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비드 브라운의 글을 참고함.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폐쇄공포증에 걸린 사람의 정신상태와 비슷한 상황을 유도한다. 실제로 소비에트의 정치적 현실도 인민들에게 폐쇄공포를 불러일으킬 만한 상황을 제공하고 그런 현실을 구축했으니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필연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제한된 진보성, 제한된 불협화음, 숨어있는 장치들이 얽혀 있는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은 마치 암호문과도 같다. 한 사람의 비밀을 감추는 장소로는 그 틀이 너무나 컸기 때문에 쇼스타코비치는 거기에 많은 것들을 감추는 동시에 드러낸다. 비명소리, 신음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국가권력이 개인을 짓누르던 시기에 문 두드리는 소리는 처형장이나 굴라그로 자신을 끌고 갈 전주곡이었다), 학살을 의미하는 총격, 간간이 나타나는 ‘소수자’들의 목소리(13번과 14번 교향곡은 분명 ‘소수’의 목소리를 교향악 장르에 끌어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리고 집요할 정도로 반복되는 군홧발 소리. 이 군홧발 소리는 쇼스타코비치의 개인 서명 모티브인 ‘DSCH' 못지않게 곳곳에서 집요할 정도의 반복으로 청자들을 세뇌시키기 직전까지 가며, 쇼스타코비치의 다른 모티브들도 그 군홧발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처럼 집요한 반복으로 가득하다. 그 반복이 때로는 중요한 것들을 가려버리기도 한다.

4번 교향곡은 오페라 <맥베스 부인> 사건으로 정치적 생명과 함께 육체적 생명이 끝날 위기에 처해 있던 시절에 완성한 곡이다(작곡은 1934년부터 진행하고 있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이 곡의 초연을 오래도록 미루었다가 1961년에야 세상이 이 곡을 듣게 했다.

1악장에서 악상은 무엇인가 그럴듯한 형태를 갖추기도 전에, 주제의 전개를 충분히 만족할 만한 수준에 끌어올리기도 전에, 폭발한다. 그 폭발은 곡을 이끌고 나갈 추동력인 동시에, 이 추동력이 사라지면 곡은 모든 융합을 끝낸 항성처럼 차갑게 죽어갈 것이라는 선언인 셈이다. 폭발이 더 큰 폭발을 이끌어내고, 폭발 사이에서 발작적인 현악 패시지가 나타난다. 얄궂게도 이 패시지는 에스프레시보 지시를 달고 있다. 1악장이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청중들은 감정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현악 푸가토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걸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와중에도 쇼스타코비치의 작곡 상황은 큰 변화가 없지만, 그가 받은 거대한 압력은 내면에 응어리로 남아 있다가 본인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밖으로 불거져 나오는 것 같다. 푸가토의 폭발을 끝으로 곡은 불균형적이고 짤막한 코다로 끝을 맺는다. 공허한 바순의 울림 - 차이코프스키 <비창> 이래로 하나의 전통이 되어버린 - 은 무엇을 암시하고자 하는 것일까.

2악장은 1악장과 3악장을 잇는 불안한 간주곡, 즉 부교浮橋다. 세 개의 악장이 모두 불균형적이고 어딘가 맞지 않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작곡가가 지탱할 수 있는 기반이 불안정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2악장의 코다는 계속 무엇인가 말을 하려 하지만 목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들리는 것은 알듯 모를듯 속삭이듯 들려오는 작은 목소리들뿐이다.

음울한 라르고에 이어 알레그로에서 곡은 다시 폭발한다. 가차 없는 동기들의 전진이 이어지면서 계속 곡을 극한으로 몰고 가기 직전, 갑작스럽게 부드러운 춤곡이 그 전진을 잘라버린다. 악장은 이제 다채로운 콜라주로 채워진다. 한 가지 색상이 지배하던 곡에 온갖 음악이 끼어든다. 그러나 그 음악들은 하나같이 불안해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다가온다. 팀파니의 강주를 앞세운 금관악기 코랄은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을 압살해버린다. 이 금관악기 코랄은 주조성인 C단조에 도달할 때까지 오로지 파괴를 위한 파괴를 반복한다. 이 코랄이 지나가고 나면 어떤 모티브도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없다. 토막 난 사지가 잘려나간 후에도 잠시나마 꿈틀거리는 것처럼, 코랄이 끝난 후의 남은 부분들은 발작적으로 꿈틀대다가 곧 움직임을 멈춘다. 마지막에 향긋한 첼레스타의 음향이 들려오지만, 이 교향곡의 마지막 부분을 생각하면 참으로 역설적인 조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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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10.13 카네기 홀 실황 : 프라이스, 반 담, 베를린 필, 빈 징페라인

83.8.15 잘츠부르크 실황 : 헨드릭스, 반 담, 빈 필, 징페라인

연주에 대한 압도적인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 연주에 대한 평을 쓴다는 것은, 건망 속에서 세세한 기억을 복구해야만 한다는 의무감과 연주에서 잘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미화하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연주도 나에게 그러한 고민을 던져주었기에, 연주에 대해 쉽게 풀어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다.

카라얀은 브람스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이자 브람스라는 작곡가의 테두리를 여러 번 벗어나는 이 미증유의 걸작에 지속적인 애정을 보였고, 여러 차례의 연주를 남겼다. 도무지 타협을 모르는 클렘페러의 연주가 전통적인 해석으로 버티고 서 있는 상황에서, 카라얀의 연주들은 지속적으로 이 곡에 새로운 지평을 부여했고 이 곡의 거대한 해석 세계 한 축에 서 있다. 지금 소개할 두 실황은 카라얀의 그러한 여러 연주들 중 단연 으뜸이라 할 만하다.

카라얀의 독일 레퀴엠 연주를 설명한다면 어떤 말이 가장 잘 어울릴까? 고도로 정제되면서도 농밀한 현악기, 통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관악기군, 위엄과 박력을 동시에 갖춘 해석, 조화를 추구하는 성악진. 한 마디로 ‘압도적’이라 할 연주다. 그러나 단지 ‘압도적’인 해석만으로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이 가능할까? 슬픔, 절망, 참회, 찬송, 위로, 심판, 그리고 안식이 교묘하게 뒤섞여 있는 이 곡은 단지 그것만으로는 풀어나가기 벅찰 정도로 너무 크다. 그렇다면 카라얀이 곡의 본질을 정확히 낚아채는 연주는 역시 고도로 통제된 스튜디오 레코딩보다는 연주자의 본질이 잘 묻어나오는 실황 녹음에서 더 잘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카라얀의 관현악은 카네기 실황과 잘츠부르크 실황 둘 다 매우 뛰어나지만, 역시 카네기 실황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카네기 실황에서의 카라얀은 악구를 통제하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는 작곡가가 음표를 적어 내려가며 느꼈을 감동과 눈물을 그대로 발산하고자 한다. 그 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6악장에서 바리톤 독창이 끝나고 ‘최후의 나팔 소리’에 따라 관현악이 투티로 몰아치는 부분, 마치 그리스도의 죽음에 애통하듯 예루살렘 성전 장막이 둘로 찢어진 것과 비견할 수 있을 만한 그 거대한 충격파 부분을 꼽을 수 있겠다. 그 부분은 정말로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이 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찻잔 속의 태풍 같은 연주들에서 무슨 ‘세상이 뒤집어지는’ 느낌을 받는단 말인가?

1악장과 7악장 말미의 하프 독주도 카네기 실황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만드는 부분이다. 1악장과 7악장을 하나로 묶어주는 하프의 독주는 잘츠부르크 실황보다는 카네기 실황에서 좀 더 두드러지게 들린다.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하프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카네기 실황에 더 높은 점수를 주게 만든다.

다만 카네기 실황은 개인이 몰래 녹음한 탓인지 음향 상태가 별로 좋지 않고, 뒤의 악장으로 갈수록 그런 문제는 더욱 심해진다. 세세한 디테일을 찾고 싶다면 역시 잘츠부르크 실황 쪽이 더 좋을 것이다. 4악장과 7악장의 섬세한 코랄에서 그 장점이 매우 두드러진다.

바리톤은 76년의 연주와 83년의 연주 모두 호세 반 담이 맡았는데, 그는 심판의 날에 대해 설교하는 느낌의 피셔-디스카우와 대척점을 이룬다. 반 담의 목소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회하는 것 같은 통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3악장은 그런 반 담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부분이다. 6악장의 바리톤 독주에서도 피셔-디스카우가 담담하게 정경의 구절들을 읽어 내려가는 느낌이라면, 반 담은 정말로 브람스가 배치한 급진적인 전조처럼 무언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절망 속에서 구원을 찾아 헤매는 선지자의 느낌이 강하다.

소프라노는 헨드릭스보다는 프라이스 쪽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83년의 헨드릭스는 너무 교태 떠는 것 같은 목소리라 5악장에서 의도한 거대한 위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움이 아니라 가식적인 사촌 누나의 목소리에 가깝다. 담담한 프라이스의 노성은 5악장이 참으로 독특하다는 사실을 잘 알려준다.

문제 많은 빈 징페라인이지만, 적어도 <독일 레퀴엠>에서만큼은 카라얀의 해석에 문제없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들을 수 있다. 물론 합창단은 76년보다는 83년이 더 세세한 모습을 관찰하는 것이 가능하며, 그래서 징페라인은 83년의 연주가 더 좋아 보인다.

결론 : 압도적인 카네기 실황. 그러나 잘츠부르크 실황도 좋은 보충재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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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기를 위한 교향곡 (Symphonies pour instrements a vent)

작곡 시기 : 1920년 11월 30일 완성. 1947년에 출판하면서 개작.

출판 : 처음에는 「르뷔 뮤지칼」지 소재의 코랄 부분만의 피아노 편곡판. [루리에에 의한 전곡의 피아노 편곡판] 1926년. [1947년 개정의 총보] 1952년, 부시 & 호크사. 원곡의 악보는 미출판.

악기 편성 : 플루트 3(3플루트는 피콜로 겸), 알토 플루트, 오보에 2, 잉글리시 호른, 클라리넷(B♭) 2, 알토 클라리넷(F), 파곳 3(3파곳은 콘트라파곳 겸), 호른(F) 4, 트럼펫(B♭) 3, 트롬본 3, 튜바. 총 연주자 24명

1947년 버전은 연주자가 한 명 줄고 편성이 약간 바뀌었다. 플루트가 피콜로를 겸하지 않고 알토 플루트가 없어졌으며, 클라리넷이 3대로 늘고 알토 클라리넷이 없어졌다.

(프랑스의 음악잡지 르뷔 뮤지칼이 드뷔시 추도 특별호를 개재하면서 10인의 작곡가를 선별, 드뷔시의 추도음악을 싣게 했을 때, 스트라빈스키는 코랄을 실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이 중 7번째 코랄을 발전시켜 이 교향곡을 만들었다. 결국 굳이 이 교향곡의 헌정자를 찾자면 이 곡의 원형인 코랄을 헌정 받은 고故 클로드 드뷔시가 되는 셈이다. 클라리넷이 리듬과 악센트의 지표를 담당하며, 소리가 매우 두드러진다. 스트라빈스키의 특징인 차가움과 객관적인 성향을 모두 갖추고 있으나, 툭툭 튀어나오는 거친 소재들은 리듬에 대한 작곡가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도록 돕는다. 작곡가는 이 교향곡을 ‘동종의 악기들의 서로 다른 모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짧은 연도(Litaniae)로 풀어 가는 엄숙한 의식’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한 편 음악학자 막스 해리슨은 “3개의 서로 다른 에피소드들의 대비”라는 문장으로 이 곡을 설명하고 있다. 두 개의 파트로 나뉜 악기군은 같은 악기라도 다른 위치와 다른 악기 사이에 놓였을 때, 그리고 다른 패시지를 연주할 때 전혀 이질적인 음향을 들려주고 있다. 제목은 교향곡이지만 1부와 2부로 나눠 볼 수 있는 이 악곡은 전통적인 교향곡의 구성과 닮은 점이 전혀 없다. 1921년 6월 10일, 세르게이 쿠세비츠키의 지휘로 런던 퀸즈 홀에서 초연했다.)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을 작곡하기 전해인 1919년에 스트라빈스키는 디아길레프의 권유로 페르골레지(1710~1736) 외의 악보에 의한 발레음악 《풀치넬라》를 작곡했다. 이 곡에서 들을 수 있는 남국적인 정취, 투명함과 단정함은 그 때까지의 스트라빈스키 작풍과 선을 그었고, 나아가서는 후의 《관악 8중주곡》(1923)에서 선언하게 되는 <신고전주의>를 예고하는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스트라빈스키뿐만 아니라, 양식의 변천 및 수립은 단번에 또한 직선적으로 이행ㆍ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 곡은 과도기에 위치하면서도 그 민족적 분위기, 율동과 음향운동의 격렬함에서 오히려 《봄의 제전》과 《결혼》의 계보에 속하는 작품이다. 현악기를 생략한 편성은 순조로움과 표정의 풍부함을 배제하며, 때로는 메마르고 거칠며 장중하다.

단일악장 전체는 2부로 크게 나눌 수 있고, 전반에서는 선율 소재의, 후반에서는 동적 및 정적 음향소재의 각각의 교체, 대조가 구성요인을 이룬다. 서로 소재 사이에는 음정, 화성, 율동의 여러 요소에 동일 또는 근친성을 지니게 하여 전곡을 통일하고 있다.

1부(연습번호 (42)의 앞까지)의 구성을 도식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도입부 (연습번호 (6)까지)

주부 A ((6)~(8))

주부 B ((8))

삽입부 : Ep. Ia((9)~(11)) - Ep. Ib((11)~(15))

주부 C ((15)~(26))

Ep. II ((26)~(29))

주부 C ((29)~(37)) (재현)

Ep. III ((37))

주부 B ((38)~(39)) (재현)

Ep. IV ((39)~(40))

주부 A ((40)) (재현)

Ep. V=d' ((41))

1부(도입부 및 각 에피소드의 주체를 이루는 소재는, 조는 일정하지 않지만 모든 것에 균등하게 마디마다 교체하는 박자의 변화와 주선율을 담당하는 클라리넷의 날카로운 음색을 특징으로 한다(밑의 악보).

도입부에서는 위의 악보에 이어 바로 밑의 악보를 투티로 연주한다.

이것은 그 코랄 양식과 화성 및 동기 X에 의해 끝의 코랄과의 관련성을 얻는다.

서두 악구의 반복에 이어 나타나는 1/2음가의 짧은 소악구(밑의 악보)는 코랄과 함께 2부를 지배하는 악구의 요약이다. 이같이 II부의 두 주요 소재는 미리 도입부에서 나타난다.

다시 투티 악보를 반복한 후, 밑의 악보가 도입부를 닫지만, 이 프레이즈는 접미 또는 접두구로서 이후 가끔씩 쓰인다.

주부 A(바로 밑의 악보) 및 B(그 밑의 악보)는 모두 목관악기로 계속해서 연주하고, 주제의 성격은 《불새》 이후 스트라빈스키가 지속적으로 인용한 러시아 민요를 연상케 한다.

 

A는 핵을 이루는 장2도 음정에 의해 후반부의 두 소재와 또 연관된다. 에피소드 Ia는 도입 악보와 동기 X로 이루어지고, Ib에서는 약간 움직임을 지닌 셋잇단음 동기가 이 부분의 특징을 이루며 전개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도 동기 X는 저성부에서 들린다.

주부 C의 선율도 다시 민요적 성격을 갖추고 목관으로 연주하지만, 표기법은 다성적인 경향이 농후하며 후반에서는 역시 2도가 핵을 이루는 상황에서 동기가 대위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선율 소재는 A-B-C 순으로 점차 도약 횟수를 늘린다. 도입부를 닫는 악구를 접두 및 접미 악구로 하는 에피소드 II는 역시 도입 악구와 동기 X로부터 형성한 것이며, 여기까지가 제시부에 해당한다.

아래의 재현이 에피소드를 끼워 제시와는 반대 순서, 즉 C-B-A의 순서로 이루어진 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이것은 면대칭을 이루는 활 모양 형식의 일종이다. 2부의 구성은 다음 도식에 따른다.

e((42)) - d' - d((44)) - d' ((45))

주부 D((46)~(56))

e((56)) - d' ((57))

주부 D ((58)~(64)) (재현)

d' ((64))

주부 E ((65)) 이하

d', d 및 e는 2부의 주부를 이루는 동적 악구 D, 코랄 E의 각각에서 파생한 악구로 예고 또는 간주의 역할을 맡는다.

1부에서의 에피소드와의 차이는 주부와의 근친성이 짙다는 점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1부의 선율의 우위에 대하여, 여기에서는 음향체가 구조를 주도한다. 그러나 2가지 소재 D와 E는 음정 Y에 의해 느슨하게 맺어졌다고 하지만, 전자의 격렬한 율동적 움직임과 후자의 숙연한 화음형의 정지성은 현저하게 대조를 이룬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거칠고 불협화적인 울림과 파행적 악센트의 강한 타격은 마치 《봄의 제전》 중 마지막 곡인 <신성한 춤, 선택된 처녀>를 듣는 느낌마저 든다.

한바탕 타격이 끝나면 드디어 단편적인 형태로만 계속 나타나던 코랄이 제 모습을 갖추고 등장한다. 이 코랄은 애도의 감정을 상징하는 것이며, 정교한 리듬으로 짜여진 첫 부분, 중간부 러시아 민요의 토속성, <봄의 제전>풍의 거친 후반부 분위기를 오고가던 이 기악곡 저변에서 계속 흐르고 있던 것이다.

조용함은 격렬함을 제압하고, 애도의 비장한 음악은 고요한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코랄은 마디의 구분에 관하여 원곡과 약간의 차이가 있으며, 템포도 바뀌고 있다. 또한 이것은 앞서 적은 화이트가 지적하고 있는 것인데, 《관악기를 위한 교향곡》에는 3종류의 템포 지정이 있고, 그것들은 ♩=72, ♩=108, ♩=144와 같이 원래 템포와 1.5배, 2배 관계에 있으며, 각 소재는 항상 셋 중 하나의 템포를 지니고 있다.

 

참고 문헌

음악지우사 간 <스트라빈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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