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교향곡만큼 유명한 서양 고전음악 레퍼토리는 많지 않다. 작곡된 지 2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어디선가 아홉 곡을 모두 연주하고 있다.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작곡가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당장 18~19세기만 생각해 보아도, 잊혀진 이후 지금까지도 연주조차 되지 않는 작곡가가 얼마나 많은가?), 정말 베토벤은 자신이 잃은 것 만큼 후세 사람들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은 작곡가라 할 수 있다.

 곡이 유명한 만큼, 그 곡에 바쳐진 글도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의 두 편의 글을 추려보았다. 한 편은 베토벤보다 한 세대 뒤의 사람인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글, 또 한 편은 베토벤이 살던 지역과 반대편에 살고 있는 20세기 후반 한국 시인의 시다. 두 편은 제각기 다른 품격을 갖추고 있으며, 둘 다 위대한 음악에 어울리는 훌륭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 베토벤에 대한 베를리오즈의 빠심을 느낄 수 있는 글 베토벤 교향곡 6번 4악장에 대한 베를리오즈의 글

 

 "나는 이 놀라운 곡에 대한 개념을 전하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당신은 이 곡을 들어보아야만 베토벤 같은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룩될 수 있는 음악적인 회화의 진실성과 숭고성의 높이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들어보라, 비와 함께 몰아치는 바람소리, 베이스의 귀가 먹을 것 같은 으르렁거림, 곧 닥쳐올 무서운 폭풍을 알리는 피콜로의 높은 휘파람소리를 들어보라. 폭풍은 다가와서, 퍼져간다. 거대한 반음계적 낙뢰가 제일 고음의 악기로부터 시작하여 오케스트라의 가장 바닥까지 샅샅이 훑어내리며, 베이스를 낚아채어 그것을 끌고 다시 올라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뒤집어버리는 회오리바람처럼 몸서리치고 있다. 그러자 트롬본이 튀어나오며, 팀파니의 뇌성은 두 배로 격렬해진다. 이제는 더 이상 비바람이 아니다. 이는 무시무시한 지각변동이며, 대홍수이며, 세상의 종말이다…

 얼굴을 가리우라, 불쌍한 고대의 대시인이여, 불쌍한 불멸의 사람들이여. 당신들의 너무도 순수하고, 너무도 조화로운 관습적인 언어는 소리의 예술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당신들은 명예롭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정복당했다. 당신들은 오늘날 우리가 선율, 화성, 여러 음색의 결합, 악기의 음색, 전조, 처음에는 서로 싸우고 그 뒤에는 포옹하는 흉내낼 수 없는 음향의 계획된 갈등, 우리의 귀에 울리는 놀라움, 우리의 기묘한 악센트가 영혼의 가장 감추어져 있는 깊은 곳까지도 공명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몰랐었기 때문이다."

(베를리오즈, 「A travers chants」(Paris, 1898), pp. 42-43. C. 팰리스카 영역. 그라우트 『서양음악사』4판 수록)

 

(2) 김기택의 시 <전원 교향곡>

 

 베토벤은 제자 리스와 함께 숲길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베토벤은 거의 청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베토벤은 숲 속의 모든 소리에 즐겁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새소리,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베토벤에게 오는 모든 소리는 더 이상 그의 귀에 살지 않고 이젠 아주 가는 떨림만 남아 그의 몸 곳곳으로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귀 기울일 때마다 실핏줄과 심장과 살가죽과 뼈마디들은 모두 청각이 되어 일제히 떨며 열렸다. 그 떨림 속에서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정원이,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들판이 자라고 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숲속 가득 울리는 소리를, 나뭇잎 흔들림에서 시냇물 흐름에서 고요하게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온몸이 떨며 열어줄 때마다, 그는 귀가 먹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오래오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소리가 깊어지면 귀찮은 귀를 버리고, 귀에 달라붙은 말과 소음을 버리고, 귀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 속으로 한 없이 들어갔다. 산책 도중에 어디선가 한가로운 목동의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리스가 탄성을 질렀다. 아! 너무…… 너무나, 아름다워요. 선생님, 들리시죠? 베토벤은, 그때, 가슴을 후려치며 불어닥친 폭풍우에 휘말려 온몸으로 그 거대한 힘을 견디어내느라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베토벤이 피리 소리를 듣지 못하자 리스는 스승이 완전히 청각을 잃었다는 걸 알았다. 리스가 슬픈 표정으로 스승과 같이 집에 돌아왔을 때 베토벤은 오히려 밝고 활기차게 말했다. 리스야, 이제부터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마. 곧이어 베토벤이 건반을 누르자, 귀보다 행복한 곳에서 사는 소리들이, 핏줄을 지나 손가락과 건반을 지나, 일시에 방안 가득 솟구쳐나왔다.

(김기택, 시집 『바늘구멍 속의 폭풍』, 1994, 문학과지성사)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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