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악 4중주 4번 (String Quartet No.4 in C chord, Sz.91)

작곡 시기 : 1928년 7월에서 9월 사이 (추정)

작곡 장소 : 부다페스트

헌정자 : 프로 아르테 4중주단

(“현악4중주곡 제4번은 실제로 바르토크의 가장 위대하고 심오한 업적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이에 가까이 도달해 있다. ……일단 그 비밀이 발견되면, 금세기에 이처럼 의미심장하고 보람된 작품은 드물다.” - 헐시 스티븐스)

(헐시 스티븐스가 버르토크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인정한 현악 4중주곡 4번. 전체적으로 A-B-C-B'-A'와 같은 가교형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두 개의 스케르초 악장이 중간의 느린 악장을 감싸고 있다(5번에서는 반대로 두 개의 느린 악장이 스케르초를 감싸고 있다). 이에 따라 3악장의 중간부가 곡의 중심이 된다. 작곡가의 무르익은 대위법적 기법과 구조적 통합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 그리고 다양한 음악적 소재가 복합적으로 움직이는 명곡이다. 이 곡의 카논 작법은 한두 마디로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한데, 거의 모든 음이 고도로 논리적인 전개에 따라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는 푸가나 푸가토가 하나도 없다. 오직 순수한 대위법적 기교를 동원해 곡을 만들고도 대위법 진행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푸가의 유혹에 전혀 빠지지 않은 셈이다.)

 

1악장 (1.Allegro 4/4)

(첫머리의 동기는 제1바이올린의 주선율에 대하여 제2바이올린이 단 9도로부터 완전 4도로의 사행진행을 하고, 첼로는 대조적으로 6도 음정 연접을 통한 상행진행을 하는 독특한 진행을 취한다. 곡을 통일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7마디에서 등장한다. 주요 동기는 C#에서 E♭으로 상행한 후, C로 다시 하행한다. 동기는 무한한 전위와 음정적 확대 과정을 거치며 곡 전체를 지배한다. 2주제는 민요풍의 바이올린 연주로 제시하고 발전부와 재현부를 거쳐 긴 코다를 맞는다. 종지에서는 마르카토를 사용하여 음 하나하나의 강한 인상을 남긴다.)

 

2악장 (2.Prestissimo, con sordino 6/8)

(2악장과 4악장은 쌍둥이 스케르초(Gemini Scherzo). 같은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반음계적인 2악장은 글리산도로 연주하는 데 반해, 온음계적인 4악장은 바르톡 특유의 피치카토로 연주하다. 둘의 느낌은 너무 이질적이라, 둘이 같은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유추하지 못할 정도다. 같은 얼굴을 한 채 다른 목소리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쌍둥이의 모습이라 해야 할까. 현은 여기서 약음기를 부착하고 연주하며, 개시부의 주악상을 반음계적인 패시지로 반복한다. 2악장과 4악장의 세부를 들여다보면, 2악장이 반음계를 E에서 B까지 상행하는 부분을 4악장은 옥타브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고도로 논리적인 대위법적 과정은 2악장에서도 변함이 없는데, 대위법적 전개에 따라 움직이던 7개음이 G음과 C#음 사이의 지점으로 모두 모여드는 71~72마디의 귀절은 정말 경이롭기 짝이 없다. 카논 작법에서도 작곡가는 훌륭한 재주를 보여주는데, 4대의 악기가 장2도 간격으로 움직이는 카논은 그 귀절이 포함하는 온음계와 증4도로 인해 색다른 느낌을 준다.)

 

3악장 (3.Non troppo lento 4/4)

(전곡을 통틀어 가장 중심에 놓이는 악장으로 앞뒤의 악장이 대칭적으로 놓여있다. 비브라토 없이 연주하는 첼로의 마쟈르 민요적인 전개가 첫머리를 열면 다른 악기들은 배분법에 따라 공통음 없이 화성을 진행한다. 중간부에 ‘새의 노래’가 들어 있는데, 1바이올린의 고음으로 연주한다. 오직 이 중간부만이 다른 악장들과 재료를 공유하지 않고 독자적인 소리를 낸다. 그 뒤 1부가 돌아온다.)

 

4악장 (4.Allegretto pizzicato 3/4)

(악장을 피치카토로 진행한다. 차이코프스키가 피치카토 악장을 만든 선례가 있지만 버르토크의 피치카토는 그가 발전시킨 주법의 확대로 인해 고유의 음악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여기서 현악기들은 다양한 피치카토 주법을 사용하는데, 대표적으로 손톱 피치카토와 스냅 피치카토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중 현을 튕겨 지판에 강하게 부딪히도록 하는 스냅 피치카토는 ‘버르토크 피치카토’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악상은 2악장의 악상을 온음계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5악장 (5.Allegro molto 2/4)

(1악장의 모티브를 대위법적으로 재생산하는 피날레 악장. 강력한 중음주법의 유니즌으로 시작한다. 1악장의 음형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온음계적ㆍ대위법적으로 변형한 음형을 사용하는데, 그 변형의 과정이 복잡해 듣는 것만으로는 음형을 바로 확인하기가 힘들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1악장 주요 동기의 전위형을 더 확대한 형태가 5악장의 주요 동기로 쓰인다. 춤곡 풍의 리듬도 1악장과 5악장의 구조적 연결을 쉽게 눈치채기 힘들게 한다. 이 주요 동기도 계속 확대와 전위 과정을 거친다. 다만 마지막 악장 중간에서 기본 모티브의 원형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 모티브는 악장 마지막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옷을 갈아입으며 점점 더 화려하게 변하던 모티브가 원래 형태로 돌아와 끝을 맺는 방식은 스티븐스가 지적하듯 신데렐라의 모습과 유사하다. 열두 시가 지나고 다시 재투성이 처녀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신데렐라 말이다. 그러나 버르토크의 모티브는 결코 재투성이 처녀처럼 볼품없지 않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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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엘렉트라> (Opera "Elekta", Op.58)

작곡 시기 : 1906년 6월 착수, 1908년 완성

초연 : 1909년 1월 25일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에른스트 폰 슈흐의 지휘로 이루어짐.

출판 : 1908년

악기 편성 : 플루트 3, 피콜로 1, 오보에 2, 잉글리시 호른 1, 헤켈폰 1, 클라리넷 4, E♭ 클라리넷 1, 베이스 클라리넷 1, 바셋 호른 2, 바순 3, 더블바순 1, 호른 4, 바그너 튜바 4, 트럼펫 6, 베이스 트럼펫 1, 트롬본 3, 베이스 트롬본 1, 튜바 1, 팀파니 6~8(주자 2명), 기타 각종 타악기, 제1 바이올린 8, 제2 바이올린 8, 제3 바이올린 8, 제1 비올라 6, 제2 비올라 6, 제3 비올라 6, 제1 첼로 6, 제2 첼로 6, 더블베이스 8, 하프 2(오레스트와의 재회 장면과 피날레에서는 비올라 중 6대가 바이올린 군에 가세)

대본 : 후고 폰 호프만슈탈(독일어)

등장인물 :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메조 소프라노), 왕비의 딸 I 크리소테미스(소프라노), 왕비의 딸 II 엘렉트라(소프라노), 왕비의 동생 오레스테스(바리톤), 왕비의 불륜상대 아이기스토스(테너), 오레스테스의 늙은 하인(베이스), 왕비의 심복 시녀(소프라노), 몸종(소프라노), 젊은 하인(테너), 나이든 하인(베이스), 감시하는 여자(소프라노), 시녀 5명(메조 소프라노 2, 알토, 소프라노 2), 남녀 하인

때와 장소 : 고대 그리스, 미케네 성

 

서설

(이 《엘렉트라》에 대하여 슈트라우스는 오페라라고 적지 않고, 「후고 폰 호프만슈탈에 의한 1막 비극」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러나 현재는 보통 오페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이 협력한 오페라의 사실상 첫 번째 작품이다. 슈트라우스가 유대계의 오스트리아 시인인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sfhal, 1874~1929)과 처음 만난 것은 슈트라우스가 《영웅의 생애》를 지휘하기 위하여 파리에 있던 1900년 3월 초이다. 그 때 만나러 왔던 호프만슈탈은 발레작품으로 슈트라우스와 협력하고 싶다고 얘기를 꺼내며, 11월에는 거의 완성한 발레 대본을 보냈다. 슈트라우스는 이것에 흥미를 나타냈지만, 오페라 《화재》의 작곡에 쫓기고 있는 때이기도 해서 발레에 착수하지 않고, 오페라 쪽에서의 협력을 바랬다. 그런 다음에 이 두 사람 사이에 오페라에 관한 편지 교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무렵 호프만슈탈이 오페라화도 의식하여 쓰기 시작한 대본 중 하나에 그리스 3대 비극시인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소포클레스(Sophocles, B. C. 495~406)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엘렉트라』가 있다.

호프만슈탈은 빈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수학한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문학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대학 시절에 이미 희곡과 시를 차례차례 발표하고 있었다. 그 것도 단순히 독일문학뿐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 문학과 그리스 고전에도 정통하고 있었으며, 무대예술과 음악에도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호프만슈탈의 『엘렉트라』는 1903년 10월 6일 베를린의 소극장에서 연극으로 초연되었다. 그 때에 연출을 담당했던 것이 기예의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 1873~1943)로, 드디어 라인하르트, 호프만슈탈, 슈트라우스라는 3명의 강력한 협력체제가 완성되어, 《장미의 기사》와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서 훌륭한 성과를 올리게 된다.

어쨌든 베를린에서의 《엘렉트라》 초연은 새롭게 슈트라우스의 주목을 끌었다. 그것은 이 연극이 오페라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을 뿐 아니라 슈트라우스 자신도 학생 시절에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의 일부에 음악을 붙인 적도 있고, 『엘렉트라』에는 무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살로메》가 완성된 후인 1906년에 들어와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은 『엘렉트라』의 오페라화를 둘러싸고 면밀한 상담을 나누게 된다. 그것은 1907년 12월 말에 호프만슈탈이 이 일로 베를린의 슈트라우스를 방문하고 나서 한층 더 열기를 띠게 된다. 1908년 6월에 대본의 최종원고가 슈트라우스에게 도착했다. 슈트라우스는 이미 작곡에 착수하고 있었는데, 8월에는 가르미슈에서 전체를 완성하고, 9워 22일에 총보를 완성했다. 초연은 《살로메》 때와 마찬가지로 에른스트 폰 슈흐의 지휘에 의해 1909년 1월 25일에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상연되었다. 이것은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또 그 반면에 슈트라우스풍이 아닌 《엘렉트라》에 접하고 싶다는 소리도 있었다. 당시에도 아직 바그너의 음악을 의문시하거나 부정하거나 하는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호프만슈탈도 바그너를 싫어해서 《엘렉트라》는 바로크풍 또는 모차르트풍의 오페라로 만들자고 거세게 요구한 적이 있다. 이 점에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 간의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 결국 호프만슈탈은 바그너에 기반을 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로 타협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유연한 분위기가 있어 두 사람이 협동한 다음 오페라인 《장미의 기사》는 모차르트적이고, 또한 동시에 바그적이며, 슈트라우스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호프만슈탈은 점점 슈트라우스의 음악에 동조해 간다.

《엘렉트라》의 음악은 불협화음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극적인 박력, 공포 분위기, 복수의 정열을 교묘하게 표현해 간다. 화성적으로는 무조성을 종종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 슈트라우스 특유의 달콤한 감성이 때때로 나타난다. 관현악법도 색채적이며, 극을 진행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합창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슈트라우스는 이 《엘렉트라》를 통해 바그너풍 극을 응축시키는 데 성공하며, 그 다음 새로운 경지로 이동한다.

엘렉트라의 테마는 ‘광기’다. 무대에 오른 어느 누구도 광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 클뤼템네스트라와 어머니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증오하고, 그 둘을 죽이려 하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무력한 신세에 완전히 갇혀 있다. 클뤼템네스트라는 딸 엘렉트라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의심을 감추지 못한다. 세 주연 중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크리소테미스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이지만, 그녀 또한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두서없이 사방을 뛰어다닐 뿐, 극이 진행될수록 짙어지는 광기를 환기시킬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광기는 곡의 배면에 깔린 천둥소리와도 같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걷어낼 수 없다.

슈트라우스가 쓴 모든 곡을 통틀어 최대 편성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오페라는 극단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다. 빛(환희)과 어둠(증오)의 대조가 너무 선명해 때로는 부담스럽다. 관현악 편성은 최대 규모를 자랑하면서도(관악기 개수만 40여개에 달한다) 정작 성악진은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족 구성원(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 어머니의 불륜 상대인 아이기스토스, 딸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 그리고 아들 오레스테스)이 오페라를 지배하다시피 한다. 합창단이 활약하는 부분도 거의 없으며 오레스테스의 양육자와 시녀들을 비롯한 이들은 조연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프로이트의 세례를 받은 이 오페라에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은 ‘가족의 해체’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대가족은 산업사회가 가져온 핵가족에 그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이고 불륜 상대인 아이기스토스와 놀아나는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모습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지만, 이 또한 이혼과 성관념에서 자유로워진 현대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증오하고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엘렉트라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지 않은가? 슈트라우스는 소포클레스의 냉엄한 비극에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학을 도입한 가족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신화는 겉치레일 뿐, 결국 오페라의 중심 소재는 ‘가족의 해체’인 셈이다.)

 

내용 전개

(엘렉트라는 아가멤논 왕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왕이 트로이 지방을 원정하는 중에 아내는 아이기스토스와 불륜관계를 맺는다. 두 사람은 왕이 돌아오자 욕실에서 왕을 죽여 버린다. 엘렉트라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지점에서 극이 시작한다. 4마디의 강렬한 D단조 전주와 함께 막이 오른다. 곧바로 하녀들이 등장해 엘렉트라에 대해 말한다. 처음의 두 하녀는 엘렉트라를 몰래 비난한다. 세 번째 하녀만이 엘렉트라에게 동정적이다. 하녀들이 사라지고 나면, 엘렉트라가 등장해 길고 비통한 모놀로그를 부른다. 엘렉트라는 하루빨리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의 시체 위에서 춤추기를 바라고 있다. 거기에 여동생 크리소테미스가 찾아와 섬뜩한 거동의 엘렉트라를 사람들이 유폐하려는 것을 알려준다. 그 후에 양심의 가책으로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해 피로해진 어머니가 하인과 함께 찾아온다. 엘렉트라는 복수심이 담긴 수수께끼 같은 말을 어머니에게 하며, 동생 오레스테스를 암살하려고 한 것도 비난한다. 그러나 심복 시녀의 귓속말을 듣고 어머니는 급히 서둘러 돌아간다(여기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웃는 연주도 있다). 거기에 크리소테미스가 와서 남동생이 말에 치여 죽었다고 전한다. 엘렉트라는 남동생 대신에 여동생과 협력하여 복수하기로 하지만, 마음 약한 여동생은 도망가 버린다.

극의 음악적 전개는 엘렉트라의 「나는 홀로!(Allein!)」로 시작하는 길고 비통한 모놀로그로 출발하는데,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서 점점 고조되는 박력이 인상적이다. 엘렉트라의 모놀로그는 이어 여동생과의 2중창과 어머니와의 대화, 그리고 엘렉트라의 수수께끼 같은 말로 이어진다. 이 부분은 전체의 1/3을 차지하는 방대한 규모로, 독립적인 파트로도 볼 수 있을 정도다. 교향시 작곡가로 활약한 슈트라우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엘렉트라는 혼자서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궁전에 살며시 들어가는데, 죽은 줄 알았던 오레스테스가 있다. 오레스테스를 양육했던 나이든 하인이 비밀을 지켜 목적을 달성하도록 두 사람에게 주의를 준다. 오레스테스의 죽음을 전한 것은 일종의 계획이었던 셈이다. 두 남자는 궁전에 들어가고, 드디어 안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비명이 들리며, 여자들이 도망쳐 나온다. 엘렉트라는 안으로 들어가 아이기스토스도 죽여버린다. 사람들은 아이기스토스의 죽음을 기뻐하며, 오레스테스를 찬양한다. 광기에 완전히 함몰되어버린 엘렉트라는 피날레를 장식하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춤을 다 춘 그녀는 쓰러져 죽는다. 크리소테미스가 궁전의 문을 두드리면서 오레스테스의 이름을 부르며 극은 끝을 맺는다.

죽은 줄 알았던 남동생과 재회하는 장면은 매우 긴장감이 높으며, 두 사람의 감정적 고조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복수의 장면은 숨 막히는 속도감으로 가득하다.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의 외침은 정말 살려달라는 외마디 비명처럼 사실적이다. 둘이 죽고 나면 사람들은 오레스테스를 찬양하고, 크리소테미스가 달려와 오레스테스가 목적을 이루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엘렉트라는 이미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녀는 무엇인가에 완전히 홀려버렸다. 엘렉트라는 환희에 들떠 춤을 추다가 죽고, 크리소테미스가 궁전의 문으로 달려가 오레스테스를 외쳐 부르는 장면에서는 ‘운명’의 동기와 엘렉트라의 동기가 뒤섞인다. 그리고 팀파니의 둔탁한 타격과 리타르단도로 극적인 감정을 한껏 끌어 모은 상황에서 마지막 화음을 fff로 연주하며 극은 끝난다.)

 

후일담

(슈트라우스는 이 오페라에 대해 아주 중요한 말을 남겼다. 1939/40 시즌, 카라얀은 베를린 국립가극장에서 <엘렉트라> 공연을 마치고 난 다음날 슈트라우스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이 작품으로부터 이미 오랫동안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3개월이나 이 작품에 집중해 왔다. 과연 누구의 해석이 옳은 것인가? 바로 어제 당신이 행한 연주대로 하는 것이 현재의 진실이다.” 그러나 이런 말도 남겼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후 당신의 생각 역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날레에 대한 조언을 덧붙였다.

“피날레는 다시 인간으로서 해방됨을 기뻐하는 디오니소스에의 찬가이므로 사정없이 몰아쳐야 한다.”)

 

참고문헌

음악지우사 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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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 <영상> 1집

음악 2014. 1. 12. 22:26

<영상> 1집 (Imeges, Livre I. L.110)

작곡 시기 : 1904년 착수, 1905년 완성

작곡 장소 : 파리

(작곡가는 1집을 완성한 뒤 출판업자 뒤랑에게 보낸 편지(1905년 9월 11일)에서 “이 곡은 슈만의 왼쪽, 쇼팽의 오른쪽에 자리할 것”이라 주장하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피아노를 위하여>에서 출발해 <판화>를 거치며 발전한 드뷔시의 피아노 음악 양식은 이 <영상>을 통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다. 드뷔시 특유의 미묘한 선율선과 색채에 대한 장인성, 그리고 정확한 뉘앙스에 대한 작곡가의 섬세한 지시사항은 연주가들에게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드뷔시는 프레이징을 과장해 자신의 지시사항을 어기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정해진 규칙 없이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 드뷔시의 음악이 사실은 규칙적이고 논리적인 구조와 액센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드뷔시가 자신의 지시사항을 준수해 줄 것을 당부한 것도 이해가 간다.)

 

1곡 <물에 비친 그림자> (1.Reflets dans l'eau. Andantino molto 4/8)

(중심음 D♭. 드뷔시와 라벨이 ‘물’이라는 주제에 집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연 현상을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변형 — 드뷔시는 이것을 “자연과 상상력간의 대화”라 불렀다 — 시킨 두 작곡가에게 일렁이는 물의 흔들림은 아주 좋은 소재였다. 지나치게 복잡한 현상은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을 방해한다. 단순한 현상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것을 음악화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 현상에 집중한다. 초인적인 인내심 없이는 힘든 일이지만 드뷔시는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비로소 예술성과 장인성이 조화를 이룬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곡은 3도 없는 D♭장조의 5도로 시작한다. 주요 주제(A♭-F-E♭)는 화음 위에서 일렁이는 수면의 음화音化라 할 수 있다. 섬세하고도 대위법적인 짜임새가 불투명한 반음계와 만난다(9-10마디). 투명한 5음음계(D♭-E♭-F-A♭-B♭)가 병행 5도와 마주친다. 20마디에서 24마디에 걸치는 카덴차적 경과구(아르페지오)에서는 불투명함을 피해야 한다. 드뷔시 음악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페달링은 사실 음향을 불투명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양날의 칼이다. 즉 연주자는 적절한 페달링의 사용과 함께 투명하고 맑은 음향을 만들어야 한다. 아르페지오는 온음음계의 속화음 위에서 움직이다가 36마디에서 다시 첫 부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른손의 화음형은 전음음계의 아르페지오형으로 변한다. 49마디부터 물살은 지속적으로 일렁이며, 57마디의 f와 58마디의 ff로 크게 일렁이고 난 후 점차 잦아들며 상행 아르페지오로 갖가지 스펙트럼으로 부서지는 물살을 묘사한다. 72마디부터는 코다. 82마디에서 나타나는 오른손의 주선율 아르페지오형을 들으면 드뷔시가 주선율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 이 선율형은 주제를 제시할 때와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같은 음계라도 주법, 음고, 강세, 음색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을 이 주제만큼 멋지게 제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 일렁임은 거의 멈추고 여백이 점점 늘어난다. 백지 위에 점 하나를 찍는 것만으로도 큰 일렁임보다 더 큰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마지막 병행 3도에 이어 저음의 D♭음과 오른손의 높은 A♭ 옥타브가 물의 마지막 일렁임을 묘사하면서 곡은 끝난다.)

 

2곡 <라모를 찬양하며> (2.Hommage a Rameau. Lent et grave 4/8)

(프랑스의 대작곡가 장 필립 라모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드뷔시. 아주 엄숙하고 진지한 곡이며, <피아노를 위하여> 속 <사라방드>의 문제의식이 발전한 곡이다. 드뷔시는 18세기 사라방드 양식을 사용했지만 라모의 음악은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 진정한 경의는 가장 뛰어난 작품을 써서 바치는 것이지, 경의의 대상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셈이다(후일 드뷔시가 죽었을 때, 오직 라벨, 스트라빈스키, 사티, 그리고 버르토크만이 드뷔시의 생각에 따라 드뷔시를 전혀 인용하지 않은 곡으로 추모의 감정을 전달했다). 첫머리에 쓰인 선법은 G#을 중심음으로 하는 그레고리안 8선법. 이어 프리지아 선법으로 주요 주제가 나타난다. 첫머리의 음계는 7마디에서 히포프리지아 선법으로 다시 나타나며, 4도 아래에서 반복한다. 죽은 사람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데 중세 선법만큼 적절한 것이 어디 있느냐는 슈미츠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곡은 종적인 화성 축뿐 아니라 횡적인 대위법적 축에서도 교묘하게 발전하는데, 10마디에서 첫 마디에 대한 응답이 이루어지고, 변격 선법을 정격 선법으로 바꾸어 사용하기도 한다. 11~13마디를 통과해 다성적 층계로 발전하는 곡은 24마디에서 번쩍이는 광휘를 통해 고인의 영광을 다시 한 번 회상하고, 31마디부터는 조용히 숨을 죽인다. 38마디부터 곡은 중간부로 들어간다. 여기서는 바로크 시대의 서정 비극에서 보이는 초연하고도 신성한 분위기가 드러나야 한다. 이 감정은 43마디에서 51마디에 걸쳐 강해진다. 65마디부터는 코다. 코다의 마지막 부분, 도리안 음계 위에서 하강하는 화음은 관이 아래로 내려지는 느낌을 준다.)

 

3곡 <움직임> (3.Mouvement. Anime 2/4)

(16분음표의 셋잇단음으로 교묘한 반복을 표현한 곡이다. 동시에 8분음표 단위의 분절을 사용해 명료함(8분음표)과 역동성(16분음표)을 둘 다 얻어내고 있다. 음계는 중성적인 C장조를 선택했지만 점차 복조성적인 경향으로 나아간다. 앞의 두 곡과는 반대로, 이 곡의 초반 30마디에서는 페달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 명료함을 추구하는 곡의 특성상 페달은 절약하는 것이 좋다. 첫 30마디 동안은 페달을 매우 절약해야 하며, 30마디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때부터 음향은 기계적인 움직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다. 34마디의 낮은 G음은 중간 페달로 눌러야 한다. 89마디부터 펼쳐지는 중간부에서 중심음은 F#음으로 바뀌는데, 이 음은 첫 파트의 중심음 C와 완벽한 반대축에 놓여 있다. 156마디부터 시작하는 코다에서 곡은 서서히 날아가는 느낌을 주면서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직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코다의 음계는 C음과 F#음이 모두 들어있는 온음음계 C-D-E-F#-G#-A#.)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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