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협주곡 (Piano Concerto, Op.42)

작곡 시기 : 1942년 6월 5일 착수, 12월 30일 완성.

초연 : 1944년 2월 6일, 뉴욕 NBC 스튜디오에서 에두아르트 스토이엘만의 피아노, 스토코프스키 지휘로 NBC 교향악단에 의해 이루어짐.

헌정자 : 헨리 클레이 슈라이버

출판 : 1943년경. 1944년(2대의 피아노판).

악기 편성 : 독주 피아노, 플루트 2(피콜로와 겸함),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4, 트럼펫 2,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종, 공, 심벌즈, 실로폰, 큰북, 작은북, 현악 5부

(1933년에 쇤베르크는 히틀러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는 유럽을 뒤로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여기서 처음으로 협주곡이라는 형식에 손을 댄다. 하나는 1936년에 완성한 《바이올린 협주곡》 Op.36이며, 나머지 하나가 바로 1942년에 완성한 이 《피아노 협주곡》이다. 그가 협주곡이라는 이름을 붙인 작품은 이 두 곡뿐이다. 도미 직전인 1933년에 몬(G. M. Monn, 1717~1750)의 클라브생 협주곡에 의한 《첼로 협주곡》과 헨델의 《콘체르토 그로소》 Op.6-7을 기본으로 한 《현악 4중주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라는 두 개의 편곡 작품을 썼고, 또 1912년에는 역시 몬의 《첼로 협주곡》과 《쳄발로 협주곡》을 편곡한 것이 있으나, 이것은 나중에 몬의 작품을 다룬 것과 연결 지어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도미 후의 두 작품을 위해 미리 시도해 본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1942년에는 Op.41의 바이런의 시에 의한 《나폴레옹 송가》(낭독, 현악 4중주 및 피아노)와 일종의 교과서인 『작곡 초보자를 위한 범례』도 만들었다. 1938년의 《콜 니드라이》 Op.39, 1939년의 《실내 교향곡 제2번》 Op.38b이라는, 조성적인 색채를 가미해서 작품을 만든 쇤베르크가 이 《피아노 협주곡》에서는 다시 순수한 12음의 기교를 쓰고 있는 것은 조금 색다르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작은 대곡에서는 브람스, 특히 브람스의 피아노 4중주 1번 Op.25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쇤베르크는 1938년에 브람스의 곡을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는데, 이 때 이 협주곡의 아이디어를 품었을지도 모른다.

쇤베르크가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 이유 중에는 “12음 기법은 감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지성을 이용해 작곡한 음악”이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할 목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 “Heart and Brain in Music(음악에서의 지성과 감성)”에서 “예술에서의 고귀한 가치를 가지는 모든 것은 감성(Heart)과 지성(Brain)을 모두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예시로 바이올린 협주곡 Op.36의 2악장 주제와 피아노 협주곡 Op.42의 개시 주제를 들었다.

곡에는 작곡가가 직접 쓴 짧은 소네트가 붙었다. ‘삶은 원래 즐거웠다(Life was so easy). 갑자기 거기에 증오가 생겨났다(Suddenly hatred broke out). 결국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했다(A grave situation was created). 그러나 삶은 계속된다(But life goes on).’ 부드럽지만 잠언적인 느낌을 주는 이 협주곡을 정확하게 압축하는 소네트라고 할 수 있다.

출판은 뉴욕, 셔머 출판사. 헨리 클레이 슈라이버(Herny Clay Shriver)에게 헌정했다.)

(총 492마디이며 단악장으로 되어 있는 이 곡은, 내용상 4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져 기-승-전-결의 구조가 뚜렷하다. 1부의 평온한 분위기는 2부의 날카로움과 3부의 어두운 분위기로 깨지며 긴장감이 커지지만, 마지막 4부는 그 긴장감을 해소하면서 곡을 끝맺는다.

1부 개시에서 피아노는 전곡의 기초를 이루는 12음 음렬을 제시한다(1).

(1) : (O.) E♭ / B♭ / D / F / E / C / F# / A♭ / D♭ / A / B / G

(R.) E♭ / A♭ / F♭ / D♭ / D / G♭ / C / B♭ / F / A / G / B

O는 원형, R은 반행형反行形인데, 반행형을 완전 5도 내렸을 경우 그 전반 6개음(A♭-D♭-A(B♭♭)-G♭-G-B(C♭))을 원형의 전반 6음(E♭-B♭-D-F-E-C)과 결합하여 완전한 12음을 포함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만년의 쇤베르크는 이 작법을 매우 애용했다. 또한 이 음렬을 3음씩, 또 4음씩으로 나누면 밑에 보이는 (2)와 (3)의 화음이 되는데, 이것들은 전곡의 주요한 화성적 요소로 쓰인다.

(2) : (O.) E♭-B♭-D / F-C-E / A♭-D♭-G♭ / G-B-A // (R.) F♭-A♭-E♭ / D-F#-C# / C-F-B♭ / G-B-A

(3) : (O.) D-F-B♭-E♭ / F#-A♭-C-E / A-C#-G-B // (R.) E♭-A♭-D♭-F♭ / D-F#-A#-C / G-B-F-A

1부 (1.Andante 3/8 - )

(1마디에서 175마디까지. 쇤베르크의 제자인 로베르트 게르하르드가 “괴테와도 같은 평온”으로 가득하다고 언급한 안단테 파트. 독주 피아노가 원형 음렬을 제시하면서 시작하며, 이어 완전5도 내린 반행형의 역행, 이어 원형의 역행, 마지막에 완전5도 내린 반행형의 순행형順行形이 차례로 나타난다. 이 네 가지 악구를 39마디에 걸쳐 제시한다. 여기까지 독주 피아노는 간단한 관현악의 반주와 동행한다.

이어 짤막한 간주가 있은 다음, 제46마디에서 제85마디까지 관현악이 같은 악구(사용하는 음렬은 다르다)로 주제를 확보한다. 이후 독주 피아노가 새로운 리듬을 보이는데, 이것을 도입 악구로 삼아 한 동안 발전부에 가까운 형식이 이어진다.

제134마디부터는 재현부로 생각할 수 있으며, 처음 악구는 단축된 형태로 복잡한 장식 음형을 달고 나타난다. 악상은 점점 2부에 근접해간다. 제160마디에서 포코 피우 모소와 아 템포를 거쳐 제165마디에서 다시 피우 모소가 되는데, 여기서부터 코다로 1마디의 라르고 후에 제2부로 들어간다.)

2부 (2.Molto allegro 2/2 - )

(간주곡 풍의 두 번째 파트는 시간적으로 협주곡 전체를 통틀어 가장 짧다(길이는 176마디부터 263마디까지 총 88마디). 그러나 이 파트의 음악은 협주곡에서 가장 강력한 음악이다. 주요 동기는 1부의 기본 동기에서 유래하며, 제1부의 코다에서 쓰인 재료로 시작하여 여러 가지 재료를 다채롭게 사용하고 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단순한 4도가 유력해지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완전4도 12개를 사용하는 프레이즈가 나타난다. 1부와는 반대로 전체적으로 강력하고 날카로운 인상을 주고 있다.)

3부 (3.Adagio 4/4 - )

(아다지오. 264마디에서 329마디까지 총 66마디. 소나타로 말하면 느린 악장에 해당하는 부분이며 크게 2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에는 관현악만으로 주요 음형을 연주한다. 이것은 2성이 한 짝을 이루어 음렬을 만들고 있고, 2개의 음렬을 연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을 피아노로 변형하여 연주한 후, 제286마디부터 피아노 독주로 제2의 음형을 제시한다. 이 두 개의 음형은 간주를 거친 후, 이번에는 양쪽 모두 관현악에서 나온다. 전체적으로 우울한 느낌이 강한 부분이다.)

4부 (4.Giocoso(Moderato) 2/2)

(330마디에서 492마디까지 총 163마디. 론도풍으로 만들어져 있다.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양 손의 트레몰로에 이어 아르페지오가 나타나고, 그 다음에 피아노가 주요 음형을 제시하면서 악장을 시작한다. 제2의 주요 음형은 제349마디의 피우 모소로 점음표를 가진 것이다. 제371마디부터 피아노가 제2의 주요 음형을 연주하는 동안 관현악에서는 제1의 주요 음형이 되돌아온다. 후반부에서는 제3부와 제1부의 음형이 회상되어 대위적인 장식을 통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제468마디부터는 스트레타라고 적혀 있는 악장 종결부로 들어간다. 이 부분의 구성은 비교적 간단하며, 고전적이라고 해도 좋을 수법을 쓴다. 복잡한 형식을 써서 창출한 긴장감을 해소하면서 곡을 종결로 이끄는 셈이다. 참고로 마지막 화음에 쇤베르크는 페르마타 지시를 넣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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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 (Piano Soanta No.17 in D minor, Op.31-2 "Tempest")

작곡 시기 : 1802년

 

(“나는 한낮의 태양을 어둡게 하고, 폭동 같은 바람을 불러와,

푸른 바다와 짙푸른 창공의 궁륭이 포효하며 전쟁을 시작하게 했다.

무시무시하게 시끄러운 천둥에게 불을 주어,

제우스의 단단한 참나무를

그 자신의 번개로 쪼개놓기도 했지; 바다로 튀어나온 절벽을 흔들었고,

쇠창살로 소나무와 삼나무를 뽑아내기도 했지; 나의 지시에 따라

잠든 이가 깨어나고, 무덤이 입을 벌리고, 그들을 내보냈다.

나의 강력한 마법으로 그렇게 했다.“

- 셰익스피어 《템페스트》에서 프로스페로의 선언. 프로스페로는 이 말을 한 직후 자신의 마법을 포기한다.)

 

(Op.31을 쓸 무렵, 베토벤은 친구 크롬프홀츠(Krumpholz. 1750~1817)에게 “지금까지 만든 나의 작품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길을 갈 작정이다.”고 말했다. 이때를 전후해 교향곡 2번(Op.36), 3곡의 바이올린 소나타(Op.30)가 만들어지며, 그야말로 ‘위대한 전환점’을 이루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곡의 부제와 관련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신들러가 이 곡에 대해 물었을 때, 베토벤은 “이 곡을 이해하고 싶다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셰익스피어 만년의 5막 희곡인 <템페스트>는 동생 안토니오에 의해 쫓겨난 밀라노 공 프로스페로가 딸 미란다와 바다에 떠 유랑하다 외딴 섬에 안착한 후 마술을 연구, 마술사가 되어 12년 후에 마법으로 아우의 배를 난파시켜 회개하도록 만든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베토벤은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마술적이고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희곡을 읽은 후에야 가능할 것이란 자신감을 가지고 이런 얘기를 꺼냈던 것이다. 이 곡의 부제는 그렇게 해서 붙여졌는데, 곡의 특성과 교묘하게 일치한다(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가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는 사실을 고려함에도 불구하고). 파울 베커도 이 곡을 “음울하고 무서운”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특히 1악장의 대담함은 예가 없던 것으로, 급변하는 템포와 환상곡을 연상케 하는 패시지가 소나타 형식의 견고함을 휘청거리게 한다. 모든 악장이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특징을 가진 곡이기도 하다.)

 

1악장 (1.Largo 2/2 - Allegro 2/2) (D minor)

(소나타 형식. 환상과 형식미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음악이다. 첫 6마디 안에서 템포가 세 번 변하는, 풍부한 변화를 지닌 1주제로 곡을 시작한다. 라르고에서 알레그로로, 다시 아다지오로. 그 짧은 순간에 폭풍이 한 차례 몰아친다. 첫 주제형은 D단조 딸림 3화음의 1전위형을 아르페지오로 느릿하게 연주하는 것이 특징으로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몰고 온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알레그로. 이것은 6마디의 아다지오로 갑자기 제동이 걸린다. 이 주제를 되풀이하면서 경과부를 시작한다. 7마디에서 다시 라르고. 8마디에서 다시 몰아치는 알레그로의 폭풍은 계속 이어지면서 급격한 제동이 한 동안 없을 것임을 선언한다. 이 부분이 발전하면서 셋잇단음이 힘차게 나타나는 새로운 선율과 섞여 이제 완전히 1주제부를 이룬다.

리만은 이것을 1주제로 보고, 곡 처음의 6마디는 서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악상은 재현부에서 재현하지 않으므로 처음 6마디를 1주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실 가장 오래된 양식의 소나타에서는 1주제를 명확히 재현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며, 베토벤은 작곡 중에 새로운 주제를 재현하려 생각한 흔적이 있으므로 리만의 판단도 완전히 틀리다고 보기는 힘들다. 41마디부터 알레그로 주제에서 파생한 A단조의 2주제가 등장하는데, 지금까지의 움직임을 연장하고 있으며 더군다나 1주제 알레그로 부분에서 소재를 가져왔기 때문에 주제다운 성격은 부족하다. 2주제는 61마디부터 decresc.로 약화되어 63마디에서 코데타로 진입한다. 코데타는 새로운 소재를 도입한 후 조용히 끝난다. 제시부를 반복한 후 발전부는 먼저 라르고로 시작하며, 이어서 알레그로로 바뀌어 새로운 주제를 다이내믹하게 전개한다. 간주와 같은 성격을 지닌 격렬한 부분을 거쳐 음의 세기가 급하게 약해지고, 라르고로 바뀌어 재현부로 들어간다.

라르고는 레치타티보풍의 확장을 거치며, 알레그로, 아다지오를 마치고 나서 다시 한 번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새로운 주제의 재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대신 격렬한 폭풍우 같은 부분을 거쳐 새로운 주제를 D단조로 재현하고, 그 후 차츰 힘이 약해지면서 조용히 끝난다.)

 

2악장 (2.Adagio 3/4) (B flat major)

(총 103마디. 발전부를 생략한 소나타 형식. 1악장과 비슷한 아르페지오로 시작되지만, 앞의 정서와는 상반되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언제 엄습할지 모르는 폭풍에 대한 불안을 내포하는 휴식....... 그래서 더 달콤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경과부로 들어가면 저음에서 마치 큰북을 연속해서 두드리는 것 같은 엄숙한 울림이 들려오는데, 이것은 얼마 후 높은 음역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F장조의 2주제로 들어가면 곡은 한층 더 밝고 간절해진다. 후반부에서 북소리와도 같은 pp의 셋잇단음표를 등장시키면서 코데타로 들어간다. 코데타는 불과 4마디로 짧게 꾸미고 있다. 발전부는 생략한 대신 재현부는 장엄한 장식을 더하며 반주에는 호화로운 아르페지오를 5옥타브에 걸쳐 동반한다. 경과부만이 제시부에서 등장했던 형태 그대로 60마디에서 72마디까지 다루어진다. 2주제는 72마디 후반에 등장하는데 B♭장조로 등장한다. 코다는 재현부 코데타와 형식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1주제를 5마디에 걸쳐 잠깐 회상시키며 간결하게 종결한다.)

 

3악장 (3.Allegretto 3/8) (D minor)

(총 399마디. 16분음표의 약동하는 무궁동으로 이루어진 악장. 연습하지 않으면 리듬이 엉키기 십상이기 때문에, 피아니스트들은 조심스레 이 악장을 연마해야 한다. 주제가 오른손의 움직임으로 시작하고 왼손이 뒤따르는 형태를 취하며, 오른손 부분 동기 마지막 음(D로 시작해 계속 변함)이 환영적인 선율선을 형성한다. 반대로 8마디를 기본으로 취한 형식은 엄격한 모자이크 구조로 주제 동기는 거의 단순한 자리바꿈을 반복할 뿐이다. 경과구는 35마디부터 42마디까지 이어지고 A단조의 2주제부로 넘어간다. 2주제의 박자는 변칙적인 트릴 주제로, 긴장을 더욱 축적한다. 50마디까지는 A단조로 기본박인 3/8에서 변박 형태를 취하지만 51마디부터는 주제 동기에 변주가 이루어지며 주제 후반부를 확대해 반복 등장한다. 91마디부터 4마디의 코데타를 구성한 뒤 발전부로 넘어간다. 발전부는 1주제의 동기만으로 전개하며 그 밖의 재료는 가미하지 않는다. 시종 동일한 음형의 나열로 그 속에 교묘한 명암을 넣어가며 제시부보다 훨씬 긴, 100마디가 넘는 장대한 음악을 꾸며나간다. 그러나 지루한 느낌없이 멋진 아라베스크풍으로 짜여 베토벤의 탄탄한 동기 발전 수법을 만끽할 수 있다. 발전부 말미인 198마디부터는 오른손만으로 급히 뛰어다니는 악구가 17마디 정도 이어진 후 평정을 되찾으며 재현부를 유도한다. 재현부는 관례에 의거 16마디를 재현하고 229마디부터 주요부를 약간 축소해 등장한 후 246마디부터 경과구를 확대하여 두 번 반복한다. 그 뒤 2주제의 재현이 이루어지는데 조성은 D단조로 바뀐다. 코데타를 재현하며 광대한 코다로 진입한다. 코다는 1주제에 의거, 진행하던 도중 349마디의 pp가 돌연 ff로 바뀌며 1주제를 내성에서 드러내고 명확히 한다. 이 주제는 381마디까지 반복한 후 반음계적인 하행 악구를 삽입한 후 1주제를 반복하고 조용하고 음산하게 코다를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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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협주곡 (Cello Concerto)

작곡 연도 : 1966년 완성

악기 편성 : 독주 첼로, 플루트/피콜로, 오보에, 클라리넷 2, 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트롬본, 하프, 현악 5부

(리게티가 첫 협주곡의 독주악기를 첼로로 선택한 것은 그만큼 그가 이 악기를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실제로 리게티는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연주하면서 이 악기의 특성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수십 년 후 ‘마치 일본어로 말하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듯, 구체적이고 정묘한 음향을 추구하는 리게티에게 이디엄에 대한 감각이 없는(즉 만져본 적이 없는)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작곡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오래도록 연주한 악기라는 이점을 제하고도, 리게티가 협주곡의 독주악기로 첼로를 선택할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첼로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음향이었다. 바흐가 발견하고 베토벤이 발전시키고 바그너가 한 차원을 높였으며 드보르작이 훌륭하게 구사한 첼로의 음향은 20세기가 2/3선을 넘어선 1960년대 중반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리게티는 1악장을 시작하는 E음의 음색 변화로 자신을 매혹시킨 첼로의 음향을 자유로이 풀어놓는다. ‘오직 첼로만이’ 리게티가 원하는 음악 언어를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었을 것이다.)

1악장 (1. ♩=40)

(연주 시간 약 7분. 리게티는 협주곡을 위해 구상한 20여개의 음 형상 중 단 하나의 형상으로 1악장을 구성했다. 첼로가 ppppppp라는 극단적으로 작은 다이나믹의 E음으로 곡을 시작한다. 1분 30초 정도는 오직 크레셴도만이 있으며, 서서히 다른 악기들이 참여한다. 곡은 악기들을 거쳐 높은 F음에 도달하고, 곧 D와 A 사이에 음들이 채워진다. 현악기가 5옥타브의 B♭음을 내며, 첼로가 동참한다. 목관이 남은 음계들을 하나씩 채워가며 크레셴도 하다가 마침내 전음계적인 클라이막스에 도달한 후, 곧 극단적으로 높은 고현과 극단적으로 낮은 베이스만이 남고, 그 사이를 첼로가 유영한다.)

2악장 (2. L'istesso Tempo)

(연주 시간 약 8분. 1악장이 의도적인 ‘비움’에 충실한 악장이라면, 2악장은 내용적으로 아주 풍성하다. 금관의 화려한 선율들로 시작하며, 호른과 첼로가 그 사이에서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다. 20여개의 갖가지 형태가 나타나며(그 중에는 침묵에 가까운 것도 있다), 중반이 지나 트럼펫이 강렬한 포르테를 쏟아내면서 곡은 클라이막스에 도달한다. 클라이막스가 지나면 악기들이 하나씩 떠나면서 첼로 혼자 솔로로 곡을 마무리 짓고, 쉼표가 이어진 후 곡은 마친다. 아트모스페르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에는 침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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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습곡> 1권 (Piano Etude, Livre I)

작곡 시기 : 1985년 완성

"나는 감옥에 있다. 한쪽 벽은 아방가르드, 다른쪽 벽은 과거다. 나는 달아나고 싶다." - 죄르지 리게티. 1993년

(아방가르드는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그 폐쇄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폐쇄성에 질식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이 비단 리게티 혼자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이것에 대해 다른 이들보다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70년대의 ‘샛길’을 거쳐, 마침내 80년대에 이르러 그는 다시 버르토크를 비롯한 이전의 음악들과 마주한다. 그러나 그가 80년대에 보는 버르토크는 헝가리를 떠나기 이전에 생각했던 버르토크로의 ‘회귀’가 아니었고, 라헨만이 비난한 ‘퇴조’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던 음악, 미래를 위해 열려 있는 동시에 동시대인에게도 열려 있는 음악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그 성과물은 피아노 협주곡과 3권의 <피아노 연습곡>으로 나타난다. 리게티는 이 새로운 음악을 쓰기 위해 모든 음악적 가능성에 문을 활짝 열었다. 중세 14세기 아르스 수브틸료아 시대의 음악으로부터 현대 비밥과 로큰롤까지, 죠스깽 드 프레의 엄격한 대위법에서부터 남부 아프리카의 복잡한 폴리리듬 음악까지 모든 것을 끌어들인 작곡가는 70년대와 80년대의 가장 중요한 두 만남, 찰스 아이브스와 콘론 낸캐로우의 음악까지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수많은 조우를 통해 리게티가 발전시켜 나간 것은 다차원적인 폴리포니, 즉 폴리리듬과 폴리메터였다.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연습곡> 1권에서는 위의 두 가지 양식형성방식이 두드러진다.

리게티의 피아노 연습곡은 장르 간의 엄격한 구분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아방가르드와 재즈, 모던 록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이제 조금씩 힘을 잃고 무의미해질 것이다. 혁명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 음악은 이제 다시 구심점을 찾고 통합을 위한 거대한 시도를 앞두고 있다.)

1곡 <무질서> (1.Désorde. Molto vivace)

(단순하게 시작한 패턴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변화하는 첫 곡. 제목인 <무질서>는 곡의 구성원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프랙탈 기하학의 방식을 사용해 점점 복잡해진다. 한 손은 검은 건반만을 연주하고, 다른 한 손은 흰 건반만을 연주하면서 5음 음계와 7음 음계가 공존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오른손은 8분음표 단위가 하나씩 줄어드는데, 결국 이 과정을 통해 본래의 패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곡이 변한다. 곡의 중간에서는 이 방향이 반대로 바뀐다. 연주의 난이도에 비해 화성적인 변화는 적은 편이다.)

2곡 <개방현> (2.Cordes à vide. Andantino con moto)

(첫 곡과는 달리 완전 5도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두 번째 곡. 마치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개방현을 켜듯 현악기의 이디엄을 건반악기로 그대로 옮겨온 곡이다. 연주의 어려움보다는 음색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곡으로, 특히 5도로 하행하는 아르페지오 위에서 움직이는 반음계적 변화는 이 곡의 화성적 변화에 주의를 기울어야 함을 일깨우고 있다. 곡이 진행됨에 따라 8분음표의 느린 움직임은 점차 세분화되고 빨라지고 강세도 커지면서 고음역에서 정점에 이른 후, 곧바로 저음역의 조용한 소리로 급변한다. 그리고 ‘마치 멀리서 호른이 울려나오는 것처럼’ 노래하는 선율이 등장하며 끝을 맺는다.)

3곡 <막힌 건반> (3.Touches bloquées. Presto)

(테리 라일리, 스티브 라이시 등 미니멀리즘 음악가들과 접촉한 이후인 70년대 중반부터 사용했던 ‘건반 차단 기법’을 사용한 음악. 한 손이 미리 건반을 눌러놓기 때문에 손가락이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고르지 않은, 절뚝거리는 소리가 난다. 중간부에서는 양손이 함께 옥타브로 빠르게 진행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4곡 <팡파레> (4.Fanfares. Vivacissimo)

(3-2-2의 악삭 리듬 패턴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4곡. 비슷한 리듬을 사용한 호른 3중주 2악장을 생각나게 하는 곡이다. 증4도 관계에 있는 두 가지의 4음 음계(각각 C-D-E-F, F#-G#-A#-B)로 이루어진 오스티나토가 옥타브만 바꾸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타나는 가운데, 네 개의 화음이 하나의 악구를 이룬 이중 선율인 화음들이 나오다가 뒤로 갈수록 점차 얽히면서 불협화적인 복조성의 지배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양손에서 함께 움직이던 리듬 또한 점점 오스티나토와 변덕스러운 이중 선율 사이에서 얽히면서 복잡해진다.)

5곡 <무지개> (5.Arc-en-ciel. Andante molto rebato)

(4번과 6번 사이에서 쉬어가는 느낌의 5번 곡. 작곡가는 이 곡이 셀로니어스 몽크와 빌 에반스의 재즈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재즈 음악은 12음을 한꺼번에 사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음악이니, 곡의 제목 ‘무지개’가 모든 색채의 스펙트럼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리게티 다운 제목 붙이기라고 할 수 있겠다. 당연히 곡은 모든 음계로 펼치는 스펙트럼을 기가 막히게 잘 보여준다. 양 손의 박절이 점차 분화하고 강세가 상이하게 붙여진 폴리리듬 위에서 느릿한 선율이 흘러간다. 화성적인 색조는 점점 풍요로워지며 점점 다채로워진다.)

6곡 <바르샤바의 가을> (6.Automme à Varsovie. Presto)

(표제의 제목은 쇼팽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라, 1956년부터 개최되던 폴란드의 현대음악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쓴 것이라 한다. 정치적 탄압 속에서 새로운 음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동료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볼 수 있다(리게티가 고국인 헝가리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생각하면 더욱 공감이 간다). 전체적으로 퍼셀 풍의 라멘토 베이스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곡이다. 독주자는 두 개 또는 세 개에서 최대 네 개의 다른 속도의 성부를 연주해야 하며, 그 비율은 3:4:5:7로 벌어진다. 폴리리듬에 대한 작곡가의 타고난 재능이 그대로 드러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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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 15번 <전원> (Piano Sonata No.15 in D major, Op.28 "Pastorale")

작곡 시기 : 1801년 완성

출판 : 1802년

헌정자 : 요제프 폰 존넨펠츠

(이 소나타는 소나타 Op.27과 함께 1801년에 작곡했다. 이 작곡 연도는 베토벤 자필악보에 분명하게 적혀 있지만 언제부터 구상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베토벤은 Op.26에서 27까지의 세 곡의 소나타에서 매우 새롭고 대담한 시도를 한다. 즉, Op.27-2에서는 격렬한 감정을 폭발시키지만, 이 소나타에서 그런 적극적이고 투쟁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모두 온화하다. 강한 주관성의 세계와 평화롭고 조용한 객관적인 세계를 대립시켜 색다른 작품들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은 베토벤 창작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일반인들이 베토벤에 대해 흔히 가지는 오해가 ‘베토벤은 단조의 작곡가’라는 것인데, 베토벤의 곡을 조금이라도 살펴보기만 한다면 그것이 터무니없는 오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 단조를 중심조성으로 채택한 곡이 불과 9곡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즐겁고 경쾌한 데서 그치지 않고 감정의 고양을 불러일으켜 <전원>이라는 표제가 붙은 이 곡 또한 장조 조성을 택하고 있다.

<전원>이라는 표제는 함부르크의 출판업자 아우그스트 크란츠(August Cranz, 1789-1870)가 1838년에 붙인 것이다(당시에는 전원풍의 음악이 유행을 탔다). 당시 존경받던 빈 음악계의 원로 요제프 폰 존넨펠츠(Joseph von Sonnenfels, 1733~1817)에게 헌정했는데, 베토벤과 그가 어떤 관계였는지 상세히 알려주는 문헌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존넨펠츠는 드물게 성실하고 인격이 온후한 음악 후원자로, 만년에 미술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극작가로서 계몽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베토벤은 그의 도움으로 적절한 출판사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다른 헌정자들과는 달리 큰 도움은 받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받은 것에 감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인격 자체를 헌정의 이유로 삼은 것일 수도 있다.)

 

1악장 (1.Allegro 3/4) (D major)

(총 461마디. 발걸음처럼 이어지는 베이스의 D음은 우리를 자연스레 전원으로 인도한다. 이 D음 위에서 따스한 1주제가 나온다. 주제는 옥타브 위에서 되풀이되고, 40마디부터 음의 세기가 약간 기복이 있는 상승 악구가 나온 후, 이것도 역시 되풀이된다. 여기서 39마디에 걸쳐 D음이 오르겔풍크트로 등장한다. 그리고 느긋하게 흐르듯 경과부로 들어간다(63마디부터). 도중에(77마디) pp의 새로운 경과구적 악상이 나타나고 90마디 후반부터 A장조로 제2주제가 평화롭게 나타난다. 화려한 패시지와 제2주제의 전개가 교대로 등장한 후, 코데타에서 다시 사랑스러운 새로운 악상이 등장하여 f까지 고조된다. 급격하게 데크레셴도하며 제시부를 마치고 다시 반복된다.

발전부에서는 제1주제를 소재로 한 매우 분석적인 전개가 이루어지고, 8분음표에 의한 흐르는 듯 느껴지는 대위법적 전개가 이루어진다. 후반에 긴 F#음을 지속음으로 장장 38마디를 등장시켜 주제의 재현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끝부분에 코데타 주제가 나와 세 번 되풀이한(세 번째는 아다지오) 후, 그제서야 pp의 재현부로 들어간다. 원칙대로 재현부에서는 제2주제도 D장조로 재현하며 제1주제에 의한 코다로 매우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꺼질 듯 끝을 맺는다.)

 

2악장 (2.Andante 2/4) (D minor)

(99마디) (생전의 베토벤이 좋아했던(체르니의 증언에 따르면), 느긋한 분위기의 느린 악장. 조성은 D단조를 택했으나 스타카토 리듬으로 어두운 느낌은 별로 없다. 동기는 먼저 D단조로 제시한 후 바로 A단조로 반복한다. 중간부는 D장조로 점음표를 지닌 리듬과 2개의 셋잇단음표를 쓴 동기가 리듬적 특징을 보이는데, 이 부분의 스타카토는 현악기의 피치카토와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 해학적인 느낌으로 8마디 주제를 선보인 후 다시 반복한다. 코다(83-99마디)는 중간부의 주제를 회상하며 pp로 조용하게 끝난다. 참고로 초고에는 스타카토 부분이 스타카티시모로 표기되어 있었다.)

 

3악장 (3.Scherzo. Allegro vivace 3/4) (D major)

(Op.22 이후 오랜만에 등장하는 스케르초 악장이다. 극히 빠르며, 느린 악장보다 더욱 가볍다. 우선 4옥타브에 걸쳐 부드럽게 하강하는 F#음에 이어 주제가 되풀이된다. 주제에는 스타카토가 붙어 있는데, 희한하게도 이 스타카토 음을 제외한 나머지 음들은 잘 들리지 않는다.

71마디부터 94마디까지인 트리오는 B단조. 슬라브 농민들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매우 소박한 주제가 등장하고 이것을 반복한다. 반주는 유머러스한 오스티나토 음형으로 일관하며, 반주형과 조성만 바꾸어 다시 16마디를 더 등장시킨 후 스케르초 다 카포로 돌아가 곡을 끝맺는다.)

 

4악장 (4.Rondo. Allegro ma non troppo 6/8) (D major)

(이 악장의 전원적인 정서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의한다. 카를 라이네크는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또는 산림들의 속삭임을 연상시킨다”고, 에르테라인은 “시끄럽게 뛰노는 시골의 건강한 아이들을 연상시킨다”고 했으며, 조지 그로브도 이 악장을 두고 “목가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한 적이 있다. 1악장처럼 D음이 오르겔풍크트로 깔린 채 시작하는데, 이 D음은 어떻게 들으면 종소리같이 들린다. 9마디부터 첫 동기가 복잡하게 얽히며 탁월한 주제 전개를 보인다. 28마디부터 등장하는 B파트(28마디~51마디)는 A장조로, A파트의 전원적인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A를 재현한 후(51마디~78마디) 등장하는 C파트는 G장조로, 3성부의 대위법적인 처리로 시작하여 100마디까지 진행하다 101마디부터 화려한 경과구로 꾸며진다. 112마디에서 D장조의 딸림음 위에서 빛나게 상승하다 페르마타로 잠깐 종지한 후 A파트로 다시 돌아간다. 192마디에서 Piu Allegro quasi Presto로 찬란한 코다를 선보이며 207마디에서 ff로 최고조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D장조의 딸림 7화음을 거쳐 으뜸화음으로 종지하며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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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Piano Sonata No.8 in C minor, Op.13 "Pathetique")

작곡 시기 : 1797년에서 1798년

출판 : 1799년. 빈의 에데(Eder) 출판사.

헌정자 : 카를 리히노프스키 후작

(베토벤 초기 소나타의 정점을 이루는 걸작으로, 극적이고 아름다운 악상 때문에 더욱 널리 알려졌다. 연주 기술 또한 비교적 어렵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즐겨 연주한다.

작곡 연대는 단정할 수 없지만 1798년 이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노테봄에 따르면 론도 악장은 원래는 피아노를 위해 구상한 것이 아니라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해 구상한 곡이었다고 한다. 스케치는 Op.9-1, Op.9-3(둘 다 현악3중주곡)의 스케치에 섞여 있다.

이 소나타를 출판했을 때 초판 표지에는 「Grande sonate pathétique(비창적 대 소나타)」라고 적혀 있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작곡가가 직접 표제를 붙인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며, 이후의 작품 중에는 Op.81a의 《고별 소나타》가 있을 뿐이다. ‘pathétique', 즉 ’비창‘이라는 말이 당시 베토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살펴본다면, 베커의 주장처럼 지금까지 소나타에 부분적으로만 나타나던 베토벤 특유의 감정이 여기서는 분명하게 결정체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창한 표제에 비해 아직 내용상으로는 후기에 나타나는, 정신을 뿌리째 뒤흔드는 비극적인 요소와는 거리가 멀다. 스코트는 이 곡을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교한다. 그는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을 ’청춘의 애상감‘이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어쨌든 애써 표제를 붙여서 듣는 이들에게 자신의 주장과 곡의 내용을 전달하려는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은, 당시의 베토벤이 이미 하나의 음악에 뭔가 확실한 의미를 담으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표제에서 드러나는 베토벤의 자신감은, 젊은 베토벤의 패기만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나타가 세상에 나온 1799년은 1800년을 예비하는 해이며, 1800년 이후 베토벤의 격동하는 삶을 생각하면 이 소나타는 그 삶에 대한 전주곡처럼 보인다.

자필악보는 현재 사라진 상태. 초판은 1799년 가을, 에데 사에서 출판했다.

헌정자인 카를 리히노프스키(Karl Lichnowsky. 1756~1814) 후작은 대단한 음악애호가로 모차르트와도 진했으며, 젊은 베토벤의 재능을 일찍부터 발견하여 그를 자신의 저택에 머무르게 하였다. 이 곡 외에 3개의 피아노 3중주곡 Op.1, 「교향곡 제2번」, 피아노 소나타 Op.26도 후작에게 헌정했다.

시종일관 명쾌한 선율과 복잡하지 않은 화음으로 일관하지만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라(시작부터 fp로 내려치는데다 감7화음의 효과적 사용이 많은 인기를 끌은 모양이다) 당시 빈의 음악학도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악보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고 한다.)

 

1악장 (1.Grave 4/4 - Allegro di molto e con brio 2/2) (C minor)

(10마디의 서주를 가진 소나타 형식. fp로 울리는 비극적인 느낌의 그라베Grave 서주에는 기본 동기(C-D-E♭)가 들어 있다(이 동기는 나중에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교향곡 6번에 사용한다). 첫마디부터 (앞으로 지속적으로 쓰일) 감7화음(F#)을 내놓으면서, 감7화음의 교과서적인 용례를 보여준다. 이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는 이런 예가 없었지만,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KV.457에 이런 선례가 있다(바흐 파르티타 2번 BWV 826과의 연관성도 제기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세 곡 모두 C단조다). 서주는 마지막 부분에서 급격한 반음계적 하강을 보이며 알레그로 디 몰토 에 콘 브리오Allegro di molto e con brio의 주요부로 향한다. C단조의 1주제는 트레몰로에 실려 스타카토로 상승하는 격렬한 주제이며, 이어 주로 1주제에 토대를 둔 기복 심한 경과부가 이어진다. 2주제는 병행장조인 E♭장조가 아니라 E♭단조로 시작한 뒤 40마디 가까이 지나서야 E♭장조가 나온다. 이 두 개의 주제 중 어느 것이 진정한 2주제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분분하지만, 동일 음계 위의 장ㆍ단조에 의한 두 개의 주제를 두는 것은 이미 Op.2의 소나타 1악장에서도 나타나며, 그 경우 모두 주제적인 성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이 두 개의 주제는 앞의 것이 화려하고 다듬어지고 유동적인 데 비해 뒤의 것은 막연한 리듬감을 차츰 고조시켜 가는 스타일로, 대단히 효과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계속해서 명쾌하게 흐르는 느낌을 선율을 연주하며, 그 후 1주제에 의한 코데타로 이어져 제시부가 끝난다.

발전부에서는 먼저 그라베가 G단조로 나타나고 다시 알레그로로 넘어가 1주제를 전개한다. 조성은 E단조로 시작해 B단조를 거쳐 D단조로 나아간 후 반음계가 붙는다. 발전부에도 그라베 음계가 나타나는 것이 특이하다. C단조는 재현부 직전에 돌아온다.

재현부에서는 1주제를 재현한 후 조금 길어진 전개 부분이 오며, 2주제 첫 부분은 F단조로, 둘째 부분은 C단조로 재현한다. 코다에서는 짧은 그라베의 재현 후 1주제로 간결하게 마무리한다.)

 

2악장 (2.Adagio cantabile 2/4) (A flat major)

(A-B-A의 3부 형식. 73마디의 짧은 악장이지만 베토벤의 느린 악장 중 가장 우아한 악장으로 손꼽힌다. 나겔(W. Nagel. 1863~1929)이 베토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것이라 평한 악장이다. 주제는 3성으로 중성(비올라)을 반주로 삼고 상성(바이올린)과 베이스(첼로)가 선율적인 흐름을 취한다. 짧게 말해 현악 3중주의 구도와 비슷하다. 베토벤 초기의 느린 악장 중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선율을 들려준다(전문 용어로 ‘가요성’이라 한다. 선율선은 C-B♭-E♭-D/C-E♭-A♭-B♭-E♭). 베토벤이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을 작곡한데는 신형 피아노인 발터제 피아노의 성능을 자랑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주제는 약간 형태를 바꾸어 반복하는데, 반복할 때는 4성으로 나타난다. F단조의 짧은 부주제는 주요 주제보다 좀 더 폭넓은 음역에 걸쳐 있으며 바이올린의 선율을 연상시키는 단성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주제의 재현을 거쳐 A♭단조의 2주제가 나온다. 조성 자체는 우울하지만 셋잇단음표가 우울한 기분에 약간의 생동감과 활력을 부여한다. 2주제의 셋잇단음은 주제로 복귀한 이후에도 계속 반주부의 리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코다는 딸림음인 E♭으로 시작해 점차 긴장을 풀고 조용히 끝을 맺는다.)

 

3악장 (3.Rondo. Allegro 2/2) (C minor)

(A-B-A-C-A-B-A-코다의 전형적인 론도 형식. 1악장의 비장함은 덜고, 열정을 더한 악장이다. 속도감 있는 C단조의 1주제로 시작하는데, 이 주제는 1악장 그라베 및 E♭단조 주제와 동기 상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매끈하고 아름다운 선율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이 주제의 느낌은 3악장 전체를 지배하는 독특한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주제를 확실히 매듭을 지은 후 짧은 경과부로 들어가며, 이어 정서를 순화시키는 E♭장조의 2주제가 나온다. 론도 주제가 복귀한 후 81마디부터는 A♭장조의 감성적인 3주제가 나오지만(대위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8분음표 차이로 오른손과 왼손이 엇갈린다), 이 주제의 후반부는 론도 악장에서 가장 격렬한 부분이다. 다시 1주제로 돌아간 후 2주제가 복귀하면 주제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2주제의 복귀는 6도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셋잇단음표 출현부분을 반복한 다음 제3요소인 E♭장조 부분도 C장조의 딸림음으로 시작(156마디), 후반부는 E단조를 거쳐 B단조로 이어지고 1주제가 C단조로 돌아온 후 이어지는 코다는 하강 악구에서 페르마타 한 후, 202마디에서 짧게 A♭장조로 론도의 주제를 회고한 후 C장조로 돌아가 돌연(pp→ff) F# 감7화음(F#/A/C/E♭)을 등장시킨 후 이것을 C단조 I로 해결하고 그대로 마친다. 감7화음은 이 곡의 처음과 끝을 하나로 묶으면서, 이 곡을 열고 닫는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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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협주곡 (Cello Concerto in B minor, Op.104)

작곡 시기 : 1894년 11월 착수, 1895년 2월 완성

작곡 장소 : 뉴욕

헌정자 : 첼리스트 하누슈 비한

악기 편성 : 독주 첼로,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3, 트럼펫 2,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트라이앵글, 현악 5부

(“예술을 갖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민족은 아무리 작더라도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희망을 가집시다.”

- 드보르작. 브람스에게 한 말 중에서)

(드보르작은 첼로 협주곡을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작곡했다. “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중음역은 훌륭하지만 저음역은 웅웅거리기만 하며 고음역은 코 먹은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라 할 정도로 첼로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던 드보르작이지만, 습작에 가까운 A장조 첼로 협주곡(1865)과 이 B단조 첼로 협주곡을 완성했으며, 특히 B단조 첼로 협주곡은 역대 최고의 첼로 협주곡으로 꼽힌다. 어쩌면 남다른 프로 정신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협주곡은 “첼로는 그다지 민첩한 악기가 아니다”라고 한 베를리오즈의 주장을 반박하는 최초의 협주곡으로 꼽을 수 있다. 생각해보라. 첼로 같이 무겁고 둔중한 악기에게서 민첩하고 섬세한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 협주곡이 명곡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첼로라는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용적인 면에서도 역대 최고의 협주곡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지만.

미국에서 작곡을 진행하던 중, 한 때 사랑했던 여인 요세피나의 타계 소식을 접한 드보르작은 그녀가 좋아했던 자신의 가곡을 2악장 중간부에 삽입했다. 그는 이 곡에 인디언과 흑인의 민요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편지로 그것을 반박한 일이 있지만, 곡이 보헤미안의 정서와 미국 민요의 정서를 같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드보르작은 곡을 완성한 후 1895년 6월에 체코 출신 첼리스트 하누슈 비한의 충고로 마지막 악장 독주 부분을 수정하였고, 1896년 초연 후에 프라하에서 마지막 60마디를 고쳤다(이 때 3악장에서 클라리넷이 요세피나가 좋아하던 가곡 선율을 회상하는 부분도 삽입한다). 이 때 작곡가는 자신이 미국에서 접한 오페레타 작곡가 빅터 허버트의 첼로 협주곡을 참고해 그 곡의 첼로 고음 기교와 관현악 편성(세 대의 트롬본)을 자신의 곡에 차용했다. 작곡가는 세 대의 트롬본을 사용해도 트롬본의 음향이 첼로의 음향을 누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허버트의 첼로 협주곡을 통해 알게 되었고, 망설임 없이 그의 악기 편성을 차용했다고 한다.

이 곡의 초연 과정에는 잡음이 많았다. 드보르작은 비한이 이 곡을 초연하기를 바랐지만, 런던 필하모니 측은 초연 독주자로 레오 스턴을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결국 작곡가는 1896년 3월 19일 런던 필하모니, 레오 스턴과 초연을 치른다. 이 일로 인해 작곡가와 비한의 관계는 크게 틀어지게 되었지만, 헌정자는 결국 비한으로 정해졌다. 드보르작은 초연을 치른 후에도 이 곡을 연주할 진짜 적임자는 비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애초에 드보르작이 첼로 협주곡을 쓰게 된 최초의 계기가 바로 보헤미아에서 접한 비한의 첼로 연주였다.

브람스는 이 곡의 악보를 접하자마자 곡의 진가를 알아챘다. “이런 첼로 협주곡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먼저 이런 작품을 썼을 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그 당시 브람스에게는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1악장 (1.Allegro 4/4) (B minor)

(클라리넷이 저음으로 B단조의 1주제를 제시한다. 이 주제는 곧 확대되어 곧 투티로 이어진다. 관현악이 1주제와 2주제의 제시를 완전히 마치고 난 후에야 독주 첼로가 등장하는데, 독주 첼로는 1주제를 quasi improvisando(즉흥연주 풍으로), B장조로 제시한다. 첼로는 곧이어 D장조의 2주제를 제시한다. 발전부는 D장조로, 주로 1주제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재현부는 B단조가 아닌 B장조로 1주제를 재현하며, 2주제를 재현부 첫머리에 넣고 있어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독주 첼로는 아주 뛰어난 기교를 사용하고 있으며, 마지막에 가서는 연주하기 어려운 높은 B옥타브를 구사한다.)

 

2악장 (2.Adagio ma non troppo 3/4) (G major)

(드보르작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 요세피나 체르마코바를 위해 만든 중간 악장에서도 첼로의 뛰어난 기교는 유감없이 드러난다. 작곡가는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던 중 요세피나의 사망 소식을 접했고,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을 이 악장 속에 담았다.

주제를 처음 제시하는 것은 클라리넷인데, 9번 교향곡 2악장처럼 가슴 저미는 멜로디를 들려준다. 망향의 감정은 시대와 사상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던 작곡가에게 그것은 창작 활동의 원천이 되었다. 드보르작은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중간부에서 작곡가는 요세피나가 특별히 좋아했던 가곡인 <나 홀로 내버려 두세요>(Op.87, 1882)의 선율을 차용한다. 마지막에는 첼로 혼자 두드러지는 구절이 있는데, 더블 스탑 포지션에서 왼손의 개방현 피치카토를 사용하거나, 중음주법을 자유로이 구사해야 하며, 마지막 두 마디에서 볼 수 있듯 기교적으로 매우 어려운 자연적인 하모닉스를, 그것도 아주 작은 음량으로 사용하도록 지시하는 것으로 알 수 있듯 첼로에게 고난이도의 기교를 요구한다.)

 

3악장 (3.Finale. Allegro mderato 2/4 - Andante - Allegro vivo) (B minor)

(자유로운 론도 형식. 저음현의 유니즌 위에서 튜바가 기백 있는 B단조의 악구를 연주하면 곧 투티로 이어진다. 그리고 첼로가 나타나 튜바의 악구를 본격적으로 연주한다. 마지막 전투에 나서는 영웅의 기백이라고 해야 할까. C장조의 모데라토 구절은 전쟁이 끝나고 평화를 되찾은 영웅의 만년일지도 모른다. 클라리넷이 1악장 주제를 장조로 회상하고 난 후, 마지막에 독주 첼로는 몇 개의 악기와 함께 대화를 한다. 아주 느리게 A장조에서 C#장조, B♭장조를 옮겨 다니며 자신의 인생 역정을 회상한다. 그 과정에서 클라리넷은 요세피나가 좋아했던 선율을 다시 한 번 부른다. 다른 악기들은 이제 하나둘 물러나고, 이제는 현악기군의 피치카토와 독주 첼로만이 남는다. 카잘스의 말대로 독주 첼로의 숨이 완전히 소진되면, 오케스트라가 알레그로 비보로 힘찬 종결구를 연주한다. 하늘이 열리고 숨을 거둔 영웅의 영혼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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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4중주 4번 (String Quartet No.4 in C chord, Sz.91)

작곡 시기 : 1928년 7월에서 9월 사이 (추정)

작곡 장소 : 부다페스트

헌정자 : 프로 아르테 4중주단

(“현악4중주곡 제4번은 실제로 바르토크의 가장 위대하고 심오한 업적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이에 가까이 도달해 있다. ……일단 그 비밀이 발견되면, 금세기에 이처럼 의미심장하고 보람된 작품은 드물다.” - 헐시 스티븐스)

(헐시 스티븐스가 버르토크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인정한 현악 4중주곡 4번. 전체적으로 A-B-C-B'-A'와 같은 가교형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두 개의 스케르초 악장이 중간의 느린 악장을 감싸고 있다(5번에서는 반대로 두 개의 느린 악장이 스케르초를 감싸고 있다). 이에 따라 3악장의 중간부가 곡의 중심이 된다. 작곡가의 무르익은 대위법적 기법과 구조적 통합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 그리고 다양한 음악적 소재가 복합적으로 움직이는 명곡이다. 이 곡의 카논 작법은 한두 마디로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한데, 거의 모든 음이 고도로 논리적인 전개에 따라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는 푸가나 푸가토가 하나도 없다. 오직 순수한 대위법적 기교를 동원해 곡을 만들고도 대위법 진행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푸가의 유혹에 전혀 빠지지 않은 셈이다.)

 

1악장 (1.Allegro 4/4)

(첫머리의 동기는 제1바이올린의 주선율에 대하여 제2바이올린이 단 9도로부터 완전 4도로의 사행진행을 하고, 첼로는 대조적으로 6도 음정 연접을 통한 상행진행을 하는 독특한 진행을 취한다. 곡을 통일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7마디에서 등장한다. 주요 동기는 C#에서 E♭으로 상행한 후, C로 다시 하행한다. 동기는 무한한 전위와 음정적 확대 과정을 거치며 곡 전체를 지배한다. 2주제는 민요풍의 바이올린 연주로 제시하고 발전부와 재현부를 거쳐 긴 코다를 맞는다. 종지에서는 마르카토를 사용하여 음 하나하나의 강한 인상을 남긴다.)

 

2악장 (2.Prestissimo, con sordino 6/8)

(2악장과 4악장은 쌍둥이 스케르초(Gemini Scherzo). 같은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반음계적인 2악장은 글리산도로 연주하는 데 반해, 온음계적인 4악장은 바르톡 특유의 피치카토로 연주하다. 둘의 느낌은 너무 이질적이라, 둘이 같은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유추하지 못할 정도다. 같은 얼굴을 한 채 다른 목소리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쌍둥이의 모습이라 해야 할까. 현은 여기서 약음기를 부착하고 연주하며, 개시부의 주악상을 반음계적인 패시지로 반복한다. 2악장과 4악장의 세부를 들여다보면, 2악장이 반음계를 E에서 B까지 상행하는 부분을 4악장은 옥타브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고도로 논리적인 대위법적 과정은 2악장에서도 변함이 없는데, 대위법적 전개에 따라 움직이던 7개음이 G음과 C#음 사이의 지점으로 모두 모여드는 71~72마디의 귀절은 정말 경이롭기 짝이 없다. 카논 작법에서도 작곡가는 훌륭한 재주를 보여주는데, 4대의 악기가 장2도 간격으로 움직이는 카논은 그 귀절이 포함하는 온음계와 증4도로 인해 색다른 느낌을 준다.)

 

3악장 (3.Non troppo lento 4/4)

(전곡을 통틀어 가장 중심에 놓이는 악장으로 앞뒤의 악장이 대칭적으로 놓여있다. 비브라토 없이 연주하는 첼로의 마쟈르 민요적인 전개가 첫머리를 열면 다른 악기들은 배분법에 따라 공통음 없이 화성을 진행한다. 중간부에 ‘새의 노래’가 들어 있는데, 1바이올린의 고음으로 연주한다. 오직 이 중간부만이 다른 악장들과 재료를 공유하지 않고 독자적인 소리를 낸다. 그 뒤 1부가 돌아온다.)

 

4악장 (4.Allegretto pizzicato 3/4)

(악장을 피치카토로 진행한다. 차이코프스키가 피치카토 악장을 만든 선례가 있지만 버르토크의 피치카토는 그가 발전시킨 주법의 확대로 인해 고유의 음악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여기서 현악기들은 다양한 피치카토 주법을 사용하는데, 대표적으로 손톱 피치카토와 스냅 피치카토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중 현을 튕겨 지판에 강하게 부딪히도록 하는 스냅 피치카토는 ‘버르토크 피치카토’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악상은 2악장의 악상을 온음계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5악장 (5.Allegro molto 2/4)

(1악장의 모티브를 대위법적으로 재생산하는 피날레 악장. 강력한 중음주법의 유니즌으로 시작한다. 1악장의 음형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온음계적ㆍ대위법적으로 변형한 음형을 사용하는데, 그 변형의 과정이 복잡해 듣는 것만으로는 음형을 바로 확인하기가 힘들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1악장 주요 동기의 전위형을 더 확대한 형태가 5악장의 주요 동기로 쓰인다. 춤곡 풍의 리듬도 1악장과 5악장의 구조적 연결을 쉽게 눈치채기 힘들게 한다. 이 주요 동기도 계속 확대와 전위 과정을 거친다. 다만 마지막 악장 중간에서 기본 모티브의 원형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 모티브는 악장 마지막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옷을 갈아입으며 점점 더 화려하게 변하던 모티브가 원래 형태로 돌아와 끝을 맺는 방식은 스티븐스가 지적하듯 신데렐라의 모습과 유사하다. 열두 시가 지나고 다시 재투성이 처녀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신데렐라 말이다. 그러나 버르토크의 모티브는 결코 재투성이 처녀처럼 볼품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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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엘렉트라> (Opera "Elekta", Op.58)

작곡 시기 : 1906년 6월 착수, 1908년 완성

초연 : 1909년 1월 25일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에른스트 폰 슈흐의 지휘로 이루어짐.

출판 : 1908년

악기 편성 : 플루트 3, 피콜로 1, 오보에 2, 잉글리시 호른 1, 헤켈폰 1, 클라리넷 4, E♭ 클라리넷 1, 베이스 클라리넷 1, 바셋 호른 2, 바순 3, 더블바순 1, 호른 4, 바그너 튜바 4, 트럼펫 6, 베이스 트럼펫 1, 트롬본 3, 베이스 트롬본 1, 튜바 1, 팀파니 6~8(주자 2명), 기타 각종 타악기, 제1 바이올린 8, 제2 바이올린 8, 제3 바이올린 8, 제1 비올라 6, 제2 비올라 6, 제3 비올라 6, 제1 첼로 6, 제2 첼로 6, 더블베이스 8, 하프 2(오레스트와의 재회 장면과 피날레에서는 비올라 중 6대가 바이올린 군에 가세)

대본 : 후고 폰 호프만슈탈(독일어)

등장인물 :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메조 소프라노), 왕비의 딸 I 크리소테미스(소프라노), 왕비의 딸 II 엘렉트라(소프라노), 왕비의 동생 오레스테스(바리톤), 왕비의 불륜상대 아이기스토스(테너), 오레스테스의 늙은 하인(베이스), 왕비의 심복 시녀(소프라노), 몸종(소프라노), 젊은 하인(테너), 나이든 하인(베이스), 감시하는 여자(소프라노), 시녀 5명(메조 소프라노 2, 알토, 소프라노 2), 남녀 하인

때와 장소 : 고대 그리스, 미케네 성

 

서설

(이 《엘렉트라》에 대하여 슈트라우스는 오페라라고 적지 않고, 「후고 폰 호프만슈탈에 의한 1막 비극」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그러나 현재는 보통 오페라로 불리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이 협력한 오페라의 사실상 첫 번째 작품이다. 슈트라우스가 유대계의 오스트리아 시인인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sfhal, 1874~1929)과 처음 만난 것은 슈트라우스가 《영웅의 생애》를 지휘하기 위하여 파리에 있던 1900년 3월 초이다. 그 때 만나러 왔던 호프만슈탈은 발레작품으로 슈트라우스와 협력하고 싶다고 얘기를 꺼내며, 11월에는 거의 완성한 발레 대본을 보냈다. 슈트라우스는 이것에 흥미를 나타냈지만, 오페라 《화재》의 작곡에 쫓기고 있는 때이기도 해서 발레에 착수하지 않고, 오페라 쪽에서의 협력을 바랬다. 그런 다음에 이 두 사람 사이에 오페라에 관한 편지 교환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 무렵 호프만슈탈이 오페라화도 의식하여 쓰기 시작한 대본 중 하나에 그리스 3대 비극시인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소포클레스(Sophocles, B. C. 495~406)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엘렉트라』가 있다.

호프만슈탈은 빈에서 태어나 빈 대학에서 수학한 사람으로 어린 시절부터 문학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 대학 시절에 이미 희곡과 시를 차례차례 발표하고 있었다. 그 것도 단순히 독일문학뿐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 문학과 그리스 고전에도 정통하고 있었으며, 무대예술과 음악에도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호프만슈탈의 『엘렉트라』는 1903년 10월 6일 베를린의 소극장에서 연극으로 초연되었다. 그 때에 연출을 담당했던 것이 기예의 막스 라인하르트(Max Reinhardt, 1873~1943)로, 드디어 라인하르트, 호프만슈탈, 슈트라우스라는 3명의 강력한 협력체제가 완성되어, 《장미의 기사》와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에서 훌륭한 성과를 올리게 된다.

어쨌든 베를린에서의 《엘렉트라》 초연은 새롭게 슈트라우스의 주목을 끌었다. 그것은 이 연극이 오페라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을 뿐 아니라 슈트라우스 자신도 학생 시절에 소포클레스의 《엘렉트라》의 일부에 음악을 붙인 적도 있고, 『엘렉트라』에는 무관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살로메》가 완성된 후인 1906년에 들어와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은 『엘렉트라』의 오페라화를 둘러싸고 면밀한 상담을 나누게 된다. 그것은 1907년 12월 말에 호프만슈탈이 이 일로 베를린의 슈트라우스를 방문하고 나서 한층 더 열기를 띠게 된다. 1908년 6월에 대본의 최종원고가 슈트라우스에게 도착했다. 슈트라우스는 이미 작곡에 착수하고 있었는데, 8월에는 가르미슈에서 전체를 완성하고, 9워 22일에 총보를 완성했다. 초연은 《살로메》 때와 마찬가지로 에른스트 폰 슈흐의 지휘에 의해 1909년 1월 25일에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극장에서 상연되었다. 이것은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또 그 반면에 슈트라우스풍이 아닌 《엘렉트라》에 접하고 싶다는 소리도 있었다. 당시에도 아직 바그너의 음악을 의문시하거나 부정하거나 하는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호프만슈탈도 바그너를 싫어해서 《엘렉트라》는 바로크풍 또는 모차르트풍의 오페라로 만들자고 거세게 요구한 적이 있다. 이 점에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 간의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 결국 호프만슈탈은 바그너에 기반을 둔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로 타협한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일종의 유연한 분위기가 있어 두 사람이 협동한 다음 오페라인 《장미의 기사》는 모차르트적이고, 또한 동시에 바그적이며, 슈트라우스적인 작품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호프만슈탈은 점점 슈트라우스의 음악에 동조해 간다.

《엘렉트라》의 음악은 불협화음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여 극적인 박력, 공포 분위기, 복수의 정열을 교묘하게 표현해 간다. 화성적으로는 무조성을 종종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 슈트라우스 특유의 달콤한 감성이 때때로 나타난다. 관현악법도 색채적이며, 극을 진행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합창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슈트라우스는 이 《엘렉트라》를 통해 바그너풍 극을 응축시키는 데 성공하며, 그 다음 새로운 경지로 이동한다.

엘렉트라의 테마는 ‘광기’다. 무대에 오른 어느 누구도 광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엘렉트라는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 클뤼템네스트라와 어머니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증오하고, 그 둘을 죽이려 하지만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무력한 신세에 완전히 갇혀 있다. 클뤼템네스트라는 딸 엘렉트라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불안해하고 의심을 감추지 못한다. 세 주연 중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크리소테미스는 착한 심성의 소유자이지만, 그녀 또한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두서없이 사방을 뛰어다닐 뿐, 극이 진행될수록 짙어지는 광기를 환기시킬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광기는 곡의 배면에 깔린 천둥소리와도 같다. 어느 누구도 이것을 걷어낼 수 없다.

슈트라우스가 쓴 모든 곡을 통틀어 최대 편성을 보여주고 있는 이 오페라는 극단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다. 빛(환희)과 어둠(증오)의 대조가 너무 선명해 때로는 부담스럽다. 관현악 편성은 최대 규모를 자랑하면서도(관악기 개수만 40여개에 달한다) 정작 성악진은 기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족 구성원(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 어머니의 불륜 상대인 아이기스토스, 딸 엘렉트라와 크리소테미스, 그리고 아들 오레스테스)이 오페라를 지배하다시피 한다. 합창단이 활약하는 부분도 거의 없으며 오레스테스의 양육자와 시녀들을 비롯한 이들은 조연으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프로이트의 세례를 받은 이 오페라에서 슈트라우스와 호프만슈탈은 ‘가족의 해체’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던 대가족은 산업사회가 가져온 핵가족에 그 자리를 물려주게 된다.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이고 불륜 상대인 아이기스토스와 놀아나는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모습은 막장 드라마를 연상케 하지만, 이 또한 이혼과 성관념에서 자유로워진 현대 사회의 일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어머니를 증오하고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엘렉트라의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접할 수 있지 않은가? 슈트라우스는 소포클레스의 냉엄한 비극에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학을 도입한 가족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신화는 겉치레일 뿐, 결국 오페라의 중심 소재는 ‘가족의 해체’인 셈이다.)

 

내용 전개

(엘렉트라는 아가멤논 왕과 클리타임네스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왕이 트로이 지방을 원정하는 중에 아내는 아이기스토스와 불륜관계를 맺는다. 두 사람은 왕이 돌아오자 욕실에서 왕을 죽여 버린다. 엘렉트라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지점에서 극이 시작한다. 4마디의 강렬한 D단조 전주와 함께 막이 오른다. 곧바로 하녀들이 등장해 엘렉트라에 대해 말한다. 처음의 두 하녀는 엘렉트라를 몰래 비난한다. 세 번째 하녀만이 엘렉트라에게 동정적이다. 하녀들이 사라지고 나면, 엘렉트라가 등장해 길고 비통한 모놀로그를 부른다. 엘렉트라는 하루빨리 어머니와 아이기스토스의 시체 위에서 춤추기를 바라고 있다. 거기에 여동생 크리소테미스가 찾아와 섬뜩한 거동의 엘렉트라를 사람들이 유폐하려는 것을 알려준다. 그 후에 양심의 가책으로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해 피로해진 어머니가 하인과 함께 찾아온다. 엘렉트라는 복수심이 담긴 수수께끼 같은 말을 어머니에게 하며, 동생 오레스테스를 암살하려고 한 것도 비난한다. 그러나 심복 시녀의 귓속말을 듣고 어머니는 급히 서둘러 돌아간다(여기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웃는 연주도 있다). 거기에 크리소테미스가 와서 남동생이 말에 치여 죽었다고 전한다. 엘렉트라는 남동생 대신에 여동생과 협력하여 복수하기로 하지만, 마음 약한 여동생은 도망가 버린다.

극의 음악적 전개는 엘렉트라의 「나는 홀로!(Allein!)」로 시작하는 길고 비통한 모놀로그로 출발하는데,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서 점점 고조되는 박력이 인상적이다. 엘렉트라의 모놀로그는 이어 여동생과의 2중창과 어머니와의 대화, 그리고 엘렉트라의 수수께끼 같은 말로 이어진다. 이 부분은 전체의 1/3을 차지하는 방대한 규모로, 독립적인 파트로도 볼 수 있을 정도다. 교향시 작곡가로 활약한 슈트라우스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엘렉트라는 혼자서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궁전에 살며시 들어가는데, 죽은 줄 알았던 오레스테스가 있다. 오레스테스를 양육했던 나이든 하인이 비밀을 지켜 목적을 달성하도록 두 사람에게 주의를 준다. 오레스테스의 죽음을 전한 것은 일종의 계획이었던 셈이다. 두 남자는 궁전에 들어가고, 드디어 안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의 비명이 들리며, 여자들이 도망쳐 나온다. 엘렉트라는 안으로 들어가 아이기스토스도 죽여버린다. 사람들은 아이기스토스의 죽음을 기뻐하며, 오레스테스를 찬양한다. 광기에 완전히 함몰되어버린 엘렉트라는 피날레를 장식하는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춤을 다 춘 그녀는 쓰러져 죽는다. 크리소테미스가 궁전의 문을 두드리면서 오레스테스의 이름을 부르며 극은 끝을 맺는다.

죽은 줄 알았던 남동생과 재회하는 장면은 매우 긴장감이 높으며, 두 사람의 감정적 고조를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복수의 장면은 숨 막히는 속도감으로 가득하다.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이기스토스의 외침은 정말 살려달라는 외마디 비명처럼 사실적이다. 둘이 죽고 나면 사람들은 오레스테스를 찬양하고, 크리소테미스가 달려와 오레스테스가 목적을 이루었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엘렉트라는 이미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녀는 무엇인가에 완전히 홀려버렸다. 엘렉트라는 환희에 들떠 춤을 추다가 죽고, 크리소테미스가 궁전의 문으로 달려가 오레스테스를 외쳐 부르는 장면에서는 ‘운명’의 동기와 엘렉트라의 동기가 뒤섞인다. 그리고 팀파니의 둔탁한 타격과 리타르단도로 극적인 감정을 한껏 끌어 모은 상황에서 마지막 화음을 fff로 연주하며 극은 끝난다.)

 

후일담

(슈트라우스는 이 오페라에 대해 아주 중요한 말을 남겼다. 1939/40 시즌, 카라얀은 베를린 국립가극장에서 <엘렉트라> 공연을 마치고 난 다음날 슈트라우스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 슈트라우스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이 작품으로부터 이미 오랫동안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당신은 3개월이나 이 작품에 집중해 왔다. 과연 누구의 해석이 옳은 것인가? 바로 어제 당신이 행한 연주대로 하는 것이 현재의 진실이다.” 그러나 이런 말도 남겼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후 당신의 생각 역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날레에 대한 조언을 덧붙였다.

“피날레는 다시 인간으로서 해방됨을 기뻐하는 디오니소스에의 찬가이므로 사정없이 몰아쳐야 한다.”)

 

참고문헌

음악지우사 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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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 <영상> 1집

음악 2014. 1. 12. 22:26

<영상> 1집 (Imeges, Livre I. L.110)

작곡 시기 : 1904년 착수, 1905년 완성

작곡 장소 : 파리

(작곡가는 1집을 완성한 뒤 출판업자 뒤랑에게 보낸 편지(1905년 9월 11일)에서 “이 곡은 슈만의 왼쪽, 쇼팽의 오른쪽에 자리할 것”이라 주장하며 자신감을 피력했다. <피아노를 위하여>에서 출발해 <판화>를 거치며 발전한 드뷔시의 피아노 음악 양식은 이 <영상>을 통해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다. 드뷔시 특유의 미묘한 선율선과 색채에 대한 장인성, 그리고 정확한 뉘앙스에 대한 작곡가의 섬세한 지시사항은 연주가들에게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드뷔시는 프레이징을 과장해 자신의 지시사항을 어기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는데, 정해진 규칙 없이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은 드뷔시의 음악이 사실은 규칙적이고 논리적인 구조와 액센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드뷔시가 자신의 지시사항을 준수해 줄 것을 당부한 것도 이해가 간다.)

 

1곡 <물에 비친 그림자> (1.Reflets dans l'eau. Andantino molto 4/8)

(중심음 D♭. 드뷔시와 라벨이 ‘물’이라는 주제에 집중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자연 현상을 자신의 상상력을 통해 변형 — 드뷔시는 이것을 “자연과 상상력간의 대화”라 불렀다 — 시킨 두 작곡가에게 일렁이는 물의 흔들림은 아주 좋은 소재였다. 지나치게 복잡한 현상은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을 방해한다. 단순한 현상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그것을 음악화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들여 현상에 집중한다. 초인적인 인내심 없이는 힘든 일이지만 드뷔시는 그 힘든 과정을 거쳐 비로소 예술성과 장인성이 조화를 이룬 음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곡은 3도 없는 D♭장조의 5도로 시작한다. 주요 주제(A♭-F-E♭)는 화음 위에서 일렁이는 수면의 음화音化라 할 수 있다. 섬세하고도 대위법적인 짜임새가 불투명한 반음계와 만난다(9-10마디). 투명한 5음음계(D♭-E♭-F-A♭-B♭)가 병행 5도와 마주친다. 20마디에서 24마디에 걸치는 카덴차적 경과구(아르페지오)에서는 불투명함을 피해야 한다. 드뷔시 음악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페달링은 사실 음향을 불투명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은 양날의 칼이다. 즉 연주자는 적절한 페달링의 사용과 함께 투명하고 맑은 음향을 만들어야 한다. 아르페지오는 온음음계의 속화음 위에서 움직이다가 36마디에서 다시 첫 부분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오른손의 화음형은 전음음계의 아르페지오형으로 변한다. 49마디부터 물살은 지속적으로 일렁이며, 57마디의 f와 58마디의 ff로 크게 일렁이고 난 후 점차 잦아들며 상행 아르페지오로 갖가지 스펙트럼으로 부서지는 물살을 묘사한다. 72마디부터는 코다. 82마디에서 나타나는 오른손의 주선율 아르페지오형을 들으면 드뷔시가 주선율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알 수 있다. 이 선율형은 주제를 제시할 때와 완전히 다르게 들린다. 같은 음계라도 주법, 음고, 강세, 음색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점을 이 주제만큼 멋지게 제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제 일렁임은 거의 멈추고 여백이 점점 늘어난다. 백지 위에 점 하나를 찍는 것만으로도 큰 일렁임보다 더 큰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마지막 병행 3도에 이어 저음의 D♭음과 오른손의 높은 A♭ 옥타브가 물의 마지막 일렁임을 묘사하면서 곡은 끝난다.)

 

2곡 <라모를 찬양하며> (2.Hommage a Rameau. Lent et grave 4/8)

(프랑스의 대작곡가 장 필립 라모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드뷔시. 아주 엄숙하고 진지한 곡이며, <피아노를 위하여> 속 <사라방드>의 문제의식이 발전한 곡이다. 드뷔시는 18세기 사라방드 양식을 사용했지만 라모의 음악은 전혀 인용하지 않았다. 진정한 경의는 가장 뛰어난 작품을 써서 바치는 것이지, 경의의 대상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진 셈이다(후일 드뷔시가 죽었을 때, 오직 라벨, 스트라빈스키, 사티, 그리고 버르토크만이 드뷔시의 생각에 따라 드뷔시를 전혀 인용하지 않은 곡으로 추모의 감정을 전달했다). 첫머리에 쓰인 선법은 G#을 중심음으로 하는 그레고리안 8선법. 이어 프리지아 선법으로 주요 주제가 나타난다. 첫머리의 음계는 7마디에서 히포프리지아 선법으로 다시 나타나며, 4도 아래에서 반복한다. 죽은 사람과의 거리감을 느끼게 하는 데 중세 선법만큼 적절한 것이 어디 있느냐는 슈미츠의 지적은 매우 타당하다. 곡은 종적인 화성 축뿐 아니라 횡적인 대위법적 축에서도 교묘하게 발전하는데, 10마디에서 첫 마디에 대한 응답이 이루어지고, 변격 선법을 정격 선법으로 바꾸어 사용하기도 한다. 11~13마디를 통과해 다성적 층계로 발전하는 곡은 24마디에서 번쩍이는 광휘를 통해 고인의 영광을 다시 한 번 회상하고, 31마디부터는 조용히 숨을 죽인다. 38마디부터 곡은 중간부로 들어간다. 여기서는 바로크 시대의 서정 비극에서 보이는 초연하고도 신성한 분위기가 드러나야 한다. 이 감정은 43마디에서 51마디에 걸쳐 강해진다. 65마디부터는 코다. 코다의 마지막 부분, 도리안 음계 위에서 하강하는 화음은 관이 아래로 내려지는 느낌을 준다.)

 

3곡 <움직임> (3.Mouvement. Anime 2/4)

(16분음표의 셋잇단음으로 교묘한 반복을 표현한 곡이다. 동시에 8분음표 단위의 분절을 사용해 명료함(8분음표)과 역동성(16분음표)을 둘 다 얻어내고 있다. 음계는 중성적인 C장조를 선택했지만 점차 복조성적인 경향으로 나아간다. 앞의 두 곡과는 반대로, 이 곡의 초반 30마디에서는 페달 사용을 절제해야 한다. 명료함을 추구하는 곡의 특성상 페달은 절약하는 것이 좋다. 첫 30마디 동안은 페달을 매우 절약해야 하며, 30마디가 지난 후에야 비로소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때부터 음향은 기계적인 움직임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다. 34마디의 낮은 G음은 중간 페달로 눌러야 한다. 89마디부터 펼쳐지는 중간부에서 중심음은 F#음으로 바뀌는데, 이 음은 첫 파트의 중심음 C와 완벽한 반대축에 놓여 있다. 156마디부터 시작하는 코다에서 곡은 서서히 날아가는 느낌을 주면서 사라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움직임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코다의 음계는 C음과 F#음이 모두 들어있는 온음음계 C-D-E-F#-G#-A#.)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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