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5번

 

영어 :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독일어 : Symphonie Nr.5 c-moll, Op.67

프랑스어 : Symphonie no 5 en ut mineur, Op.67

이태리어 : Sinfonia n. 5 in do minore, Op.67

 

작곡 시기 : 1804년 착수, 1808년 완성

작곡 장소 : 빈

초연 연도와 장소 : 1808년 12월 22일, 빈의 안 데어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짐. 이 연주회에서는 교향곡 5번과 6번 <전원>뿐 아니라 피아노 협주곡 4번의 초연도 이루어짐.

출판 : 1809년 4월

헌정자 : F. J. 로프코비츠 후작과 안드레이 키릴로비치 라주모프스키 백작

악기 편성 : 피콜로(4악장),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B♭, C) 2, 파곳 2, 콘트라파곳(4악장), 호른(E♭, C) 2, 트럼펫 2, 트롬본 3(알토, 테너, 베이스 / 4악장), 팀파니(C, G), 현악 5부

 

개설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베토벤에 대한 가십거리의 대부분은 만년의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낸 쉰틀러(Anton Felix Schindler. 1795-1864)가 남긴 기록에서 의거한 것인데, 사실 쉰틀러의 기록은 오류와 거짓말이 너무 많아 인용의 가치를 의심받지만 4음 모티브에 대한 베토벤의 유명한 설명, "운명은 문을 이렇게 두드린다."면서 격한 손짓을 했다는 그 설명만큼은 신빙성을 제쳐놓고 교향곡의 특성을 잘 집어낸 말로 대부분 인정하고 있다. 《교향곡 5번》은 일명 《운명 교향곡》이라고도 하며, 독일의 음악 해설서에서도 'Schicksalsymphonie'(운명 교향곡)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음악을 표제음악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거기에는 베토벤이 중기 이후부터 좋아하던 음악적 방향, 즉 '투쟁으로부터 승리'라는 방향을 설정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교향곡 3번을 완성한 직후인 1804년부터 작곡에 착수했으나, 1악장과 2악장을 완성한 1805년 즈음 작곡가는 요제피네 폰 다임 백작 미망인과 사랑에 빠졌다. 열렬한 사랑은 그의 관심사를 좀 더 부드러운 곡들(교향곡 4번 Op.60과 바이올린 협주곡 Op.61)로 돌려놓았다. - 일각에서는 베토벤과 사랑에 빠진 상대가 요제피네의 언니 테레제라고 하지만, 테레제는 편지에서 베토벤과 요제피네의 관계를 적고 있다. - 연애는 1805년과 1806년 내내 이어졌다. 1806년 말부터 요제피네와의 관계가 하강 곡선을 그리자, 베토벤은 강렬한 표현을 요구하는 곡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1806년 가을에 32개의 C단조 변주곡이 우선 완성되고,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에 기초한 극음악 <코리올란>의 작곡이 1807년 초에 마무리된다. 교향곡이 완성된 것은 작곡을 재개한 지 1년여가 지난 1807년 말에서 1808년 초에 이르러서였다.

1805년부터 1808년은 베토벤 창작 중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시기이자 여러 개의 걸작이 나온 시기이다. 또한 그 무렵은 귓병이 악화하여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부자유스러워진다. 그러나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확고해지며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이루게 되고 창작력도 더욱 강렬해지고 있었다. 그때 베토벤은 《교향곡 3번》의 방향으로 더욱 밀고나가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격렬한 긴장감을 지닌 작품을 쓰게 되며, 이 《교향곡 5번》을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교향곡 5번은 아홉 곡의 교향곡 중 가장 건축적이고 긴축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곡은 유례없는 긴장을 보여주며 조금의 틈도 허용치 않는다. 빈의 공원에서 들은 새소리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운명의 동기」는 모든 악장에서 모습을 바꾸어 나타나며 전체를 통일한다. 이처럼 응축되고 필요한 것만을 통합해 놓은 작품은 베토벤도 그때까지 쓴 적이 없다. 그런 이유 때문에 완성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1808년 12월 22일 빈의 안 데어 빈 극장에서 교향곡 6번과 함께 작곡가 자신의 지휘로 초연했는데, 초연 당시에는 C단조가 6번이고 <전원>이 5번이었으나 출판 때 작곡가가 초연과는 반대의 번호를 붙였다. 아마 3번 교향곡인 <영웅>이 강인하고 남성적인 성격인데 반해 4번 교향곡이 부드럽고 여성적인 성향을 띠기 때문에, 이와 짝을 맞추기 위한 의도적인 번호 배치였을 것이다. 규모는 다른 교향곡과 크게 차이나지 않지만, 오케스트레이션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현악기, 목관악기, 트럼펫, 호른, 팀파니 뿐 아니라 피콜로와 트롬본, 콘트라바순을 4악장에 처음으로 추가한다. 특히 피콜로는 베토벤이 교향곡에 처음 편입시킨 것은 아니지만 관현악의 일원으로 안착시켰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스케츠로의 콘트라베이스 사용법도 독특하다.

교향곡 5번은 순음악인 동시에 프로그램 음악이다. 이 곡의 음악적 주인공을 베토벤 자신으로 보는 해석도 가능하며, '고난을 거쳐 승리로'라는 모토와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간결하고 집중력이 높으며 군더더기가 없다는 점에서 이 곡을 순음악적으로 해석하고 연주하는 것도 가능하다. 교향곡 3번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베토벤의 본질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교향곡은 베토벤의 가장 중요한 곡 하나로 꼽을 수 있다.

또한 우리는 C단조라는 조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 조성은 베토벤이 특히 선호하던 조성이다. C단조로 된 베토벤의 작품은 '운명'이나 '비창'과 연관된 성격을 지니며 그 외에도 열정적, 정력적, 투쟁적인 특징을 보인다. 그는 자신의 투쟁적을 성향을 교향곡 5번에 대입했고 그 때문에 C단조라는 조성을 택했다고 추측하는 것도 가능하다.

2차 대전 후 만하임 악파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면서 이 악파와 베토벤과의 연관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특히 만하임 악파의 대표자 요한 슈타미츠(Johann Wenzel Anton Stamiz. 1717~1757)와 베토벤과의 관계는 집중적인 논의를 거친 상태다. 슈타미츠의 Op.4 중 제3곡 C단조 3중주곡과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의 유사성도 한 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베토벤의 스케르초에서 보이는 단편적인 진행이 슈타미츠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운명의 동기」도 슈타미츠의 작품에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음악사에서 돌처럼 흔한 「운명의 동기」를 자신의 연금술을 통해 금으로 바꾸어버린 베토벤의 동기발전 수법을 생각해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연주에 관해서는 수많은 해석이 존재했기 때문에 그것을 여기에 다 싣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발터 리츨러의 말이 설명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지휘자와 연주가들이 이 작품의 생명력을 표현하기보다는, 그 구조를 표현하는 데서 그치고 있다."

사족. <운명>이라는 표제를 떼어놓으면 이 곡을 연상하지 못하는 동양권과는 달리, 유럽에서 이 곡은 그냥 '교향곡 5번'이다. 그들에게 '교향곡 5번'은 하나의 상징이다(움베르토 에코는 <공산당 선언>의 첫 문장 ―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 의 위력이 베토벤의 4음 모티브와 맞먹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화가 있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에서 적국인 독일의 음악은 연주가 금지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유독 교향곡 5번만은 자주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BBC 월드 서비스, 세칭 <라디오 런던>은 1941년 1월부터 승리의 상징인 V자를 모스 부호로 나타낸(• • • ―) 음을 뉴스의 인터벌 시그널(막간 신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4음은 모티브에서 온 것이다. 아마 BBC의 배경음 담당자들은, 4음 모티브의 리듬이 모스 부호로 V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 유명한 주제를 채택했을 것이다.

 

1악장 (1.Allegro con brio 2/4) (c minor)

서주 없이 단도직입적인 4음 모티브의 제시로 시작한다. 다섯 마디에 걸쳐 제시되는 4음 모티브 동기(G-G-G-E♭/F-F-F-D. 제시하는 악기는 클라리넷과 현악기)는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모티브이며, 이 곡을 이해하는 키워드다. 1악장에서는 4음 모티브에서 출발하지 않는 동기가 없다. 2악장에서도 4음 모티브의 리듬이 변형된 채 들어있으며, 3악장 스케르초 주제는 4음 모티브의 변형이다. 심지어 승리를 선포하는 4악장 발전부 말미에서도 4음 모티브는 스케츠로의 모습으로 다시 등장한다.

알프레드 브렌델이 지적한 베토벤의 "건축가" 기질을 보여주는 모티브로 이 만 한 것이 또 있을까? 그는 모티브 하나를 놓고 발전 가능성을 주도면밀하게 탐구했고, 주제의 모든 구성 원리를 탐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형식인 변주곡을 되풀이해 쓰면서 주제의 변형 과정에 대해 연구했다. 그 결과 베토벤은 간결하고 단순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주제를 찾아냈고, 이것은 새롭고 강렬한 음악을 원하는 빈의 청중들에게 잘 먹혀 들어갔다. 4음 모티브의 정말 대단한 점은, 어떤 형태로든 금방 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음악 전문가든 아마추어 관객이든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사항이다.

사실 4음 모티브 자체는 전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런 형태의 모티브는 사실 어느 작곡가의 곡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며, 베토벤 자신도 교향곡을 완성하기 전 <열정> 소나타의 1악장에서 4음 모티브를 사용한 전례가 있다. 그러나 이 곡의 4음 모티브가 유독 강한 인상을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너무 절묘하게 쓰였기 때문이다. 특히 모티브 끝에 붙어 있는 페르마타. 바그너는 이 페르마타를 두고 '배가 표류하지 않도록 붙잡아두는 닻'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곡이 시작되는 순간 포르티시모의 강력한 힘이 몰아닥치지만, 그 힘은 곧 페르마타에 의해 고삐가 잡힌다. 마지막 마디의 레가토는 그 역할을 더욱 크게 만든다. 사실 베토벤의 자필 악보에 의하면, 「운명의 동기」는 처음 단계에는 4마디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앞과 뒤가 대칭 구조를 이루어 단순하게 들릴 염려가 있다. 동기 뒷부분에 레가토를 배치해 길이를 늘인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연주자들에게 4음 모티브의 8분음표 세 개는 아주 까탈스러운 부분이다. 앞에 8분 쉼표 하나가 들어 있기 때문에, 두 번째 8분음표부터 바로 약박으로 넘어가기 때문이다. ff(포르티시모) 8분음표 하나를 연주하자마자 바로 약박을 표현해야 하는 셈이니, 일류 지휘자라도 베토벤의 지시는 까다롭게 느껴질 것이다. 4음 모티브의 템포를 어떻게 지정할 것이냐의 문제도 지휘자들에게 숙제다. 구스타프 말러는 빈에서 이 곡을 러허설 할 때 4음 모티브를 몇 시간 동안 계속 연습하는 바람에 단원들이 폭동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그러자 말러는 이렇게 말했다는 소문이 있다. "오늘밤까지 분노를 억제하세요. 그러면 우리는 올바른 연주를 하게 될 것입니다."

베토벤은 메트로놈 템포를 사용한 최초의 작곡가였지만, 그가 지시한 메트로놈 템포대로 연주를 하면 곡이 어색하게 들릴 여지가 있다. 베토벤은 2분음표=108의 속도로 연주할 것을 지시했지만, 펠리스 바인가르트너(1863-1942)는 2분음표=100의 빠르기를 권했으며, 노먼 델 마는 그보다 느린 2분음표=96의 빠르기를 권했다. 지휘자들의 템포도 그에 맞추어 점점 빨라지는데, 번스타인은 80, 발터는 92를 택해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아바도는 노먼 델 마, 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바인가르트너가 지정한 빠르기대로 연주고 있다. 카라얀은 이례적으로 베토벤의 메트로놈 템포를 사용했다.

모티브의 제시가 끝나면 6마디부터 카논형의 동형진행을 토대로 주제를 전개해나간다. 여기서는 4마디 단위의 못갖춘마디로 이루어지며 19마디의 이태리 6도를 거쳐 22마디에서 금관을 제외한 투티로 다시 한 번 동기를 제시한다. 38마디부터 43마디까지는 불규칙적인 6마디가 자연스럽게 하나의 악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이 악구의 스포르찬도는 2주제 도입구에 나타는 59마디 호른의 포르티시모 독주에 다가가기 위하여 힘을 더하는 수단처럼 보이며 화성 또한 불안정한 상태에서 안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후 59마디에서는 2주제의 도입구(4음 동기 확대)가 호른에 의해 제시되며 곡은 부드러운 2주제로 넘어간다. 3도 진행이 주체인 1주제와는 달리 2도와 4도 진행이 주체이다. 코데타는 94마디부터 시작해 122마디에서 종결하고 반복한다.

125마디부터는 발전부. 발전부의 전조를 간략하게 압축하면 130마디 F단조 → 142마디 C단조 → 150마디 G단조 (1주제 소재 사용) / 180마디~195마디 G단조 → C단조 / 195마디 F단조 → 205 B♭단조 → 211마디 F#단조 → 221마디 G장조로 특히 205마디부터 격심하게 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부분은 2분음표의 새로운 동기가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248마디부터 재현부를 시작하는데, 현악기 위주로 제시하는 제시부 4음 모티브와는 달리, 재현부 4음 모티브는 전관현악의 투티로 제시하기 때문에 훨씬 강력하게 들리며, 그렇게 들려야 한다. 1주제가 반마침하는 268마디에 배치된 오보에의 아다지오 카덴차는 열렬한 운동을 잠시 멈추게 하고, 곡의 호흡을 고르도록 배려한다. 303마디에서 2주제 도입구는 바순이 연주하는데, 소재의 반복성을 회피하고 연주상을 난점을 타개하기 위한 베토벤의 지시사항이다. 재현부의 2주제는 C장조로 연주하지만, C장조로 끝나지 않고 확대, C단조의 코다로 넘어간다.

코다에서는 389마디까지 4마디 단위로 나누다가 389마디에서 모든 악기들을 중지, 1마디 쉬게 한다. 423마디부터는 코다의 2부분으로, 발전부의 2주제가 나타나며 441마디에서 ff에 도달한다. 그 직전 440마디부터는 423마디를 역으로 뒤집는다. 마침내 곡은 마지막 부분에 도달해 지금까지 가지고 온 힘을 477마디에 쏟아붓는다. 이후 502마디까지는 발전부 새로운 악상의 변형과 동기의 화음형을 통해 곡을 끝맺는 부분이다.

 

2악장 (2.Andante con moto 3/8) (A♭ major)

두 개의 주제로 이루어진 변주곡. 변주곡 형식과 소나타 형식이 공존한다. 메트로놈 템포는 Andante보다는 Allegretto에 가깝기 때문에 학자들은 적당한 메트로놈 템포를 8분음표=84 정도로 보고 있으나 이론도 적지 않다.

교향곡 5번은 1악장의 1주제와 2주제만이 대비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역동적이며 주제의 전개와 발전을 극단적으로 실험하는 1악장과 달리, 2악장은 다소 평온하며 주제의 원형을 크게 변형하지 않는다. 1악장과 2악장의 대비를 통해 교향곡은 균형을 맞춘다. 2악장이 1악장 못지않게 주제의 발전 가능성이 풍부하고 변화가 심했다면 관객들은 피곤해 할 가능성이 높다. 2악장의 단순성으로 인해 1악장의 치밀한 전개가 더욱 돋보일 수 있었다. 이것은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주제는 비올라와 첼로의 유니즌에 베이스의 피치카토가 더해진다. 14마디부터 셋잇단음표 지시가 나타난다. 22마디부터 나타나는 2주제는 클라리넷, 바순, 바이올린에 비올라와 베이스의 셋잇단음 아르페지오가 더해져 있고, 포르티시모 투티가 있은 후 관악기에 의해 힘차게 셋잇단음 주제가 제시된다. 주부를 포함한 각 부분에서 A♭장조의 조성은 C장조로 이동하는데, 밝은 C장조에서 무엇인가가 등장할 것 같지만 곧 흐트러지며 7화음과 반음계적 진행을 거쳐 원래의 조성으로 되돌아간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지나치게 성급한 태도로 희망(또는 최종적인 결론)에 도달하지 않겠다는 것일까? 아니면 결정적인 순간을 앞두고 흩어지는 희망을 의미할까? 2악장의 초안과 현재의 형태를 비교해서 보면, 초안에서는 A♭장조의 두 번째 선율은 c단조의 종지로 반복하는 미뉴엣풍의 '트리오'였으며, 트리오의 두 번째 부분은 지금은 C장조로 제시하려던 것을 A♭장조로 끝내고, 반복하도록 만들어졌다. 만약 이렇게 악장을 완성했다면, 곡은 정말 단순하고 재미없었을 것이다.

각설하고, 크게 3개로 나눌 수 있는 변주부는 1주제 위주로 이루어지는데, 1주제의 리듬은 세분화되기도 하고, 단조로도 나타나기도 하지만 어디서나 크게 힘들이지 않고 주제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 템포도 205마디에서 218마디까지만 Piu moto로 변하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원래의 템포를 유지한다. 변주부 구성을 간단하게 도해해 보면 제1주제 변주, 제2주제 변주, 다시 제1주제의 변주를 연주하며,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경과부 후에 제1주제의 변주 2회, 마지막으로 코다가 나타난다. 1변주부에서 주제는 16분음표의 균일한 리듬으로 나타나며, 2변주부에서는 32분음표로 더욱 세분한다. 현악기가 이 32분음표를 연주한다. 147마디부터는 1주제는 A♭단조로 제시한다. 185마디에서 시작하는 3변주부는 원래의 리듬을 찾지만 저음의 트레몰로 및 레가토와 얽혀 리듬이 복잡해진다. 1변주까지는 나름대로 주제부의 원형을 지키려고 하지만 점점 주제부의 원형이 모습을 바꾸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Piu moto 부분을 거쳐 코다로 진입하며, 여기서는 연속하는 크레셴도가 이어진 후 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곡을 마친다. 1악장과 같은 격렬함은 없으며, 커다란 위안을 주는 느낌이나 어두운 부분이 없지 않다.

 

3악장 (3.Allegro 3/4) (c minor)

3악장의 작곡 과정과 반복에 관한 논쟁은 매우 흥미롭지만 워낙 길게 때문에 다른 포스팅으로 옮겨놓았다.

(스케르초의 작곡 과정과 반복 문제 포스팅 참조)

첼로와 베이스가 피아니시모로 제시하는 첫 동기는 4음 모티브의 변형이다. 로켓 주제이며, 노테봄의 지적대로 모차르트 교향곡 40번 KV.550의 피날레 악장 주제와 무척 닮았다. 음정 간격이나 증4도(F#)가 끼어있는 것까지 똑같아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이어 4음 모티브의 리듬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스케르초 주제가 호른에 의해 묵직하게 울려퍼진다. 첫 동기와 스케르초 주제는 계속 교차하면서 나타나다가 결국 133마디에서 마지막으로 ff로 울린 후 p로 흩어진다. 

C장조의 트리오는 푸가토 형식으로, 베이스에서부터 시작해 현으로, 전체 관현악으로 퍼져 나간다. 베를리오즈는 베이스가 두드러지는 이 트리오를 "코끼리의 춤"이라 불렀다. 트리오 주제는 동형진행으로 펼쳐지고, 주제가 분해되기도 하는데, 기존 판본에서는 유일하게 트리오 첫 부분에만 반복 지시가 있다. 트리오에서 스케르초로 다시 복귀하는 부분을 보면, 트리오의 마지막 음이 멎은 후 찾아오는 공허함을 스케르초가 작지만 음산한 목소리로 다시 채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케르초가 돌아오고 나면 시종 약주로 진행하다가, 관현악법에 큰 변화가 생기면서 악상은 무섭게 꿈틀거린다. 스케르초 밑에서 팀파니가 4음 모티브의 리듬을 새기며 힘을 축적하고, 증대된 힘이 폭발할 즈음 아타카로 쉬지 않고 피날레 악장으로 넘어간다.

스케르초에서 피날레로의 '중단 없는 전진'은 전곡을 통틀어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스케르초가 스케르초만으로는 온전하지 못하듯이, 피날레 악장 또한 앞의 스케르초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그 의미가 반감되고 만다. 의심으로부터 확신으로, 고난을 거쳐 승리로. 베토벤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악구가 바로 3악장과 4악장이 연결되는 부분, C단조에서 C장조로 전환하는 부분이다. 거대한 힘이 몰려드는 이 악절은 주요 리듬의 반복을 통해 더욱 강화되고, 이음새가 매우 자연스럽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4악장으로 넘어갈 수 있다.

 

4악장 (4.Allegro 4/4) (C major)

베커가 지적한 대로, 곡은 '투쟁'의 1악장, '희망'의 2악장', '의심'의 3악장을 거쳐 '승리'의 4악장으로 나아간다. C단조에서 C장조로의 전환은 하이든이 <천지창조>에서 태초 이전의 혼돈(Chaos)에서 빛(Lux)으로의 이행을 표현하기 위해 쓴 적이 있는데, 베토벤은 이것을 웅장하게 확대했다. 트럼펫의 힘찬 C장조 화음을 포함한 오케스트라의 등장은 승리의 기쁨을 체현한다. 오케스트레이션 측면에서는 피콜로, 콘트라파곳, 트롬본 3대가 추가되어 1~3악장의 음향과 크게 차이가 난다. 이 모든 것들이 피날레 악장은 1악장의 긴축성과는 대조적인, 폭발적 발산을 나타내 준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셈이다. 1주제 첫 머리는 으뜸화음(I)을 음으로 풀어 제시하며, 시종일관 당당한 모습이다. 레가토가 붙은 경과부에서 조성은 C장조에서 G장조로 바뀌고, 그대로 2주제로 넘어간다. 바이올린이 춤추듯 쾌활하게 연주하며, 셋잇단음의 상승과 화음 위주의 진행을 보여준다. 코데타는 2/2박자로 바뀌고,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이 새로운 동기를 연주한다. 제시부의 반복은 필연적인 것이지만, 지휘자는 반복 시 처음 등장하는 강한 트럼펫을 신중하게 연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3악장에서 4악장으로 넘어가는 첫 제시에 비해, 반복은 조금 뜬금없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발전부로 넘어가면 2주제에 의한 자유로운 전개를 펼치다가 153마디부터 스케츠로의 재현을 선보인다(당연히 박자도 3/4박자로 바뀐다). 환영처럼 다시 등장하는 스케츠로 주제는 집요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곡은 다시 힘을 모아 재현부로 돌아오며, 코다는 제시부 코데타 동기로 시작한다. 여기서 트롬본은 수십 마디 동안 나타나지 않다가 다시 등장하는데, 베토벤이 비록 트롬본을 추가 편성했지만 사용에 있어서는 신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53마디에서 sempre piu Allegro로 가속이 붙기 시작하며 362마디에서는 Presto 템포(온음표=112. 박자는 2/2)로 폭주한다. 코다는 앞에서 제시했던 동기들을 마지막으로 확립하며 마친다. 마지막 화음에 리타르단도를 넣던 옛 관례가 있었는데, 70년대 이전 연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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