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본 원칙 : 레드 오션에서는 기존 연주를, 블루 오션에서는 새로운 연주를 좋아한다. 오랜 세월 동안 연주해 온 곡은 최근의 연주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연주에서 그 곡에 대한 경험의 축적과 열정을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새로운 곡에서는 그 새로운 곡에 대한 신선한 해석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블루 오션이 블루 오션인 이유는 곡의 질에 비해 명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 곡을 사람들이 듣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톡톡 튀는 신선함이 있어야 한다.

2) 연주 해석의 기반을 잡은 연주와 좋아하는 연주는 분명 같을 수 없다. 가령 드뷔시 전주곡에서 미켈란젤리의 해석이 연주의 뼈대를 잡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미켈란젤리는 '소리' 자체에 집착해 리듬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켈란젤리보다는, 미켈란젤리의 해석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리듬의 유연함을 잘 살려낸 루비모프의 연주를 더욱 좋아한다.

3) 분명히 많은 요즘 연주들이 모든 곡에 대해 규격화와 최적화를 깔끔하게 이루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연주들을 들을 때마다, 항상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1930년대에 오케스트라는 마을마다 다른 소리를 냈다.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1960년대만 해도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는 모두 다른 소리를 냈다. 물론 피치도 다르고(사실 피치는 지금도 모든 오케스트라가 동일할 수 없다) 지휘자도 다르기 때문에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왜 요즘의 지휘자들은 한결같이 동일한 표준 규격에 음악을 몰아넣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령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한다고 치자. 베토벤 교향곡 4번 1악장에서 4분음표는 메트로놈 표기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연주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철저한 원칙이 있는가? 베토벤 자신의 메트로놈 표기를 신뢰한다고? 작곡가도 신뢰하지 않은 메트로놈 표기를 내가 뭐하러 신뢰해야 하는가?

분명히 메트로놈 표기를 신뢰해야 하는 음악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음악은 거의 90% 이상이 20세기 후반 이후의 현대 음악에 몰려 있다. 그 이전 음악은 화성적 구조나 대위법적 구조상 어떤 음 이전이나 이후에 있기만 하면 된다. 분명 그 안에서 자유로운 해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음반을 살 이유가 없다. 나는 악보를 듣기 위해서 음반을 사는 것이 아니다. '악보 플러스 알파'가 없다면, 그 음반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4) 나는 옛날의 영광을 재현한답시고 옛 해석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을 혐오한다. 내가 틸레만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과거의 향수에 집착하는 것은 새로운 해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욕을 먹으면서도 색다른 해석을 들려주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볼지언정 혐오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차라리 파비오 루이지의 슈트라우스가 틸레만의 슈트라우스보다 낫다.

5) 가수들은 분명히 옛날 가수들이 요즘 가수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바바라 해니건 같은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은 오로지 현대 음악에 헌신하는 사람이니까). 성악가는 인재 풀이 두터울 수록 좋은 싹이 자라고 좋은 꽃이 피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가능하다. 성악가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는 이유는 성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인재 풀이 얇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인재 풀은 분명히 '양적 성장'과는 다르다.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 안에 들어있는 인재의 수도 늘어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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