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Concerto for Orchestra, Sz.116)

작곡 시기 : 1943년 8월 15일 착수, 10월 8일 완성

헌정자 : 나탈리아 쿠세비츠키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의 아내)

악기 편성 : 플루트 3(한 대는 피콜로 겸), 오보에 3(한 대는 잉글리쉬 호른 겸), 클라리넷 3(한 대는 베이스 클라리넷 겸), 바순 3(한 대는 콘트라바순 겸), 호른 4, 트럼펫 3,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사이드 드럼, 베이스 드럼, 심벌즈, 트라이앵글, 탐탐, 하프 2, 현악 5부

(1940년 가을, 바르톡은 전쟁의 참화에 휩싸인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미국의 몇몇 연주자와 음악 애호가들이 바르톡의 재능을 인정해 주고 바르톡도 그들에게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헌정했지만, 미국 사회는 이 현대 작곡가를 매정하게 대했고 그는 쇤베르크처럼 강의로 생계를 이어야 했다. 그의 재능을 잘 알고 있으며, 그의 성격 - 까칠하고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무엇보다 싫어하는 - 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요제프 시게티와 지휘자 프리츠 라이너는 그를 간접적으로 도울 방법을 찾았다. 1943년, 바르톡은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 세르게이 쿠세비츠키로부터 1천 달러의 보수와 함께 관현악곡 의뢰를 받는다. 당시 바르톡은 백혈병을 앓고 있었으며, 고열이 시도 때도 없이 그의 몸을 기습했고, 체중이 감소했다가 다시 불어나는 현상을 겪는 등 최악의 몸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대 관현악곡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을 완성했다(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7주에 불과하다). 이 곡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관현악의 패러다임을 뒤집어엎는 새로운 작품이었다. 악기가 오케스트라의 부속품으로 종사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오케스트라의 일원이 되었다. 개개의 악기들은 자기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면서도 오케스트라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다.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라는 제목 자체가 모순되는 두 가지 체제를 상징한다.

1944년 12월, 쿠세비츠키에 의해 초연된 이 작품은 삽시간에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바르톡은 하룻밤 사이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 작곡가가 되었다. 그에게는 작곡 요청이 쇄도했고, 바르톡은 병중에도 바쁜 나날을 보내며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피아노 협주곡 3번>, <비올라 협주곡>, <현악 4중주 7번> 작곡에 착수했다. 그러나 이중에서 완성된 것은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뿐이다. 그는 <피아노 협주곡 3번> 오케스트라 파트의 마지막 17마디를 완성시키지 못했으며(제자 티보르 셸리가 이를 완성했다), <비올라 협주곡>은 스케치 상태, <현악 4중주 7번>은 몇 마디의 메모만을 남겼을 뿐이다. 그는 고통을 인내한 끝에 보상을 받았지만, 그 보상을 누렸던 기간은 너무도 짧았다. 끝내 고국 헝가리에 돌아가지 못했던 작곡가는 1945년 9월 26일 뉴욕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쳤다.

바르톡에 대한 감동적인 저서 <바르톡의 생애와 음악>을 집필한 헐시 스티븐스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창조자가 통렬한 그 무엇을 가능한 진지하게 말할 경우에는 현미경적 해부는 무의미하다. 바르톡의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은 걸작이며 금세기에 배출된 가장 위대한 작품의 하나인데, 이는 그 자료들의 독창성이나 처리 기법의 참신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이 폭 넓고 중요하며 또 이들이 더할 나위 없는 논리와 확신으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 이들은 필연적인 작품들로서 너무나 강한 인상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어떤 다른 방식으로 쓰여지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바르톡은 이와 같은 필연성을 현악 4중주곡 제4번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에서 마지막으로 획득했다.")

 

1악장 <서주> (1.Introduzione. Andante non troppo 3/4 - Allegro vivace 3/8)

(‘준엄함’ - 작곡가의 곡 해설 팜플렛 설명)

(1악장 <서주>. 파를란도 루바토(Parlando rubato)1)가 쓰이는 엄격하고 무거운 안단테에 서서히 속도가 붙는다. 아첼레란도 지시에 의해 알레그로 비바체의 주요부로 넘어가면 바르톡의 특성을 집약하고 있는 1주제를 맛볼 수 있다. 4도 진행, 5음음계 스케일, 도치 기법이 집약된 이 주제는 바르톡의 페르소나와 같은 것이며, 수십 년에 걸쳐 단련된 모티브 사용법의 원숙함을 능수능란하게 보여준다. 목관에 의해 제시되는 2주제는 단2도 모티브(E, F#)에 의해 구성되며 침착한 분위기로 긴장을 푼다. 여기서부터 바르톡 대위법의 주제 중 하나인 푸가토가 풀려나오며, 푸가토의 2제시부에서 주제의 도치형이 등장한다. 푸가토의 후반부는 금관악기가 이끌어나가는데, 곡 특유의 톡 쏘는 힘을 더한다.)

 

2악장 <짝들의 놀이> (2.Giuoco delle coppi. Allegretto scherzando 2/4)

(‘익살스러움’ - 작곡가의 설명)

(2악장 <짝들의 놀이>. 바르톡의 가장 유쾌한 스케르초. 작은북의 선도에 맞춰 개개의 악기들이 짝으로 등장한다. 바순이 6도, 플루트가 5도, (약음기를 낀) 트럼펫이 장2도, 클라리넷이 7도, 플루트가 5도로 움직이는데, 이 음정은 개개 악기의 특징에 딱 맞는 음정이며, 바르톡은 천부적인 감각으로 개개 악기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개성을 끄집어낸다. 트리오라 해도 좋을 부분은 금관의 단순한 코랄로, 난삽한 느낌이 나는 스케르초와 좋은 대조를 이룬다.)

 

3악장 <비가> (3.Elegia. Andante non troppo 3/4)

(‘음울한 죽음의 노래’ - 작곡가의 설명)

(3악장 <비가>. 어두운 '밤의 음악' 이 진지하고 음울한 분위기로 곡을 이끌고, 중간부에 1악장 서주에서 데려온 모티브가 재등장한다(사실상 서주부의 거의 모든 모티브가 토막토막 잘려서 악장의 절반동안 등장한다). 다섯 개 악장 중에서 가장 헝가리적인 분위기가 강하며 특히 몇 개 주제는 민요적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4악장 <중단된 간주곡> (4.Intermezzo interrotto. Allegretto 2/4+5/8)

(4악장 <중단된 간주곡>. A-B-A-중단-B-A. 리트의 A-B-A-B-A에 '중단' 부분을 삽입한 변형 가곡 형식. 전악장과 마찬가지로 민요적인 성격을 띠며 불가리아 리듬(5, 7, 11 등의 홀수 리듬) 패턴을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예고도 없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의 '전쟁' 주제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한 경직된 8/8박자 음악이 간주곡을 끊어버린다. 우스꽝스럽고 경박하기 짝이 없는 음악적 조롱은 쇼스타코비치를 제대로 패러디 하는데, 중간에 베이스 트롬본과 테너 트롬본을 위한 아주 뛰어난 글리산도가 있다(여기서 바르톡은 트롬본 슬라이드의 1포지션부터 7포지션까지를 모두 사용한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간주곡으로 돌아오면 조용하게 마무리가 이루어진다.)

 

5악장 <피날레> (5.Pesante 2/4 - Presto)

(‘생명력 넘치는 활달한 주장’ - 작곡가의 설명)

(5악장 <피날레>. 짤막한 금관의 페잔테(무겁고 중후하게) 섹션이 끝나자마자 무궁동의 현이 광속으로 돌진하고, 관현악의 모든 악기들이 순차적으로 이 레이스에 동참한다. 프레스토의 빠른 움직임 속에서 모티브들이 튕겨나가듯이 생성된다. 레이스가 종료된 후 (페잔테 패시지에서 파생된 것이 분명한) 푸가 주제가 등장하는데, 온음계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수법이 복잡하고 증대와 감소가 교묘하게 일어나며, 도치가 곳곳에 포진하고 4중 스트레토까지 있다. 이 복잡한 푸가 작법을 거치고 나면 다시 프레스토의 레이스가 펼쳐지고 이번에는 의문스러운 분위기로 빠져든다. 현의 음송이 위에서 주제들이 모습을 보이고,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며 곡은 끝을 맺는다. 바르톡은 피날레 악장의 엔딩을 두 개 썼는데, 원래 엔딩은 바르톡 고유의 분위기가 강하며, 새로 쓴 엔딩은 미국적인 분위기가 강하다. 새로 쓴 엔딩이 약간 더 길다.)

 

참고자료

- 헐시 스티븐스, <바르토크의 생애와 음악>. 경북대학교 출판부.

 

1) Parlando rubato : Parlando는 이탈리아어로 ‘말하다’라는 뜻. 한 마디 한 마디를 확실하게 액센트를 붙여서 이야기 하듯이 노래하는 형식. (<음악용어사전> p.599, 세광출판사, 1986.)

Posted by 여엉감
,

평균율 1권의 푸가들

음악 2013. 10. 28. 00:25

 평균율 1권에는 24개의 푸가가 있다. 24개의 조성에 맞추어 24개의 푸가를 썼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지만(바흐와 동시대를 살았던 한 작곡가는 자랑스럽게 "나는 F#장조나 D♭장조로 곡을 써본 일이 단 한 번도 없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점은 그 푸가들이 하나같이 닮은 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인벤션에 가까운 2성 푸가(10번 E단조)부터 고도의 대위법적 기교를 쌓아올린 5성 푸가(4번 C#단조와 22번 B♭단조 푸가. 공교롭게도 두 푸가 모두 수난곡 풍의 통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까지. 아주 짤막한 주제로 전개하는 17번 A♭장조 푸가부터 4마디에 달하는 긴 주제를 사용하는 22번 B♭장조 푸가까지(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푸가는 전혀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곡의 간결함 때문에 푸가라는 음악 형식을 익히는 데 쓰일 정도다). 복잡한 전개과정을 추구하는 1번 C장조 푸가부터 주제가 뚜렷이 두드러지는 2번 C단조 푸가까지. 쉴새없이 주문을 받고 정주 생활에 익숙하며(그는 평생 북독일 바깥으로 나가본 일이 없다) 정해진 일정에 맞추어 움직였던 '장인' 바흐가 평균율은 물론 수많은 곡에 한결같은 독창성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정말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라이프치히 시절, 그는 거의 1주일에 한 곡씩 새 칸타타를 써야 했다).

 평균율의 푸가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무궁무진해 도무지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9음의 반음계 주제로 되어 있는 12번 F단조 푸가는 어떠한가(굴드는 이 푸가를 두고 'Webernsqu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참으로 적절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24번 B단조 푸가는 반음계 동형진행 주제를 이용해 평균율 1권의 거대한 코다를 구축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푸가들에 비해 그다지 높은 평을 받지 못하는 16번 G단조 푸가조차 동시대 작곡가들의 숱한 푸가들과 비교하면 수준높은 처리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전위와 확대 기술을 교묘하게 사용하는 4번 C#단조 푸가는 내용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가히 최고라 할 만하다(이 푸가는 평균율 1권의 푸가들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무려 115마디).

 평균율의 푸가들은 독창성 뿐 아니라 논쟁점도 제시한다. 예를 들어 20번 A단조 푸가에서 마지막 다섯 마디에 걸치는 베이스 오르겔풍크트 A음은 어떤가. 이 음은 바흐가 살던 시대의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로도, 그 이후에 나온 포르테피아노로도, 현대 피아노로도 연주가 불가능하다. 오르간의 어법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이 주법은 지금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평균율 1권에서 바흐가 전주곡보다는 푸가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는 서술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푸가들이 모두 나름의 개성을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바흐는 그 일을 해내는 데 성공했고, 그가 의도한 대로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사용할 수 있음은 물론, 음악의 전문가들에게도 여가적 즐거움(물론 이 즐거움에는 '돈벌이'라는 단어도 포함되어 있다)을 제공하'고 있다.

Posted by 여엉감
,

시벨리우스 : <포욜라의 딸> Op.49

지휘자 : 콜린 데이비스

오케스트라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녹음 기간 : 2000년 1월 17일~19일

녹음 장소 : 워트포드, 콜로세움

<칼레발라>. 핀란드의 의사 뢴로트가 19세기에 채집ㆍ편집한 핀란드의 민족 서사시는 톨킨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음악적 근원이기도 했다. 그는 엄격한 형식에 교향곡의 원칙들을 밀어 넣어 모든 것을 용해시키기 전에 이미 민족적 토양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우리가 순음악으로 생각하는 그의 교향곡 2번조차 사실은 제정 러시아의 폭압에 반대하는 민족음악으로서의 가치를 먼저 주목받은 작품이었다.

그의 이러한 음악적 행보는 순음악에 가까운 교향곡보다는 오히려 일련의 교향시들에서 더 잘 나타난다. <칼레발라>의 용사 이야기를 다룬 <쿨레르보 교향곡>을 위시하여, <카렐리아> 모음곡, 교향 모음곡 <레민카이넨>,1) 그리고 이 <포욜라의 딸>이 있다.

<포욜라의 딸>은 <칼레발라> 8장을 바탕으로 쓴 교향시다. 영원한 노인인 라우라야2) 베이네뫼이넨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무지개 끝에서 천을 짜는 포욜라의 처녀를 발견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베이네뫼이넨은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배를 만들어 그 배를 어떤 방법으로도 건드리지 않고 물에 띄우면 청혼을 수락하겠다고 한다. 베이네뫼이넨은 배를 만들기 시작하지만 도끼 때문에 무릎에 큰 상처를 입고, 무릎에서는 피가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그는 출혈을 멎게 할 사람을 찾아 떠난다.

시벨리우스는 특유의 긴 선율들로 이 신화의 장면들을 처리한다. 그는 장면이 나오자마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에 바쁜 말러와 슈트라우스의 음악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장면을 다룬다. 하나의 음은 다른 음과 합쳐지고, 하나의 화음은 다른 화음과 섞인다.

콜린 데이비스의 연주는 비교적 느릿하면서도 힘을 주었다가 푸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고행에 가까운 연주 활동으로 인해 뼛속까지 다져진 합주력을 자랑하는 런던 심포니는 데이비스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연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파트는 저현으로, 부드럽거나 화려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북구의 서늘한 느낌을 잘 전달해준다. 불길하게 울리는 파곳 소리와 현악기의 조용한 합주가 어우러지는 코다에서도 긴장감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다만 전체적으로 해상도가 조금 떨어지고, 하프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아쉽다.

 

1) 레민카이넨은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대도大盜의 이름이다. 이 모음곡에 유명한 <투오넬라의 백조>가 있다.

2)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주술적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

Posted by 여엉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