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 Op.64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1981년 12월 31일 질베스터 콘체르트 실황

 

스튜디오 레코딩과 정확히 1년의 차이가 있는, 질베스터(31일) 콘체르트 실황 녹음이다. 스튜디오 녹음과 이 실황 녹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지휘자와 연주자가 같음에도 말이다. 

 카라얀 <알프스 교향곡>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소리의 조탁'을 들 것이다. 더 이상 다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세련되게 다듬어진 현악기, 압도적인 공세를 자랑하는 금관악기의 포효, 차갑고 깨끗한 소리를 들려주는 목관악기, 정확한 음량을 유지하는 타악기를 갖춘 카라얀과 베를린 필은 소리 자체에 대한 원대한 이상을 실현시켰다. 그것은 1980년의 스튜디오 녹음으로 충분히 달성해냈다. 거기서는 어떠한 잡음도 찾아볼 수 없고, 일말의 주저함도 엿볼 수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공간에서 시야를 방해하는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뚝 솟은 마터호른을 조망하는 것 같다. 마치 신이, 그 '순간'을 위해 미리 비로 티끌을 모두 씻어낸 후 구름까지 걷어내 진공과 비슷한 대기를 만들어준 것 같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카라얀의 스튜디오 녹음과 실황 녹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카라얀이 오랜 시간 집중한 브루크너 교향곡 연주에서 이 점은 매우 두드러지는데, 심한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연주인 것 같다. <알프스 교향곡>도 다르지 않다.

 이 연주는 스튜디오 녹음에 비해 금관이 더 톡 쏘는 음향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두고 있다. 타악기는 팀파니보다는 심벌즈와 탐탐의 소리가 더 두드러진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일년 내내 대기가 불안정한 알프스 산악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 같다. 실제로 알프스의 맑은 날씨를 쉽게 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미있다. 물론 폭풍우 속의 알프스를 실감나게 묘사하는 미트로폴로스/뉴욕 필(Music&Arts)에 비한다면 훨씬 깔끔하지만 말이다.

 87년 실황 녹음과 비교한다면, 87년 실황은 좀 더 느릿한 대신 강력한 음향을 발산하는 데 비해 이 연주는 오히려 악기간의 밸런스가 87년보다 더 잘 잡혀있다(87년에서 잘 들리지 않는 오르간 소리를 다소 선명하게 잡아준다). 그리고 좀 더 빠르다. 허나 ff이상으로 음량이 올라가면 목관악기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불만이다. 대신 81년 연주는 87년에 비해 모든 면에서 박력이 있다.

 그러나 이 연주가 강경 일변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다. 카라얀은 음악의 긴장을 죄였다 풀면서 클라이맥스를 절묘하게 구축하는데, 폭풍우가 그친 후 하산하면서 목가적인 풍경으로 접어드는 호른과 오르간은 모든 긴장이 풀리고 이제 마무리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

 무엇보다 이 연주의 가장 큰 장점은 실황 녹음에서 카라얀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잘 알려준다는 데에 있다. 스튜디오 녹음에서의 카라얀은 순도 높은 소리를 다른 것보다 위에 두기 위해 애를 쓴다. 초 단위로 프레이징을 계산하고, 악기의 배치를 수없이 연구하고, 더 좋은 음향 장비와 기술을 손에 넣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 결과가 80년의 <파르지팔> 스튜디오 레코딩에서 들을 수 있는, 반향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음향이다. 진동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그 음향은 도저히 음반 재생 장비에서 흘러나온다고 믿기 어렵다. 카라얀의 가장 놀라운 성과인 이 음향은 동시에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고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콘서트 홀에서의 카라얀은 음향을 다른 것들보다 위에 두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는다.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실황 연주에서의 카라얀은 아주 직관적으로 음악을 끌고 나간다. 박진감과 섬세함을 모두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 곡은 그 두 가지의 통합을 요구한다. 카라얀은 그 일을 아주 잘 해냈다. 이것만으로도 이 연주는 위대한 연주이기에 모자람이 없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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