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살로메> Op.54

카를 발터 뵘 (헤로데스), 아그네스 발챠 (헤로디아스), 힐데가르트 베흐렌스 (살로메),

호세 반 담 (요하난), 비에스와프 오흐만 (나라보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77년 7월 26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연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중 첫 걸작이라 할 수 있을 오페라 <살로메>는 당시 금기시되고 있던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을 대본으로 삼았고, 초연의 센세이셔널함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성경의 설화를 옮기면서 다른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던 부분, 즉 살로메의 섹슈얼리티에 주목했다. 성경의 살로메는 얼음처럼 차갑고 감정 없는 기계처럼 행동하지만, 오스카 와일드가 그려낸 살로메는 관능적이고 에로틱한 충동에 몸부림치는, 정신적으로 미성숙하지만 매력적인 괴물이다. 여기서 그는 세례 요한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고, 그 사랑을 얻지 못하자 그의 목을 얻어낸 후, 그것을 보면서 희열에 빠진다. 헤롯왕은 그 모습을 보고 공포에 질려 병사들에게 그녀를 죽이라 명한다. 슈트라우스는 <살로메>의 독일어 번역본을 읽으면서 오페라를 만들기에 부적당한 부분을 쳐냈고, 여백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악상들을 스케치해나갔다. 이성을 마비시키는 일곱 베일의 춤을 추고 난 후 세례 요한의 차가운 입술에 키스할 수 있도록 은쟁반에 그의 머리를 가져오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살로메에게서는 일종의 네크로필리아(시체애호증)적인 성향마저 엿보인다. 그라츠에서 열린 초연에 참석한 인물들은 화려한 진용을 갖추어 이 작곡가가 얼마나 대단한 명성을 가지고 있었는지 말해준다. 히틀러는 나중에 자신이 <살로메> 초연에 참석한 것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힘든, 모호한 말들을 남겼다.

<장미의 기사>를 제외하면, 카라얀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 연주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이 <살로메>의 녹음기록도 EMI에서 진행한 스튜디오 레코딩을 제외한다면 지금 설명할 1977년 잘츠부르크 실황녹음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울였다는 뜻일 텐데(그 덕에 <엘렉트라> 스튜디오 레코딩은 하나도 남기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연주는 이전의 연주들과 어떻게 다를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곡 중 가장 관능적이라 할 수 있는 이 오페라는 미끄러지듯 흐르는 목관의 C#단조로 시작한다. 카라얀은 빈 필의 소리에서 벨벳 천을 연상시키는 관능성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데 주력한다. 빈 필은 예의 자극적인 소리를 자제하고 뱀처럼 요염한 소리를 뽑아낸다. 나라보트의 비에스와프 오흐만은 딱히 두드러진다고 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 항상 살로메를 바라보며 그녀의 요구를 결코 거절하지 못하는 역할 말이다. 병사 역할을 맡은 게르트 나인슈테트와 쿠르트 라이들도 안정감 있는 조역 역할에 충실하다. 중요한 것은 살로메 역을 맡은 힐데가르트 베흐렌스인데, 지금까지 카라얀의 ‘변태적인’ 캐스팅을 생각해 보았을 때 베흐렌스의 살로메는 이 관능적인 역할에 아주 잘 어울린다. 그녀는 유혹하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세례 요한을 바란다. 이에 반해 세례 요한 역의 호세 반 담은 영웅적이고 강인한 목소리를 통해 어떠한 세속적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예언자’ 역할에 충실하려 노력한다. 그러나 반 담의 목소리는, 신성하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세속적이다. 신의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라기보다는 현세의 영웅을 연상시킨다.

세례 요한이 우물에서 나오면 살로메의 동기가 요동친다. 빈 필의 관현악은 요동친다기보다는 능란하게 움직인다. 세례 요한은 참회와 순수를 원하지만, 살로메는 그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매혹된다. 여기서 호세 반 담은 제 역할을 아주 잘 해내는데, 그는 살로메를 굳건하게 뿌리친다. 반 담의 영웅적인 목소리가 여기서 빛을 발한다. 하지만 살로메는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그의 입술을 원한다. 그 모습을 견디다 못한 나라보트는 결국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는다. 요하난도 살로메도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살로메의 시선은 요하난에게, 요하난의 시선은 야훼에게 맞춰져 있다. 요하난은 관능적 유혹을 포기하지 않는 살로메에게 저주를 퍼붓지만, 그의 주위는 이미 살로메의 동기가 완전히 포위하고 있다. 결말은 정해져 있는 것이다.

베이스 클라리넷과 바순의 무거운 저음이 끝나면 오보에가 헤롯왕의 동기를 끌고 온다. 헤롯왕과 헤로디아스가 등장한다. 경박하고 불안한 독재자인 헤롯왕과 고압적인 헤로디아스 역할은 각각 카를 발터 뵘과 아그네스 발차가 맡았는데, 둘 다 극을 지배할 정도로 대단한 역량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각자 역할에 충실한 느낌이다(헤롯왕이 좀 더 변태적이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관현악처럼, 대부분의 가수들도 자기 역할에 충실한 선에 머무르는 것이다.

우물 밑에서 세례 요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원래 성경에서는 세례 요한에 대한 헤로디아스의 증오가 가장 큰 파국의 원인이 되지만, 이 극의 중심은 살로메이며, 파국이 벌어지는 가장 큰 원인도 살로메의 소유욕에 맞춰져 있다. 유대인들의 교리적인 논쟁이 지나간 후(이 부분은 <짜라투스투라> 중 교조적인 느낌의 <학문을 위하여> 푸가 부분을 연상케 한다), 헤롯왕은 나사렛 예수에 대해 말하는 나사렛인들의 말을 듣는다. 이어 헤롯왕은 살로메에게 춤을 출 것을 명한다. 살로메는 묻는다. 자신이 춤을 추면 무슨 소원이든 들어줄 것이냐고. 헤롯왕은 그러마고 맹세한다. 일곱 베일의 춤이 시작된다. 연주 효과는 뛰어나지만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과장이 지나쳐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 <일곱 베일의 춤>은 항상 논쟁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빈 필이 연주하는 <일곱 베일의 춤>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려하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슈트라우스 오페라의 가장 큰 장점인 명석함이 여기서 극에 달한다. 그 명석함이란 조였다 풀기를 반복하면서 클라이맥스에 도달하는 것이다. 곡에 대한 빼어난 통찰이 없다면 불가능한 경지다. 칼 뵘의 강공으로 무장한 일도양단의 직선적인 해석과는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셈이다.

춤이 끝나고 살로메는 헤롯왕의 품에 안겨 말한다. 은쟁반에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담아 가져와 달라고. 그 순간 극히 불안정한 화성이 곡을 칭칭 옭아맨다. 헤롯왕은 어떻게든 실수를 만회하려고 하지만 살로메는 요지부동이다. 여기서 곡을 이끌어나가는 것은 가수들이 아니라 지휘자와 관현악이다. 가수들은 관현악에 기민하게 맞추어 제 역할을 해 나간다.

결국 헤롯왕은 살로메의 요구에 굴복해 세례 요한의 머리를 내준다. 관현악은 그 순간 무려 열두 개의 달하는 반음계를 포함한 패시지와 일곱 음짜리 화성을 동원하며 극한에 달한 감정 상태를 표현한다. 이 음은 해결을 요구하지만, 해결은 아주 늦게 이루어진다. 그 동안 살로메는 세례 요한의 목이 잘리는 것을 지켜본다.

은쟁반에 담긴 세례 요한의 목이 우물에서 올라온다. 살로메는 그 잘린 목을 들고 사랑의 희열에 빠져든다. 정말로 잘린 목을 사람 앞에 디미는 것 같은 연출과 음악이 아니면 이 오페라는 여기서 휘청거리게 되는데, 이 연주는 여기서도 함정을 잘 피해나간다. 헤롯왕은 파국이 눈앞에 있음을 알고 불을 끄게 한다. 무대 위의 모든 빛이 사라진다. 살로메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례 요한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이제 살로메의 동기는 달빛 아래 정점에 달한다. 헤롯왕은 돌아서서 그녀를 죽이라 명한다. 병사들이 방패로 살로메를 짓눌러 죽이면서 극은 막을 내린다.

이 연주의 주인공은 단연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다. 시종일관 극을 지배하며 곡의 퇴폐적이고 다채로운 색감을 정교하게 뽑아낸다. 가수진 중에서는 주연인 베흐렌스와 세례 요한 역을 맡은 호세 반 담이 제일 두드러지며, 나머지 가수들은 자기 역할에 충실한 편이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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