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엘렉트라> (Opera "Elekta", Op.58)

작곡 시기 : 1906년 6월 착수, 1908년 완성

초연 : 1909년 1월 25일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에른스트 폰 슈흐의 지휘로 이루어짐.

출판 : 1908년

악기 편성 : 플루트 3, 피콜로 1, 오보에 2, 잉글리시 호른 1, 헤켈폰 1, 클라리넷 4, E♭ 클라리넷 1, 베이스 클라리넷 1, 바셋 호른 2, 바순 3, 더블바순 1, 호른 4, 바그너 튜바 4, 트럼펫 6, 베이스 트럼펫 1, 트롬본 3, 베이스 트롬본 1, 튜바 1, 팀파니 6~8(주자 2명), 기타 각종 타악기, 제1 바이올린 8, 제2 바이올린 8, 제3 바이올린 8, 제1 비올라 6, 제2 비올라 6, 제3 비올라 6, 제1 첼로 6, 제2 첼로 6, 더블베이스 8, 하프 2(오레스트와의 재회 장면과 피날레에서는 비올라 중 6대가 바이올린 군에 가세)

대본 : 후고 폰 호프만슈탈(독일어)

등장인물 :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메조 소프라노), 왕비의 딸 I 크리소테미스(소프라노), 왕비의 딸 II 엘렉트라(소프라노), 왕비의 동생 오레스테스(바리톤), 왕비의 불륜상대 아이기스토스(테너), 오레스테스의 늙은 하인(베이스), 왕비의 심복 시녀(소프라노), 몸종(소프라노), 젊은 하인(테너), 나이든 하인(베이스), 감시하는 여자(소프라노), 시녀 5명(메조 소프라노 2, 알토, 소프라노 2), 남녀 하인

때와 장소 : 고대 그리스, 미케네 성

 

서설

(이 《엘렉트라》에 대하여 슈트라우스는 오페라라고 적지 않고, 「후고 폰 호프만슈탈에 의한 1막 비극」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러나 현재는 보통 오페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이 협력한 오페라의 사실상 첫 번째 작품이다. 슈트라우스가 유대계의 오스트리아 시인인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sfhal, 1874~1929)과 처음 만난 것은 슈트라우스가 《영웅의 생애》를 지휘하기 위하여 파리에 있던 1900년 3월 초이다. 그 때 만나러 왔던 호프만슈탈은 발레작품으로 슈트라우스와 협력하고 싶다고 얘기를 꺼내며, 11월에는 거의 완성한 발레 대본을 보냈다. 슈트라우스는 이것에 흥미를 나타냈지만, 오페라 《화재》의 작곡에 쫓기고 있는 때이기도 해서 발레에 착수하지 않고, 오페라 쪽에서의 협력을 바랬다. 그런 다음에 이 두 사람 사이에 오페라에 관한 편지 교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무렵 호프만슈탈이 오페라화도 의식하여 쓰기 시작한 대본 중 하나에 그리스 3대 비극시인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소포클레스(Sophocles, B. C. 495~406)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엘렉트라』가 있다.

호프만슈탈은 빈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수학한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문학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대학 시절에 이미 희곡과 시를 차례차례 발표하고 있었다. 그 것도 단순히 독일문학뿐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 문학과 그리스 고전에도 정통하고 있었으며, 무대예술과 음악에도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호프만슈탈의 『엘렉트라』는 1903년 10월 6일 베를린의 소극장에서 연극으로 초연되었다. 그 때에 연출을 담당했던 것이 기예의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 1873~1943)로, 드디어 라인하르트, 호프만슈탈, 슈트라우스라는 3명의 강력한 협력체제가 완성되어, 《장미의 기사》와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서 훌륭한 성과를 올리게 된다.

어쨌든 베를린에서의 《엘렉트라》 초연은 새롭게 슈트라우스의 주목을 끌었다. 그것은 이 연극이 오페라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을 뿐 아니라 슈트라우스 자신도 학생 시절에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의 일부에 음악을 붙인 적도 있고, 『엘렉트라』에는 무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살로메》가 완성된 후인 1906년에 들어와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은 『엘렉트라』의 오페라화를 둘러싸고 면밀한 상담을 나누게 된다. 그것은 1907년 12월 말에 호프만슈탈이 이 일로 베를린의 슈트라우스를 방문하고 나서 한층 더 열기를 띠게 된다. 1908년 6월에 대본의 최종원고가 슈트라우스에게 도착했다. 슈트라우스는 이미 작곡에 착수하고 있었는데, 8월에는 가르미슈에서 전체를 완성하고, 9워 22일에 총보를 완성했다. 초연은 《살로메》 때와 마찬가지로 에른스트 폰 슈흐의 지휘에 의해 1909년 1월 25일에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상연되었다. 이것은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또 그 반면에 슈트라우스풍이 아닌 《엘렉트라》에 접하고 싶다는 소리도 있었다. 당시에도 아직 바그너의 음악을 의문시하거나 부정하거나 하는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호프만슈탈도 바그너를 싫어해서 《엘렉트라》는 바로크풍 또는 모차르트풍의 오페라로 만들자고 거세게 요구한 적이 있다. 이 점에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 간의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 결국 호프만슈탈은 바그너에 기반을 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로 타협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유연한 분위기가 있어 두 사람이 협동한 다음 오페라인 《장미의 기사》는 모차르트적이고, 또한 동시에 바그적이며, 슈트라우스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호프만슈탈은 점점 슈트라우스의 음악에 동조해 간다.

《엘렉트라》의 음악은 불협화음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극적인 박력, 공포 분위기, 복수의 정열을 교묘하게 표현해 간다. 화성적으로는 무조성을 종종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 슈트라우스 특유의 달콤한 감성이 때때로 나타난다. 관현악법도 색채적이며, 극을 진행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합창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슈트라우스는 이 《엘렉트라》를 통해 바그너풍 극을 응축시키는 데 성공하며, 그 다음 새로운 경지로 이동한다.

엘렉트라의 테마는 ‘광기’다. 무대에 오른 어느 누구도 광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 클뤼템네스트라와 어머니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증오하고, 그 둘을 죽이려 하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무력한 신세에 완전히 갇혀 있다. 클뤼템네스트라는 딸 엘렉트라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의심을 감추지 못한다. 세 주연 중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크리소테미스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이지만, 그녀 또한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두서없이 사방을 뛰어다닐 뿐, 극이 진행될수록 짙어지는 광기를 환기시킬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광기는 곡의 배면에 깔린 천둥소리와도 같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걷어낼 수 없다.

슈트라우스가 쓴 모든 곡을 통틀어 최대 편성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오페라는 극단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다. 빛(환희)과 어둠(증오)의 대조가 너무 선명해 때로는 부담스럽다. 관현악 편성은 최대 규모를 자랑하면서도(관악기 개수만 40여개에 달한다) 정작 성악진은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족 구성원(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 어머니의 불륜 상대인 아이기스토스, 딸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 그리고 아들 오레스테스)이 오페라를 지배하다시피 한다. 합창단이 활약하는 부분도 거의 없으며 오레스테스의 양육자와 시녀들을 비롯한 이들은 조연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프로이트의 세례를 받은 이 오페라에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은 ‘가족의 해체’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대가족은 산업사회가 가져온 핵가족에 그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이고 불륜 상대인 아이기스토스와 놀아나는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모습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지만, 이 또한 이혼과 성관념에서 자유로워진 현대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증오하고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엘렉트라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지 않은가? 슈트라우스는 소포클레스의 냉엄한 비극에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학을 도입한 가족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신화는 겉치레일 뿐, 결국 오페라의 중심 소재는 ‘가족의 해체’인 셈이다.)

 

내용 전개

(엘렉트라는 아가멤논 왕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왕이 트로이 지방을 원정하는 중에 아내는 아이기스토스와 불륜관계를 맺는다. 두 사람은 왕이 돌아오자 욕실에서 왕을 죽여 버린다. 엘렉트라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지점에서 극이 시작한다. 4마디의 강렬한 D단조 전주와 함께 막이 오른다. 곧바로 하녀들이 등장해 엘렉트라에 대해 말한다. 처음의 두 하녀는 엘렉트라를 몰래 비난한다. 세 번째 하녀만이 엘렉트라에게 동정적이다. 하녀들이 사라지고 나면, 엘렉트라가 등장해 길고 비통한 모놀로그를 부른다. 엘렉트라는 하루빨리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의 시체 위에서 춤추기를 바라고 있다. 거기에 여동생 크리소테미스가 찾아와 섬뜩한 거동의 엘렉트라를 사람들이 유폐하려는 것을 알려준다. 그 후에 양심의 가책으로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해 피로해진 어머니가 하인과 함께 찾아온다. 엘렉트라는 복수심이 담긴 수수께끼 같은 말을 어머니에게 하며, 동생 오레스테스를 암살하려고 한 것도 비난한다. 그러나 심복 시녀의 귓속말을 듣고 어머니는 급히 서둘러 돌아간다(여기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웃는 연주도 있다). 거기에 크리소테미스가 와서 남동생이 말에 치여 죽었다고 전한다. 엘렉트라는 남동생 대신에 여동생과 협력하여 복수하기로 하지만, 마음 약한 여동생은 도망가 버린다.

극의 음악적 전개는 엘렉트라의 「나는 홀로!(Allein!)」로 시작하는 길고 비통한 모놀로그로 출발하는데,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서 점점 고조되는 박력이 인상적이다. 엘렉트라의 모놀로그는 이어 여동생과의 2중창과 어머니와의 대화, 그리고 엘렉트라의 수수께끼 같은 말로 이어진다. 이 부분은 전체의 1/3을 차지하는 방대한 규모로, 독립적인 파트로도 볼 수 있을 정도다. 교향시 작곡가로 활약한 슈트라우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엘렉트라는 혼자서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궁전에 살며시 들어가는데, 죽은 줄 알았던 오레스테스가 있다. 오레스테스를 양육했던 나이든 하인이 비밀을 지켜 목적을 달성하도록 두 사람에게 주의를 준다. 오레스테스의 죽음을 전한 것은 일종의 계획이었던 셈이다. 두 남자는 궁전에 들어가고, 드디어 안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비명이 들리며, 여자들이 도망쳐 나온다. 엘렉트라는 안으로 들어가 아이기스토스도 죽여버린다. 사람들은 아이기스토스의 죽음을 기뻐하며, 오레스테스를 찬양한다. 광기에 완전히 함몰되어버린 엘렉트라는 피날레를 장식하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춤을 다 춘 그녀는 쓰러져 죽는다. 크리소테미스가 궁전의 문을 두드리면서 오레스테스의 이름을 부르며 극은 끝을 맺는다.

죽은 줄 알았던 남동생과 재회하는 장면은 매우 긴장감이 높으며, 두 사람의 감정적 고조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복수의 장면은 숨 막히는 속도감으로 가득하다.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의 외침은 정말 살려달라는 외마디 비명처럼 사실적이다. 둘이 죽고 나면 사람들은 오레스테스를 찬양하고, 크리소테미스가 달려와 오레스테스가 목적을 이루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엘렉트라는 이미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녀는 무엇인가에 완전히 홀려버렸다. 엘렉트라는 환희에 들떠 춤을 추다가 죽고, 크리소테미스가 궁전의 문으로 달려가 오레스테스를 외쳐 부르는 장면에서는 ‘운명’의 동기와 엘렉트라의 동기가 뒤섞인다. 그리고 팀파니의 둔탁한 타격과 리타르단도로 극적인 감정을 한껏 끌어 모은 상황에서 마지막 화음을 fff로 연주하며 극은 끝난다.)

 

후일담

(슈트라우스는 이 오페라에 대해 아주 중요한 말을 남겼다. 1939/40 시즌, 카라얀은 베를린 국립가극장에서 <엘렉트라> 공연을 마치고 난 다음날 슈트라우스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이 작품으로부터 이미 오랫동안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3개월이나 이 작품에 집중해 왔다. 과연 누구의 해석이 옳은 것인가? 바로 어제 당신이 행한 연주대로 하는 것이 현재의 진실이다.” 그러나 이런 말도 남겼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후 당신의 생각 역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날레에 대한 조언을 덧붙였다.

“피날레는 다시 인간으로서 해방됨을 기뻐하는 디오니소스에의 찬가이므로 사정없이 몰아쳐야 한다.”)

 

참고문헌

음악지우사 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Posted by 여엉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