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쿠엔차> (Sequenza)

(50년대 아방가르드 작곡가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성채를 쌓아올리기에 바빴다. 변화하는 추세를 받아들이기에도 벅찬 대중들은 그들의 시야에 존재하지 않았다(결국 대중들은 그들에게서 등을 돌려 완전히 다른 음악을 선택한다). 베리오는 이러한 50년대 아방가르드 흐름에 불만을 가졌다. 그는 비록 ‘비웃음을 당할지언정’ 연주자들이 연주하면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련의 작품집 작곡에 착수했다. 일견 그의 작품집은 힌데미트의 작품목록과 비슷하지만, 그의 곡에서는 힌데미트와는 달리 애정이 느껴진다. 작곡가는 주문 받은 작품을 불만 없이 써야 한다고 믿었던 힌데미트가 콘트라베이스 소나타나 튜바 소나타에서 애정을 담았다고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베리오의 <세쿠엔차>는 악기에 진심어린 애정을 담아 연주하는 연주가들을 위한 경의라고 할 수 있다. 작곡은 1958년 플루트로 시작해 2002년 첼로를 위한 14번째 곡으로 끝날 때까지 무려 44년간 계속되었다. 여성의 목소리, 피아노, 트롬본, 비올라, 오보에, 바이올린, 클라리넷, 하프, 트럼펫, 기타, 바순, 아코디언, 알토 색소폰이 그 사이에 들어가 있다.

작곡가의 말에 의하면 <Sequenza>란 ‘Sequence of harmonic field'의 준말이라고 한다. ’화성적 형태의 순열‘이라는 뜻으로 보인다. 작곡가는 독주 악기를 위해 개발한 20세기의 거의 모든 기교를 쏟아 붓고 있다.)

 

세쿠엔차 1번 (플루트) (Sequenza No.1 for Solo Flute)

작곡 시기 : 1958년 완성

헌정자 : 세베리노 가첼로니

(플러터 텅잉을 비롯한 고도의 기교를 자유롭게 구사해야 하는 세쿠엔차 1번. 하행 12음 선율로 시작한다. 정해진 템포는 없으며, 연주자는 시간에 맞추어 악절을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음의 밀도가 떨어지는 트릴이나 트레몰로는 고저 없이 평온한 바다를, 강세와 억양, 음가에 의해 두드러지는 부분은 바다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섬을 떠올리게 한다.)

 

세쿠엔차 2번 (하프) (Sequenza No.2 for Harp)

작곡 시기 : 1963년 완성

헌정자 : 프랑수아 피에르

(프랑스 인상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애정을 드러내는 하프를 위한 세쿠엔차. 숲을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상쾌하고 시원한 곡이다. 작곡가는 하프의 전통적인 주법을 확장하는 데 공을 들인다. 일반적인 글리산도나 아르페지오, 화음형 뿐 아니라 강한 스냅 피치카토와 기타를 생각나게 하는 피치카토를 사용하고, 일부러 거친 소리를 내기도 하며, 페달을 적극 활용하기도 하면서 하프에서 예상하기 힘든 강하고 단단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세쿠엔차 5번 (트롬본) (Sequenza No.5 for Solo Trombone)

작곡 시기 : 1965년 완성

헌정자 : 스튜어트 댐스터

(베리오는 다섯 번째로 완성한 이 곡을 전설적인 어릿광대이며 음악가였던 그록(Grock, 1880-1959. 본명은 샤를 아드리앵 베타시Charles Adrien Wettach)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만들었다. 트롬본으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다 시험해 보는, 어떤 의미에서는 트롬본을 위한 전설적인 곡이다. 곡은 우스꽝스러운 소리로 시작하며 유쾌하지만 진실된 어릿광대의 모습을 묘사한다.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7번 주요 주제가 트롬본을 위한 가장 순수한 주제라면, 이 곡은 트롬본의 기교에 경의를 표하는 대표적인 곡이라 할 수 있다. 14곡의 세쿠엔차 중 가장 해학적인 곡.)

 

세쿠엔차 6번 (비올라) (Sequenza No.6 for Solo Viola)

작곡 시기 : 1967년 완성

(독주 비올라를 위해 만든 세쿠엔차 6번은 길이도 길고 기교도 손꼽힐 정도로 어렵다. 그는 이 곡에서 위대한 현악기 연주자의 기교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다. 바로 니콜로 파가니니다. 그에 걸맞게 활대로 브릿지 치기, 글리산도, 아르코와 피치카토의 재빠른 전환 등등 별의별 기교가 다 등장한다.)

 

세쿠엔차 7번 (오보에) (Sequenza No.7 for Solo Oboe)

작곡 시기 : 1969년 완성

헌정자 : 하인츠 홀리거

(이 곡에서는 완전 5도가 자주 등장한다. 작곡가는 오보에의 가장 큰 특징인 정확한 음정에 경탄하면서, 동시에 곡에서 조성적인 특질을 드러낸다(자주 등장하는 B음이 이 곡에 조성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또한 베리오는 오보에라는 악기를 통해 오보에족의 악기인 잉글리시 호른을 절묘하게 사용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 같다(바그너는 <트리스탄>의 3막 전주곡에서 잉글리시 호른을 위한 기막힌 패시지를 만든 바 있다).)

 

세쿠엔차 8번 (바이올린) (Sequenza No.8 for Solo Violin)

작곡 시기 : 1976년 완성

헌정자 : 카를로 치아라파

(베리오는 이 현악기를 통해 바흐의 D단조 파르티타, 유명한 샤콘느를 떠올리고 있다. 바이올린은 A음과 B음을 연속적으로 연주하며, 중음주법을 비롯한 현란한 기교를 동원하며 여기에 음을 채워 넣는다. 과거의 기교와 현재의 기교, 그리고 미래의 기교가 이 곡에서 뒤섞인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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