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교향곡만큼 유명한 서양 고전음악 레퍼토리는 많지 않다. 작곡된 지 2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어디선가 아홉 곡을 모두 연주하고 있다.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작곡가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당장 18~19세기만 생각해 보아도, 잊혀진 이후 지금까지도 연주조차 되지 않는 작곡가가 얼마나 많은가?), 정말 베토벤은 자신이 잃은 것 만큼 후세 사람들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은 작곡가라 할 수 있다.

 곡이 유명한 만큼, 그 곡에 바쳐진 글도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의 두 편의 글을 추려보았다. 한 편은 베토벤보다 한 세대 뒤의 사람인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글, 또 한 편은 베토벤이 살던 지역과 반대편에 살고 있는 20세기 후반 한국 시인의 시다. 두 편은 제각기 다른 품격을 갖추고 있으며, 둘 다 위대한 음악에 어울리는 훌륭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 베토벤에 대한 베를리오즈의 빠심을 느낄 수 있는 글 베토벤 교향곡 6번 4악장에 대한 베를리오즈의 글

 

 "나는 이 놀라운 곡에 대한 개념을 전하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당신은 이 곡을 들어보아야만 베토벤 같은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룩될 수 있는 음악적인 회화의 진실성과 숭고성의 높이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들어보라, 비와 함께 몰아치는 바람소리, 베이스의 귀가 먹을 것 같은 으르렁거림, 곧 닥쳐올 무서운 폭풍을 알리는 피콜로의 높은 휘파람소리를 들어보라. 폭풍은 다가와서, 퍼져간다. 거대한 반음계적 낙뢰가 제일 고음의 악기로부터 시작하여 오케스트라의 가장 바닥까지 샅샅이 훑어내리며, 베이스를 낚아채어 그것을 끌고 다시 올라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뒤집어버리는 회오리바람처럼 몸서리치고 있다. 그러자 트롬본이 튀어나오며, 팀파니의 뇌성은 두 배로 격렬해진다. 이제는 더 이상 비바람이 아니다. 이는 무시무시한 지각변동이며, 대홍수이며, 세상의 종말이다…

 얼굴을 가리우라, 불쌍한 고대의 대시인이여, 불쌍한 불멸의 사람들이여. 당신들의 너무도 순수하고, 너무도 조화로운 관습적인 언어는 소리의 예술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당신들은 명예롭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정복당했다. 당신들은 오늘날 우리가 선율, 화성, 여러 음색의 결합, 악기의 음색, 전조, 처음에는 서로 싸우고 그 뒤에는 포옹하는 흉내낼 수 없는 음향의 계획된 갈등, 우리의 귀에 울리는 놀라움, 우리의 기묘한 악센트가 영혼의 가장 감추어져 있는 깊은 곳까지도 공명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몰랐었기 때문이다."

(베를리오즈, 「A travers chants」(Paris, 1898), pp. 42-43. C. 팰리스카 영역. 그라우트 『서양음악사』4판 수록)

 

(2) 김기택의 시 <전원 교향곡>

 

 베토벤은 제자 리스와 함께 숲길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베토벤은 거의 청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베토벤은 숲 속의 모든 소리에 즐겁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새소리,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베토벤에게 오는 모든 소리는 더 이상 그의 귀에 살지 않고 이젠 아주 가는 떨림만 남아 그의 몸 곳곳으로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귀 기울일 때마다 실핏줄과 심장과 살가죽과 뼈마디들은 모두 청각이 되어 일제히 떨며 열렸다. 그 떨림 속에서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정원이,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들판이 자라고 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숲속 가득 울리는 소리를, 나뭇잎 흔들림에서 시냇물 흐름에서 고요하게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온몸이 떨며 열어줄 때마다, 그는 귀가 먹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오래오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소리가 깊어지면 귀찮은 귀를 버리고, 귀에 달라붙은 말과 소음을 버리고, 귀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 속으로 한 없이 들어갔다. 산책 도중에 어디선가 한가로운 목동의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리스가 탄성을 질렀다. 아! 너무…… 너무나, 아름다워요. 선생님, 들리시죠? 베토벤은, 그때, 가슴을 후려치며 불어닥친 폭풍우에 휘말려 온몸으로 그 거대한 힘을 견디어내느라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베토벤이 피리 소리를 듣지 못하자 리스는 스승이 완전히 청각을 잃었다는 걸 알았다. 리스가 슬픈 표정으로 스승과 같이 집에 돌아왔을 때 베토벤은 오히려 밝고 활기차게 말했다. 리스야, 이제부터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마. 곧이어 베토벤이 건반을 누르자, 귀보다 행복한 곳에서 사는 소리들이, 핏줄을 지나 손가락과 건반을 지나, 일시에 방안 가득 솟구쳐나왔다.

(김기택, 시집 『바늘구멍 속의 폭풍』, 1994,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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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6번 F장조 <전원> Op.68

영어 : Symphony No.6 in F major, Op.68 "Pastorale"

 

작곡 시기 : 1808년 여름 완성

작곡 장소 : 하일리겐슈타트와 빈

초연 연도와 장소 : 1808년 12월 22일, 빈의 안 데어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짐. 이 연주회에서는 교향곡 5번과 6번 뿐 아니라 피아노 협주곡 4번의 초연도 같이 치러짐.

출판 : 1809년

헌정자 : 로프코비츠 후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

악기 편성 : 피콜로(4악장),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4악장, 5악장), 트롬본 2(4악장, 5악장), 팀파니(4악장), 현악 5부

 

개설

우선 곡의 부제인 Pastorale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겠다. Pastorale은 전원적인 분위기를 극적이며 문학적인 연극과 시와 같은 작품에서 사용하며 음악적인 표현은 기악 또는 성악 작품에서 표현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음악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방 양치기들의 피리 소리를 모방한 곡으로, 6/8, 9/8, 또는 12/8박자로 자장가 분위기를 지니며, 유유히 흐르는 멜로디와 길게 지속하는 드로운 베이스(drone bass) 음이 특징이다. Pastorale은 명사형으로 쓰이는 것으로 전원곡, 목가곡, 그리고 전원극을 지칭할 때 사용하며, Pastoral은 형용사로 쓰이는 것으로 목가적인 분위기의 장면이나 시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이 곡의 주제 몇 개는 1806년의 스케치 노트에 적혀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 곡을 스케치하기 시작한 것은 1807 7월 전후로 보인다. 그리고 1808년 6월 경 그가 마음에 들어하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전체를 완성했다. 공교롭게도 이 곳은 그가 6년 전인 1802년에 요양 왔을 때 유서를 작성했던 장소였다. 

초연 때는 각 악장의 표제들이 오늘날의 그것들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으나, 다만 곡 자체에 《전원생활의 회상》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사본과 초판 악보에는 단순히 《전원 교향곡》(신포니아 파스토랄레. Sinfonia Pastorale)이라고 적혀 나왔다.

여기서 우리는, 베토벤이 왜 자연을 대상으로 《교향곡 제6번》을 썼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같은 시기에 날카롭게 대비되는 대조적인 성격의 작품을 자주 썼다. 즉 자신의 내면을 불태웠던 격렬한 《교향곡 제5번》을 작곡하고 나서 바깥으로 눈을 돌려 밝은 《교향곡 제6번》을 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비교론적으로 흥미를 끌 수 있겠으나, 곡의 특성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이 곡을 작곡하던 전후에 자연의 즐거움을 묘사한 음악이 유행하고 있었으며, 베토벤도 거기에 다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J. H. 크네히트(1752~1817)의 5악장 구성의 《자연의 음악 묘사》나 프라이슈테틀러(1768~1841), 클레멘티(1752~1832)의 작품이 베토벤에게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아울러 개인적인 사랑과 자연에 대한 애착도 빼놓을 수 없다. 요제피네에 대한 열정은 이 작품을 쓸 무렵에는 식어 있었다. 이 사랑의 종말로부터 전원으로 도피하려 했던 것이 《전원 교향곡》을 낳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울러 바깥 세계로 눈을 돌리려 했을 때 《교향곡 3번》을 쓸 때처럼 나폴레옹 같은 인물도 없었으며, 유쾌하지 못한 빈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실망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베토벤은 이런 모습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좋아하던 조용한 자연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베토벤은 이 전후에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가곡이나 피아노 소나타도 쓴다.

베토벤은 잘 알려진 대로 "사람은 속일 때가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혹은 "숲 안에 있으면 기쁘고 행복하다"는 말을 비롯하여 자연을 사랑하는 말을 많이 남겼다. 테레제 마르파티에게 쓴 편지에서는 "덤불과 숲을 빠져나와 수목과 풀과 바위 사이를 산책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나처럼 전원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썼다. 세속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자연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위안을 얻었던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이 곡을 작곡한 곳은 한적안 하일리겐슈타트였다. 종교적이라 해야 할 정도로 강한 자연 예찬이 나타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분명 이 교향곡은 《전원》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각 악장에 붙은 (시골 생활을 예찬하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이 교향곡이 단순한 자연의 묘사로 그치는 표제음악이나 감상적인 음풍농월이 되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베토벤은 자신이 직접 말한 것처럼 「묘사라기보다는 감정의 표현」이라는 태도를 취했으며 자연에 대해 자신이 느낀 감정, 경이롭고 신비로우며 근원적인 힘에 대해 자신이 받은 감동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물론 여기서 자연에 대한 회화적인 묘사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제4악장은 전형적인 묘사적 수법을 사용하여 폭풍우 장면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으며, 그밖에 다른 악장에서도 시냇물 흐르는 소리나 새의 울음소리들이 들어가 있다. 물론 이들은 필연성을 지니고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또한 이 곡은 보통 교향곡이 3, 4악장으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달리 5악장으로 이루어진다(다만 4악장을 5악장으로 들어가는 간주적인 역할에 억지로 끼워 넣으면 전통적인 4악장제에 아예 들어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제3악장부터 제5악장까지는 악장 간 단절 없이 계속 연주하도록 되어 있으며, 제4악장부터는 연속해서 일어난 일을 표제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표제에 맞춰 연주하게끔 한 것이다. 악장 사이를 쉼 없이 연주하도록 연주하는 것은 음악을 중단하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흐름을 자연스럽고 원활하게 하는 것이어서 후대의 슈만(특히 교향곡 4번), 멘델스존, 리스트를 비롯한 낭만파 작곡가의 교향곡 처리 방법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이 교향곡 자체도 낭만파의 표제 교향곡이나 교향시의 발달에 커다란 도화선이 되었다.

베토벤이 《교향곡 제5번》의 반대항으로 이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작곡가가 짝을 지어 출판한 것은 두 교향곡의 특성을 비교해 보라는 의도를 분명 내포하고 있다. 《교향곡 제5번》이 강렬하고 단단하다면 《교향곡 제6번》은 유연하고 온화하다. 《교향곡 제5번》이 분석적이고 체계적이라면 《교향곡 제6번》은 생동감 있고 환희에 가득 차 있다. 이로정연한 《교향곡 제5번》의 관점으로 보면 《교향곡 제6번》은 낭만주의적이다. 피날레 악장을 대표하는 악기가 《교향곡 제5번》은 승리를 상징하는 트럼펫인데 반해, 《교향곡 제6번》은 목가적인 악기로 흔히 거론하는 호른이다.   

아울러 베토벤의 남겨진 스케치에 따르면, 처음에는 제5악장에서 성악을 사용하려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실현되었더라면 《교향곡 제9번》에 앞서 성악을 사용한 교향곡이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베토벤이 곡에 부제를 붙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각 악장의 성격을 구분 짓는 부제를 기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그런 특성이 이 곡을 제외하면 <고별> 소나타밖에 없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1악장 <시골에 도착했을 때 일어나는 유쾌한 기분> 

(1.<Erwachen heiterer Empfindungen bei der Aukunft dem Lande> Allegro ma non troppo 4/4) (F major)

소나타 형식. 밝고 명랑하며 한가로운 악장이다. 베토벤 교향곡에서는 첫 악장에서 효과를 내기 위해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라는 빠르기말을 많이 사용했지만,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llegro ma non troppo)라는 지시어는 이 곡이 처음이다. 이 지시만으로도 이 악장에서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느긋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긴장을 확 주는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긴장을 푸는 것이다. 1바이올린이 민요적이면서도 매우 전원적인 1주제를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이 주제는 오스트리아의 전원지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슬로베니아나 모라비아의 농촌에서도 전해지고 있다. 이 주제만으로도 「시골에 도착했을 때의 즐거운 감정」이라는 표제가 타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시작 부분에서는 F음의 페달 포인트가 있으며, 16마디 이후부터는 C음의 페달 포인트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주제 마지막 음(G)에서 페르마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베토벤이 즐기던 수법으로, 《교향곡 제5번》 4음 모티브 마지막에서도 찾을 수 있다. 46마디에서는 플루트가 고음의 아포지아투라로 새로리를 모방한다. 제2주제는 C장조로,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역시 즐거운 분위기로 먼저 현이 연주하고 목관이 그것을 받는다. 8분음표의 단순한 리듬이지만 물처럼 흐르는 펼침화음(Broken chord)의 형태를 취하며 하강 음형에서 한번 상승시켜 다시 하강하는 형태를 취하는데 아주 부드럽다. 대위선율이 같이 진행하며, 다소 리듬적인 특성이 두드러지는 1주제와는 달리 민요풍의 멜로디를 좀 더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발전부는 주로 1주제를 다루고 있다. 베토벤의 일반적인 발전부처럼 극적인 성격이나 강렬한 기복은 없으나 온화하며 다양하게 색채를 바꾸어 한가로움과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특히 발전부에서 같은 동기를 72번이나 반복하는 부분은 고전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지겨운 부분일 테지만, 교묘하게 악기의 조합을 바꾸며 반복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변하는 화성 색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고전주의 음악 속의 낭만적 환상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발전부의 조성은 B♭장조에서 3도 관계인 D장조로 옮겨간 후, 잠시 쉰 후 G장조로 옮겨갔다가 E장조로 바뀌며 고전적인 전조에서 점차 멀어져간다. 1주제가 다시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면 곡은 재현부로 들어간다. 곧이어 2주제도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코다는 전원의 느낌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며, 1주제를 반복적으로 제시하며 피어올랐던 감정들을 정리하듯 조용하고 따스하게 마무리한다. 468마디에서 B♭음과 B음의 대조를 보이는 새로운 반복이 나타난다. 483마디부터 491마디까지의 9마디는 목적 지향적 화음으로 예기치 않는 종지와 음악적 흐름을 유도하며, 클라리넷과 바순은 반복된 종지를 갖는 목가적인 음악을 연주한다. 이 주제는 앞의 레가토 부분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확대된 목관악기의 사용법과 단순한 종지는 3악장을 예고한다.

 

2악장 <시냇가의 정경> (2.<Szene am Bach> Andante molto mosso 12/8) (B♭ major)

소나타 형식. 「시냇가의 정경」이라는 표제와 완전히 일치하며, 박자도 길고 유연하다. 시냇물이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암시하는 미세한 움직임이 첼로를 비롯한 저음 현악기에서 거의 일관되게 주어진다. 1바이올린이 제시하는 사랑스러운 1주제를 반주하는 저음현은 8분음표의 펼침화음과 16분음표의 펼침화음 두 가지가 있다. 이런 지속적인 반주 위에서 전개되는 선율은 18세기 기악곡과 성악곡 느린 악장에서 흔하게 쓰였고, 기원은 17세기까지 거슬러 오른다. 전통적으로도 유유히 흐르는 시냇물의 정경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음악적 형태라는 공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악장에서는 플루트의 고음으로 표현되던 새소리가 2악장에서는 바이올린의 트릴로 나타나는 것도 특징이다. 33마디부터 등장하는 2주제는 훨씬 밝게 바이올린으로 연주된다. 바순의 솔로가 넘치는 기쁨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흐르는 듯 평화로운 발전부 후에 91마디부터 재현부가 시작되는데, 플루트가 1주제를 재현한다. 저현은 제시부와 같이 시냇물의 반주를 맡으며, 바순, 클라리넷, 바이올린의 아르페지오가 추가되어 있다. 재현부가 끝나면 곡은 짤막한 코다로 들어가며 새소리를 모방한 악구가 등장한다. 물론 20세기 음악의 구체적인 새소리가 아닌 '듣기 좋은' 새소리다. 나이팅게일(꾀꼬리) 역할을 맡은 플루트가 F음과 G음을 불다가 F음의 트릴을 연주하고, 메추리 역할을 맡은 오보에는 D음의 부점 리듬을, 뻐꾸기 역할을 맡은 클라리넷은 D음과 B♭음을 연주한다. 새소리 묘사 이후 베토벤은 갑작스레 짧은 침묵을 내놓는데, 침묵은 황홀하면서도 경이로운 순간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새소리가 주화음에서 다시 등장하면서 막을 내린다.

 

3악장 <시골 사람들의 단란함>

(3.<Lustiges Zusammensein der Landleute> Scherzo. Allegro 3/4 - Trio 2/4) (F major)

스케르초와 트리오. 3악장부터 5악장까지는 아타카로 쉬지 않고 연주한다. 「시골 사람들의 단란함」은 스케르초에 해당하는 악당이지만, 농민들이 즐겁게 추는 음악을 연상시킨다. 연주하는 사이 술에 취해 잠든 악사도 있으며, 소박한 악기를 갖고 서투르게 연주하는 악사도 있다. 바순은 지속적으로 도(F)와 솔(C) 음을 연주한다. 트리오(a Tempo Allegro. ♩=132)는 실제 농민들의 춤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믹소도리안 조가 두드러진다. 역시 농부의 서투른 춤을 연상케 하기 위해 바순과 더블베이스가 기민하게 움직이는데, 바순은 무려 13마디 동안 C 옥타브만을 연주한다. 트리오의 반복이 끝나면 스케르초 1부의 코데타를 확대한 코다를 통해 4악장으로 들어간다.

 

4악장 <천둥. 폭풍우> (4.<Gewitter. Sturm> Allegro 4/4) (F minor)

특별한 형식이 정해지지 않은 (굳이 규정짓자면 자유로운 2부 형식에 가깝다) 간주곡. 전통적인 4악장 제에 간주곡이라 할 폭풍우 악장을 추가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폭풍우 악장은 나머지 악장들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며, 논리적으로도 매끄럽게 이어진다. 4악장은 3악장과 5악장을 이어주면서, 동시에 충격적인 내용으로 우리의 뇌리에 남는다. 오케스트레이션 측면에서도 전 악장을 통틀어 피콜로와 팀파니는 오직 4악장에서만 등장하며, 트럼펫과 트롬본도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전 악장의 흥겨운 분위기는 삽시간에 자취를 감추고, 저음 현이 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를 들려준다. 농민들은 춤을 멈추고 놀라 대피한다. 곧 투티에 의한 폭풍우가 감상자를 강타한다. 단지 음악적인 효과 뿐 아니라, 작곡가의 감정까지 강하게 개입해 정말로 소름끼치는 폭풍우 장면이 몰아친다. 묘사음악에서 이토록 박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곡가는 베토벤 이전에는 그리 흔치 않았다. 관현악 측면에서는 피콜로와 트롬본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급박함을 알리는 피콜로의 고음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에 폭풍우가 걷히고 햇살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면, 플루트의 상승 음계가 클라리넷의 목가를 불러온다.

 

5악장 <목가. 폭풍우 뒤의 즐거운 감사의 마음>

(5. <Hirtengesang. Frohe und dankbare Gefuhle dem Sturm> Allegretto 6/8) (F major)

론도 소나타 형식. 클라리넷이 제시하는 목가 주제는 곧 호른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바이올린이 목가 주제에서 비롯한 1주제를 연주하면 그 주제가 곧 현악기로, 전 관현악으로 퍼져 나간다. 곧 바이올린이 2주제를 연주한다. 이어 1주제가 모습을 드러내며 전개되는데, 새로운 선율도 가세한다. 재현부에 이어지는 코다에서는 1주제를 따스하게 연주한다. 그 사이 1악장 1주제를 연상시키는 악구도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악장다운 화려함이나 강력함은 없으나 그런 만큼 이 전원적인 교향곡을 밝고 평화로운 목가적 분위기로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곡을 편안히 마친다는 느낌을 주어 전 악장의 긴장감을 다분히 풀어주는 느낌을 던져준다. 끝부분에서 호른은 약음기를 사용해 멀리서 울리는 느낌을 던지며 편안히 악장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이 악장에서는 트럼펫이 연주할 수 없는 음정을 피하려고 다음과 같은 아주 이상한 성부진행을 한다. 219마디에서 223마디를 보면, 화음이 219-220마디의 F장조 화음에서 221-222마디의 D단조 화음을 경유하여 223마디의 G장조 화음으로 진행한다. C 트럼펫이 D단조 화음에서 넷째 줄의 D음 외의 어떤 음도 연주할 수도, 그리고 중복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상적 어법에서 벗어난 장9도의 도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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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르초의 작곡 과정은 굉장히 흥미롭다. 초연을 치르던 1808년 당시 베토벤이 완성한 스케르초는 총 324마디였다. 우리가 들으면서 감탄하는, 피날레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케르초 끝 부분이 만들어진 것은 초연 이후 총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베토벤은 323마디에서 373마디에 걸친 50마디를 새로 추가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작곡가의 통찰은 매우 현명한 것이었다.

스케르초 반복 문제에 대한 논의도 작곡 과정만큼이나 흥미롭다. 베토벤은 처음에 스케르초를 반복하라는 지시사항을 적어두었다(자필 악보에는 스케르초에 도돌이표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음표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 기보하고 있다). 그러다가 초연 이후 베토벤은 반복 지시 사항을 악보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출판에 들어가기 직전 최종 교정 악보에서 도돌이표 앞의 두 마디를 삭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출판사에서 이것을 의아해하자 베토벤은 1809년 3월 28일,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당신이 교향곡 C단조 3악장에서 한 가지 잘못을 발견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형식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가지고 계신 표본이 되는 총보에 교정한 것을 함께 보내주신다면 며칠 안에 모든 것을 돌려받으실 수 있겠습니다……"

베토벤은 악보를 받아 든 결과, 3악장에서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베토벤은 1810년 3월 20일에 보낸 편지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해 명백한 답을 주고 있다. 그러나 출판사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베토벤이 이것을 잊어버린 것인지, 인쇄된 파트보에는 의문스러운 점들이 많으며, 반복을 하지 않도록 지정된 악보에도 필요하지 않은 두 마디가 계속 남아있다. 베토벤 자신은 1810년 8월 21일의 편지에서 이에 관해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1810년 10월 15일 다시 편지를 썼다.

"……교향곡에 관하여 3악장에서 2마디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바뀌어졌다. 내가 기억이 희미하지만, 답장하는 것을 잊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그 2마디에 대해서 고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베토벤과 출판사 사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 1826년에 출판된 총보에서도 이 문제점은 다시 나타난다. 1846년, 멘델스존은 이 의문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공식적으로 발의했고, 출판사는 이 수정을 1846년 7월 8일의 <Allgemeinen Musikalischen Zeitung>에 공표했다. 그 이후로 이 두 마디는 사라지게 되었으며, 스케르초는 오늘날까지 수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베토벤의 이 최종 결정에 의해, 오랜 세월동안 스케르초는 반복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다. 그러나 반복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 되살아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영웅> 교향곡의 1악장도 반복 지시를 내렸는데, 그것보다 짧은 스케르초가 '길다'는 이유로 반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W.리츨러는 그의 저서 <베토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몇 년 후에 베토벤은 이중 반복을 삭제하고 피날레로 이끄는 경과부를 유지시킴으로써 장조 부분이 지난 뒤에 반복되는 첫 부분을 본래의 윤곽 정도만 감지될 수 있도록 했다. 이리하여 악장의 독립성은 크게 약화되었고, 나아가 악장 전체는 다른 스케르초나 미뉴에트 악장들과는 달리 균형을 잃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피아니시모로 끝나는 트리오에서 시작해 끝으로 갈수록 더욱 더 그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었다(이 트리오 역시 처음에는 포르테로 확실하게 종결되는 형태를 취했었다)."

알 수 없는 것은 작곡가의 태도다. 베토벤은 반복에 관한 출판사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빈의 연주회에서 스케르초를 반복해 연주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손으로 사보한 악보들이 빈 악우회에도 소장되어 있다. 베토벤의 친구인 프란츠 올리파(Franz Oliva)와의 1820년 대화 목록에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4월 9일의 연주회에서 반복이 없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는 당신에게 말 할 것을 잊었습니다. 연주가들이 어제 당신의 교향곡을 줄였답니다. 3악장에서 거의 반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푸가 형식의 중간 악곡에서 단 한 번, 그리고 바이올린이 피치카토로 이어져 피날레로 넘어가는 부분에 있어서 정말 좋지 않은 영향을 보여 주었어요.' 물론 이것이 스케르초 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주장은 아니지만,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충분한 주장이다.

베토벤은 악보에서 스케르초 반복을 삭제하고, 이것을 수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고치지 않은 도돌이표 앞의 두 마디, 악보 수정에 관한 일관성 없는 태도, 무엇보다 그 자신이 스케르초를 반복해 연주한 사실 등은 반복에 관한 논쟁을 벌일 여지를 마련해주었다. 많은 학자들은 반복이 없어질 경우 스케르초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점과 위의 사실을 들어 반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마침내 반복을 되살린 Peter Gülke의 악보가 나왔다. 오트마르 주이트너는 이 악보를 사용했다. 이와는 별도로, 1960년대에 피에르 불레즈는 '베토벤이 스케르초 반복을 지시했을 것'이라며 스케르초를 반복한 음반을 내놓았다.

그러나 스케르초를 반복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의 음악학자 D. F. 토비인데, 그는 3악장에 도돌이표가 생기면 연주시간이 길어져 곡의 긴장감이 떨어지며, 무엇보다 4악장 발전부 말미에서 3악장 스케르초 주제가 환영처럼 다시 등장하는 부분의 효과가 반감된다는 지적을 남겼다. 문제는 이 사람의 주장을 지지하는 세력도 적지 않다는 것. 사실 위의 리츨러도 반복을 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3악장의 불균형과 무게중심이 4악장을 향해 쏠리는 점을 지적한 것 뿐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3악장에서 반복 지시를 충실히 지키자는 쪽은 3악장을 하나의 개별적인 악장으로 보고, 3악장이 완전한 형태의 스케르초여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반대로 3악장에서 반복 지시를 지키지 않는 지휘자는 3악장이 곡의 결론인 4악장과 유기적으로 연관성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실제로 음반에서 3악장과 4악장을 묶어 한 트랙으로 넣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스케르초 반복이 없다고 해서 3악장의 독자성이 훼손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 같다. 무엇보다 리츨러가 지적한 ‘피아니시모로 끝나는 트리오’를 생각하면, 베토벤은 트리오 끝의 피아니시모가 3악장의 코다와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반론의 여지도 적지 않다.

현대의 많은 지휘자들도 스케르초를 반복해야 한다는 사람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이 나뉘고 있다. 80년대 이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휘자들 중 스케르초를 반복하는 지휘자는 주이트너를 포함해 블롬슈테트, 로이 굿맨, 노링턴, 호그우드, 아바도(베를린 필. 아바도는 "반복구를 삭제하는 것은 소나타 형식의 팔다리를 자르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 사람이니 이 노선을 지지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등이 있으며, 반복하지 않는 지휘자 중에는 브루노 바일, 엠마뉘엘 크리빈, 요스 판 임머젤, 프란스 브뤼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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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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