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뷔시 / <영상> 1집

음악 2014. 1. 12. 22:26

<영상> 1집 (Imeges, Livre I. L.110)

작곡 시기 : 1904년 착수, 1905년 완성

작곡 장소 : 파리

(작곡가는 1집을 완성한 뒤 출판업자 뒤랑에게 보낸 편지(1905년 9월 11일)에서 “이 곡은 슈만의 왼쪽, 쇼팽의 오른쪽에 자리할 것”이라 주장하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피아노를 위하여>에서 출발해 <판화>를 거치며 발전한 드뷔시의 피아노 음악 양식은 이 <영상>을 통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다. 드뷔시 특유의 미묘한 선율선과 색채에 대한 장인성, 그리고 정확한 뉘앙스에 대한 작곡가의 섬세한 지시사항은 연주가들에게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드뷔시는 프레이징을 과장해 자신의 지시사항을 어기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정해진 규칙 없이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 드뷔시의 음악이 사실은 규칙적이고 논리적인 구조와 액센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드뷔시가 자신의 지시사항을 준수해 줄 것을 당부한 것도 이해가 간다.)

 

1곡 <물에 비친 그림자> (1.Reflets dans l'eau. Andantino molto 4/8)

(중심음 D♭. 드뷔시와 라벨이 ‘물’이라는 주제에 집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연 현상을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변형 — 드뷔시는 이것을 “자연과 상상력간의 대화”라 불렀다 — 시킨 두 작곡가에게 일렁이는 물의 흔들림은 아주 좋은 소재였다. 지나치게 복잡한 현상은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을 방해한다. 단순한 현상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것을 음악화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 현상에 집중한다. 초인적인 인내심 없이는 힘든 일이지만 드뷔시는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비로소 예술성과 장인성이 조화를 이룬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곡은 3도 없는 D♭장조의 5도로 시작한다. 주요 주제(A♭-F-E♭)는 화음 위에서 일렁이는 수면의 음화音化라 할 수 있다. 섬세하고도 대위법적인 짜임새가 불투명한 반음계와 만난다(9-10마디). 투명한 5음음계(D♭-E♭-F-A♭-B♭)가 병행 5도와 마주친다. 20마디에서 24마디에 걸치는 카덴차적 경과구(아르페지오)에서는 불투명함을 피해야 한다. 드뷔시 음악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페달링은 사실 음향을 불투명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양날의 칼이다. 즉 연주자는 적절한 페달링의 사용과 함께 투명하고 맑은 음향을 만들어야 한다. 아르페지오는 온음음계의 속화음 위에서 움직이다가 36마디에서 다시 첫 부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른손의 화음형은 전음음계의 아르페지오형으로 변한다. 49마디부터 물살은 지속적으로 일렁이며, 57마디의 f와 58마디의 ff로 크게 일렁이고 난 후 점차 잦아들며 상행 아르페지오로 갖가지 스펙트럼으로 부서지는 물살을 묘사한다. 72마디부터는 코다. 82마디에서 나타나는 오른손의 주선율 아르페지오형을 들으면 드뷔시가 주선율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 이 선율형은 주제를 제시할 때와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같은 음계라도 주법, 음고, 강세, 음색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을 이 주제만큼 멋지게 제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 일렁임은 거의 멈추고 여백이 점점 늘어난다. 백지 위에 점 하나를 찍는 것만으로도 큰 일렁임보다 더 큰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마지막 병행 3도에 이어 저음의 D♭음과 오른손의 높은 A♭ 옥타브가 물의 마지막 일렁임을 묘사하면서 곡은 끝난다.)

 

2곡 <라모를 찬양하며> (2.Hommage a Rameau. Lent et grave 4/8)

(프랑스의 대작곡가 장 필립 라모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드뷔시. 아주 엄숙하고 진지한 곡이며, <피아노를 위하여> 속 <사라방드>의 문제의식이 발전한 곡이다. 드뷔시는 18세기 사라방드 양식을 사용했지만 라모의 음악은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 진정한 경의는 가장 뛰어난 작품을 써서 바치는 것이지, 경의의 대상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셈이다(후일 드뷔시가 죽었을 때, 오직 라벨, 스트라빈스키, 사티, 그리고 버르토크만이 드뷔시의 생각에 따라 드뷔시를 전혀 인용하지 않은 곡으로 추모의 감정을 전달했다). 첫머리에 쓰인 선법은 G#을 중심음으로 하는 그레고리안 8선법. 이어 프리지아 선법으로 주요 주제가 나타난다. 첫머리의 음계는 7마디에서 히포프리지아 선법으로 다시 나타나며, 4도 아래에서 반복한다. 죽은 사람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데 중세 선법만큼 적절한 것이 어디 있느냐는 슈미츠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곡은 종적인 화성 축뿐 아니라 횡적인 대위법적 축에서도 교묘하게 발전하는데, 10마디에서 첫 마디에 대한 응답이 이루어지고, 변격 선법을 정격 선법으로 바꾸어 사용하기도 한다. 11~13마디를 통과해 다성적 층계로 발전하는 곡은 24마디에서 번쩍이는 광휘를 통해 고인의 영광을 다시 한 번 회상하고, 31마디부터는 조용히 숨을 죽인다. 38마디부터 곡은 중간부로 들어간다. 여기서는 바로크 시대의 서정 비극에서 보이는 초연하고도 신성한 분위기가 드러나야 한다. 이 감정은 43마디에서 51마디에 걸쳐 강해진다. 65마디부터는 코다. 코다의 마지막 부분, 도리안 음계 위에서 하강하는 화음은 관이 아래로 내려지는 느낌을 준다.)

 

3곡 <움직임> (3.Mouvement. Anime 2/4)

(16분음표의 셋잇단음으로 교묘한 반복을 표현한 곡이다. 동시에 8분음표 단위의 분절을 사용해 명료함(8분음표)과 역동성(16분음표)을 둘 다 얻어내고 있다. 음계는 중성적인 C장조를 선택했지만 점차 복조성적인 경향으로 나아간다. 앞의 두 곡과는 반대로, 이 곡의 초반 30마디에서는 페달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 명료함을 추구하는 곡의 특성상 페달은 절약하는 것이 좋다. 첫 30마디 동안은 페달을 매우 절약해야 하며, 30마디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때부터 음향은 기계적인 움직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다. 34마디의 낮은 G음은 중간 페달로 눌러야 한다. 89마디부터 펼쳐지는 중간부에서 중심음은 F#음으로 바뀌는데, 이 음은 첫 파트의 중심음 C와 완벽한 반대축에 놓여 있다. 156마디부터 시작하는 코다에서 곡은 서서히 날아가는 느낌을 주면서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직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코다의 음계는 C음과 F#음이 모두 들어있는 온음음계 C-D-E-F#-G#-A#.)

Posted by 여엉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