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10.13 카네기 홀 실황 : 프라이스, 반 담, 베를린 필, 빈 징페라인

83.8.15 잘츠부르크 실황 : 헨드릭스, 반 담, 빈 필, 징페라인

연주에 대한 압도적인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연주에 대한 평을 쓴다는 것은, 건망 속에서 세세한 기억을 복구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연주에서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미화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연주도 나에게 그러한 고민을 던져주었기에, 연주에 대해 쉽게 풀어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카라얀은 브람스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이자 브람스라는 작곡가의 테두리를 여러 번 벗어나는 이 미증유의 걸작에 지속적인 애정을 보였고, 여러 차례의 연주를 남겼다.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클렘페러의 연주가 전통적인 해석으로 버티고 서 있는 상황에서, 카라얀의 연주들은 지속적으로 이 곡에 새로운 지평을 부여했고 이 곡의 거대한 해석 세계 한 축에 서 있다. 지금 소개할 두 실황은 카라얀의 그러한 여러 연주들 중 단연 으뜸이라 할 만하다.

카라얀의 독일 레퀴엠 연주를 설명한다면 어떤 말이 가장 잘 어울릴까? 고도로 정제되면서도 농밀한 현악기, 통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관악기군, 위엄과 박력을 동시에 갖춘 해석, 조화를 추구하는 성악진. 한 마디로 ‘압도적’이라 할 연주다. 그러나 단지 ‘압도적’인 해석만으로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이 가능할까? 슬픔, 절망, 참회, 찬송, 위로, 심판, 그리고 안식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이 곡은 단지 그것만으로는 풀어나가기 벅찰 정도로 너무 크다. 그렇다면 카라얀이 곡의 본질을 정확히 낚아채는 연주는 역시 고도로 통제된 스튜디오 레코딩보다는 연주자의 본질이 잘 묻어나오는 실황 녹음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라얀의 관현악은 카네기 실황과 잘츠부르크 실황 둘 다 매우 뛰어나지만, 역시 카네기 실황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카네기 실황에서의 카라얀은 악구를 통제하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작곡가가 음표를 적어 내려가며 느꼈을 감동과 눈물을 그대로 발산하고자 한다. 그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6악장에서 바리톤 독창이 끝나고 ‘최후의 나팔 소리’에 따라 관현악이 투티로 몰아치는 부분, 마치 그리스도의 죽음에 애통하듯 예루살렘 성전 장막이 둘로 찢어진 것과 비견할 수 있을 만한 그 거대한 충격파 부분을 꼽을 수 있겠다. 그 부분은 정말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이 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찻잔 속의 태풍 같은 연주들에서 무슨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을 받는단 말인가?

1악장과 7악장 말미의 하프 독주도 카네기 실황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만드는 부분이다. 1악장과 7악장을 하나로 묶어주는 하프의 독주는 잘츠부르크 실황보다는 카네기 실황에서 좀 더 두드러지게 들린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하프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카네기 실황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만든다.

다만 카네기 실황은 개인이 몰래 녹음한 탓인지 음향 상태가 별로 좋지 않고, 뒤의 악장으로 갈수록 그런 문제는 더욱 심해진다. 세세한 디테일을 찾고 싶다면 역시 잘츠부르크 실황 쪽이 더 좋을 것이다. 4악장과 7악장의 섬세한 코랄에서 그 장점이 매우 두드러진다.

바리톤은 76년의 연주와 83년의 연주 모두 호세 반 담이 맡았는데, 그는 심판의 날에 대해 설교하는 느낌의 피셔-디스카우와 대척점을 이룬다. 반 담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회하는 것 같은 통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3악장은 그런 반 담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부분이다. 6악장의 바리톤 독주에서도 피셔-디스카우가 담담하게 정경의 구절들을 읽어 내려가는 느낌이라면, 반 담은 정말로 브람스가 배치한 급진적인 전조처럼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절망 속에서 구원을 찾아 헤매는 선지자의 느낌이 강하다.

소프라노는 헨드릭스보다는 프라이스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83년의 헨드릭스는 너무 교태 떠는 것 같은 목소리라 5악장에서 의도한 거대한 위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이 아니라 가식적인 사촌 누나의 목소리에 가깝다. 담담한 프라이스의 노성은 5악장이 참으로 독특하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문제 많은 빈 징페라인이지만, 적어도 <독일 레퀴엠>에서만큼은 카라얀의 해석에 문제없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들을 수 있다. 물론 합창단은 76년보다는 83년이 더 세세한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래서 징페라인은 83년의 연주가 더 좋아 보인다.

결론 : 압도적인 카네기 실황. 그러나 잘츠부르크 실황도 좋은 보충재가 될 수 있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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