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벨리우스 : <포욜라의 딸> Op.49

지휘자 : 콜린 데이비스

오케스트라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녹음 기간 : 2000년 1월 17일~19일

녹음 장소 : 워트포드, 콜로세움

<칼레발라>. 핀란드의 의사 뢴로트가 19세기에 채집ㆍ편집한 핀란드의 민족 서사시는 톨킨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음악적 근원이기도 했다. 그는 엄격한 형식에 교향곡의 원칙들을 밀어 넣어 모든 것을 용해시키기 전에 이미 민족적 토양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우리가 순음악으로 생각하는 그의 교향곡 2번조차 사실은 제정 러시아의 폭압에 반대하는 민족음악으로서의 가치를 먼저 주목받은 작품이었다.

그의 이러한 음악적 행보는 순음악에 가까운 교향곡보다는 오히려 일련의 교향시들에서 더 잘 나타난다. <칼레발라>의 용사 이야기를 다룬 <쿨레르보 교향곡>을 위시하여, <카렐리아> 모음곡, 교향 모음곡 <레민카이넨>,1) 그리고 이 <포욜라의 딸>이 있다.

<포욜라의 딸>은 <칼레발라> 8장을 바탕으로 쓴 교향시다. 영원한 노인인 라우라야2) 베이네뫼이넨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무지개 끝에서 천을 짜는 포욜라의 처녀를 발견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베이네뫼이넨은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배를 만들어 그 배를 어떤 방법으로도 건드리지 않고 물에 띄우면 청혼을 수락하겠다고 한다. 베이네뫼이넨은 배를 만들기 시작하지만 도끼 때문에 무릎에 큰 상처를 입고, 무릎에서는 피가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그는 출혈을 멎게 할 사람을 찾아 떠난다.

시벨리우스는 특유의 긴 선율들로 이 신화의 장면들을 처리한다. 그는 장면이 나오자마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에 바쁜 말러와 슈트라우스의 음악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장면을 다룬다. 하나의 음은 다른 음과 합쳐지고, 하나의 화음은 다른 화음과 섞인다.

콜린 데이비스의 연주는 비교적 느릿하면서도 힘을 주었다가 푸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고행에 가까운 연주 활동으로 인해 뼛속까지 다져진 합주력을 자랑하는 런던 심포니는 데이비스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연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파트는 저현으로, 부드럽거나 화려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북구의 서늘한 느낌을 잘 전달해준다. 불길하게 울리는 파곳 소리와 현악기의 조용한 합주가 어우러지는 코다에서도 긴장감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다만 전체적으로 해상도가 조금 떨어지고, 하프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아쉽다.

 

1) 레민카이넨은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대도大盜의 이름이다. 이 모음곡에 유명한 <투오넬라의 백조>가 있다.

2)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주술적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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