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놓고 한 달이 지나서야 글을 쓰게 되는군요.

 

끝판왕의 위엄.jpg

 

 보통 나는 음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공적인 입장과 사견은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가령 나는 불레즈의 쇤베르크가 매우 뛰어난 연주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쇤베르크 순위에서 불레즈는 미트로풀로스(왠 밑이냐고 생각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나는 밑이 연주한 쇤베르크 관현악을 위한 변주곡 Op.31보다 이 곡을 재미있게 요리한 연주를 들어본 일이 없다. 밑은 그 통제가 가능한가 싶은 속도에서도 세 번의 클라이맥스와 200마디가 넘는 코다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연주한다. 세부적인 카논이 암시에만 그친다는 사소한 결점을 무시한다면, 기가 막히게 재미있는 쇤베르크를 들을 수 있다), 카라얀(단연 가장 과소평가받는 Op.31의 연주 중 하나. 다만 5변주가 조금 아쉽다), 그리고 시노폴리(시노폴리의 12음 음악은 전혀 정신분열적이지 않다)보다 밀린다. 불레즈의 쇤베르크가 뛰어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쇤베르크라는 레퍼토리는 불레즈가 연주하기에는 너무 '낭만적'인 레퍼토리가 아닌가 하는 사견이 있기 때문이다(차라리 불레즈는 드뷔시나 베베른을 더 잘 하는 것 같다). 쇤베르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부 간의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지 모든 성부를 동등하게 다루는 것이 아니다. 불레즈는 후자에 더 능한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른 쇤베르크들을 불레즈의 쇤베르크보다 더 자주 듣는다.

 하지만 이 음반은 나의 공적인 입장과 사견이 정확하게 일치할 매우 드문 사례가 될 것이다. 나는 이 연주를 능가할 드뷔시 피아노곡집이 나올지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며 실제로도 이 연주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런 연주는 단연코 바닷가의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드뷔시 피아노곡 연주사에서 제왕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이런 연주를 듣지 않고 드뷔시를 평가하는 것은 부질 없는 짓이다.

 드뷔시의 피아노곡은 연주가들에게 두 가지 모순점을 부여한다. 하나는 터치와 루바토와 페달링을 활용해서 뛰어난 음색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고, 나머지 하나는 그러면서도 섬세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프레이즈 단위를 절도 있게 지켜야 한다는 점이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두 가지의 배합을 조금만, 단 0.1%만 잘못 설정해도 그 연주는 망가져 버린다. 나는 이전 글에서 프랑수아를 높게 평가했지만 자주 듣지는 않는다. 그는 절도 있는 연주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폴리니의 경우는 더 심각해서 음색이 다 죽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선명한 소리를 뽑지도 못한다. 이런 연주를 내놓느니 차라리 드뷔시에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

 이 연주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성취한 몇 안 되는 연주다. 음색은 깊고 짙으며 팔레트의 색감을 드러내지만 터치는 그 누구보다 선명하다. 페달링으로 인해 음색이 터치에서 붕 뜨는 느낌을 주지도 않는다(많은 연주들이 이런 연주를 내놓고는 한다). 이 두 가지 모순을 결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에리쿠르 이전의 수많은 연주들이 증명했고 에리쿠르 이후의 수많은 연주들이 지금껏 증명하고 있다(루비모프는 무수한 드뷔시 연주들이 거의 지나가지 않은 틈새를 적절히 노려서 성공한 것이지 에리쿠르처럼 압도적인 포스를 보여 성공한 연주가 아니다). 

 에리쿠르의 터치를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그의 연주를 평가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에리쿠르의 저음 연주, 특히 왼손 극저음부에서 손 전체를 약간 비틀어 들어올렸다가 활시위 형태로 팔을 휘두르면서 손가락 옆면으로 건반을 내리찍는 타건은 호로비츠의 망치 타건과는 전혀 다른 음색을 만들어낸다. 보통 그런 타건은 클러스터와 별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지저분한 소리가 날 것이라고 생각이 드시겠지만 천만의 말씀. 에리쿠르는 강하면서도 청명한 소리의 전범을 만들어내고 있다.

 해석의 측면은 어떨까. 에리쿠르의 <피아노를 위하여> 사라방드는 무려 6분 46초라는 러닝타임을 자랑한다. 보통 대부분의 연주들이 4분 50초 대에서 5분 초반 대의 러닝타임을 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무려 1분이나 더 늘어지는 연주다. 하지만 도저히 지루할 틈이 없다. 에리쿠르는 시간을 잊은 사람처럼 음표 하나하나의 색채를 조심스레 다듬어서 청자 앞에 내놓는다. 청자가 그것을 듣고 감탄하는 사이 곡은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고, 어느새 끝나 있다. 

 에리쿠르의 해석이 나를 반하게 만든 또 다른 사례는 <영상> 2집의 2곡인 <황폐한 사원에 걸린 달>인데, 나는 이 곡을 지금까지 예의상 들어야만 하는 곡으로 생각했다. 이 곡이 담고 있는 오리엔탈리즘에 거부감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곡과 달리 이 곡에서는 드뷔시 특유의 논리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이 곡이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에리쿠르를 들으면서 이 편견들은 전부 다 날아가버렸다. 곡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연주들이 문제가 있었던 거였다. 에리쿠르는 '이 곡이 이런 곡이었나?' 싶을 정도로 이 곡의 다채로운 색채감과 짜릿한 순간들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곡이 끝날 때까지 들으면서도 감탄사도 생각이 안나 '하...' 만 반복하고 있었던 연주는 내가 지금까지 들은 20종 남짓한 <영상>의 연주들 중 이게 처음이었다.

 그러면 페달링은 어떨까? 밟는 순간, 밟았다가 떼는 순간, 겹쳐 밟는 순간의 구분이 무엇보다 중요한 페달링은 자칫 잘못하면 화장 처음 한 여고생이 그렇듯 가부키 배우같은 떡칠만 남게 된다. 아무리 연습을 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지저분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페달링이다. 그런데 에리쿠르는 생각만큼 페달을 많이 밟지 않는다. 그리고 페달을 밟았다는 것을 느끼기가 정말 힘들다. 터치만으로 충분히 음색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페달을 밟으면 음색이 배가 된다. 하지만 왼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뿌옇고 탁한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 연주들과 비교하기가 미안해질 정도로 에리쿠르의 터치는 선명함 그 자체다.

 이 음반에 담긴 연주들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만은(지루한 곡이라고 생각하는 <렌트보다 느리게>마저도 기가 막힌 곡처럼 들리게 하는 연주다. 더 설명이 필요한가?), 딱 하나를 꼽는다면 <판화>의 첫 곡 <탑>을 추천하고 싶다. 음량적인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 순간 왼손이 만드는 그 트레몰로의 괴물 같은 음향을 듣고 있으면, 도대체 왜 이 피아니스트가 그토록 음반 만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는지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만약 이 피아니스트가 조금만 더 외향적이었더라면 드뷔시 연주사 전체가 뒤집어졌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이 연주의 입수 난이도가 연주의 질에 비례한다는 점이다. 에리쿠르께서는 애시당초 메이저 레이블 같은 곳은 생각하지도 않았고, 황송하게도 듣보 레이블인 kapp record에서 이 보석같은 연주들을 녹음하셨다했다(그래서 이 연주는 60년대 초에 녹음했음에도 모노랄이다). 그 덕에 kapp record는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Ivory classics에서 에리쿠르 탄생 100주년 기념 한정판으로 CD 전곡반을 냈다(아이보리 본사에서는 아직도 음반을 팔고 있다. 어서 주문하시오.) 이외에도 낙소스 아카이브에서 전주곡집만 뽑아서 음원을 냈고, 드뷔시 유니버셜 에디션에 소품 몇 곡 정도가 들어가 있다. 현재 CD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주문처는 아이보리 본사 뿐이다(아마존 중고매장에서는 이 음반 초반을 185달러에 판다......). 그야말로 기가 막힌 연주에 범상치 않은 입수 난이도를 자랑하고 있다. 나는 우연찮게도 이 음반을 중고매장에 내놓으신 누군가(그 분께 절이라도 드리고 싶다)와 재고를 알려주신 '누군가'의 도움 덕택에 지금 집에서 이 음반을 잘 듣고 있다(누구신지는 몰라도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내가 이렇게 자신있게, 아니 간절하게 추천하는 음반이 다시 나올지 의문이다. 보이면 당장 사라. 낙소스 아카이브건 유투브건 보이면 무조건 들어봐라. 듣고 싶으신 분들은 내가 립을 떠서라도 보내드릴 테니 제발 들어라. 그리고 이거 안 듣고서 어디 가서 드뷔시 듣는다고 얘기하지 마라.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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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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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을 사면서 생각하던 것이, 단일 곡의 연주가 10종이 넘으면 그 연주들을 비교감상하고 그 결과를 글로 남기겠다는 것이었다. 음반을 워낙 중구난방식으로 사기 때문에 단일 곡이 10종이 넘는 경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에 알베르 페르버 드뷔시를 사면서 드뷔시 전주곡 1집이 9.99종10종이 되었기 때문에 비교감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곡 연주가 10종이 아니라 각 곡당 연주가 10종이라는 것은 함정. 두 종의 발췌 연주가 각각 10곡 발췌, 4곡 발췌인데 희한하게 각 곡 당 연주를 세어보면 10종이 된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채를 연상시키는 다채로운 음색의 소유자 발터 기제킹의 드뷔시 연주는 언제나 정평이 나있고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음색 계발에 있어서는 코르토, 오보린과 버금간다고 할 수 있는 그의 드뷔시는 선명하고 명쾌하면서도 이런 연주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딱딱함이나 매너리즘이 없다. 그는 자신의 음색을 최대한으로 선보이기 위해 페달(특히 왼페달)을 절제하고 터치와 핑거링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스테레오 시대 드뷔시 연주를 무작위로 하나 뽑아서 기제킹과 비교해보라. 기제킹에 비해 후대의 연주자들이 얼마나 페달 떡칠이라고 해도 될 만큼 페달을 남용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기제킹의 해석은 항상 본질에 충실하다. 2곡 <돛>의 클라이맥스에서 기제킹은 악구가 살짝 엉킬 정도로 성급한 연주를 들려주는데, 실제로 그 부분의 지시어는 Rapide(빠르게)이다. 후대의 연주에서 템포의 왜곡이 가해지는 1곡 <델피의 무희들>이나 10곡 <가라앉은 성당>에서 기제킹은 템포 왜곡 없이 정면승부를 고집하고 보기좋게 성공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자신의 해석에 자신이 있었던 기제킹은 어떤 음악학자가 <가라앉은 성당>의 연주가 드뷔시의 피아노 롤 연주와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자 "내가 맞고 드뷔시가 틀렸다"고 주장한 것은 물론, 제자들에게 교육을 할 때도 "드뷔시가 이 부분을 잘못 연주했다"고 지적하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기제킹의 전주곡 연주는 여러 종이 있지만 가장 뛰어난 것으로는 30년대의 것을 추천하고 싶다. 50년대는 환갑이 다 된 기제킹이 치는 연주라 해석이 점점 굳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점은 월터 레그의 개념없는 레코딩으로, 50년대 초 EMI의 음향 장비가 얼마나 막장이었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지표이기도 하다. 솔직히 말해서 50년대 연주는 음질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30년대 연주에 비해 뒤진다. 5번 <아나카프리의 언덕> 마지막 고음부 소리를 난도질해놓은 녹음을 듣고 있자면 어처구니가 없다(50년대 녹음을 SACD로 사 들었는 데도 이 모양. 다른 음반들은 얼마나 막장이기에......).

 

 50년대를 풍미한 스위스 피아니스트 알베르 페르버의 드뷔시의 가장 큰 장점은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이다. 그러면서도 모노 시대 피아니스트들의 특징인 '고유의 음색'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기제킹이 강렬한 원색의 대비를 추구하고, 에리쿠르가 일렁이는 안개와 섞여 점묘법처럼 유동하는 음색을 추구한다면 페르버의 음색은 고요하면서도 단단하다. 성향은 많이 다르지만 에트빈 피셔의 소리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페르버의 드뷔시는 템포 측면에서 서두르는 법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늦거나 뒤처진다는 느낌은 전혀 주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느긋하게 몸을 움직이면서도 원하는 순간에 정확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가를 줄곧 생각하는 사람 같다. 보통 내공이 아니다. 목소리를 크게 높이는 법도 없이 조곤조곤히 이야기하지만 그의 음반을 플레이어에 건 청자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연주에 집중하게 된다. 그의 음색에는 차분히 집중하고 경청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심지가 약한 연주는 아니다.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내야 할 부분에서는 분명하게 소리를 내고 있다. 그 예가 6번 <눈 위의 발자국>. 6번에서 그의 연주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지는 않지만 아주 단호하다. 페르버는 자신의 연주를 통해 중용, 중도의 매력을 설파하고 있는 것 같다. 템포가 평균치라고 중용, 중도가 아니다 그런 연주는 대개 이도 저도 아닌 연주이기가 쉽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페르버가 사용한 피아노는 스타인웨이다. 폴리니도 스타인웨이다 비교체험 극과 극

 

 필립스 듀오 시리즈로 나온 연주들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무난하거나 수준 이하의 연주를 들려주며, 기제킹의 제자 베르너 하스의 60년대 연주도 이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연주는 한 마디로 '기제킹의 마이너 카피'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하스는 스테레오라는 엄청난 강점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며, 해석은 기제킹의 노선을 따라가지만 결과물은 기제킹만 못하다. 다이내믹 처리도 대충, f와 p 구분도 대충 하다 보니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한 연주가 나온다. 특히 페달의 사용에서 기제킹과 가장 다른 점은, 기제킹이 페달의 사용과 관계없이 특유의 음색을 100% 발휘한다면, 하스는 페달을 사용할 때 소리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만큼 음색 계발에 무성의했다는 얘기가 된다. 루바토의 사용이 중요한 4번 <소리와 향기는 저녁 대기 속을 떠돌고>는 무뚝뚝하기 짝이 없으며, 5번 <아나카프리의 언덕>의 변덕스러움은 실종된 상태다. 폴리니같은 개막장까지는 아니지만 참 재미없는 연주다.

 

 프랑수아의 연주는 68년의 전곡 레코딩과 61년의 발췌 연주가 있고 둘 다 스튜디오 레코딩이다. 그 외에도 숱한 실황 연주를 남겼지만 일단 가지고 있는 이 두 가지의 연주로 평가를 하도록 하겠다.

 프랑수아의 드뷔시는 '의외로' 왜곡이 거의 없다. 리스트-디에메-코르토로 이어지는 프랑스 피아니즘의 적통을 승계한 마지막 피아니스트답게 프랑수아는 피아노 음악을 터치와 루바토의 예술로 받아들이고 그에 충실한 도취적인 연주들을 남겼다. 하지만 프랑수아는 적어도 '드뷔시에서만큼은' 지나친 루바토가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달은 것 같다. 그 덕분인지 61년의 발췌 연주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신선함 그 자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68년의 전곡 연주는 조금 더 변덕스럽지만 절제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술 한 잔 걸치고 치는지 악구를 잘못 기억하거나 지나치게 연주에 몰입해 음표를 잘못 누르는(참고로 이 연주 스튜디오 레코딩이다) 경우가 왕왕 보이지만 해석에 있어서 막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페달링의 절제인데, 순수한 터치와 간을 하듯 적당한 루바토의 사용만으로도 포커스를 준 것 마냥 진하게 흐려지는 특유의 음색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특히 4번 <소리와 향기는 저녁 대기 속을 떠돌고>는 정말 유니크한 연주인데 Rubato라는 지시가 붙은 7음 하행 아르페지오 악구를 프랑수아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한 번 들어보라. 진짜 루바토는 이렇게 쳐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5번 <아나카프리의 언덕>을 시작하는 5음음계는 오로지 피아니스트의 음색만 가지고 처리해야 하는 악구인데 프랑수아는 정말 근사한 음색을 들려준다. 리스트 스타일의 7번 <서풍이 본 것>과 기타 속주를 연상케하는 9번 <끊어진 세레나데> 에서 프랑수아는 본인의 똘끼를 억누르지 못하고 분출을 시도하는데, 사실 그렇게 심하지는 않을뿐더러 두 곡 모두 스타일이 그런 해석을 용납하는 곡이라 이해가 간다. 사실 프랑수아의 해석과 제일 엇나가는 곡은 마지막 곡 <민스트렐>. 직접 들어보면 안다(애초에 이 곡은 리듬이 기계적이어야 하는데 프랑수아가 그렇게 칠 리가 없잖아?).

 

 프로코피예프와 스트라빈스키에서 좋은 연주를 들려주던 베로프는 전주곡에서도 재미있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생동감 있는 해석,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내는 터치, 좋은 음질로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기도 좋은 연주다. 곡마다 본인의 독특한 해석을 첨가하지만 또라이짓은 하지 않는다. 질질 끄는 부분 없이 소리를 잘 만진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다. 플레옐 피아노를 고집하는 베로프의 음색은 프로코피예프에서 들려줬던 신선함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분 최소 프랑스 사람 소리는 들을만하다. 적어도 무늬만 프랑스 사람인 로제나 티보데보다는 훨씬 낫다(둘 다 되도 않는 자기 소리 들려주겠다고 곡을 질질 끌면서 듣는 사람 인내심만 자극하는 연주만 하다가 끝난다). 특이한 점을 찾자면 5곡 <아나카프리의 언덕>. Tres modere로 지정된 첫 5음음계의 템포를 무척 빠르게 가져가며, 첫 f를 ff처럼 연주한다는 것이 여타의 피아니스트들과 다르다. 

 다만 이 연주가 최고냐? 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을 하기가 힘들다. 분명히 잘 하는 연주이며 정말 재미있는 연주지만...... 딱 거기까지가 베로프의 한계인 것 같다. 젊은 열정으로 곡을 밀고 나가는 것이 단점은 아니지만, 이 곡에 필요한 기품은 그에 반비례하여 줄어든다는 점은 아쉽다. 지나치게 촐싹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10곡 <가라앉은 성당> 초반에 소극적인 연주를 들려주는 것은 분명한 결점이다. 드뷔시가 요구하는 것은 섬세함이지 소극적인 연주가 아니다. 음량이 베로프와 비슷한 루비모프는 베로프보다 훨씬 또렷하고 선명하게 들린다.

 참고로 이 전주곡을 녹음할 때 베로프의 나이는 20세였다.

 

 70년대 이후 모든 드뷔시 연주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미켈란젤리의 연주는 DG의 78년 스튜디오 레코딩과 82년 BBC 실황연주 두 가지를 가지고 있는데, 두 가지 연주의 해석은 크게 차이가 없으므로 같이 묶어서 설명하도록 하겠다. 

 미켈란젤리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고도로 통제된 스튜디오 레코딩에서 자신의 크리스탈같은 음색을 만들어낸 피아니스트로, 그만큼 새장 속의 새처럼 완벽하게 통제된 환경에서만 제 역량을 100% 이상으로 발휘할 수 있었던 피아니스트였다. 대표적인 경우로 나는 71년의 <영상>을 꼽고 싶은데, 특히 1집의 첫 곡 <물에 비친 그림자>를 시작하는 5도는 밑바닥에서부터 천천히 퍼져나가는 일렁임을 소름끼칠 정도로 잘 표현했다. 하지만 78년의 전주곡 녹음은 71년 <영상>의 녹음에서 들려주었던 그 초월적인 음색이 거의 다 날아가버렸다(82년 실황도 마찬가지). 사실 이 정도도 나쁘지는 않지만 <영상>에 비하면 평범하게 들리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미켈란젤리의 해석을 두고 누가 '작곡가는 싫어하지만, 청자는 만족하는 해석'이라는 평을 내렸는데, 나는 거기에 절반만 동의한다. 1번 <델피의 무희들>에서 미켈란젤리는 첫 악구와 두 번째 악구(4마디 가운데 부분이 두 악구의 분기점이다)의 템포를 다르게 잡는데, 악보에는 템포 변경에 관한 지시가 없을뿐더러 caesura(악구를 구분하기 위한 지시기호. // 로 표기한다)나 페르마타 기호도 없다. 이런 해석은 10번 <가라앉은 성당>에서도 나타나는데, 22마디, 물에서 떠오른 성당이 햇빛을 받아 찬란한 색채감을 발산하며 반짝이는 부분에서 미켈란젤리는 돌연 속도를 빠르게 가져간다(프랑수아도 이렇게 연주한다). 그러나 악보에는 역시 아무 것도 없다. 참고로 악보를 그대로 연주한 사람은 기제킹을 포함해 몇 되지 않는다. 그래도 악보에 적힌 섬세한 뉘앙스만으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미켈란젤리가 후대의 연주에 끼친 가장 큰 악영향은 바로 템포와 리듬으로, 본인의 음색을 자랑하고자 모든 연주의 템포를 느리게 잡고 연주를 했다. 그 옹고집은 모든 곡에서 변함이 없어서 울렁거리는 느낌을 만들어내야 하는 2번 <돛>이나 타란텔라 리듬의 생동감을 위해 '반드시'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야 하는 5번 <아나카프리의 언덕>도 느려터진 연주로 일관한다. 템포만 느리면 모르겠지만 리듬도 덩달아서 딱딱해져 버렸으니 들으면서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다. 그리고 이 결정은 후대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미켈란젤리는 개성적인 음색으로 느려진 템포와 왜곡을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다지만, 역량이 그에 못 미치는 후대 피아니스트들이 미켈란젤리의 해석을 거의 맹목적으로 따라간다는 것이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다. 80년대 이후 드뷔시 연주들은 불어터진 라면 면발같은 연주들로 빼곡히 채워지기에 이르며, 기름덩어리가 덕지덕지 붙은 지메르만의 연주에서 정점을 찍은 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드뷔시가 생동감과 신선함을 추구하고 템포의 왜곡을 어느 누구보다 끔찍히 싫어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다.

 

 피아니스트로서의 리히테르를 높이 평가하고 영감으로 가득한 그의 도전적인 해석을 존경하는 본인이지만 그의 드뷔시 해석만큼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유명한 헝가리의 리히테르 시리즈에 들어있는 85년의 전주곡 연주는 아집과 독선으로 레퍼토리를 말아먹는 위대한 연주자의 안타까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는데, 모든 곡이 여타 연주에 비해 1분씩 느려져 원래 템포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긴장감이 싹 다 날아가버린다. 음색? 리히테르의 무채색 음색은 팔레트의 색채감을 요구하는 드뷔시와는 상극이다. 리히테르는 자신의 특이한 해석과 강려크한 타건으로 그 단점들을 벌충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악구가 뚝뚝 끊어질 정도로 템포가 느린데 논리적인 전개와 집중성이 남아날 리가 없고 곳곳에서 출몰하는 뜬금없는 해석(9번 <끊어진 세레나데>의 첫 스타카토는 테누토인줄 알았다)은 실소를 자아낸다. 그나마 11번 <푸크의 춤>이 가장 낫다. 개성적인 해석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지만 좋은 드뷔시 연주라는 평가는 빈말이라도 해주기가 힘들다.

 

 단테의 <신곡>이 <지옥편>이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천국편>이 가장 낮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음반에 대해 말할 때도 나쁜 연주를 평하는 것은 쉽고 좋은 연주를 평하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이 나와야 하는데 이 연주는 그런 견해에 대한 반론이 될 수 있겠다. 폴리니의 98년 DG 연주는 가히 내가 들은 최악의 드뷔시 전주곡 1집의 연주이며 이런 연주는 두 번 다시 나와서는 안 되겠지만 나는 도저히 이 연주를 정확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일단 두서없이 설명해보도록 하겠다.

 개성없는 음색으로 타고난 기교에 의존해 먹고 살아가던 폴리니는 <페트루슈카>, 프피소 7번(솔직히 두 곡 모두 바이센과 리히테르한테 떡실신 당하는데 왜 높은 평가를 받는지 이해가 안 된다)과 쇼팽 연습곡(그냥 아쉬케나지 사라. 그게 훨씬 낫다)이 연이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DG의 간판 피아니스트로 자리매김했고 그 덕에 지금까지 죽지도 않고 음반이나 내시면서 연명하고 계신다(그래서 틸레만과......?). 그러나 냉정히 평가할 때 폴리니는 20세기 후반을 상징하는 '몰개성'의 아이콘이며 기교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80년대부터 자신의 떨어지는 기교를 페달링으로 만회하려는 수작이나 부리다가 이 드뷔시를 녹음해야 하는 98년에 와서는 아예 곡의 모든 부분에 페달을 떡칠하는 만행을 저지르기에 이른다. 창백하기 짝이 없는 스타인웨이 특유의 음색에(폴리니의 음색이 아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폴리니는 음색이 '없다') 쉬지도 않고 지속적으로 눌러대는 왼페달 덕에 음향은 다 섞여서 지저분하기 짝이 없고 그나마 거의 유일한 장점이던 깔끔한 터치는 집 나가신 지 오래. 이러한 망조의 삼위일체가 모였으니 어떤 연주가 나올지는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솔직히 위에 있는 연주들 중 호평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위에 있는 모든 연주들이 폴리니보다는 낫다. 포장 뜯고 딱 한 번 들은 후 바로 봉인했지만 이 글은 써야 하기에 다시 꺼내들었고 그 결과 이런 글이 나오고 있다. 솔직한 총평은 '왜 전주곡 2집을 녹음 안 했는지 알겠다'.

 

 미켈란젤리 이후로 드뷔시 전주곡의 해석은 거의 획일화가 완료되었고 새로운 해석이 등장할 가능성은 요원해보인다. 당대 피아노를 들고 나온 쁠라네, 역량도 안 되는 주제에 명함만 거창한 파스칼 로제, 자기 주력 레퍼토리인 Contemporary Music을 제외하면 항상 덜 떨어지는 연주만 들려주는 에마르를 비롯한 몇몇이 음반을 찍었지만 모두 기준 미달이었고 실망만 안겨주었다.

 알렉세이 루비모프의 ECM 연주를 기제킹, 에리쿠르, 굴다와 비교하는 것은 힘들다. 루비모프는 기제킹의 화려한 색채감이나 에리쿠르의 몽환적인 음색, 굴다의 명쾌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 루비모프는 기존의 연주들과 확연한 차이점을 두는 것으로 기대 이상의 대성공을 거두었고 드뷔시 해석의 새로운 활로를 열었다.

 드뷔시는 전주곡에 편집증적일 정도로 섬세한 다이내믹을 부여했다. 10곡 <가라앉은 성당>의 42마디에서 46마디에 작곡가는 p - piu p - pp - piu pp 라는 거지같은 다이내믹을 지정했는데 이를 실제 연주에서 듣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 뿐 아니라 전주곡에서는 ppp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며, 7곡 <서풍이 본 것>의 종지는 f < ff > f < sff sec라는 괴랄한 다이내믹을 보여주신다. 대부분의 연주들은 이 다이내믹의 완벽한 재현을 포기하고 대신 음색이나 해석에 심혈을 기울였다. 루비모프는 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고 멋진 성과를 거두었다.

 루비모프는 전주곡의 이 기상천외한 다이내믹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재현한다. 누군가 이 연주를 놓고 'ppp와 pp를 구분할 수 있는 연주'라고 했는데, 이 말이야말로 이 연주를 한 마디로 압축한 평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루비모프 연주의 이런 강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은 6번 <눈 위의 발자국>의 종지 부분과 10번 <가라앉은 성당>의 도입부. 정말 음향기기로 피아노의 음량을 조절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섬세한 다이내믹 구분을 들려주고 있다.

 내가 앞에서 쁠라네 얘기를 했는데, 루비모프도 1925년 베흐스타인 피아노를 들고 와서 드뷔시를 연주하고 있다. 하지만 루비모프는 드뷔시 당대의 피아노와 현대 피아노 음색은 별 차이가 없다는 말을 했으며, 피아노는 단지 '그 시대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기 위한 도구'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실제로 피아노를 제외하면 그의 연주에서 드뷔시의 시대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이 연주는 템포나 아고긱의 측면에서 '현대'를 자처하는 연주들보다 더 현대적이다. 기존의 연주들을 섬세하게 심사숙고한 후 자신의 취지에 맞는 것들을 골라냈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하겠지만.

 

 

 에리쿠르와 굴다는 아직 구매하지 않아 감상평을 쓰지 않았다. 듣자마자 반한 연주들이고 언젠가는 꼭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으니 머지 않아 감상평을 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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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들어 르네상스 음악가들의 음반을 자주 듣고 있다.

 질 뱅슈아와 기욤 뒤페이의 세대, 요하네스 오케햄의 세대, 그리고 조스캥 드 프레의 세대는 각각 순수 대위법 음악의 위대한 이상을 구축하고 있으며, 동시에 교회가 문화의 중심이던 시대의 음악을 완성하고 있다.

 우선 기욤 뒤페이의 음악은 음악성과 동시에 텍스트의 운율을 기가 막히게 잘 살리고 있다.

 뛰어난 음악가였으며 동시에 재테크에도 음악 못지않게 뛰어난 재능을 지녀 만년을 부유하게 살았던 뒤페이는 15세기의 수많은 음악가들 중 음악의 선율 못지않게 시적 운율의 중요성을 강조한 가장 중요한 음악가로 보아야 한다. 운율의 중요성을 음악가가 파악하고 있다는 말은, 음악가가 인간의 구강 구조를 꿰뚫고 있다는 말과 같다. 양성 모음, 음성 모음, 원순 모음, 구개음, 파열음, 반치음, 유성음 등 구강 구조의 변화에 따라 목울대에서 솟아나는 인간의 음성은 무한히 달라지며 그 배열을 조합한 언어도 무한히 달라진다. 음악가, 특히 성악 음악가는 이 무한한 변화를 모두 꿰뚫고 있어야 한다. 뒤페이는 이 분야에서 가히 독보적이었다. 그것이 그를 이토록 오래 살아남게 한 첫째 이유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뒤페이의 또 다른 위대함은 대조적인 양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대범함에 있다.

 현대 클래식 음악과는 달리, 당시 영국의 음악 양식은 다른 나라에 적지 않은 영향을 지속적으로 끼치고 있었다. 당시 존 던스터블의 주도로 풍성한 성과를 거두던 영국의 음악은 대륙의 음악가들에게 이전까지 불협화음으로 여겨지던 3도와 6도 화음의 폭넓은 수용을 가능케 했다. 또한 상성과 테노르(테너)가 짝을 이루는 3성부 수법도 이들의 유산이었다. 뒤페이 또한 영국 음악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을 몸소 체험한 세대였다. 전통적인 음악가들은 모두 전통의 고수자였다는 생각은 무지에서 비롯한 편견일 뿐이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한다. 뒤페이는 당시 주류로 받아들여지던 프랑스/플레미쉬 음악과 이탈리아 음악에 능통했을 뿐 아니라 영국과 부르고뉴 음악, 그리고 후배인 요하네스 오케햄의 음악까지 알고 있었다. 그의 음악은 다양한 음악 언어를 조합한 코스모폴리탄적 음악이며, 당시 영국 음악의 유유히 흐르는 부드러움, 프랑스 음악의 당당한 품격, 이탈리아 음악의 약동적인 흐름을 모두 거둬들인 후 자신만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다.

 요하네스 오케햄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자신감이다.

 오케햄은 뛰어난 베이스 가수였으며, 스스로 가수 시절의 경험을 살려 성악가의 능력을 속속들이 파악한 곡을 작곡했다. 성악가로 활동한 작곡가가 직접 곡을 쓴다는 사실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싶다면, 쇼팽과 리스트를 머릿속에 떠올려보라. 악기에 대한 이디엄이 있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메리트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일류 가수였다는 경험을 살려 사람 목소리에 대한 탁월한 이해도와 발성의 영역을 확장한 성악곡들을 남겼다. 그의 레퀴엠은 서양 음악사상 최초의 레퀴엠으로 알려져 있다(뒤페이 또한 레퀴엠을 작곡했다고 하나 현재 악보를 확인할 수 없다). 북프랑스에서 태어났고, 상업과 공업으로 번영하던 플랑드르와 접한 지역에서 평생을 살았던(그는 이탈리아에 가본 적이 없다) 오케햄은 '회중이 회당에 모여 부르는 음악'이 아닌, '전문 가수가 회당에서 부르는 음악'을 만들었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의 뛰어난 성악 기교는 그런 음악을 쓰도록 만들었다. 또는 시대가 그것을 원했을 수도 있다. 오케햄의 음악은 전문 성악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부르기에 결코 쉽지 않다. 오케햄은 자신의 음악을 통해 훈련받은 가수들이 불러야 하는 전문적인 음악의 등장을 알렸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는 오케햄의 근원에는 그의 강한 자신감이 머무르고 있다.

 오케햄의 시대가 지나고 조스캥 드 프레의 시대가 왔을 때 권력자들은 자신의 위선을 자랑하기 위해, 또는 마지못해 예술가들에게 경의를 표해야 할(또는 그러는 척 해야 할) 정도로 예술가들의 입지가 단단해져 있었다. 이것은 회화에서는 조토 이후로, 음악에서는 마쇼 이후로, 문학에서는 단테 이후로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입지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 예술가들의 유무형의 행동이 서서히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음을 증명하는 예시가 될 것이다. 음악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의 반열에 놓여야 할 조스캥 드 프레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예술가들의 굳건해진 입지를 활용해 자신의 음악이 전 유럽으로 퍼질 수 있도록 했으며, 동시대의 어떤 음악가도 자신의 위치를 위협할 수 없도록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했다. 그러나 조스캥이 만든 음악은 그러한 일화를 초월할 정도로 위대한 것이었다.

 그의 음악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옛 프레스코화처럼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는 초기 모테트들이 그의 진정한 음악일까? 아니면 모방과 변형 기법을 숨쉬듯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후기 미사들에서 그의 진정한 음악을 찾아야 할까? 조스캥은 르네상스 시대에 살았던 음악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다양하고 풍부하며 역동적인 음악들을, 그것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만들어냈다. 이런 천재성을 우리가 다시 찾으려면 적어도 2~30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조스캥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아예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는 데 성공한다. 조스캥 최후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미사 혀야 말하라(미사 빵제 링구아. Missa Pange lingua)>는 정선율이 고정되어 있는 일반적인 미사에서 벗어나 선율을 네 성부 전체에 걸쳐 자유로이 사용하고 있다. 선율은 전체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사용하기도 하며, 선율에서 파생한 악구들이 모방적 처리의 동기가 되기도 하고, 호모포니를 통한 강조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명 패러프레이즈 미사의 시발점인 셈이다.

 그러나 조스캥의 음악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소탈하면서도 그의 기발한 착상이 빛나는 샹송일 것이다. 조스캥의 샹송에서 모든 성부는 동등하게 다루어진다. 이전의 음악과는 달리 한 성부를 빼놓을 경우 음악 전체가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모방과 호모포니가 그 성부들을 끈끈하게 잇는다. 이토록 유기적인 음악을 만든 음악가는 결코 흔치 않았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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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본 원칙 : 레드 오션에서는 기존 연주를, 블루 오션에서는 새로운 연주를 좋아한다. 오랜 세월 동안 연주해 온 곡은 최근의 연주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연주에서 그 곡에 대한 경험의 축적과 열정을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새로운 곡에서는 그 새로운 곡에 대한 신선한 해석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블루 오션이 블루 오션인 이유는 곡의 질에 비해 명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그 곡을 사람들이 듣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톡톡 튀는 신선함이 있어야 한다.

2) 연주 해석의 기반을 잡은 연주와 좋아하는 연주는 분명 같을 수 없다. 가령 드뷔시 전주곡에서 미켈란젤리의 해석이 연주의 뼈대를 잡았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미켈란젤리는 '소리' 자체에 집착해 리듬이 뻣뻣하게 굳어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켈란젤리보다는, 미켈란젤리의 해석을 이해하고 있으면서도 리듬의 유연함을 잘 살려낸 루비모프의 연주를 더욱 좋아한다.

3) 분명히 많은 요즘 연주들이 모든 곡에 대해 규격화와 최적화를 깔끔하게 이루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연주들을 들을 때마다, 항상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히 1930년대에 오케스트라는 마을마다 다른 소리를 냈다.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아도, 1960년대만 해도 세계 주요 오케스트라는 모두 다른 소리를 냈다. 물론 피치도 다르고(사실 피치는 지금도 모든 오케스트라가 동일할 수 없다) 지휘자도 다르기 때문에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왜 요즘의 지휘자들은 한결같이 동일한 표준 규격에 음악을 몰아넣으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령 베토벤의 교향곡을 연주한다고 치자. 베토벤 교향곡 4번 1악장에서 4분음표는 메트로놈 표기로 어느 정도의 속도로 연주해야 하는가? 그에 대한 철저한 원칙이 있는가? 베토벤 자신의 메트로놈 표기를 신뢰한다고? 작곡가도 신뢰하지 않은 메트로놈 표기를 내가 뭐하러 신뢰해야 하는가?

분명히 메트로놈 표기를 신뢰해야 하는 음악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음악은 거의 90% 이상이 20세기 후반 이후의 현대 음악에 몰려 있다. 그 이전 음악은 화성적 구조나 대위법적 구조상 어떤 음 이전이나 이후에 있기만 하면 된다. 분명 그 안에서 자유로운 해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음반을 살 이유가 없다. 나는 악보를 듣기 위해서 음반을 사는 것이 아니다. '악보 플러스 알파'가 없다면, 그 음반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4) 나는 옛날의 영광을 재현한답시고 옛 해석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연주를 들려주는 것을 혐오한다. 내가 틸레만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과거의 향수에 집착하는 것은 새로운 해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욕을 먹으면서도 색다른 해석을 들려주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볼지언정 혐오하지는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차라리 파비오 루이지의 슈트라우스가 틸레만의 슈트라우스보다 낫다.

5) 가수들은 분명히 옛날 가수들이 요즘 가수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바바라 해니건 같은 예외도 있기는 하지만 그 사람은 오로지 현대 음악에 헌신하는 사람이니까). 성악가는 인재 풀이 두터울 수록 좋은 싹이 자라고 좋은 꽃이 피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가능하다. 성악가의 질이 갈수록 떨어지는 이유는 성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큼 인재 풀이 얇아졌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인재 풀은 분명히 '양적 성장'과는 다르다.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 안에 들어있는 인재의 수도 늘어나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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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0.13 카네기 홀 실황 : 프라이스, 반 담, 베를린 필, 빈 징페라인

83.8.15 잘츠부르크 실황 : 헨드릭스, 반 담, 빈 필, 징페라인

연주에 대한 압도적인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연주에 대한 평을 쓴다는 것은, 건망 속에서 세세한 기억을 복구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연주에서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미화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연주도 나에게 그러한 고민을 던져주었기에, 연주에 대해 쉽게 풀어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카라얀은 브람스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이자 브람스라는 작곡가의 테두리를 여러 번 벗어나는 이 미증유의 걸작에 지속적인 애정을 보였고, 여러 차례의 연주를 남겼다.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클렘페러의 연주가 전통적인 해석으로 버티고 서 있는 상황에서, 카라얀의 연주들은 지속적으로 이 곡에 새로운 지평을 부여했고 이 곡의 거대한 해석 세계 한 축에 서 있다. 지금 소개할 두 실황은 카라얀의 그러한 여러 연주들 중 단연 으뜸이라 할 만하다.

카라얀의 독일 레퀴엠 연주를 설명한다면 어떤 말이 가장 잘 어울릴까? 고도로 정제되면서도 농밀한 현악기, 통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관악기군, 위엄과 박력을 동시에 갖춘 해석, 조화를 추구하는 성악진. 한 마디로 ‘압도적’이라 할 연주다. 그러나 단지 ‘압도적’인 해석만으로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이 가능할까? 슬픔, 절망, 참회, 찬송, 위로, 심판, 그리고 안식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이 곡은 단지 그것만으로는 풀어나가기 벅찰 정도로 너무 크다. 그렇다면 카라얀이 곡의 본질을 정확히 낚아채는 연주는 역시 고도로 통제된 스튜디오 레코딩보다는 연주자의 본질이 잘 묻어나오는 실황 녹음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라얀의 관현악은 카네기 실황과 잘츠부르크 실황 둘 다 매우 뛰어나지만, 역시 카네기 실황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카네기 실황에서의 카라얀은 악구를 통제하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작곡가가 음표를 적어 내려가며 느꼈을 감동과 눈물을 그대로 발산하고자 한다. 그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6악장에서 바리톤 독창이 끝나고 ‘최후의 나팔 소리’에 따라 관현악이 투티로 몰아치는 부분, 마치 그리스도의 죽음에 애통하듯 예루살렘 성전 장막이 둘로 찢어진 것과 비견할 수 있을 만한 그 거대한 충격파 부분을 꼽을 수 있겠다. 그 부분은 정말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이 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찻잔 속의 태풍 같은 연주들에서 무슨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을 받는단 말인가?

1악장과 7악장 말미의 하프 독주도 카네기 실황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만드는 부분이다. 1악장과 7악장을 하나로 묶어주는 하프의 독주는 잘츠부르크 실황보다는 카네기 실황에서 좀 더 두드러지게 들린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하프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카네기 실황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만든다.

다만 카네기 실황은 개인이 몰래 녹음한 탓인지 음향 상태가 별로 좋지 않고, 뒤의 악장으로 갈수록 그런 문제는 더욱 심해진다. 세세한 디테일을 찾고 싶다면 역시 잘츠부르크 실황 쪽이 더 좋을 것이다. 4악장과 7악장의 섬세한 코랄에서 그 장점이 매우 두드러진다.

바리톤은 76년의 연주와 83년의 연주 모두 호세 반 담이 맡았는데, 그는 심판의 날에 대해 설교하는 느낌의 피셔-디스카우와 대척점을 이룬다. 반 담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회하는 것 같은 통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3악장은 그런 반 담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부분이다. 6악장의 바리톤 독주에서도 피셔-디스카우가 담담하게 정경의 구절들을 읽어 내려가는 느낌이라면, 반 담은 정말로 브람스가 배치한 급진적인 전조처럼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절망 속에서 구원을 찾아 헤매는 선지자의 느낌이 강하다.

소프라노는 헨드릭스보다는 프라이스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83년의 헨드릭스는 너무 교태 떠는 것 같은 목소리라 5악장에서 의도한 거대한 위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이 아니라 가식적인 사촌 누나의 목소리에 가깝다. 담담한 프라이스의 노성은 5악장이 참으로 독특하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문제 많은 빈 징페라인이지만, 적어도 <독일 레퀴엠>에서만큼은 카라얀의 해석에 문제없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들을 수 있다. 물론 합창단은 76년보다는 83년이 더 세세한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래서 징페라인은 83년의 연주가 더 좋아 보인다.

결론 : 압도적인 카네기 실황. 그러나 잘츠부르크 실황도 좋은 보충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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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 : <포욜라의 딸> Op.49

지휘자 : 콜린 데이비스

오케스트라 :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녹음 기간 : 2000년 1월 17일~19일

녹음 장소 : 워트포드, 콜로세움

<칼레발라>. 핀란드의 의사 뢴로트가 19세기에 채집ㆍ편집한 핀란드의 민족 서사시는 톨킨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음악적 근원이기도 했다. 그는 엄격한 형식에 교향곡의 원칙들을 밀어 넣어 모든 것을 용해시키기 전에 이미 민족적 토양에 깊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우리가 순음악으로 생각하는 그의 교향곡 2번조차 사실은 제정 러시아의 폭압에 반대하는 민족음악으로서의 가치를 먼저 주목받은 작품이었다.

그의 이러한 음악적 행보는 순음악에 가까운 교향곡보다는 오히려 일련의 교향시들에서 더 잘 나타난다. <칼레발라>의 용사 이야기를 다룬 <쿨레르보 교향곡>을 위시하여, <카렐리아> 모음곡, 교향 모음곡 <레민카이넨>,1) 그리고 이 <포욜라의 딸>이 있다.

<포욜라의 딸>은 <칼레발라> 8장을 바탕으로 쓴 교향시다. 영원한 노인인 라우라야2) 베이네뫼이넨은 집으로 돌아가던 중 무지개 끝에서 천을 짜는 포욜라의 처녀를 발견한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베이네뫼이넨은 그녀에게 청혼하지만, 그녀는 배를 만들어 그 배를 어떤 방법으로도 건드리지 않고 물에 띄우면 청혼을 수락하겠다고 한다. 베이네뫼이넨은 배를 만들기 시작하지만 도끼 때문에 무릎에 큰 상처를 입고, 무릎에서는 피가 폭포처럼 흘러내린다. 그는 출혈을 멎게 할 사람을 찾아 떠난다.

시벨리우스는 특유의 긴 선율들로 이 신화의 장면들을 처리한다. 그는 장면이 나오자마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에 바쁜 말러와 슈트라우스의 음악과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장면을 다룬다. 하나의 음은 다른 음과 합쳐지고, 하나의 화음은 다른 화음과 섞인다.

콜린 데이비스의 연주는 비교적 느릿하면서도 힘을 주었다가 푸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고행에 가까운 연주 활동으로 인해 뼛속까지 다져진 합주력을 자랑하는 런던 심포니는 데이비스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연주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파트는 저현으로, 부드럽거나 화려한 소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북구의 서늘한 느낌을 잘 전달해준다. 불길하게 울리는 파곳 소리와 현악기의 조용한 합주가 어우러지는 코다에서도 긴장감이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다만 전체적으로 해상도가 조금 떨어지고, 하프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것이 아쉽다.

 

1) 레민카이넨은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대도大盜의 이름이다. 이 모음곡에 유명한 <투오넬라의 백조>가 있다.

2)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주술적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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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 Op.64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1981년 12월 31일 질베스터 콘체르트 실황

 

스튜디오 레코딩과 정확히 1년의 차이가 있는, 질베스터(31일) 콘체르트 실황 녹음이다. 스튜디오 녹음과 이 실황 녹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지휘자와 연주자가 같음에도 말이다. 

 카라얀 <알프스 교향곡>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소리의 조탁'을 들 것이다. 더 이상 다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세련되게 다듬어진 현악기, 압도적인 공세를 자랑하는 금관악기의 포효, 차갑고 깨끗한 소리를 들려주는 목관악기, 정확한 음량을 유지하는 타악기를 갖춘 카라얀과 베를린 필은 소리 자체에 대한 원대한 이상을 실현시켰다. 그것은 1980년의 스튜디오 녹음으로 충분히 달성해냈다. 거기서는 어떠한 잡음도 찾아볼 수 없고, 일말의 주저함도 엿볼 수 없다. 구름 한 점 없는 공간에서 시야를 방해하는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우뚝 솟은 마터호른을 조망하는 것 같다. 마치 신이, 그 '순간'을 위해 미리 비로 티끌을 모두 씻어낸 후 구름까지 걷어내 진공과 비슷한 대기를 만들어준 것 같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이 카라얀의 스튜디오 녹음과 실황 녹음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카라얀이 오랜 시간 집중한 브루크너 교향곡 연주에서 이 점은 매우 두드러지는데, 심한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연주인 것 같다. <알프스 교향곡>도 다르지 않다.

 이 연주는 스튜디오 녹음에 비해 금관이 더 톡 쏘는 음향을 들려준다는 점에서 차별화를 두고 있다. 타악기는 팀파니보다는 심벌즈와 탐탐의 소리가 더 두드러진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일년 내내 대기가 불안정한 알프스 산악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 같다. 실제로 알프스의 맑은 날씨를 쉽게 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재미있다. 물론 폭풍우 속의 알프스를 실감나게 묘사하는 미트로폴로스/뉴욕 필(Music&Arts)에 비한다면 훨씬 깔끔하지만 말이다.

 87년 실황 녹음과 비교한다면, 87년 실황은 좀 더 느릿한 대신 강력한 음향을 발산하는 데 비해 이 연주는 오히려 악기간의 밸런스가 87년보다 더 잘 잡혀있다(87년에서 잘 들리지 않는 오르간 소리를 다소 선명하게 잡아준다). 그리고 좀 더 빠르다. 허나 ff이상으로 음량이 올라가면 목관악기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점은 불만이다. 대신 81년 연주는 87년에 비해 모든 면에서 박력이 있다.

 그러나 이 연주가 강경 일변도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류다. 카라얀은 음악의 긴장을 죄였다 풀면서 클라이맥스를 절묘하게 구축하는데, 폭풍우가 그친 후 하산하면서 목가적인 풍경으로 접어드는 호른과 오르간은 모든 긴장이 풀리고 이제 마무리가 남았음을 알려준다.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다.

 무엇보다 이 연주의 가장 큰 장점은 실황 녹음에서 카라얀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 잘 알려준다는 데에 있다. 스튜디오 녹음에서의 카라얀은 순도 높은 소리를 다른 것보다 위에 두기 위해 애를 쓴다. 초 단위로 프레이징을 계산하고, 악기의 배치를 수없이 연구하고, 더 좋은 음향 장비와 기술을 손에 넣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그 결과가 80년의 <파르지팔> 스튜디오 레코딩에서 들을 수 있는, 반향을 깨끗이 지워버리는 음향이다. 진동이라고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그 음향은 도저히 음반 재생 장비에서 흘러나온다고 믿기 어렵다. 카라얀의 가장 놀라운 성과인 이 음향은 동시에 수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고 지금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논란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러나 콘서트 홀에서의 카라얀은 음향을 다른 것들보다 위에 두기 위해 굳이 애쓰지 않는다. 이런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실황 연주에서의 카라얀은 아주 직관적으로 음악을 끌고 나간다. 박진감과 섬세함을 모두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이 곡은 그 두 가지의 통합을 요구한다. 카라얀은 그 일을 아주 잘 해냈다. 이것만으로도 이 연주는 위대한 연주이기에 모자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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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 (A minor)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1977년 8월 27일 잘츠부르크 실황연주

말러의 교향곡 6번은 여러모로 말러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곡으로 남아 있다. 엄격한 절대음악의 형식을 갖추고 있음에도 표제적인 해석이 난무하며,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말러의 고뇌에 가득 찬 만년을 예지한 곡으로 생각하고 있다. 4악장 서주의 옥타브를 뛰어넘는 불협화적인 튜바의 선율도 그런 식의 해석이 이루어지고는 했다. 아니,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한 쪽에 불행과 고뇌의 감정을 통해 나타나는 ‘주관’이 버티고 있다면 다른 한 쪽에는 점점 더 많아지는 증4도와 갈수록 해결이 늦어지는 불협화음들, 그리고 1악장의 반복이라는 엄격한 소나타 형식의 준수로 나타나는 ‘객관’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시종일관 약박에 떨어지는 강세와 복잡하면서도 엄격한 옛 대위법의 사용을 보여주는 스케르초 악장마저도 ‘흉한 꼭두각시의 춤’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이 곡은 말러가 표제에서 밝힌 것처럼 매우 비극적이지만, 비극의 진행은 매우 엄격한 논리와 원칙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지론을 설파하는 곡으로 볼 수도 있다. 주관과 객관이 이토록 복잡하게 뒤얽힌 곡은 말러의 이전 교향곡에서도 이후 교향곡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해석의 폭도 다양하고 넓다. 시종일관 몸부림치는 연주를 들려주는 번스타인과 텐슈테트가 저 쪽에 서 있는가 하면, 찔러도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을 만큼 냉정한 길렌과 불레즈가 다른 한 쪽에 서 있다. 스펙트럼의 넓이만큼 다양한 연주가 존재해 그것을 다 듣고 일일이 평을 내리는 것이 무색할 지경에 이르렀다. 무색무취한 연주부터 선혈로 악구를 도배한 것처럼 섬뜩한 연주까지 모든 연주가 다 나오고 있다.

카라얀은 70년대 중반에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시작으로 일련의 말러 연주를 진행했다. 그가 75년에서 77년에 걸쳐 진행한 교향곡 6번의 스튜디오 레코딩은 여러모로 독특한 연주로 남아 있다. 그는 거기서 주관과 객관 사이의 교묘한 실체, 그림자처럼 모호하지만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허약한 실체를 잡아냈다. 정말 절묘하고 기가 막힌 연주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연주처럼 모두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연주인지에 대한 의문을 남기는 연주였다.

그 스튜디오 녹음을 진행하는 와중에 그는 여러 차례 이 교향곡의 실황 연주를 남겼다. 77년에만 최소 두 종의 실황 연주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77년 8월의 잘츠부르크 실황 연주다. 실황 연주에서 그는 자신이 잡아낸 실체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 같다. 관현악은 쉽게 흥분하지 않지만 그 타격감만은 엄청나다. 이성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거나 이성적인 논리가 개입된 광기는 더욱 무서운 힘을 발휘한다. 카라얀의 말러 6번은 바로 그 관점을 명확히 들려주고 있다. 1악장 F장조의 2주제는 충분히 관능적이지만 별다른 감정은 보여주지 않는다. 음향은 충분히 감정적이지만 곡을 몰고 가는 지휘자의 손끝은 논리적이고 정교하다. 발전부 현악기의 고음 트레몰로와 피치카토는 그 이상 아름다울 수 없지만 다가가서 만질 수는 없는 아름다움이다. 템포는 다소 빠르지만 휙휙 지나가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코다는 일견 지나칠 정도로 즐거워 보이지만 팀파니의 급박한 리듬이 그것을 즐기지 못하게 한다. 1악장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것은 실황 녹음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반복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2악장은 실황 녹음임에도 타악기가 명료하게 들리는 점이 아주 재미있다. 원래 실황 녹음, 특히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대 연주회장의 녹음들은 음향이 아주 날카로워진다는 특징이 있는데, 여기서 타악기는 날카롭지 않으면서도 아주 또렷하게 들린다. 말렛의 사용법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는 지휘자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이어지는 트리오는 일부러 실내악처럼 정교하게 다듬은 것 같다. 소리는 매력적이지만 관능적이지는 않다. 만약 트리오가 말러의 설명처럼 알마와 아이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면, 관능적인 소리가 나오면 오히려 이상한 셈이다. 중요한 것은, 스튜디오 녹음에서 카라얀은 ‘리듬’보다는 ‘음향’에 더 우선권을 주었다면, 이 실황 녹음에서는 ‘음향’보다는 ‘리듬’에 더 우선권을 준다는 사실이다.

3악장은 베를린 필의 현악기가 주인공이다. 굳이 첨언하자면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약간 가라앉아 있다. 그 음향은 내면의 탐구보다는 온화한 조화에 가깝다. 바이올린부터 베이스까지 모든 현이 한 덩어리가 되어 움직인다. 카라얀은 4악장을 ‘완전한 파멸’의 종착으로 본 것 같다. 파멸이나 해체는 그 전의 완벽한 균형과 조화가 있을 때 더욱 대비된다. 카라얀은 3악장을 4악장과 완전히 대비되는 악장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3악장에 아다지오를 놓은 것 같다. 협화음은 불협화음으로 인해 더욱 아름다워지니까. 베를린 필의 현악기군을 듣고 싶으면 어느새 소방울의 존재는 잊어버리게 된다. 소박함을 아름다움이 대체하는 셈이다.

나는 항상 4악장의 C단조 서주를 들으면서 말러가 ‘해체’를 이런 식으로 음악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진다. 조성이 극단적으로 이완되며, 불협화음은 포화상태에 이른다. 간간이 들려오는 협화음은 불협화음을 더 끔찍하게 들리게 만든다. 카라얀은 이 ‘해체’를 슬프게 여기나, 거기에 동요해 울부짖지는 않는다. 튜바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약음기 단 트럼펫의 약주를 끝까지 또렷하게 가져가는 것을 보면 더 그렇게 느껴진다. 주요부가 시작되면 템포는 알레그로 모데라토로 시작해 곧 알레그로 에네르지코로 옮겨지는데, 카라얀은 처음부터 흥분하지 않고 이 지시를 따라간다. 이렇게 하면 긴장감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는데 그는 교활하게 관현악을 컨트롤 해 이 난점을 피해간다. D장조의 2주제는 1악장과는 달리 엔딩과 관련성이 없는데, 여기서 그는 최대한 밝게 연주한다. 곡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안다면 이 부분이 참 특별하게 들린다. 이어서 곡은 첫 번째 해머 타격으로 나아간다. 타악기는 무서운 타격감을 들려주지만 해머의 소리는 아쉽게도 페스티벌 홀의 구조를 반영하듯 퍼져서 잘 들리지 않는다. 이어서 등장하는 채찍(대부분의 연주는 이를 싸리채 비슷한 타악기로 대체한다)은 아주 고압적으로 들린다. 이제 파국을 막을 방법은 없다. 두 번째 타격이 이어지고 투쟁의 형태는 한층 더 참혹해진다. 재현부는 서주를 거의 그대로 가져오면서 2주제와 1주제의 순서까지 바꾸어 연주한다. 이토록 정교하게 이루어지는 파멸이 있었던가? 2주제의 클라이맥스는 이상할 정도로 강렬하며, 그 다음부터는 눈이 핑핑 돌 정도로 현란하게 움직인다. 1주제는 제시부와 마찬가지로 연주하는데, 막바지의 호른의 트릴이 두드러지는 점이 아주 재미있다. 곡은 1악장과 비슷한 희망의 몸짓으로 옮겨가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애당초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곡은 아주 천천히 고통스러운 해체의 과정을 겪는다. 마지막 타격이 떨어지고 곡은 완전한 파멸로 끝을 맺는다. 여기서 무엇 때문인지(실수인 것 같다) 고현이 다른 악기보다 약간 먼저 튀어나온다는 옥의 티가 있다.

여러모로 3악장과 4악장을 중요하게 다루는 녹음이다. 3악장에서는 베를린 필의 현악기군이 가장 두드러지며, 4악장에서는 곡의 진행 방향에 대한 카라얀의 통찰이 돋보인다. 실황 녹음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사소한 결점이나 실수들은 덮어도 좋을 대단한 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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쇤베르크 <정화된 밤> Op.4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1973년 11월 1일 도쿄 NHK홀 실황연주

19세기 말, 세기말을 맞이한 유럽의 문학계는 너나 할 것 없이 상징주의에 파고들었다. 보들레르가 시집 <파리의 우울>을 발표한 이후 말라르메나 발레리 같은 프랑스의 시인들이 상징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었고, 유럽 문학계의 절반 가까이가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벨기에의 모리스 마테를링크나 오스트리아의 리하르트 데멜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징주의자들에게 있어 언어는 통상적인 의미를 거부하고 작가 개인의 의미를 담는 그릇이었다. 일반인들이 쓰는 “안개”와 말라르메가 사용하는 “안개”는 음절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어가 담고 있는 의미는 굴절되거나 혹은 왜곡되며, 실제 의미를 은폐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향은 모든 작가들이 개인적인 문학 언어를 찾아나서는 20세기 문학의 지표를 형성했다.

세기말의 빈에서 음악적 토양을 형성한 쇤베르크도 이들 상징주의자들의 문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내면적이고 사변적인 문학의 안내를 받아 좀 더 불협화적인 세계로 들어갔다. 그는 단계적으로, 하지만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굴절된 화성의 세계로 들어갔으며, 마침내 새로운 행성계에 완전히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도정에 위치한 곡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정화된 밤>이다.

21세기에 이 곡을 듣는 사람은 이 곡이 왜 초연을 오랫동안 거부당했으며, 초연 당시 강한 스캔들을 일으켰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화성은 계속 헤매지만 결국 주화음이라는 지표에 단단히 안착하게 되며, 특히 안개가 걷히고 달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D장조 파트의 관능적인 연가戀歌는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것도 충분히 급진적인 음악 언어였다. 어쩌면 쇤베르크는 스캔들을 타고난 사내였는지도 모른다.

이 곡을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는 표제음악적 해석과 절대음악적 해석이 둘 다 가능하다는 점이다. 쇤베르크는 초연을 치른 후 데멜의 시를 삽입했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 음악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나 말러,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절대음악이라는 평을 내렸다. 그러나 데멜의 시는 이 음악의 흐름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며, 그것만으로도 이 곡은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쇤베르크는 418마디나 되는 큰 규모의 이 곡을 아주 짧은 기간에 썼다. 그는 여러 번 6중주의 작곡이 아주 쉽고 빠르다는 말을 밝혀(그는 1934년 1월 프린스턴에서 강연하는 도중 “현악 6중주의 작곡은 6~7주면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이 곡을 아주 쉽고 빠르게 썼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이 곡을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했는데, 1917년에 편곡하고 1943년에 편곡을 수정했다. 카라얀은 주로 1943년 버전을 사용해 연주를 진행했으며, 따라서 이 연주도 1943년 버전으로 보인다.

곡은 차가운 달밤에 산책하는 두 남녀의 모습을 그리는 D단조의 하행 선율로 시작한다. 불길한 도약음이 여자가 자신의 죄를 고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지휘자는 현을 고르게 가다듬으며 세밀하게 음향을 조정한다. 여성의 납처럼 무거운 마음은 E♭단조로 나타난다. 지휘자는 구조적인 부분을 밝히는 대신 음향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음향은 차갑지만 몽환적이다.

마침내 여자를 용서하는 남성의 다정함이 D장조의 아다지오로 나타난다. 이 부분은 굉장히 독특한데, 스튜디오 녹음과 비교하면 더욱 재미있다. 스튜디오 녹음에서 지휘자는 숲 속을 걷는 두 사람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지만, 여기서는 반대로 음향을 아주 선명하게 가져간다.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내리쬐는 장면이 그대로 만져질 듯하다. 하모닉스와 약음의 사용으로 곡은 서서히 절정으로 치닫는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이중주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마침내 둘은 달빛 아래서 하나가 된다.

카라얀이 현악을 어떻게 다루는지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기록이며(차이코프스키와 드보르작의 현악 세레나데도 있지만), 연주도 아주 훌륭하다. 여러모로 스튜디오 녹음과 다른 점을 보여주어 흥미로우며, 구조적인 뼈대를 제외한 모든 것을 깎아내어 앙상할 정도로 본질에 집착하는 불레즈(Sony)의 녹음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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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 <파르지팔>

호세 반 담 (암포르타스), 쿠르트 몰 (구르네만츠), 페터 호프만 (파르지팔),

고트프리트 호르닉 (클링조르), 둔야 베흐초빅 (쿤드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국립 오페라 합창단, 빈 악우협회 합창단, 잘츠부르크 실내 합창단, 퇼처 소년 합창단

1981년 4월 11일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 실황 녹음

바그너의 마지막 작품은 사람들의 평이 많이 엇갈린다. 일종의 매너리즘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바그너가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서 새로운 음악의 맹아를 찾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일종의 우회로로 여긴다. 바그너의 다른 작품들이 그렇듯 이 작품 또한 하나의 일치된 결론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음악사적인 위치와는 별개로, 이 작품의 소재는 아주 유명하다.

중세인을 매혹시킨 성배의 전설과 아서왕 이야기를 토대로 볼프람 폰에셴바흐가 쓴 서사시 <파르치발>은 총 16권, 24812행의 대작이며, <장미 이야기>와 함께 중세 서사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힌다. 바그너가 이 <파르치발>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은 1845년인데, 그가 작곡에 착수한 시기는 32년 후인 1877년이었다. 작업에 착수하면서 파르치발은 ‘파르지팔’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생각해 둔 구상을 잊지 않고 실행에 옮겼다. 바그너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두 가지였다. 종교적인 관점에 토대를 둔 구원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시간을 초월한 공간의 창출’이 바로 그것이다. 구르네만츠가 순수한 바보인 파르지팔을 잡은 채 ‘이곳에서 시간은 공간으로 변한다’고 말할 때, 두 사람은 시간을 초월한 공간으로의 이동을 마친다. 몬살바트(몬잘바트) 성은 이미 로엔그린의 입을 통해 거론된 적이 있지만, 바그너는 이곳을 ‘구원의 산(Berg des Heils)'으로 여겼다. 분명한 것은 그는 기독교적 구원에 완전히 귀의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소재로 여겼다는 점이다. 만년의 바그너가 기독교에 깊이 빠져들었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그는 아마 기독교의 상징들을 소재로 사용하고 싶었을 것이다. 설정덕후니까

크게 보면 이 거대한 악극은 1막과 3막이 외벽을 이루고, 2막이 내진內陣을 이루는 아치형 구조로 되어 있다. 이것은 몬살바트 성과 클링조르의 마법 정원이라는 장소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 구조에 따라 파르지팔의 성격은 변한다. 아니, 파르지팔의 성격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주위 환경과 그의 행동 패턴이 변한다. 1막에서 파르지팔은 단지 ‘순수한 바보’일 뿐이다. 그러나 2막에서 파르지팔은 ‘순수한 바보’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초월한 통찰력을 갖게 된다. 3막에서 그는 그 순수함을 통해 구원의 도구로서의 사명을 다한다.

카라얀이 순도 높은 소리에 집착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것이 어떤 연주에서 정점을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리에 대한 그의 집착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에 정점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파르지팔> 스튜디오 레코딩이 있다.

이 연주는 81년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 공연으로, 스튜디오 레코딩을 마친 직후다. 가수들은 스튜디오 레코딩과 적지 않게 겹친다. A♭장조로 시작하는 전주곡은 차갑게 정련된 스튜디로 레코딩과는 달리 다소 부산스럽다. 관현악만 본다면 스튜디오 레코딩이 조금 더 우위로 보인다. 특히 그 ‘소리’라는 측면에 한하여.

막이 오르면 구르네만츠가 시종들을 깨운다. 그들은 모두 암포르타스 왕의 상처에 대해 걱정한다. 쿤드리가 나타나 약을 건넨다. 기사와 시종들은 거친 용모를 갖춘 그녀를 경계하고 의심한다. 그런데 쿤드리 역을 맡은 베흐초빅은 참 평범해 보인다. 성녀와 창녀라는 양면성을 갖춘 인물이 아니라 극의 진행을 돕는 퍼즐조각처럼 보인다.

카라얀이 기용한 가수들은 극적이라기보다는 기능적이고 조직적이다. 구르네만츠는 가장 지혜롭지만, 결국 자신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신성한 성배 신전의 수호를 위해 인간성을 어느 정도 포기한 사람들을 대표한다. 쿠르트 몰은 이러한 약점이 있는 영웅적 배역에 잘 어울린다. 위엄 있게 주위 사람들을 타이르지만 극의 진행방향을 바꿀 정도로 거대한 존재는 아니다. 암포르타스 역을 맡은 호세 반 담은 고통에 지치고 비감 있는 목소리를 적절하게 들려주고 있다. 파르지팔을 맡은 페터 호프만은 조금 불만인데, 자신이 나중에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너무 잘 아는 것처럼 들린다.

장면이 바뀌고 <성 금요일의 음악>에 따라 신전의 전경이 나타날 때 관현악은 차갑고 정련된 소리를 들려준다. 하지만 실황 녹음이라 섬세한 구석구석까지 들려주지 못한다는 것이 많이 아쉽다. 전왕 티투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암포르타스는 고통스럽게 자비를 간구한다. 여기서 반 담은 아까 전의 지친 목소리를 떨치고 곧게 뻗어나가는 음성을 들려준다. 위에서 목소리와 함께 성혈이 떨어져 성배에 가득 담긴다. 소년들은 성배와 성혈에 관한 신비, 기독교의 불명료성을 상징하는 가장 큰 신비에 대해 노래한다. 곧 기사들이 이 신성한 노래에 동참한다. <성 금요일의 음악>이 천천히 신전의 주랑을 감싸 안는다. 파르지팔은 암포르타스의 고통을 보고 무언가를 느끼나, 결국 그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다. 구르네만츠는 그런 ‘바보’ 파르지팔을 내쫓는다.

2막의 무대인 클링조르의 성은 거울에 비친 성배의 신전이다. 클링조르는 성을 포기하고 사악한 마법을 손에 넣었다. 클링조르 역을 맡은 호르닉의 목소리는 차갑다. 그는 그 차가운 목소리로 쿤드리를 정교하게 조종한다. 클링조르가 쿤드리를 ‘마녀’라고 부를 때, 목관은 소름끼치는 상승 음계로 옥타브를 뛰어넘는다.

쿤드리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악업 속에서 끊임없이 몸부림쳐야 한다. 그녀의 선의는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는다. 그녀의 악업을 끊어줄 사람은 그녀에게 가장 무관심한 사람이며, 그녀에게 약속된 평온은 곧 죽음이다.

자신에게 달려든 클링조르의 기사들을 모두 무찌른 후, 파르지팔은 꽃의 처녀들에게 둘러싸인다. 역시 미인계는 시대를 불문하고 잘 먹힌다 사막에 피는 꽃밭처럼 거짓되고 덧없는 존재들이 파르지팔에게 사랑을 속삭이며 그를 차지하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파르지팔은 그들이 왜 싸우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쿤드리가 나타나고 처녀들은 물러난다. 쿤드리는 그에게 과거의 기억을 일깨우고, 고통을 이해시키고, 사랑을 줌으로써 그를 순수한 바보 상태에서 깨워 노예로 삼으려 한다. 그러나 쿤드리(또는 클링조르)가 의도한 것과는 정반대로, 파르지팔은 쿤드리의 키스를 받고 비로소 암포르타스의 무서운 고통을 이해하게 된다. 그 고통은 육체적 사랑을 포기한 자들이 공유하는 감정, 즉 구세주의 피흘림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순수한 바보이기에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초월한 통찰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쿤드리는 그 앞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비웃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말한다. 그 때 그녀의 음성은 옥타브를 뛰어넘는다. 그것은 저주의 웃음이다. 그녀는 눈물을 흘려야 할 때마다 웃게 될 것이다. 그 저주받은 악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없이 환생을 거쳐야 한다.

파르지팔은 모두를 이해하기 위해 개인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다. 그는 쿤드리에게 암포르타스에게로 가는 길을 묻는다. 쿤드리는 그를 저주하며 클링조르를 부른다. 클링조르는 성창을 들고 나타나 그에게 그 창을 던진다. 그러나 창은 그의 머리 위에서 멈춰선다. 파르지팔은 성창을 들고 클링조르의 ‘거짓된 호화로움’을 부숴버린다. 정원은 황야로 변하고, 꽃은 시들어 말라비틀어진다. 파르지팔은 쿤드리에게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잘 알 것이라 말한 후 사라진다.

3막이 오르면 무대는 다시 1막과 같은 공간으로 돌아오지만, 많은 시간이 지나가 있다. 시간은 흘러도 공간은 변하지 않는다. 늙은 구르네만츠는 쿤드리를 발견한다. 그녀에게서 이전의 거친 모습은 사라져 있다. 그녀는 무장을 한 기사를 발견한다. 구르네만츠는 성스러운 곳에 무장을 하고 나타난 기사를 질책한다. 그가 무장을 벗는다. 파르지팔이다. 그는 손에 성창을 들고 있다. 구르네만츠와 파르지팔은 서로 감격하여 그 동안의 일을 묻는다. 파르지팔은 자신의 오랜 방황을, 구르네만츠는 성배의 신전에서 벌어진 쇠락과 죽음의 기미를 얘기해준다.

이제 극은 완전히 성경과 흡사하게 흘러간다. 쿤드리는 파르지팔의 발을 씻기고 향유를 바른다. 세례를 통해 완전히 깨끗해진 파르지팔은 쿤드리에게 세례를 내린다. 이제 성 금요일의 음악은 기적을 상징하는 제례 음악으로 화한다. 파르지팔은 성창을 들고 암포르타스 왕에게로 향한다. 왕의 상처가 치유되면서 모든 것이 제 자리를 찾는다. 죄인의 피로 얼룩진 성창은 그 피를 씻고 구세주의 피로 깨끗해진다. 성창과 성배의 근친관계도 이로 인해 제 자리를 찾는다. 파르지팔은 성배로 나아가 성배를 들어올린다. 이로써 구원이 완료된다. 쿤드리는 비로소 악업의 그물을 벗고 죽음을 맞이한다.

카라얀의 <파르지팔> 실황 녹음이라는 데서 참으로 중요한 기록이지만, 그 칼날 같은 세부 묘사가 살아나지 못한다는 점이 참으로 아쉽다. 가수들 중 호세 반 담이나 쿠르트 몰은 뛰어나지만 쿤드리 역을 맡은 베흐초빅은 잘 만들어진 자동인형 같은 느낌이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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