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르초의 작곡 과정은 굉장히 흥미롭다. 초연을 치르던 1808년 당시 베토벤이 완성한 스케르초는 총 324마디였다. 우리가 들으면서 감탄하는, 피날레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스케르초 끝 부분이 만들어진 것은 초연 이후 총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베토벤은 323마디에서 373마디에 걸친 50마디를 새로 추가했다. 장기적으로 볼 때, 작곡가의 통찰은 매우 현명한 것이었다.

스케르초 반복 문제에 대한 논의도 작곡 과정만큼이나 흥미롭다. 베토벤은 처음에 스케르초를 반복하라는 지시사항을 적어두었다(자필 악보에는 스케르초에 도돌이표가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음표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 기보하고 있다). 그러다가 초연 이후 베토벤은 반복 지시 사항을 악보에서 삭제했다. 그러나 베토벤은 출판에 들어가기 직전 최종 교정 악보에서 도돌이표 앞의 두 마디를 삭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출판사에서 이것을 의아해하자 베토벤은 1809년 3월 28일,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당신이 교향곡 C단조 3악장에서 한 가지 잘못을 발견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어떤 형식이었는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가지고 계신 표본이 되는 총보에 교정한 것을 함께 보내주신다면 며칠 안에 모든 것을 돌려받으실 수 있겠습니다……"

베토벤은 악보를 받아 든 결과, 3악장에서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베토벤은 1810년 3월 20일에 보낸 편지를 통해 이 부분에 대해 명백한 답을 주고 있다. 그러나 출판사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베토벤이 이것을 잊어버린 것인지, 인쇄된 파트보에는 의문스러운 점들이 많으며, 반복을 하지 않도록 지정된 악보에도 필요하지 않은 두 마디가 계속 남아있다. 베토벤 자신은 1810년 8월 21일의 편지에서 이에 관해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1810년 10월 15일 다시 편지를 썼다.

"……교향곡에 관하여 3악장에서 2마디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바뀌어졌다. 내가 기억이 희미하지만, 답장하는 것을 잊은 것 같다. 그래서 우리가 그 2마디에 대해서 고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베토벤과 출판사 사이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 1826년에 출판된 총보에서도 이 문제점은 다시 나타난다. 1846년, 멘델스존은 이 의문점에 대한 문제제기를 공식적으로 발의했고, 출판사는 이 수정을 1846년 7월 8일의 <Allgemeinen Musikalischen Zeitung>에 공표했다. 그 이후로 이 두 마디는 사라지게 되었으며, 스케르초는 오늘날까지 수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베토벤의 이 최종 결정에 의해, 오랜 세월동안 스케르초는 반복하지 않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다. 그러나 반복에 대한 문제제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 되살아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았을 때 <영웅> 교향곡의 1악장도 반복 지시를 내렸는데, 그것보다 짧은 스케르초가 '길다'는 이유로 반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W.리츨러는 그의 저서 <베토벤>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몇 년 후에 베토벤은 이중 반복을 삭제하고 피날레로 이끄는 경과부를 유지시킴으로써 장조 부분이 지난 뒤에 반복되는 첫 부분을 본래의 윤곽 정도만 감지될 수 있도록 했다. 이리하여 악장의 독립성은 크게 약화되었고, 나아가 악장 전체는 다른 스케르초나 미뉴에트 악장들과는 달리 균형을 잃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피아니시모로 끝나는 트리오에서 시작해 끝으로 갈수록 더욱 더 그 중요성을 상실하게 되었다(이 트리오 역시 처음에는 포르테로 확실하게 종결되는 형태를 취했었다)."

알 수 없는 것은 작곡가의 태도다. 베토벤은 반복에 관한 출판사의 질문에도 불구하고 빈의 연주회에서 스케르초를 반복해 연주했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는, 손으로 사보한 악보들이 빈 악우회에도 소장되어 있다. 베토벤의 친구인 프란츠 올리파(Franz Oliva)와의 1820년 대화 목록에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4월 9일의 연주회에서 반복이 없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는 당신에게 말 할 것을 잊었습니다. 연주가들이 어제 당신의 교향곡을 줄였답니다. 3악장에서 거의 반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푸가 형식의 중간 악곡에서 단 한 번, 그리고 바이올린이 피치카토로 이어져 피날레로 넘어가는 부분에 있어서 정말 좋지 않은 영향을 보여 주었어요.' 물론 이것이 스케르초 문제에 관한 일반적인 주장은 아니지만, 문제를 제기하기에는 충분한 주장이다.

베토벤은 악보에서 스케르초 반복을 삭제하고, 이것을 수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고치지 않은 도돌이표 앞의 두 마디, 악보 수정에 관한 일관성 없는 태도, 무엇보다 그 자신이 스케르초를 반복해 연주한 사실 등은 반복에 관한 논쟁을 벌일 여지를 마련해주었다. 많은 학자들은 반복이 없어질 경우 스케르초의 균형이 무너진다는 점과 위의 사실을 들어 반복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고, 마침내 반복을 되살린 Peter Gülke의 악보가 나왔다. 오트마르 주이트너는 이 악보를 사용했다. 이와는 별도로, 1960년대에 피에르 불레즈는 '베토벤이 스케르초 반복을 지시했을 것'이라며 스케르초를 반복한 음반을 내놓았다.

그러나 스케르초를 반복하지 말 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람이 영국의 음악학자 D. F. 토비인데, 그는 3악장에 도돌이표가 생기면 연주시간이 길어져 곡의 긴장감이 떨어지며, 무엇보다 4악장 발전부 말미에서 3악장 스케르초 주제가 환영처럼 다시 등장하는 부분의 효과가 반감된다는 지적을 남겼다. 문제는 이 사람의 주장을 지지하는 세력도 적지 않다는 것. 사실 위의 리츨러도 반복을 해야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만 3악장의 불균형과 무게중심이 4악장을 향해 쏠리는 점을 지적한 것 뿐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3악장에서 반복 지시를 충실히 지키자는 쪽은 3악장을 하나의 개별적인 악장으로 보고, 3악장이 완전한 형태의 스케르초여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반대로 3악장에서 반복 지시를 지키지 않는 지휘자는 3악장이 곡의 결론인 4악장과 유기적으로 연관성을 지닌다고 생각하는 사람과(실제로 음반에서 3악장과 4악장을 묶어 한 트랙으로 넣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스케르초 반복이 없다고 해서 3악장의 독자성이 훼손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 같다. 무엇보다 리츨러가 지적한 ‘피아니시모로 끝나는 트리오’를 생각하면, 베토벤은 트리오 끝의 피아니시모가 3악장의 코다와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물론 내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반론의 여지도 적지 않다.

현대의 많은 지휘자들도 스케르초를 반복해야 한다는 사람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람이 나뉘고 있다. 80년대 이후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지휘자들 중 스케르초를 반복하는 지휘자는 주이트너를 포함해 블롬슈테트, 로이 굿맨, 노링턴, 호그우드, 아바도(베를린 필. 아바도는 "반복구를 삭제하는 것은 소나타 형식의 팔다리를 자르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 사람이니 이 노선을 지지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등이 있으며, 반복하지 않는 지휘자 중에는 브루노 바일, 엠마뉘엘 크리빈, 요스 판 임머젤, 프란스 브뤼헨 등이 있다.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토벤 교향곡 8번 Op.93  (0) 2013.03.11
베토벤 교향곡 7번 Op.92  (0) 2013.02.20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 두 편의 글  (2) 2013.02.20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Op.68  (0) 2013.02.17
베토벤 교향곡 5번 Op.67  (0) 2013.02.14
Posted by 여엉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