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협주곡 2번 (Piano Concerto No.2 in G major, Sz.95)

작곡 시기 : 1930년 착수, 1931년 10월 완성

악기 편성 : 독주 피아노, 피콜로(플루트로 대체 가능),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B flat) 2, 파곳 2, 콘트라파곳(파곳으로 대체 가능),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작은북, 트라이앵글, 큰북, 심벌즈, 현악 5부

(비단 연도만이 아니라, 양식적으로도 협주곡 2번은 1번과 3번 사이에 놓인다. 선적인 대위법이 주조를 이루는, 거칠고 강렬하고 날카로운 1번과, 부드럽고 평온하며 신고전주의 양식 속에서 버르토크의 후기 서법을 드러내는 마지막 3번 협주곡 사이에 위치한 2번은 바흐적인 요소, 신고전주의적인 요소, 그리고 버르토크 자신의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현악 4중주 4번이 그렇듯 이 곡 또한 바깥쪽의 두 악장이 서로 연결되며, 아다지오 악장의 양쪽 아다지오가 서로 연결되고, 중간의 프레스토 부분이 아치형 구조의 맨 위에 놓인다. 곡은 활력으로 넘쳐나고, 풍요로운 변화를 수반하며, 무엇보다 피아니스트 출신인 버르토크의 뛰어난 기교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1악장 (1.Allegro 3/4) (G major)

(소나타 형식. 독주 피아노는 불과 20마디를 제외하고는 아주 바쁘게 움직이지만, 현악기군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주로 나타나는 것은 피아노의 다양한 기교와 화음, 금관의 코랄, 그리고 타악기의 갖가지 울림이다. 주요 모티브 6개 중 3개(이것을 모티브 a, b, c라 하겠다)가 첫 5마디 안에 이미 등장할 정도로 주제적 경제성이 대단하다. 상당히 밀도가 높다고 할 수 있는데, 첫 32마디는 이 세 개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상당한 규모의 경과부(중간부?)에서는 새로 두 개의 모티브가 생겨나며, 진정한 2주제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모티브(모티브 d다)는 5도 코드로 조용히 등장한다(이 직전에 1주제 단편들이 하행 5도 음정의 모방 기법으로 이곳저곳에 등장, 선율적 흐름의 처리를 거친다). 왼손과 오른손이 반대 방향으로 아르페지오를 넣는 이 주제는 복잡다단한 이 악장에서 몇 안 되는 쉼표와도 같다. 발전부는 완전히 폴리포니로 움직이며, 여기서 피아노의 다양한 기교가 쓰인다. 첫 모티브가 도치되면서 곡은 재현부로 넘어간다. 재현부에서 모티브는 순서대로 등장하지만 모두 도치형으로 나타난다(버르톡이 모티브를 수학적 측면에서 심사숙고했다는 얘기가 된다). 카덴차로 향하는 경과구는 또 모티브 a의 역행도치형이 쓰인다. 굉장히 부산스럽고 바쁜 악장이며, 작곡가의 대위법적 기교가 두드러지고, 피아노와 금관에게 높은 기교를 요구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2악장 (2.Adagio - Presto - Adagio) (C chord)

(2악장으로 들어서면 분위기가 일변하여 현악기군이 모호한 느낌의 병행 5도 음정으로 이루어진 코랄을 연주한다. 현악기는 약음기를 끼고 논 비브라토로 일관해 안개가 끼인 듯한 인상을 주며, 이런 상황 속에서 피아노가 조용하게 5도 코드를 연주하며 마치 즉흥연주라도 되는 양 다양하게 발전해나간다. 각종 타악기가 피아노 근처를 맴돌듯 반주를 해주는데, 이는 베토벤 <황제> 협주곡의 피아노/팀파니 듀오를 생각했을 때 격세지감이라 생각될 만큼 장족의 발전이다. 피아노가 물러서고 다시 현악기군이 5도의 코랄을 연주할 때, 팀파니가 서서히 트레몰로의 음량을 늘려나가면 그 때 피아노가 갑자기 끼어들어 클러스터 트릴을 연주하면서 200마디가 넘는 프레스토 부분의 스타트를 끊는다. 피아노의 클러스터는 한 옥타브 안의 거의 모든 음을 망라하며, 곧 스케일, 트레몰로 등의 기법을 활용하면서 거의 쉬지 않고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이런 피아노를 목관, 금관, 그리고 현악기군이 따라붙으며 사실상 전음계적인 요소를 보여주는데, 이는 버르토크가 만든 밤의 음악 중 가장 시대를 앞서나간 부분이다. 다시 돌아온 아다지오는 1부에 비해 약간 축소된 형태를 취한다. 피아노는 여전히 드럼을 위시한 타악기들에 의해 반주되며, 반복될 때는 도치형을 쓴다. E장조 스케일이 나오는 가 싶더니 본래 코드인 C단조로 마친다.)

3악장 (3.Allegro molto) (G major)

(세 개 악장 중 가장 타악기적 성격을 취하는 마지막 악장은 7부의 론도 형식이며, 1악장의 모티브들을 활용하고 있어 버르토크 특유의 아치형 구조를 보여준다. 도해로 만들면 다음과 같다 : 도입부 - A(새로운 주제) - B(모티브 b와 a) - A - C(모티브 c와 a) - A - D(모티브 d) - 코다 : 주요부 뿐 아니라 경과구와 코다 또한 1악장 자료들에 기초한다. 팀파니의 타격이 각 파트의 등장을 선명하게 구분시켜 주며, 또 각 파트의 구분 또한 1악장에 비해 훨씬 용이하다. 헐시 스티븐스의 해설에 따르자면, 경과적 부분인 195마디와 206마디 사이에서 새로운 모티브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사실 경과적 모티브의 도치와 모티브 a의 도치역행에서 파생한 것이다. 단순한 모티브의 도치역행이 새롭게 탄생한, 중요한 주제라도 되는 양 스트레토 기법으로 처리되는데, 상당히 참신한 시도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청자에게 이 곡은 작곡가의 현악 4중주에 비해 상당히 쉽게 들린다. 전 악장에 걸쳐 반음계보다는 전음계적 모드가 우세하며, 양쪽 끝 악장은 명백히 G장조라는 조성을 취하고 있고, 중간 악장 또한 약간의 방해를 받기는 하지만 기본음인 C를 흐리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헐시 스티븐스. <버르토크의 생애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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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쿠엔차> (Sequenza)

(50년대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성채를 쌓아올리기에 바빴다. 변화하는 추세를 받아들이기에도 벅찬 대중들은 그들의 시야에 존재하지 않았다(결국 대중들은 그들에게서 등을 돌려 완전히 다른 음악을 선택한다). 베리오는 이러한 50년대 아방가르드 흐름에 불만을 가졌다. 그는 비록 ‘비웃음을 당할지언정’ 연주자들이 연주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련의 작품집 작곡에 착수했다. 일견 그의 작품집은 힌데미트의 작품목록과 비슷하지만, 그의 곡에서는 힌데미트와는 달리 애정이 느껴진다. 작곡가는 주문 받은 작품을 불만 없이 써야 한다고 믿었던 힌데미트가 콘트라베이스 소나타나 튜바 소나타에서 애정을 담았다고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베리오의 <세쿠엔차>는 악기에 진심어린 애정을 담아 연주하는 연주가들을 위한 경의라고 할 수 있다. 작곡은 1958년 플루트로 시작해 2002년 첼로를 위한 14번째 곡으로 끝날 때까지 무려 44년간 계속되었다. 여성의 목소리, 피아노, 트롬본, 비올라, 오보에, 바이올린, 클라리넷, 하프, 트럼펫, 기타, 바순, 아코디언, 알토 색소폰이 그 사이에 들어가 있다.

작곡가의 말에 의하면 <Sequenza>란 ‘Sequence of harmonic field'의 준말이라고 한다. ’화성적 형태의 순열‘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작곡가는 독주 악기를 위해 개발한 20세기의 거의 모든 기교를 쏟아 붓고 있다.)

 

세쿠엔차 1번 (플루트) (Sequenza No.1 for Solo Flute)

작곡 시기 : 1958년 완성

헌정자 : 세베리노 가첼로니

(플러터 텅잉을 비롯한 고도의 기교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하는 세쿠엔차 1번. 하행 12음 선율로 시작한다. 정해진 템포는 없으며, 연주자는 시간에 맞추어 악절을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음의 밀도가 떨어지는 트릴이나 트레몰로는 고저 없이 평온한 바다를, 강세와 억양, 음가에 의해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다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섬을 떠올리게 한다.)

 

세쿠엔차 2번 (하프) (Sequenza No.2 for Harp)

작곡 시기 : 1963년 완성

헌정자 : 프랑수아 피에르

(프랑스 인상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애정을 드러내는 하프를 위한 세쿠엔차. 숲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상쾌하고 시원한 곡이다. 작곡가는 하프의 전통적인 주법을 확장하는 데 공을 들인다. 일반적인 글리산도나 아르페지오, 화음형 뿐 아니라 강한 스냅 피치카토와 기타를 생각나게 하는 피치카토를 사용하고, 일부러 거친 소리를 내기도 하며, 페달을 적극 활용하기도 하면서 하프에서 예상하기 힘든 강하고 단단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세쿠엔차 5번 (트롬본) (Sequenza No.5 for Solo Trombone)

작곡 시기 : 1965년 완성

헌정자 : 스튜어트 댐스터

(베리오는 다섯 번째로 완성한 이 곡을 전설적인 어릿광대이며 음악가였던 그록(Grock, 1880-1959. 본명은 샤를 아드리앵 베타시Charles Adrien Wettach)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만들었다. 트롬본으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다 시험해 보는, 어떤 의미에서는 트롬본을 위한 전설적인 곡이다. 곡은 우스꽝스러운 소리로 시작하며 유쾌하지만 진실된 어릿광대의 모습을 묘사한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7번 주요 주제가 트롬본을 위한 가장 순수한 주제라면, 이 곡은 트롬본의 기교에 경의를 표하는 대표적인 곡이라 할 수 있다. 14곡의 세쿠엔차 중 가장 해학적인 곡.)

 

세쿠엔차 6번 (비올라) (Sequenza No.6 for Solo Viola)

작곡 시기 : 1967년 완성

(독주 비올라를 위해 만든 세쿠엔차 6번은 길이도 길고 기교도 손꼽힐 정도로 어렵다. 그는 이 곡에서 위대한 현악기 연주자의 기교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바로 니콜로 파가니니다. 그에 걸맞게 활대로 브릿지 치기, 글리산도, 아르코와 피치카토의 재빠른 전환 등등 별의별 기교가 다 등장한다.)

 

세쿠엔차 7번 (오보에) (Sequenza No.7 for Solo Oboe)

작곡 시기 : 1969년 완성

헌정자 : 하인츠 홀리거

(이 곡에서는 완전 5도가 자주 등장한다. 작곡가는 오보에의 가장 큰 특징인 정확한 음정에 경탄하면서, 동시에 곡에서 조성적인 특질을 드러낸다(자주 등장하는 B음이 이 곡에 조성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또한 베리오는 오보에라는 악기를 통해 오보에족의 악기인 잉글리시 호른을 절묘하게 사용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 같다(바그너는 <트리스탄>의 3막 전주곡에서 잉글리시 호른을 위한 기막힌 패시지를 만든 바 있다).)

 

세쿠엔차 8번 (바이올린) (Sequenza No.8 for Solo Violin)

작곡 시기 : 1976년 완성

헌정자 : 카를로 치아라파

(베리오는 이 현악기를 통해 바흐의 D단조 파르티타, 유명한 샤콘느를 떠올리고 있다. 바이올린은 A음과 B음을 연속적으로 연주하며, 중음주법을 비롯한 현란한 기교를 동원하며 여기에 음을 채워 넣는다. 과거의 기교와 현재의 기교, 그리고 미래의 기교가 이 곡에서 뒤섞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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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악장 <지금 주 안에서 죽는 이들은> (7.Selig sind die Toten. Feierlich 4/4)

(텍스트 : 요한묵시록 13장 14절)

Selig sind die Toten

Selig sind die Toten, die in dem Herren sterben, von nun an, Ja, der Geist spricht, daß sie ruhen von ihrer Arbeit, denn ihre Werke folgen ihnen nach.

(Offenbarung Johannes xiv. 13)

지금 주 안에서 죽는 이들은

나는 또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이들은 행복하다.‘고 기록하여라.” 하고 하늘에서 울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들은 수고를 마치고 안식을 누릴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요한묵시록 14장 13절)

다른 악장들, 즉 2악장과 6악장, 3악장과 5악장이 아치형으로 짝을 이루는 것처럼, 마지막 7악장 또한 첫 1악장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가장 좋은 예로 1악장과 7악장은 모두 ‘Selig(복된)’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시작한다는 사실을 들 수 있겠다. 다만 '애통함'에 대해 다루고 있는 1악장과는 달리, 7악장의 기본 주제는 '안식'이다. 브람스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가는 이 곡을 통해 슬픔의 끝에는 안식이 있다는, 보편적이면서도 거대한 위로를 주고자 했다. 

이제 죽음의 공포는 F장조 상행 8분음표의 흐름에 휩쓸려가고, 영원한 안식에 대한 갈구만이 남는다. 따뜻함과 자애로움으로 가득한 첫 선율 F-D-C는 1악장의 상행 선율 F-A-B♭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내려간다. 하나님의 축복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는 것을 선율로 표현하는 것이다. 소프라노가 선율을 마치면 베이스가 C-A-G의 하행 선율로 응답한다. 관현악의 반주 안에서 사람들은 푸가로 노래한다.

48마디부터는 A장조의 중간부가 이어진다. 첫 부분보다는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합창단이 “그렇다. 그들은 수고를 마치고 안식을 누릴 것이다”라고 부른다. 63마디부터 조성은 E장조로 변화하고, 그 조성에 따라 “그들이 한 일이 그들을 따라가기 때문이다”라는 가사가 나온다. 성악이 노래를 부르면 플루트와 오보에는 이 선율을 그대로 모방한다. 이 두 악구는 마치 다리처럼 이어진다. 앞의 수고(Arbeit)와 뒤의 안식(Ruhe)을 잇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수고함의 끝에는 안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처럼.

A장조의 중간부가 F장조의 주부로 돌아가는 부분. 그 전조 부분은 정말 황홀하리만치 아름답다. 가사는 테너 파트가 먼저 부르지만, 첫 부분과는 달리 한 파트의 낭창이 끝나면 모든 파트가 같이 노래를 부른다. 더 이상 어느 누구도 홀로 있지 않게 되는 셈이다. 158마디에 이르러 조성은 확고한 F장조의 으뜸화음에 안착하고, 하프의 아르페지오가 그들을 맞이한다. 하프는 1악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등장한 적이 있다. 브람스는 하프를 자주 사용한 작곡가는 아니지만, 하프의 특성을 잘 알고 이 악기가 얼마나 대단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프는 VI-V-I-IV로 화음형을 연주한 후 아르페지오로 천천히 마지막 음계들을 수놓는다.

브람스는 1악장과 7악장의 대칭 구조를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게 꿰어 맞추고 있다. 1악장 154마디-158마디의 “getröstet werden(위로를 받다)”와 7악장 162마디에서 165마디 “selig(복된)”은 동일한 선율을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이 두 부분은 소프라노와 알토 파트가 선창하고 테너와 베이스 파트가 따라오는 순서마저 똑같다. 브람스는 음악적 표현 뿐 아니라 선율에 있어서도 곡이 대칭을 이루도록 한 것이다. 즉, 주에게 위로를 받는 것은 복되다(Es soll getröstet werden, ist selig)는 사실을 전달하기 위한 음악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두 부분은 모두 긴 지속음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속음 끝에는 페르마타가 있다. 브람스는 위로가 영원할 것이라는 소망을 음표를 통해 넌지시 암시한다.

 

참고문헌

김신정.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에 나타난 대칭적 구조에 관한 연구 : 1악장과 7악장을 중심으로>,

장로회신학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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