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센트럴 파크>와 짝을 이루는 이 음악을 알지 않고서는 <센트럴 파크>를 온전하게 알 수 없다. 두 음악은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이다.

 

1906년 7월경, 아이브스는 《대답없는 질문 The Unanswered Question》을 스케치한다. 이 작품은 아이브스의 또 다른 실험적인 작품으로 3개의 선율층들로 만들어졌다. 각각의 층들은 나름대로의 조직과 악기 편성을 갖고 서로 병행하는 스타일로 진행한다. 배경이 되는 현들은 들어서는 거의 알 수 없게 천천히 순환하며, 서로 신비스러운 소리의 동형진행을 만들어간다. 이것은 전통적인 화성으로 진행하지만 거의 조성음악처럼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의 진행 방법은 아이브스가 이후에도 계속 사용하고자 했던 방법은 아니었다. 선율층들은 너무 불명확하고, 정적이며, 서로의 진행 과정에만 집착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브스는 이를 보완하여 곧 더욱 통합적인 선율층 음악을 작곡하게 되는데, 이것이 《어둠 속의 센트럴 파크 Central Park in the Dark》이다. 이렇게 《대답 없는 질문》과 《어둠 속의 센트럴 파크》가 모여 《두 개의 명상들 Two Contemplations》이라는 작품을 이룬다. 이 작품 이후에도 아이브스는 이러한 선율층들에 대하여, 더 나아가 여러 그룹의 음향층들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했다. 마치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혹성들처럼, 각각의 그룹은 자신이 속한 공간의 음악 안에서, 자유롭게 일종의 초대위법(super contrapunctal)인 진행을 한다. 이러한 방법은 아이브스가 처음부터 의도한 것 같지는 않지만, 어쨌는 그는 이 방법을 통하여 전례에 없던 여러 대위법적 층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 20세기 작곡가 연구. 이경미

 

《대답없는 질문》은 현악기와 목관악기, 독주 트럼펫을 위한 곡이다. 현악기는 G장조의 변동 없는 화음을 계속 연주한다. 약간의 변주로 제한된 변화만을 허용할 뿐이다. 현악기는 곧 이 곡의 배경이다. 그 틈을 비집고 트럼펫이 6개 음으로 구성된 프레이즈를 던진다. 작곡가의 설명에 의하면 ‘실존이라는 영원한 질문’이다. 반대로 현악기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보거나 듣거나 알지 못하는 드루이드 사제들의 침묵’이라고 썼다.

트럼펫은 틈을 벌리고 소동을 키운다. 혼란을 끌고 온다. ‘싸우는 답변자들’ 이라는 설명이 붙은 플루트는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반음계적/다조적 헤테로포니를 연주한다. 마치 이것이 답변이라는 것 마냥. 현악기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트럼펫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오직 목관악기들만이 자기 답변을 변형시킨다. 그러다가 마지막 질문이 끝나고, 현악기만이 처음과 같은 고요한 화음을 계속 연주한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질문과 대답은 평행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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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센트럴 파크> (Central Park in the Dark)

작곡 시기 : 1906년 완성

악기 편성 : 피콜로, 플루트, 클라리넷(E♭), 바순, 트럼펫, 트롬본, 타악기, 피아노 2, 현악 5부

(역대 모든 작곡가들을 통틀어 가장 효과적이며 파격적인 음악 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아이브스는 난삽하지만 열정적인 미국음악의 개척자로 남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 그는 끊임없이 창조적이면서 동시에 실험적인 문제에 직면했고 그때마다 재치 있는 방식으로 난제들을 돌파하거나 회피해나갔다. 20세기의 음악언어 중 몇 개는 온전히 그의 손에서 나왔고, 또 다른 몇 개는 그가 독창적으로 고안해 낸 것이며, 또 다른 몇 개는 그의 손에 의해 필수적인 것으로 자리 잡았다. 그에 대해 내려질 평이 무엇이건 간에 그는 진정한 의미의 20세기 미국 음악을 썼다.

그는 1906년에 <대답 없는 질문>과 이 곡을 썼다. 두 곡은 하나의 짝을 이루고 있다. 그의 가장 중요한 형식으로 여겨질 누적 형식이 바로 이 곡에서 나타난다. 아이브스는 두 곡을 <두 개의 명상>이라는 제목으로 묶었다. 아이브스의 많은 작품들이 그렇듯 이 작품도 1946년, 작곡가의 나이 72세가 되어서야 초연을 치를 수 있었다(5월 11일).)

 

(Molto adagio)

(전반의 지리한 현악 반주는 고요한 센트럴 파크의 모습이다. 그리고 중간부의 시끄러운 다조성적 음악은 뉴욕의 번화가로 접어든 모습이다. 번화가에서는 축제의 행진이 지나간다. 휘파람으로 부는 유행가(오보에), 두 대의 피아노로 연주되는 래그타임, 시끄러운 밴드의 나팔 소리(트럼펫), 덜컹거리는 마차 바퀴 소리(타악기. 1906년의 뉴욕은 아직 마차의 도시였다)가 들린다. 이것들에서 벗어나면, 다시 처음의 분위기로 돌아온다. 아이브스는 대조적인 여러 리듬들을 포개어져 만들어지는 리듬 층을 즐겼는데, <센트럴 파크>의 중간부도 하나의 예로 볼 수 있다. 중간부의 시끄러운 음향 층은 처음과 끝의 고요한 현악 파트와는 거의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토록 상이한 파트를 있는 그대로 배치하는 콜라주 효과는 논리적인 전개에 의해 구축되는 이전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효과를 들려준다. 더 이상 연속적인 흐름은 없고 날카로운 단절만 있을 뿐이며, 기존의 음악적인 관행과는 상관없이 잘라낸 듯 날카로운 단층면은 음악의 불연속성을 더욱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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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 (Quatuor pour ls fin du Temps)

작곡 시기 : 1940년 완성

악기 편성 :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헌정자 : 작곡가는 표지에 “묵시록의 천사들에게 바친다.”라고 썼다.

"나는 또 큰 능력을 지닌 천사 하나가 구름에 휩싸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의 머리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고 얼굴은 해와 같고 발은 불기둥 같았습니다. / 그는 손에 작은 두루마리를 펴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른발로는 바다를 디디고 왼발로는 땅을 디디고서, / 사자가 포효하듯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가 외치자 일곱 천둥도 저마다 소리를 내며 말하였습니다. / 그렇게 일곱 천둥이 말하자 나는 그것을 기록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늘에서 울려오는 어떤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일곱 천둥이 말한 것을 기록하지 말고 봉인해 두어라." / 그러자 내가 본 천사 곧 바다와 땅을 디디고 서 있던 천사가 오른손을 하늘로 쳐들고서는, /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을 두고, 하늘과 그 안에 있는 것들,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 바다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창조하신 분을 두고 맹세하였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일곱째 천사가 불려고 하는 나팔 소리가 울릴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종 예언자들에게 선포하신 대로 그분의 신비가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  <요한묵시록> 10:1~7

(팔레스트리나, 바흐와 견줄 만한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작곡가 메시앙을 대표하는 이 실내악곡은 특이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졌다. 포로수용소(폴란드의 실레지아 괴를리츠, 당시에는 독일 영토였다)에서 수용소 안에 남아있는 악기(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를 총동원했고, 수용자 5천 명이 초연의 청중으로 연주회에 참석했기 때문이다(1941년 겨울 초연). 초연 때 피아노를 맡았던 메시앙은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강렬한 체험이었을 이 초연 광경을 이렇게 회고했다. "수용소는 눈에 파묻혀 있었다. 첼로는 줄이 3개밖에 없었고, 피아노는 건반을 한 번 누르면 다시는 올라오지 않았다." 곡을 관통하는 사상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남겼다. "하느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뒤에 제7일은 안식일로 완벽한 숫자가 되지만, 7일은 다시 영원 속으로 뻗어서 마침내는 불멸의 광명과 평화를 뜻하는 8이 된다. 이 작품을 8악장으로 만든 이유가 이 때문이다." 마지막 악장이 예수의 영원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흔히 제목이 <세상의 종말을 위한 4중주>라고 잘못 알려져 있지만,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가 맞다. 작곡가는 요한묵시록 10장에서 힌트를 얻어 시간 너머에 있는 영원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려 했고, 그 표현의 결과는 단순한 간주곡에서 광폭한 스케르초 풍 악장을 거쳐 심오한 두 곡의 송가까지 포괄하는 심원한 세계를 다루고 있다.)

 

1악장 <수정의 예배> (1.Liturgie de cristal)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 새들의 깨어남. 많은 소리와 나무 사이를 빠져나와 멀리 사라지는 빛의 트릴에 싸여 꾀꼬리 또는 개똥지빠귀의 즉흥연주가 펼쳐지며 피아노의 화성과 첼로의 하모닉스,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이 새의 노래를 연주한다. 이것을 종교적인 플랜으로 바꿔보기 바란다. 하늘의 해학적 조용함이 얻어질 것이다.”)

(곡은 신과의 접점을 뜻하는 예배로 시작한다. 곡은 처음부터 시간 너머의 기적과도 같은 현상, 즉 비일상 속으로 빠져나간다. 자연스럽게 곡은 종말에 대한 환시와 내면의 침잠으로 빠져든다. 화성에 의한 프레이즈 구분이 없으니 현세적인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마디에 의한 형식 구분도 희미해 한계를 긋는 벽도 존재하지 않는다. 클라리넷이 주선율을 담당하며 바이올린과 함께 새소리를 모방하는데, 이것은 2악장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2악장 <시간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를 위한 찬송> (2.Vocalise pour l'ange qui annonce la fin du temps)

(“제1, 제3부분(모두 극히 짧다)이 강한 천사의 힘을 나타내며 천사는 머리에 무지개를 이고, 몸은 구름에 쌓였다. 한쪽 발은 바다에, 또 한쪽은 땅 위를 밟고 있다. 중간부는 하늘이 지각하지 못할 아르모니(해조)다. 피아노에 주어진 블루 오렌지 화음의 감미로운 폭포가 멀리서 들리는 종의 울림으로 바이올린과 첼로의 성가 풍의 멜로디를 감싸준다.”)

(총 55마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부(1-18마디)와 3부(49-55마디)는 빠른 부분, 중간부(19-48마디)는 느린 부분이다.)

 

3악장 <새들의 심연> (3.Abime des oiseaux)

(“클라리넷의 독주, 심연, 그것은 슬픔과 권태의 ‘때(Temp)’이다. 새들, 그것들은 ‘때’에 대립한다. 이것은 별과 무지개, 환희의 보칼리스로 향하는 우리의 바람이다.”)

(메시앙의 음악인생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새의 노래.’ 음악이 새의 노래를 음악 속에 종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새의 노래가 음악을 미묘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

 

4악장 <간주곡> (4.Intermede)

(“스케르초. 다른 악장들에 비해서 외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개의 멜로디를 순환시키면서 연관성을 맺고 있다.”)

(이 악장에서는 피아노가 빠져 있다. 작곡가의 설명대로 다소 내면적인 성격의 선법을 사용하는 다른 악장들과 달리 외면적이고 활발한 스케르초다. <투랑갈릴라 교향곡>의 5악장과 마찬가지로 장3화음에 의한 조성이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악장이기도 하며, 주요 음계는 E음상의 2선법이지만 자연스럽게 E장음계로 전환하며 온음음계도 나타난다.)

 

5악장 <예수의 영원성에 대한 송가> (5.Louange a l'Eternite du Jesus)

(“예수는 여기에서 ‘말씀’으로 여겨진다. 하나의 한없이 느린 첼로의 프레이즈가 사랑과 존경으로 이 힘차고 감미로운 ‘말씀’의 영원성을 찬양하고 있다. 세월이 조금도 고갈되지 않는(영원성), 위풍당당하게, 일종의 멀리 있는 사랑과 주권자로서 선율이 펼쳐진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첼로의 독주에 피아노 반주가 붙은 조용하고 느린 곡이다. 첼로의 악구와 피아노의 16분음표가 끝까지 지속된다. 박자표기 없이 마디만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강박의 개념은 사라지고, 저음부의 피아노가 5도와 6도를 지속적으로 연주해 텅 빈 느낌을 더한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다만 부유하는 것이다. 시간은 지나가지 않고 ‘말씀’은 영원히 남는다.)

 

6악장 <7개의 나팔을 위한 광란의 춤> (6.Danse de la fureur, pour les sept trompettes)

(“율동 면에 있어서 이 악장은 전 악장 중 가장 독창적이다. 4개의 악기는 유니즌으로 공과 나팔을 모방한다(계시록의 여러 가지 파국을 차례로 알리는 6개의 나팔과 하나님의 비밀의 성취를 알리는 일곱째의 나팔이다). 부가된 음가, 확대 또는 축소의 리듬, 비역행 리듬의 사용, 돌의 음악, 소리가 무거운 화강암, 강철의 붉은 색의 열광하는 거대한 덩어리가 얼어붙은 도취에 저항치 못하는 리듬, 무엇보다도 악장 마지막 부근에서 확대와 몇 개 음의 음역 변경을 받는 주제와, 공포의 포르티시모를 들어보라.”)

(작곡가의 설명대로 부가리듬과 비역행 리듬을 빈번히 사용하고 있다. 음가의 축소와 확대 리듬은 곡에 비정상적인 흐름을 더하고, 힘 있는 옥타브 음향은 돌과 강철의 느낌을 더한다. 바야흐로 나팔 소리에 맞춰 세상이 무너지는 광경에 대한 묘사인 셈이다. 여덟 악장을 통틀어 가장 독창적인 악장이다.)

 

7악장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를 위한 무지개의 착란> (7.Fouillis d'arcs-en-ciel, pour l'ange qui annonce la fin)

(“여기에서 두 번째 악장의 어떤 구절들이 다시 돌아온다. 힘으로 가득 찬 천사가 나타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천사를 덮고 있는 무지개가 나타난다(그 무지개는 평화와 지혜와 빛을 발산하고 소리를 내는 모든 바이브레이션의 상징이다). 나의 꿈 속 에서 나는 정리된 노래와 멜로디를 듣고 색깔과 형태를 본다. 그 후에 일시적인 이러한 단계 후에 나는 비현실을 통과하고 황홀경의 느낌으로 초인적인 소리와 색깔의 선회하는 소용돌이에 빠진다. 이 불의 검, 파랑과 오렌지 색, 용암의 분출, 난폭한 별; 여기에 뒤죽박죽이 있다. 여기에 무지개가 있다.”)

(형식은 총8부분(A[1-12]-B[13-26]-C[27-38]-B'[39-54]-A'[55-60]-C'[61-81]-A''[82-93]-B''[94-97]). 7악장에서 우리는 2악장의 색조를 다시 본다. 화성은 선법과 장음계 사이에서 여러 조 사이를 순회하며 다조적인 느낌을 불어넣는다. 피아노를 제외한 세 개의 악기가 주선율을 연주하고 피아노는 반주를 맡는다. 여섯 번째 파트인 76마디부터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바이올린이 음을 서서히 하나하나 소거하며 상승하는데, 결국 A음과 C#음을 제외하면 어떤 음도 남지 않는다.)

 

8악장 <예수의 영원성에의 송가> (8.Louange a l'Immortalite du Jesus)

(“다섯 번째 악장의 첼로 독주에 대비하여 행해지는 바이올린의 독주 라르고, 두 번째 천사는 예수의 두 번째 측면, 즉 인간으로서의 예수, 살을 입고 오셔서 우리에게 그의 삶을 알리려고 영원히 부활하신 면을 특별히 강조한다. 두 번째 천사는 전적인 사랑이다. 고음역의 정점에 이르는 온화한 고양은 인간이 ‘신’에게, 신의 아들이 ‘성부’에게, 피창조물이 ‘천국’을 향하는 상승이다.”)

(여기서 피아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리듬을 사용한다. 화성적으로는 각조 VI화음(단3화음)의 연속진행으로 화성을 해결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동한다. 바이올린이 제시하는 선율은 E장조 위에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음들을 포함하고 있다.)

 

참고문헌

정윤미, <메시앙의 작품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의 분석연구>, 경희대학교 대학원,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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