쇤베르크 <정화된 밤> Op.4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1973년 11월 1일 도쿄 NHK홀 실황연주

19세기 말, 세기말을 맞이한 유럽의 문학계는 너나 할 것 없이 상징주의에 파고들었다. 보들레르가 시집 <파리의 우울>을 발표한 이후 말라르메나 발레리 같은 프랑스의 시인들이 상징주의의 깃발을 높이 들었고, 유럽 문학계의 절반 가까이가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벨기에의 모리스 마테를링크나 오스트리아의 리하르트 데멜도 예외가 아니었다.

상징주의자들에게 있어 언어는 통상적인 의미를 거부하고 작가 개인의 의미를 담는 그릇이었다. 일반인들이 쓰는 “안개”와 말라르메가 사용하는 “안개”는 음절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언어가 담고 있는 의미는 굴절되거나 혹은 왜곡되며, 실제 의미를 은폐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향은 모든 작가들이 개인적인 문학 언어를 찾아나서는 20세기 문학의 지표를 형성했다.

세기말의 빈에서 음악적 토양을 형성한 쇤베르크도 이들 상징주의자들의 문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내면적이고 사변적인 문학의 안내를 받아 좀 더 불협화적인 세계로 들어갔다. 그는 단계적으로, 하지만 멈추지 않고 지속적으로 굴절된 화성의 세계로 들어갔으며, 마침내 새로운 행성계에 완전히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도정에 위치한 곡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정화된 밤>이다.

21세기에 이 곡을 듣는 사람은 이 곡이 왜 초연을 오랫동안 거부당했으며, 초연 당시 강한 스캔들을 일으켰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화성은 계속 헤매지만 결국 주화음이라는 지표에 단단히 안착하게 되며, 특히 안개가 걷히고 달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D장조 파트의 관능적인 연가戀歌는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것도 충분히 급진적인 음악 언어였다. 어쩌면 쇤베르크는 스캔들을 타고난 사내였는지도 모른다.

이 곡을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는 표제음악적 해석과 절대음악적 해석이 둘 다 가능하다는 점이다. 쇤베르크는 초연을 치른 후 데멜의 시를 삽입했으며, 일부 학자들은 이 음악이 <트리스탄과 이졸데>나 말러, 슈트라우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절대음악이라는 평을 내렸다. 그러나 데멜의 시는 이 음악의 흐름과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며, 그것만으로도 이 곡은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쇤베르크는 418마디나 되는 큰 규모의 이 곡을 아주 짧은 기간에 썼다. 그는 여러 번 6중주의 작곡이 아주 쉽고 빠르다는 말을 밝혀(그는 1934년 1월 프린스턴에서 강연하는 도중 “현악 6중주의 작곡은 6~7주면 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이 곡을 아주 쉽고 빠르게 썼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는 이 곡을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해 편곡했는데, 1917년에 편곡하고 1943년에 편곡을 수정했다. 카라얀은 주로 1943년 버전을 사용해 연주를 진행했으며, 따라서 이 연주도 1943년 버전으로 보인다.

곡은 차가운 달밤에 산책하는 두 남녀의 모습을 그리는 D단조의 하행 선율로 시작한다. 불길한 도약음이 여자가 자신의 죄를 고해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지휘자는 현을 고르게 가다듬으며 세밀하게 음향을 조정한다. 여성의 납처럼 무거운 마음은 E♭단조로 나타난다. 지휘자는 구조적인 부분을 밝히는 대신 음향으로 승부수를 던진다. 음향은 차갑지만 몽환적이다.

마침내 여자를 용서하는 남성의 다정함이 D장조의 아다지오로 나타난다. 이 부분은 굉장히 독특한데, 스튜디오 녹음과 비교하면 더욱 재미있다. 스튜디오 녹음에서 지휘자는 숲 속을 걷는 두 사람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하지만, 여기서는 반대로 음향을 아주 선명하게 가져간다.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내리쬐는 장면이 그대로 만져질 듯하다. 하모닉스와 약음의 사용으로 곡은 서서히 절정으로 치닫는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이중주가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마침내 둘은 달빛 아래서 하나가 된다.

카라얀이 현악을 어떻게 다루는지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기록이며(차이코프스키와 드보르작의 현악 세레나데도 있지만), 연주도 아주 훌륭하다. 여러모로 스튜디오 녹음과 다른 점을 보여주어 흥미로우며, 구조적인 뼈대를 제외한 모든 것을 깎아내어 앙상할 정도로 본질에 집착하는 불레즈(Sony)의 녹음과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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