할로 다시 6마디 동안 나타나고 2주제가 딸림조인 G#단조로 애수를 띤 조용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 흐른다. 비선율적인 1주제가 지배하는 3악장 안에서 이처럼 어둡고 빠르게 나아가는 2주제는 훌륭한 효과를 발휘한다. 오른손의 아르페지오와는 달리 왼손은 순차적으로 되어 있으며, 주제 선율을 옥타브화한 변주가 등장, 주제의 성격을 강화한다. 33마디부터 경과부를 10마디 거치면 부주제가 등장한다. 여기서 왼손 최저성부에서 등장하는 4개의 음(E, G#, B, Fx)은 1악장부터 계속 등장했던 음이다. 이 부분에서 장조의 나폴리 6화음(A#)이나 딸림 7음을 많이 쓴 것은 장3도를 느끼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조성이 흔들리고 불안한 느낌을 던져주기 때문에 극적인 표현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43마디부터 16분음표의 움직임은 끝나고 8분음표의 스타카토 화음으로 22마디 동안 부주제를 연주한다.

65마디부터는 발전부. 1주제의 소재로 전개가 도돌이표 다음부터 6마디에 걸쳐 원형이 C#장조로 등장하지만 3~4마디로 조바꿈하며 경과부 부분은 생략한다. 곧바로 2주제부가 F#단조로 조바꿈해 71마디부터 상성에 등장하고 저음부로 내려가 101마디까지 취급하며 음량을 줄이고(pp) 종결을 꾀하는 것처럼 들린다. 발전부의 길이는 그다지 길지 않고 복잡하지도 않으며 끝에 침착한 두 개의 온음표가 재현부를 유도한다.

재현부는 제시부의 충실한 재현에 주력하는데, 1주제는 갑자기 fp로 나타나는 것만 빼면 제시부와 같다. 이 주제를 끝부분 6마디만 생략하고 삽입구 없이 2주제 재현으로 넘어간다. 2주제는 C#단조로 재현한다. 원형 그대로 158마디까지 이어진다.

코다는 1주제로 시작하여 격한 환상을 품은 감7화음의 아르페지오가 163마디부터 등장, 166마디에서 일단락을 짓고 2주제가 164마디부터 시작하며, 카덴차풍의 자유로운 패시지가 177마디에서 선보이며 순차적으로 종결의 기분을 고조시킨 다음 베토벤의 소나타에서 자주 보이는 낮은 겹 F#음과 G#음을 186마디에서 옥타브로 각기 한 마디씩 Adagio의 템포로 연장한다. 그 뒤에는 1주제의 결미인 부주제를 사용한 악절이 등장하다 190마디부터 하행 분산화음으로 반복하면서 p에서 f, f에서 ff로 끝에 가서는 두 개의 화음을 격렬한 감정으로 두드리며 막을 내린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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