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엘렉트라> (Opera "Elekta", Op.58)

작곡 시기 : 1906년 6월 착수, 1908년 완성

초연 : 1909년 1월 25일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에른스트 폰 슈흐의 지휘로 이루어짐.

출판 : 1908년

악기 편성 : 플루트 3, 피콜로 1, 오보에 2, 잉글리시 호른 1, 헤켈폰 1, 클라리넷 4, E♭ 클라리넷 1, 베이스 클라리넷 1, 바셋 호른 2, 바순 3, 더블바순 1, 호른 4, 바그너 튜바 4, 트럼펫 6, 베이스 트럼펫 1, 트롬본 3, 베이스 트롬본 1, 튜바 1, 팀파니 6~8(주자 2명), 기타 각종 타악기, 제1 바이올린 8, 제2 바이올린 8, 제3 바이올린 8, 제1 비올라 6, 제2 비올라 6, 제3 비올라 6, 제1 첼로 6, 제2 첼로 6, 더블베이스 8, 하프 2(오레스트와의 재회 장면과 피날레에서는 비올라 중 6대가 바이올린 군에 가세)

대본 : 후고 폰 호프만슈탈(독일어)

등장인물 :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메조 소프라노), 왕비의 딸 I 크리소테미스(소프라노), 왕비의 딸 II 엘렉트라(소프라노), 왕비의 동생 오레스테스(바리톤), 왕비의 불륜상대 아이기스토스(테너), 오레스테스의 늙은 하인(베이스), 왕비의 심복 시녀(소프라노), 몸종(소프라노), 젊은 하인(테너), 나이든 하인(베이스), 감시하는 여자(소프라노), 시녀 5명(메조 소프라노 2, 알토, 소프라노 2), 남녀 하인

때와 장소 : 고대 그리스, 미케네 성

 

서설

(이 《엘렉트라》에 대하여 슈트라우스는 오페라라고 적지 않고, 「후고 폰 호프만슈탈에 의한 1막 비극」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러나 현재는 보통 오페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이 협력한 오페라의 사실상 첫 번째 작품이다. 슈트라우스가 유대계의 오스트리아 시인인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sfhal, 1874~1929)과 처음 만난 것은 슈트라우스가 《영웅의 생애》를 지휘하기 위하여 파리에 있던 1900년 3월 초이다. 그 때 만나러 왔던 호프만슈탈은 발레작품으로 슈트라우스와 협력하고 싶다고 얘기를 꺼내며, 11월에는 거의 완성한 발레 대본을 보냈다. 슈트라우스는 이것에 흥미를 나타냈지만, 오페라 《화재》의 작곡에 쫓기고 있는 때이기도 해서 발레에 착수하지 않고, 오페라 쪽에서의 협력을 바랬다. 그런 다음에 이 두 사람 사이에 오페라에 관한 편지 교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무렵 호프만슈탈이 오페라화도 의식하여 쓰기 시작한 대본 중 하나에 그리스 3대 비극시인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소포클레스(Sophocles, B. C. 495~406)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엘렉트라』가 있다.

호프만슈탈은 빈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수학한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문학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대학 시절에 이미 희곡과 시를 차례차례 발표하고 있었다. 그 것도 단순히 독일문학뿐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 문학과 그리스 고전에도 정통하고 있었으며, 무대예술과 음악에도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호프만슈탈의 『엘렉트라』는 1903년 10월 6일 베를린의 소극장에서 연극으로 초연되었다. 그 때에 연출을 담당했던 것이 기예의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 1873~1943)로, 드디어 라인하르트, 호프만슈탈, 슈트라우스라는 3명의 강력한 협력체제가 완성되어, 《장미의 기사》와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서 훌륭한 성과를 올리게 된다.

어쨌든 베를린에서의 《엘렉트라》 초연은 새롭게 슈트라우스의 주목을 끌었다. 그것은 이 연극이 오페라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을 뿐 아니라 슈트라우스 자신도 학생 시절에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의 일부에 음악을 붙인 적도 있고, 『엘렉트라』에는 무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살로메》가 완성된 후인 1906년에 들어와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은 『엘렉트라』의 오페라화를 둘러싸고 면밀한 상담을 나누게 된다. 그것은 1907년 12월 말에 호프만슈탈이 이 일로 베를린의 슈트라우스를 방문하고 나서 한층 더 열기를 띠게 된다. 1908년 6월에 대본의 최종원고가 슈트라우스에게 도착했다. 슈트라우스는 이미 작곡에 착수하고 있었는데, 8월에는 가르미슈에서 전체를 완성하고, 9워 22일에 총보를 완성했다. 초연은 《살로메》 때와 마찬가지로 에른스트 폰 슈흐의 지휘에 의해 1909년 1월 25일에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상연되었다. 이것은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또 그 반면에 슈트라우스풍이 아닌 《엘렉트라》에 접하고 싶다는 소리도 있었다. 당시에도 아직 바그너의 음악을 의문시하거나 부정하거나 하는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호프만슈탈도 바그너를 싫어해서 《엘렉트라》는 바로크풍 또는 모차르트풍의 오페라로 만들자고 거세게 요구한 적이 있다. 이 점에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 간의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 결국 호프만슈탈은 바그너에 기반을 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로 타협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유연한 분위기가 있어 두 사람이 협동한 다음 오페라인 《장미의 기사》는 모차르트적이고, 또한 동시에 바그적이며, 슈트라우스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호프만슈탈은 점점 슈트라우스의 음악에 동조해 간다.

《엘렉트라》의 음악은 불협화음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극적인 박력, 공포 분위기, 복수의 정열을 교묘하게 표현해 간다. 화성적으로는 무조성을 종종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 슈트라우스 특유의 달콤한 감성이 때때로 나타난다. 관현악법도 색채적이며, 극을 진행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합창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슈트라우스는 이 《엘렉트라》를 통해 바그너풍 극을 응축시키는 데 성공하며, 그 다음 새로운 경지로 이동한다.

엘렉트라의 테마는 ‘광기’다. 무대에 오른 어느 누구도 광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 클뤼템네스트라와 어머니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증오하고, 그 둘을 죽이려 하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무력한 신세에 완전히 갇혀 있다. 클뤼템네스트라는 딸 엘렉트라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의심을 감추지 못한다. 세 주연 중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크리소테미스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이지만, 그녀 또한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두서없이 사방을 뛰어다닐 뿐, 극이 진행될수록 짙어지는 광기를 환기시킬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광기는 곡의 배면에 깔린 천둥소리와도 같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걷어낼 수 없다.

슈트라우스가 쓴 모든 곡을 통틀어 최대 편성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오페라는 극단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다. 빛(환희)과 어둠(증오)의 대조가 너무 선명해 때로는 부담스럽다. 관현악 편성은 최대 규모를 자랑하면서도(관악기 개수만 40여개에 달한다) 정작 성악진은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족 구성원(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 어머니의 불륜 상대인 아이기스토스, 딸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 그리고 아들 오레스테스)이 오페라를 지배하다시피 한다. 합창단이 활약하는 부분도 거의 없으며 오레스테스의 양육자와 시녀들을 비롯한 이들은 조연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프로이트의 세례를 받은 이 오페라에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은 ‘가족의 해체’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대가족은 산업사회가 가져온 핵가족에 그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이고 불륜 상대인 아이기스토스와 놀아나는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모습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지만, 이 또한 이혼과 성관념에서 자유로워진 현대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증오하고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엘렉트라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지 않은가? 슈트라우스는 소포클레스의 냉엄한 비극에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학을 도입한 가족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신화는 겉치레일 뿐, 결국 오페라의 중심 소재는 ‘가족의 해체’인 셈이다.)

 

내용 전개

(엘렉트라는 아가멤논 왕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왕이 트로이 지방을 원정하는 중에 아내는 아이기스토스와 불륜관계를 맺는다. 두 사람은 왕이 돌아오자 욕실에서 왕을 죽여 버린다. 엘렉트라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지점에서 극이 시작한다. 4마디의 강렬한 D단조 전주와 함께 막이 오른다. 곧바로 하녀들이 등장해 엘렉트라에 대해 말한다. 처음의 두 하녀는 엘렉트라를 몰래 비난한다. 세 번째 하녀만이 엘렉트라에게 동정적이다. 하녀들이 사라지고 나면, 엘렉트라가 등장해 길고 비통한 모놀로그를 부른다. 엘렉트라는 하루빨리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의 시체 위에서 춤추기를 바라고 있다. 거기에 여동생 크리소테미스가 찾아와 섬뜩한 거동의 엘렉트라를 사람들이 유폐하려는 것을 알려준다. 그 후에 양심의 가책으로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해 피로해진 어머니가 하인과 함께 찾아온다. 엘렉트라는 복수심이 담긴 수수께끼 같은 말을 어머니에게 하며, 동생 오레스테스를 암살하려고 한 것도 비난한다. 그러나 심복 시녀의 귓속말을 듣고 어머니는 급히 서둘러 돌아간다(여기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웃는 연주도 있다). 거기에 크리소테미스가 와서 남동생이 말에 치여 죽었다고 전한다. 엘렉트라는 남동생 대신에 여동생과 협력하여 복수하기로 하지만, 마음 약한 여동생은 도망가 버린다.

극의 음악적 전개는 엘렉트라의 「나는 홀로!(Allein!)」로 시작하는 길고 비통한 모놀로그로 출발하는데,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서 점점 고조되는 박력이 인상적이다. 엘렉트라의 모놀로그는 이어 여동생과의 2중창과 어머니와의 대화, 그리고 엘렉트라의 수수께끼 같은 말로 이어진다. 이 부분은 전체의 1/3을 차지하는 방대한 규모로, 독립적인 파트로도 볼 수 있을 정도다. 교향시 작곡가로 활약한 슈트라우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엘렉트라는 혼자서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궁전에 살며시 들어가는데, 죽은 줄 알았던 오레스테스가 있다. 오레스테스를 양육했던 나이든 하인이 비밀을 지켜 목적을 달성하도록 두 사람에게 주의를 준다. 오레스테스의 죽음을 전한 것은 일종의 계획이었던 셈이다. 두 남자는 궁전에 들어가고, 드디어 안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비명이 들리며, 여자들이 도망쳐 나온다. 엘렉트라는 안으로 들어가 아이기스토스도 죽여버린다. 사람들은 아이기스토스의 죽음을 기뻐하며, 오레스테스를 찬양한다. 광기에 완전히 함몰되어버린 엘렉트라는 피날레를 장식하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춤을 다 춘 그녀는 쓰러져 죽는다. 크리소테미스가 궁전의 문을 두드리면서 오레스테스의 이름을 부르며 극은 끝을 맺는다.

죽은 줄 알았던 남동생과 재회하는 장면은 매우 긴장감이 높으며, 두 사람의 감정적 고조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복수의 장면은 숨 막히는 속도감으로 가득하다.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의 외침은 정말 살려달라는 외마디 비명처럼 사실적이다. 둘이 죽고 나면 사람들은 오레스테스를 찬양하고, 크리소테미스가 달려와 오레스테스가 목적을 이루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엘렉트라는 이미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녀는 무엇인가에 완전히 홀려버렸다. 엘렉트라는 환희에 들떠 춤을 추다가 죽고, 크리소테미스가 궁전의 문으로 달려가 오레스테스를 외쳐 부르는 장면에서는 ‘운명’의 동기와 엘렉트라의 동기가 뒤섞인다. 그리고 팀파니의 둔탁한 타격과 리타르단도로 극적인 감정을 한껏 끌어 모은 상황에서 마지막 화음을 fff로 연주하며 극은 끝난다.)

 

후일담

(슈트라우스는 이 오페라에 대해 아주 중요한 말을 남겼다. 1939/40 시즌, 카라얀은 베를린 국립가극장에서 <엘렉트라> 공연을 마치고 난 다음날 슈트라우스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이 작품으로부터 이미 오랫동안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3개월이나 이 작품에 집중해 왔다. 과연 누구의 해석이 옳은 것인가? 바로 어제 당신이 행한 연주대로 하는 것이 현재의 진실이다.” 그러나 이런 말도 남겼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후 당신의 생각 역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날레에 대한 조언을 덧붙였다.

“피날레는 다시 인간으로서 해방됨을 기뻐하는 디오니소스에의 찬가이므로 사정없이 몰아쳐야 한다.”)

 

참고문헌

음악지우사 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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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 <영상> 1집

음악 2014. 1. 12. 22:26

<영상> 1집 (Imeges, Livre I. L.110)

작곡 시기 : 1904년 착수, 1905년 완성

작곡 장소 : 파리

(작곡가는 1집을 완성한 뒤 출판업자 뒤랑에게 보낸 편지(1905년 9월 11일)에서 “이 곡은 슈만의 왼쪽, 쇼팽의 오른쪽에 자리할 것”이라 주장하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피아노를 위하여>에서 출발해 <판화>를 거치며 발전한 드뷔시의 피아노 음악 양식은 이 <영상>을 통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다. 드뷔시 특유의 미묘한 선율선과 색채에 대한 장인성, 그리고 정확한 뉘앙스에 대한 작곡가의 섬세한 지시사항은 연주가들에게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드뷔시는 프레이징을 과장해 자신의 지시사항을 어기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정해진 규칙 없이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 드뷔시의 음악이 사실은 규칙적이고 논리적인 구조와 액센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드뷔시가 자신의 지시사항을 준수해 줄 것을 당부한 것도 이해가 간다.)

 

1곡 <물에 비친 그림자> (1.Reflets dans l'eau. Andantino molto 4/8)

(중심음 D♭. 드뷔시와 라벨이 ‘물’이라는 주제에 집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연 현상을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변형 — 드뷔시는 이것을 “자연과 상상력간의 대화”라 불렀다 — 시킨 두 작곡가에게 일렁이는 물의 흔들림은 아주 좋은 소재였다. 지나치게 복잡한 현상은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을 방해한다. 단순한 현상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것을 음악화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 현상에 집중한다. 초인적인 인내심 없이는 힘든 일이지만 드뷔시는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비로소 예술성과 장인성이 조화를 이룬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곡은 3도 없는 D♭장조의 5도로 시작한다. 주요 주제(A♭-F-E♭)는 화음 위에서 일렁이는 수면의 음화音化라 할 수 있다. 섬세하고도 대위법적인 짜임새가 불투명한 반음계와 만난다(9-10마디). 투명한 5음음계(D♭-E♭-F-A♭-B♭)가 병행 5도와 마주친다. 20마디에서 24마디에 걸치는 카덴차적 경과구(아르페지오)에서는 불투명함을 피해야 한다. 드뷔시 음악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페달링은 사실 음향을 불투명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양날의 칼이다. 즉 연주자는 적절한 페달링의 사용과 함께 투명하고 맑은 음향을 만들어야 한다. 아르페지오는 온음음계의 속화음 위에서 움직이다가 36마디에서 다시 첫 부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른손의 화음형은 전음음계의 아르페지오형으로 변한다. 49마디부터 물살은 지속적으로 일렁이며, 57마디의 f와 58마디의 ff로 크게 일렁이고 난 후 점차 잦아들며 상행 아르페지오로 갖가지 스펙트럼으로 부서지는 물살을 묘사한다. 72마디부터는 코다. 82마디에서 나타나는 오른손의 주선율 아르페지오형을 들으면 드뷔시가 주선율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 이 선율형은 주제를 제시할 때와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같은 음계라도 주법, 음고, 강세, 음색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을 이 주제만큼 멋지게 제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 일렁임은 거의 멈추고 여백이 점점 늘어난다. 백지 위에 점 하나를 찍는 것만으로도 큰 일렁임보다 더 큰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마지막 병행 3도에 이어 저음의 D♭음과 오른손의 높은 A♭ 옥타브가 물의 마지막 일렁임을 묘사하면서 곡은 끝난다.)

 

2곡 <라모를 찬양하며> (2.Hommage a Rameau. Lent et grave 4/8)

(프랑스의 대작곡가 장 필립 라모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드뷔시. 아주 엄숙하고 진지한 곡이며, <피아노를 위하여> 속 <사라방드>의 문제의식이 발전한 곡이다. 드뷔시는 18세기 사라방드 양식을 사용했지만 라모의 음악은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 진정한 경의는 가장 뛰어난 작품을 써서 바치는 것이지, 경의의 대상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셈이다(후일 드뷔시가 죽었을 때, 오직 라벨, 스트라빈스키, 사티, 그리고 버르토크만이 드뷔시의 생각에 따라 드뷔시를 전혀 인용하지 않은 곡으로 추모의 감정을 전달했다). 첫머리에 쓰인 선법은 G#을 중심음으로 하는 그레고리안 8선법. 이어 프리지아 선법으로 주요 주제가 나타난다. 첫머리의 음계는 7마디에서 히포프리지아 선법으로 다시 나타나며, 4도 아래에서 반복한다. 죽은 사람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데 중세 선법만큼 적절한 것이 어디 있느냐는 슈미츠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곡은 종적인 화성 축뿐 아니라 횡적인 대위법적 축에서도 교묘하게 발전하는데, 10마디에서 첫 마디에 대한 응답이 이루어지고, 변격 선법을 정격 선법으로 바꾸어 사용하기도 한다. 11~13마디를 통과해 다성적 층계로 발전하는 곡은 24마디에서 번쩍이는 광휘를 통해 고인의 영광을 다시 한 번 회상하고, 31마디부터는 조용히 숨을 죽인다. 38마디부터 곡은 중간부로 들어간다. 여기서는 바로크 시대의 서정 비극에서 보이는 초연하고도 신성한 분위기가 드러나야 한다. 이 감정은 43마디에서 51마디에 걸쳐 강해진다. 65마디부터는 코다. 코다의 마지막 부분, 도리안 음계 위에서 하강하는 화음은 관이 아래로 내려지는 느낌을 준다.)

 

3곡 <움직임> (3.Mouvement. Anime 2/4)

(16분음표의 셋잇단음으로 교묘한 반복을 표현한 곡이다. 동시에 8분음표 단위의 분절을 사용해 명료함(8분음표)과 역동성(16분음표)을 둘 다 얻어내고 있다. 음계는 중성적인 C장조를 선택했지만 점차 복조성적인 경향으로 나아간다. 앞의 두 곡과는 반대로, 이 곡의 초반 30마디에서는 페달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 명료함을 추구하는 곡의 특성상 페달은 절약하는 것이 좋다. 첫 30마디 동안은 페달을 매우 절약해야 하며, 30마디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때부터 음향은 기계적인 움직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다. 34마디의 낮은 G음은 중간 페달로 눌러야 한다. 89마디부터 펼쳐지는 중간부에서 중심음은 F#음으로 바뀌는데, 이 음은 첫 파트의 중심음 C와 완벽한 반대축에 놓여 있다. 156마디부터 시작하는 코다에서 곡은 서서히 날아가는 느낌을 주면서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직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코다의 음계는 C음과 F#음이 모두 들어있는 온음음계 C-D-E-F#-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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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반지>와 관련해 재미있는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논문 중 가장 흥미있었던 부분은 <반지>를 4원소설과 결부시킨 내용인데, <라인의 황금>은 라인강 속에서 노래하는 라인의 처녀들로 시작해(물) 한탄하는 라인의 처녀들로 끝나고 있다(역시 물). <발퀴레>는 폭풍우 속에서 쫓기는 지그문트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해(공기) 보탄이 로게를 시켜 만들어 낸 불 속에서 영원히 잠드는 브륀힐데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난다(불). <지크프리트>는 니벨룽족이 거처하는 지하 니벨하임에 거처하는 난쟁이 미메의 대장간에서 시작해(흙과 불) 브륀힐데를 둘러싼 화염을 지크프리트가 뚫고 들어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장면으로 끝난다(불). <신들의 황혼>은 세계수 앞에서 운명의 실을 꼬는 3명의 노른이 하는 지혜의 샘 이야기로 시작해(물) 불타는 발할성과 황금의 반지를 되찾은 라인의 처녀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불과 물).

 

 (2)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지만, <라인의 황금> 전주곡은 동기발전의 측면에서 바그너가 1850년대에 작곡한 음악 중 가장 뛰어난 부분이다(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곡의 중요성은 <트리스탄> 전주곡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바그너는 이 곡에서 '동기의 발전' 자체에 초연하다. 악곡은 화성적 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틀인 저음의 공허 5도로 시작해 E♭ 호른을 8분할 시킨 상승 음계로 이어진다. 화성적인 뼈대는 E♭의 주3화음(E♭-G-B♭)에서 한 발자국도 떠나지 않는다. 아마 이렇게 화성적 변화가 없는 곡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저음이 지속적으로 연주하는 두 음, 즉 E♭음과 B♭음을 토대로 하나씩 차곡차곡 쌓아 올라가는 풍성한 배음렬의 향연은 보기 드문 견고함을 낳는다. 바그너는 이 전주곡을 통해 베토벤이 '공허 5도'로 제시한 '음악으로 낯설게 하기'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제시했다.

 

 (3) 보물도 뺏기고 타른헬름도 뺏기고,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반지까지 빼앗긴 알베리히가 퍼붓는 저주를 들으면서 느낀 감정은 섬뜩함이 아니라 불쌍함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알베리히는 셰익스피어의 반유대주의적인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만큼이나 불쌍하다. 샤일록은 주위 사람들이 모두 그를 별다른 이유없이 혐오하고, 가까운 지친들마저 자신을 배신하려 하며, 자신의 정당한 권리마저 행사하지 못하는 불운과 안타까움의 아이콘이다. 알베리히도 마찬가지다. 저주가 끝나고 알베리히가 사라지자마자 로게가 내뱉는 비야낭거림은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다. 생각해보면 바그너가 <라인의 황금> 피날레에 그토록 과장되고 허세 가득한 음악을 배치한 것도 이해가 간다. 강탈과 속임수와 협박을 동원해 재물을 빼앗고, 그것을 영구히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고 싶어하며, 정당한 자들의 간청을 일거에 무시하는(<라인의 황금> 피날레에서 라인 처녀들의 한탄을 보탄이 어떻게 대하는지 생각해 보라) 신들의 작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은 바로 허세와 과장으로 가득한 행진곡풍 음악일 것이다.

 

 (4) 현악기 연주자들이 가장 연주하기 싫어하는 곡에 반드시 들어갈 - 하지만 이 음악을 뛰어넘는 R.슈트라우스의 <돈 후안>이 나올 줄은 현악기 연주자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 <발퀴레> 3막 피날레 <마법의 불 음악>은 바그너의 가장 감동적인 엔딩 음악으로 손꼽히기에 모자람이 없다. 보탄도 브륀힐데도 이것이 영원한 이별이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보탄은 주신主神의 위엄과 아버지의 자애로움을 겸비한 모습을, 브륀힐데는 특유의 통찰력과 기백을 가진(내가 생각하기에 바그너 오페라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여성은 브륀힐데이며, 가장 '지적인' 여성은 이졸데다), 그러나 한 명의 '여인'으로 그 엔딩에 임한다. 로게는 보탄을 비롯한 신들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나, '불'의 형태로 최후의 순간까지 보탄의 권력 밑에 남아 있게 된다. 허나 '닫힌 이야기'인 지그문트와 지클린데의 이야기기 아니라, '열린 이야기'인 브륀힐데를 엔딩 장면에서 다룬다는 점에서 <발퀴레>의 끝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5) 지크프리트가 새의 인도를 받아 숲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끝으로 <지크프리트>의 2막은 막을 내리고, 바로 <지크프리트> 3막 전주곡이 흐른다. 2분 가량에 지나지 않는 이 전주곡은 사실 바그너 작곡 과정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을 차지한다. 바그너는 <지크프리트> 2막을 작곡하고 난 후 무려 12년 동안 <반지>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 '단절'의 기간을 거치고 난 뒤 바그너가 <지크프리트> 3막에 손을 대기 시작했을 때, 그는 자신이 일관되게 지켜오던 원칙 하나를 밀어냈다. 원래 바그너는 서곡을 통해 극의 중요한 내용을 미리 음악으로 전달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우리가 <라인의 황금> 전주곡을 통해 접할 수 있는 것은 쉼없이 굽이치는 라인의 물결뿐이다. <발퀴레> 전주곡도 마찬가지다. <트리스탄> 전주곡은 잘 알려져 있듯 극이 시작하기 전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전달할 뿐,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그러나 <지크프리트> 3막 전주곡을 듣고 있으면 3막이 어떻게 진행될 지 눈 앞에 훤히 보인다. 보탄의 정교한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지크프리트. 방랑자의 모습을 한 보탄과 지크프리트의 대결. 그리고 불을 뚫고 브륀힐데 앞에 선 지크프리트. 이 모든 것이 그 짧은 전주곡 속에 응축되어 있다.

 

 (6) 보탄이 항상 들고 있는 창 궁니르는 그 위협적인 모습과 권위를 보장하는 신화(<신들의 황혼> 초입에서 노른이 말하기를, 보탄이 세계수 가지를 꺾어 그 창을 만들었다 하더라)와는 달리, 실제로 사용하는 장면을 보기가 힘들다. 그 창으로 누군가를 죽인 적은 오직 한 번, <발퀴레>에서 지그문트를 죽였을 때다. 그것도 보탄이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프리카가 그것을 강하게 지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크프리트>에서 궁니르는 지크프리트와 붙자마자 무참하게 두 동강이 나버린다. 당연한 결과다. 보탄의 궁니르는 실제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라 고대 로마 집정관 호위자들이 들고 다니던 권표, 즉 파스키스(Fascis. 단어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 파시즘의 어원이다)와 비슷한 권위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7) '라그나뢰크Ragnarøkkr.' 원래 '신들의 운명', '신들의 몰락'이라는 의미로 통용되던 고대 노르드어를 '신들의 황혼'이라는 의미로 사용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바로 바그너다. '신들의 황혼'이라는 시적인 표현은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 확실해 보이나, 바그너는 이것을 온전히 자신의 표현으로 만들었다.

 

 (8) <신들의 황혼>에서 지크프리트, 군터, 구트루네, 하겐, 그리고 브륀힐데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원전을 찾아보면 그 재배치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게르만 고유의 전설인 벨숭 사가에서 브륀힐트(브륀힐데)는 오딘의 명을 어겨 타오르는 불길에 둘러싸인 채 영원히 잠들어 있지만, 불의 벽을 돌파한(또는 뛰어넘은) 지크프리트가 그녀에게 키스에 깨어나고, 그의 연인이 된다. 지크프리트는 그녀를 잠시 떠나 여행하다가 기우키왕의 궁전에 머물게 되는데, 그곳의 왕녀인 구드룬의 구애를 받지만 거절한다. 구드룬의 어머니인 그림힐트의 마법약으로 지크프리트는 기억을 잃고 구드룬의 오빠인 군나르의 신하가 된다. 그리고 구드룬은 그와 약혼한다.

 군나르는 브륀힐트를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지크프리트는 군나르로 변장하고 불의 벽을 넘어 브륀힐트에게 청혼하며, 이로 인해 지크프리트-구드룬과 군나르-브륀힐트의 결혼식이 치러지기에 이른다.

 하지만 브륀힐트는 지크프리트가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은 것에 대해 의심을 가지며, 남편 군나르와의 합방을 거부한다. 의심은 질투와 증오로 변하고, 결국 브륀힐트는 구드룬과 말다툼을 하던 중 분노한 구드룬에게 모든 것을 다 듣게 된다. 브륀힐트는 군나르의 밑에 있던 호그니를 끌어들여 지크프리트의 약점을 캐내고, 그를 죽이기에 이른다. 그리고 그녀는 지크프리트의 장례식 날, 불 속에 뛰어들어 지크프리트와 함께 죽음을 맞는다.

 중세 서사시 <니벨룽의 노래>에서 인물들의 성향은 약간씩 바뀐다. 지크프리트는 크림힐트(여기서는 벨숭 사가의 구드룬에 해당한다)와의 결혼을 위해 자신의 주인인 군터왕을 도와 여왕 브륀힐트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브륀힐트는 군터가 영웅이라고 생각하여 그와 결혼한다. 그리고 지크프리트는 크림힐트와 결혼한다.

 이후 브륀힐트는 크림힐트와 말다툼을 하던 중 지크프리트가 군터를 도와 그녀의 난제들을 해결했다는 폭로를 듣게 된다. 분노한 브륀힐트는 용사 하겐(사가의 호그니에 해당)을 부추겨 지크프리트를 죽인다. 니벨룽의 노래에서 브륀힐트의 이후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서 벨숭 사가에서의 브륀힐트는 불행하고 비극적인 여인이며, 중세 서사시에서의 브륀힐트는 카리스마적인 악녀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바그너는 이 두 원전을 참고해 <신들의 황혼>의 스토리를 만들었다. 물론 알베리히와 하겐의 연관성은 바그너의 창작이다. 애당초 선악의 구분이라고 할 것이 없는 호그니(또는 하겐)가 바그너의 손에 의해 악역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미있다. 그리고 앞의 두 원전에서도 브륀힐트(브륀힐데)가 판본에 따라 주인공이 되었다가 악역이 된다는 것도 재미있다. 바그너는 두 원전을 혼합해 <신들의 황혼>의 브륀힐데를 만들었을 것이다.

 

 (9) <신들의 황혼>의 대피날레가 히틀러를 자극했다는 것은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지만, 바그너는 피날레를 통해 신과 영웅들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들이 스스로 일어서는 시대를 넌지시 암시한다. 바그너의 악극에서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유대주의적 모티브들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바그너 음악의 한 쪽 얼굴 때문에 이제 완전히 가려질 지경에 놓인 또다른 바그너 음악의 모습, 예술을 통해 이상에 도달하고 불평등한 사회적 모순을 지적하는 바그너의 모습이다. 바그너 음악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은 너무도 쉽기 때문에 이제 바그너 음악을 단 1초도 듣지 않은 사람들도 바그너 음악의 잘못된 점을 기계처럼 술술 외는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바그너 음악의 다른 면을 지적하는 사람들, 또다른 바그너 음악의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비난받기 일쑤다. 그러나 예술가의 얼굴은 결코 평면적이지 않다. 우리는 바그너 음악의 한쪽 얼굴만을 집중해서 바라보느라, 그 얼굴이 다른 각도에서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10) 사족 : 항상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반지>는 너무 길다. 전체 길이가 두 시간 정도만 짧았더라도 집중력이 두 배로 뛰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았다 해도 다 들었을 테지만.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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