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 5중주 (String Quintet in C major, D.956)

작곡 시기 : 1828년 8월에서 9월(?)

초연 : 1850년 11월 17일 빈에서 헤르메스베르거 현악 4중주단과 요제프 스트란스키의 첼로로 연주함.

출판 : 1853년(C. A. 슈피너)

악기 편성 : 바이올린 2, 비올라, 첼로 2

(이 작품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실내악곡이다. 현재 자필악보는 사라져 정확한 작곡시기를 알 수 없지만 출판사인 프로푸스트 앞으로 보낸 1828년 10월 2일자의 슈베르트 편지 중에는 현악 5중주곡을 작곡한 사실을 서술하였다. 다시 말해, 사망하기 약 2개월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이야기지만 장대한 스케일과 숭고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이 5중주곡은 마치 슈베르트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위대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악상을 가지고 전개하는 독자적인 서법에는 최후에 만든 3곡의 피아노 소나타에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만년 슈베르트의 양식이 단적으로 나타나 있지만 일단 이 5중주곡에서 주목할 수 있는 것은 마지막 시기 3곡의 현악 4중주곡 이후 그가 실내악에서 요구한 관현악 규모의 울림이 5개의 현악기로 커진 편성에 의해 훌륭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슈베르트가 현악 5중주곡을 작곡함에 있어서 자신이 좋아했던 모차르트의 5중주곡(비올라가 2대)을 모방하지 않고 2대의 첼로를 편성한 것은 이러한 관현악의 울림을 추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2대의 첼로를 사용하는 수법은 이미 보케리니의 예가 있지만 슈베르트는 아마도 보케리니를 모델로 했다기보다는 큰 울림을 구하기 위한 필연적인 결과로 2대의 첼로를 사용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2대의 첼로를 통해 사용한 서법을 보면 단순히 서로를 보조하듯 짝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경우도 많은데, 한 대가 저음부를 담당하고 있고 다른 한 대는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연결시키거나 독자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슈베르트는 2대의 첼로를 교묘하게 사용함으로써 저음 음역을 풍부하게 표현할 뿐 아니라 여러 음역에서의 변화와 음색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였다.

또한 이 작품은 화성적인 어법 면에서도 만년의 슈베르트다운 독자적이면서도 특이한 울림을 만들고 있다. 나폴리 관계조의 정교한 용법은 후기 슈베르트의 작품 곳곳에 침투해 있지만 특히 이 곡에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2악장의 주부(E장조)와 중간부(F단조)의 극적인 대비나 3악장의 스케르초(C장조)와 트리오(D♭장조)와의 선명한 대비를 통해 들을 수 있는 음색의 변화는 후기 슈베르트만의 훌륭한 표현법이라 할 수 있겠다. 으뜸음 C음에 대해 D♭음을 강조하면서 음색의 세분화와 긴박한 울림을 표현하는 것도 매우 상징적이다. 이러한 울림의 세계가 독자적인 전개와 다섯 개 악기의 미묘한 용법과 맺어지면서 이 5중주곡은 슈베르트의 전체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수작이 된 것이다.

동시에 이 작품은 당시의 실내악 상식을 초월한, 너무나 독창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또는 현악 4중주에 비해 그리 일반적이지 않은 5중주라는 편성 때문에) 자필악보를 소유하고 있던 디아벨리 출판사가 출판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과 함께 긴 세월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초연을 치른 것은 작곡가의 사후 22주년을 기념한 1850년 11월 17일의 일이었다(요제프 헤르메스베르거 4중주단과 요제프 스트란스키의 첼로, 빈의 악우협회에서). 출판은 더욱 늦어져서 3년 후인 1853년이 되어서야 디아벨리 출판사를 계승한 C. A. 슈피너 출판사에서 Op.163을 달고 출판이 이루어졌다.)

1악장 (1.Allegro ma non troppo 4/4) (C major)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을 취한다. 서주부 없이 바로 2첼로를 제외한 4개의 악기가 긴 으뜸화음을 시작하면서 1주제를 진행한다. 주제는 코랄풍의 청량한 멋이 있지만 3마디의 감7화음(딸림조의 도미넌트)이 제시하는 것처럼 아주 낭만적인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이 주제가 낮은 음역으로 옮겨진 상태에서 응답(1바이올린을 제외한 4개의 악기)이 이루어진 후 2대의 첼로에 의한 주제를 연주하면서 1바이올린이 강하게 하행 펼침화음을 연주하고, 더욱 셋잇단음표의 움직임을 넣어가면서 곡을 고조시킨다. 2주제는 2첼로에 바싹 달라붙으면서 1첼로가 노래하는 E♭장조의 선율로 2대의 바이올린에 이어진다.

이 주제로부터 G장조의 3주제를 유도하여 1바이올린이 노래하는 진행을 취한다. 중간마침에서 두 가지 음악 소재가 등장하는데, 이 소재는 발전부의 중심적인 소재로 쓰이며, 특히 위의 악보의 A(붉은 사각형) 리듬은 발전부 전체를 통틀어 집요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또한 B(푸른 사각형)로부터는 새로운 선율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어떤 길이의 부분을 조옮김하여 반복(다시 말해, 203~238마디는 167~202마디를 장2도 낮춘 것)하는 슈베르트가 즐겨 사용하던 수법도 이 작품의 발전부에서는 장황함에 빠지지 않고 반대로 긴장을 높이는 방향으로 효과적인 쓰임을 보여주고 있다. 재현부는 정석대로 으뜸조인 C장조로 시작하여 하행 펼침화음 주제는 F장조로 옮겨오고, 그 이후는 제시부를 대체적으로 그대로 5도 아래로 옮긴 형태로 진행한다. 코다는 1주제에 의해서 순간적으로 긴장감을 높이지만 계속해서 2주제가 나타나고 평안한 분위기에서 1악장을 마친다.)

2악장 (2.Adagio 12/8) (E major)

(3부 형식. 슈베르트의 가장 깊은 영혼의 노래로 손꼽힌다. 아름답다기보다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처절한 몸부림 같기에 더욱 서글프다. 1부는 2바이올린의 선율과 2첼로의 피치카토가 어우러지면서 깊은 정취를 가진 주제가 풍부한 감정을 가진 채 나타난다. 대조적으로 F단조인 중간부에서는 불안정한 리듬의 움직임 위에서 1바이올린과 2첼로가 어두운 주제를 연주하면서 격렬한 조바꿈을 거듭하며, 비극적인 클라이맥스를 구축해 간다. 주부의 재현에서는 주제를 장식하는 1바이올린과 2첼로가 1부보다 더 세밀한 움직임을 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안식을 찾기 위한 조용함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3악장 (3.Scherzo. Presto 3/4 - Trio. Andante sostenuto 2/2) (C major / D flat major)

(상당히 복잡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힘찬 활기가 넘치는 스케르초의 교향악적인 취급은 때때로 실내악의 범위를 초월하고 있다. 트리오는 스케르초와 대조적인 안단테 소스테누토 2/2박자(구 전집에서는 4/4박자). 비올라와 2첼로의 하행적 선율에 끌려 나타나는 코랄풍의 겸허한 주제는 내면적인 성향을 깊게 드러낸다.)

4악장 (4.Finale. Allegretto 2/2) (C major)

(명확한 구성이 나타나지 않은 피날레 악장. 2개의 주제를 사용하지만 론도 형식이나 소나타 형식, 론도-소나타 형식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형식의 곡도 아니다. 도식화하면 A-B-A-발전부-B-A'-코다라고 할 수 있다. 1주제는 이른바 ‘헝가리풍’의 춤곡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C단조로 시작하여 E♭단조, E단조를 경유하여 결국 원래 조성인 C장조를 강조하는 점이 매우 독특하다. 이 과정에서 주제를 3번 반복한다. 2주제는 G장조로 진행하는데 1악장 1주제와 관련이 있다. 이 반주의 셋잇단음표가 나중에 중심이 되어 2주제부가 크게 발전하고 마지막으로 첼로의 2주주로 노래하는 폭넓은 선율이 나오며, 자연적으로 경과부로 옮겨진다.

계속해서 1주제를 처음과 거의 동일한 형태로 연주하면서 1주제에 의한 전개를 폴리포닉한 서법으로 확장한다. 이 세력이 약간 약해진 뒤에 2주제를 C장조로 재현하여 전과 동일하게 진행한다. 경과부를 경유하여 이번에는 피우 알레그로라는 빨라진 템포로 1주제가 상당한 변화를 거쳐 등장한다. 이것은 격렬한 고조를 거치면서 그대로 피우 프레스토의 코다 부분으로 들어가 긴장감이 사라지기 전에 강하게 전곡을 마무리한다.)

 

참고 자료

음악지우사간 작곡가별 뮤직 라이브러리

Posted by 여엉감
,

2대의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소나타 (Sonata for Two Pianos and Percussion, Sz.110)

작곡 시기 : 1937년 8월 완성

악기 편성 : 두 대의 피아노, 세 개의 팀파니, 실로폰, 두 개의 작은북, 두 개의 심벌즈, 큰북, 트라이앵글, 탐탐

※ 타악기 연주자는 기본적으로 두 사람이 하되, 경우에 따라 실로폰 주자를 따로 둘 수 있다

(버르토크는 1937년 국제 현대음악 협회 바젤(Basle) 지부의 위촉을 받아 이 곡을 썼다. 피아노와 타악기를 결합시킨 편성은 거의 전례가 없던 것이며(솔직히 말하자면 전무후무하다), 음악의 타격감이나 다이내믹함도 이전의 음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던 것이다. 작곡가는 피아노협주곡 1번과 2번을 통해 실험한 피아노와 타악기의 앙상블을 이 곡에서 완성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피아노와 타악기 앙상블을 완성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후에 쓴 관현악 곡이나 협주곡 - 바이올린 협주곡 2번,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3번 - 에서 타악기 앙상블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뿐 아니라 타악기의 목소리도 거의 듣기 힘들어졌다. 피아노 협주곡 3번에서 타악기의 역할은 2번에 비하면 너무 적어서 거의 존재감이 없다고 해도 될 정도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나면 더 이상 그것에 관심을 주지 않는 버르토크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인 셈이다.

버르토크는 이 곡을 2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형태로 만들었고, 그 곡을 1943년 1월 4일 뉴욕에서 초연한다. 협주곡 버전에서는 위의 편성에 목관악기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첼레스타, 현악기군을 추가한다.)

 

1악장 (1.Assai lento 9/8) (C chord)

(1악장은 총 연주 시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나머지 두 악장과는 다른 주제의 풍요로움과 다채로운 변화를 수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음은 C위에 놓이지만, 3온음을 강조해 F#을 두드러지게 만든다. 작은북의 트릴과 피아노로 서주 아사이 렌토를 시작하는데, 7개의 반음계를 포함하는 3온음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 도입 모티프는 어떤 변화를 동반하든 자신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바로 곡의 주요 모티프라 할 수 있는 나머지 세 개의 모티프가 이 도입 모티프에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야성적인 느낌을 던져주는 주부 시작 부분의 모티프이든, 아포지아투라를 통해 묘한 엇박의 느낌을 주는 두 번째 모티프이든, 6도의 도약이 두드러지는 세 번째 모티프이든지간에 말이다. 주부는 그야말로 풍부한 동기 발전과 대위기법의 연속이다. 음향의 병진행, 수많은 카논들, 동기 패턴과 도치형의 결합 등 버르토크가 그동안 연구한 음악적 기법들이 마구 쏟아진다. 그러나 그 기법들을 이끌고 가는 것은 모티프와 리듬의 어마어마한 활력이다. 이 악장에서 타악기는 악절을 강조하는 역할을 맡으며, 중요한 악구는 피아노와 실로폰이 주로 도맡는다.)

 

2악장 (2.Lento, ma non troppo 4/4 - 3/2)

(흐릿하게나마 3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중간 악장 렌토는 담백한 느낌 속에 음향적인 화려함을 담고 있다. 버르토크의 음악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불안한 느낌의 ‘밤의 음악’이 여기서는 종소리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종소리는 다섯잇단음으로 이루어진 주요 모티프를 안개처럼 감싼다. 이것들을 카논으로 반복하는 과정에서 모티프는 점점 가라앉아 마침내 드럼들만이 이 모티프의 윤곽을 나타낸다. 그리고 작곡가는 서두의 주제로 돌아가는데, 이 때 몽롱한 느낌의 스케일과 흑건과 백건 양 건반을 모두 연주하는 겹음 글리산도가 겹치며 안개는 더욱 짙어진다. 그 때 갑자기 타격과도 같은 크레셴도 속에서 다섯잇단음 모티프가 나타나면서 곡은 끝난다.)

 

3악장 (3.Allegro non troppo 2/4) (C chord)

(1악장의 기본음과 같은 C를 중심음으로 하고 있지만, 이 악장은 앞의 두 악장과는 전혀 다른 활달하고 귀여운 느낌을 준다. 실로폰에서 나타나는 주제는 베토벤의 콩트르당스 1곡과 너무나도 닮았는데, 기본음인 C에서 시작하여 F#과 B♭을 포함하며 바로 E♭, A♭, D♭, C♭을 갖는다. 음정들은 점점 더 확대되며 마침내 열한 개의 음을 갖는데, F#음만 여기에서 빠진다. 1악장 서두가 C와 함께 F#을 강조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이다.

민속적인 활달함이 곡을 앞의 두 악장과는 정반대 분위기로 몰고 간다. 일단 기본적인 주제는 3개 부분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하며, 따로 16분음표의 부주제가 있다. 발전부 직전에 1주제를 한 번 언급해준 후 발전부로 넘어가는 것이 독특한데, 발전부는 기본 주제를 바탕으로 전개를 해 나간다.

코다는 서두 모티프를 계속해서 끝까지 몰고 나가며, 사이드 드럼이 집요하게 리듬을 고수하지만 점점 줄어드는 음량을 어찌 할 수는 없다. 정교한 기계 장치들이 점점 활력을 잃고 멈추기 시작한다. 피아노가 모티프를 하행 리디아 4음음계(E♭, D♭, B, A)에서 교대로 내놓는 가운데 피아니시모로 스타카토를 연주하게 하는 작곡가의 짓궃은 지시와 함께 모든 음악은 G음의 딸림화음적 코드와 C음의 3화음 위에서 멈춘다. 하지만 아직 모든 움직임이 멈춘 것은 아니다. 태엽이 다 감긴 상태에서도 기계는 그 동안 받았던 운동의 반향을 그대로 적용해 드럼과 심벌을 몇 마디 더 연주하게 한다. 그리고 그 운동들마저 정지하면 비로소 곡은 완전히 끝난다. 포가 언급한 멜첼의 자동인형이 그 움직임을 멈추는 것처럼.)

 

참고문헌

헐시 스티븐스, <버르토크의 음악과 생애>

Posted by 여엉감
,

- 데이비드 브라운의 글을 참고함.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폐쇄공포증에 걸린 사람의 정신상태와 비슷한 상황을 유도한다. 실제로 소비에트의 정치적 현실도 인민들에게 폐쇄공포를 불러일으킬 만한 상황을 제공하고 그런 현실을 구축했으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제한된 진보성, 제한된 불협화음, 숨어있는 장치들이 얽혀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마치 암호문과도 같다. 한 사람의 비밀을 감추는 장소로는 그 틀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쇼스타코비치는 거기에 많은 것들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낸다. 비명소리, 신음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국가권력이 개인을 짓누르던 시기에 문 두드리는 소리는 처형장이나 굴라그로 자신을 끌고 갈 전주곡이었다), 학살을 의미하는 총격, 간간이 나타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13번과 14번 교향곡은 분명 ‘소수’의 목소리를 교향악 장르에 끌어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리고 집요할 정도로 반복되는 군홧발 소리. 이 군홧발 소리는 쇼스타코비치의 개인 서명 모티브인 ‘DSCH' 못지않게 곳곳에서 집요할 정도의 반복으로 청자들을 세뇌시키기 직전까지 가며,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모티브들도 그 군홧발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집요한 반복으로 가득하다. 그 반복이 때로는 중요한 것들을 가려버리기도 한다.

4번 교향곡은 오페라 <맥베스 부인> 사건으로 정치적 생명과 함께 육체적 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해 있던 시절에 완성한 곡이다(작곡은 1934년부터 진행하고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의 초연을 오래도록 미루었다가 1961년에야 세상이 이 곡을 듣게 했다.

1악장에서 악상은 무엇인가 그럴듯한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주제의 전개를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에 끌어올리기도 전에, 폭발한다. 그 폭발은 곡을 이끌고 나갈 추동력인 동시에, 이 추동력이 사라지면 곡은 모든 융합을 끝낸 항성처럼 차갑게 죽어갈 것이라는 선언인 셈이다. 폭발이 더 큰 폭발을 이끌어내고, 폭발 사이에서 발작적인 현악 패시지가 나타난다. 얄궂게도 이 패시지는 에스프레시보 지시를 달고 있다. 1악장이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청중들은 감정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현악 푸가토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걸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와중에도 쇼스타코비치의 작곡 상황은 큰 변화가 없지만, 그가 받은 거대한 압력은 내면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가 본인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밖으로 불거져 나오는 것 같다. 푸가토의 폭발을 끝으로 곡은 불균형적이고 짤막한 코다로 끝을 맺는다. 공허한 바순의 울림 - 차이코프스키 <비창> 이래로 하나의 전통이 되어버린 - 은 무엇을 암시하고자 하는 것일까.

2악장은 1악장과 3악장을 잇는 불안한 간주곡, 즉 부교浮橋다. 세 개의 악장이 모두 불균형적이고 어딘가 맞지 않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곡가가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이 불안정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2악장의 코다는 계속 무엇인가 말을 하려 하지만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들리는 것은 알듯 모를듯 속삭이듯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들뿐이다.

음울한 라르고에 이어 알레그로에서 곡은 다시 폭발한다. 가차 없는 동기들의 전진이 이어지면서 계속 곡을 극한으로 몰고 가기 직전, 갑작스럽게 부드러운 춤곡이 그 전진을 잘라버린다. 악장은 이제 다채로운 콜라주로 채워진다. 한 가지 색상이 지배하던 곡에 온갖 음악이 끼어든다. 그러나 그 음악들은 하나같이 불안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 팀파니의 강주를 앞세운 금관악기 코랄은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을 압살해버린다. 이 금관악기 코랄은 주조성인 C단조에 도달할 때까지 오로지 파괴를 위한 파괴를 반복한다. 이 코랄이 지나가고 나면 어떤 모티브도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없다. 토막 난 사지가 잘려나간 후에도 잠시나마 꿈틀거리는 것처럼, 코랄이 끝난 후의 남은 부분들은 발작적으로 꿈틀대다가 곧 움직임을 멈춘다. 마지막에 향긋한 첼레스타의 음향이 들려오지만, 이 교향곡의 마지막 부분을 생각하면 참으로 역설적인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여엉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