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로 협주곡 (Cello Concerto)

작곡 연도 : 1966년 완성

악기 편성 : 독주 첼로, 플루트/피콜로, 오보에, 클라리넷 2, 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트롬본, 하프, 현악 5부

(리게티가 첫 협주곡의 독주악기를 첼로로 선택한 것은 그만큼 그가 이 악기를 잘 알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실제로 리게티는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연주하면서 이 악기의 특성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수십 년 후 ‘마치 일본어로 말하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듯, 구체적이고 정묘한 음향을 추구하는 리게티에게 이디엄에 대한 감각이 없는(즉 만져본 적이 없는)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작곡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오래도록 연주한 악기라는 이점을 제하고도, 리게티가 협주곡의 독주악기로 첼로를 선택할 이유는 하나가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첼로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음향이었다. 바흐가 발견하고 베토벤이 발전시키고 바그너가 한 차원을 높였으며 드보르작이 훌륭하게 구사한 첼로의 음향은 20세기가 2/3선을 넘어선 1960년대 중반에도 여전히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리게티는 1악장을 시작하는 E음의 음색 변화로 자신을 매혹시킨 첼로의 음향을 자유로이 풀어놓는다. ‘오직 첼로만이’ 리게티가 원하는 음악 언어를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었을 것이다.)

1악장 (1. ♩=40)

(연주 시간 약 7분. 리게티는 협주곡을 위해 구상한 20여개의 음 형상 중 단 하나의 형상으로 1악장을 구성했다. 첼로가 ppppppp라는 극단적으로 작은 다이나믹의 E음으로 곡을 시작한다. 1분 30초 정도는 오직 크레셴도만이 있으며, 서서히 다른 악기들이 참여한다. 곡은 악기들을 거쳐 높은 F음에 도달하고, 곧 D와 A 사이에 음들이 채워진다. 현악기가 5옥타브의 B♭음을 내며, 첼로가 동참한다. 목관이 남은 음계들을 하나씩 채워가며 크레셴도 하다가 마침내 전음계적인 클라이막스에 도달한 후, 곧 극단적으로 높은 고현과 극단적으로 낮은 베이스만이 남고, 그 사이를 첼로가 유영한다.)

2악장 (2. L'istesso Tempo)

(연주 시간 약 8분. 1악장이 의도적인 ‘비움’에 충실한 악장이라면, 2악장은 내용적으로 아주 풍성하다. 금관의 화려한 선율들로 시작하며, 호른과 첼로가 그 사이에서 잠시 등장했다 사라진다. 20여개의 갖가지 형태가 나타나며(그 중에는 침묵에 가까운 것도 있다), 중반이 지나 트럼펫이 강렬한 포르테를 쏟아내면서 곡은 클라이막스에 도달한다. 클라이막스가 지나면 악기들이 하나씩 떠나면서 첼로 혼자 솔로로 곡을 마무리 짓고, 쉼표가 이어진 후 곡은 마친다. 아트모스페르와 마찬가지로 마지막에는 침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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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습곡> 1권 (Piano Etude, Livre I)

작곡 시기 : 1985년 완성

"나는 감옥에 있다. 한쪽 벽은 아방가르드, 다른쪽 벽은 과거다. 나는 달아나고 싶다." - 죄르지 리게티. 1993년

(아방가르드는 60년대와 70년대를 거치면서 그 폐쇄성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 폐쇄성에 질식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 것이 비단 리게티 혼자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이것에 대해 다른 이들보다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70년대의 ‘샛길’을 거쳐, 마침내 80년대에 이르러 그는 다시 버르토크를 비롯한 이전의 음악들과 마주한다. 그러나 그가 80년대에 보는 버르토크는 헝가리를 떠나기 이전에 생각했던 버르토크로의 ‘회귀’가 아니었고, 라헨만이 비난한 ‘퇴조’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던 음악, 미래를 위해 열려 있는 동시에 동시대인에게도 열려 있는 음악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그 성과물은 피아노 협주곡과 3권의 <피아노 연습곡>으로 나타난다. 리게티는 이 새로운 음악을 쓰기 위해 모든 음악적 가능성에 문을 활짝 열었다. 중세 14세기 아르스 수브틸료아 시대의 음악으로부터 현대 비밥과 로큰롤까지, 죠스깽 드 프레의 엄격한 대위법에서부터 남부 아프리카의 복잡한 폴리리듬 음악까지 모든 것을 끌어들인 작곡가는 70년대와 80년대의 가장 중요한 두 만남, 찰스 아이브스와 콘론 낸캐로우의 음악까지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수많은 조우를 통해 리게티가 발전시켜 나간 것은 다차원적인 폴리포니, 즉 폴리리듬과 폴리메터였다. 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연습곡> 1권에서는 위의 두 가지 양식형성방식이 두드러진다.

리게티의 피아노 연습곡은 장르 간의 엄격한 구분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증거다. 아방가르드와 재즈, 모던 록을 구분하려는 시도는 이제 조금씩 힘을 잃고 무의미해질 것이다. 혁명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 음악은 이제 다시 구심점을 찾고 통합을 위한 거대한 시도를 앞두고 있다.)

1곡 <무질서> (1.Désorde. Molto vivace)

(단순하게 시작한 패턴이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변화하는 첫 곡. 제목인 <무질서>는 곡의 구성원리를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프랙탈 기하학의 방식을 사용해 점점 복잡해진다. 한 손은 검은 건반만을 연주하고, 다른 한 손은 흰 건반만을 연주하면서 5음 음계와 7음 음계가 공존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오른손은 8분음표 단위가 하나씩 줄어드는데, 결국 이 과정을 통해 본래의 패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곡이 변한다. 곡의 중간에서는 이 방향이 반대로 바뀐다. 연주의 난이도에 비해 화성적인 변화는 적은 편이다.)

2곡 <개방현> (2.Cordes à vide. Andantino con moto)

(첫 곡과는 달리 완전 5도의 연속으로 이루어지는 두 번째 곡. 마치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개방현을 켜듯 현악기의 이디엄을 건반악기로 그대로 옮겨온 곡이다. 연주의 어려움보다는 음색에 대한 연구가 필요한 곡으로, 특히 5도로 하행하는 아르페지오 위에서 움직이는 반음계적 변화는 이 곡의 화성적 변화에 주의를 기울어야 함을 일깨우고 있다. 곡이 진행됨에 따라 8분음표의 느린 움직임은 점차 세분화되고 빨라지고 강세도 커지면서 고음역에서 정점에 이른 후, 곧바로 저음역의 조용한 소리로 급변한다. 그리고 ‘마치 멀리서 호른이 울려나오는 것처럼’ 노래하는 선율이 등장하며 끝을 맺는다.)

3곡 <막힌 건반> (3.Touches bloquées. Presto)

(테리 라일리, 스티브 라이시 등 미니멀리즘 음악가들과 접촉한 이후인 70년대 중반부터 사용했던 ‘건반 차단 기법’을 사용한 음악. 한 손이 미리 건반을 눌러놓기 때문에 손가락이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고르지 않은, 절뚝거리는 소리가 난다. 중간부에서는 양손이 함께 옥타브로 빠르게 진행하는 부분이 등장한다.)

4곡 <팡파레> (4.Fanfares. Vivacissimo)

(3-2-2의 악삭 리듬 패턴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4곡. 비슷한 리듬을 사용한 호른 3중주 2악장을 생각나게 하는 곡이다. 증4도 관계에 있는 두 가지의 4음 음계(각각 C-D-E-F, F#-G#-A#-B)로 이루어진 오스티나토가 옥타브만 바꾸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나타나는 가운데, 네 개의 화음이 하나의 악구를 이룬 이중 선율인 화음들이 나오다가 뒤로 갈수록 점차 얽히면서 불협화적인 복조성의 지배를 받는다. 뿐만 아니라 양손에서 함께 움직이던 리듬 또한 점점 오스티나토와 변덕스러운 이중 선율 사이에서 얽히면서 복잡해진다.)

5곡 <무지개> (5.Arc-en-ciel. Andante molto rebato)

(4번과 6번 사이에서 쉬어가는 느낌의 5번 곡. 작곡가는 이 곡이 셀로니어스 몽크와 빌 에반스의 재즈 음악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재즈 음악은 12음을 한꺼번에 사용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몇 안 되는 음악이니, 곡의 제목 ‘무지개’가 모든 색채의 스펙트럼을 의미하는 단어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리게티 다운 제목 붙이기라고 할 수 있겠다. 당연히 곡은 모든 음계로 펼치는 스펙트럼을 기가 막히게 잘 보여준다. 양 손의 박절이 점차 분화하고 강세가 상이하게 붙여진 폴리리듬 위에서 느릿한 선율이 흘러간다. 화성적인 색조는 점점 풍요로워지며 점점 다채로워진다.)

6곡 <바르샤바의 가을> (6.Automme à Varsovie. Presto)

(표제의 제목은 쇼팽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아니라, 1956년부터 개최되던 폴란드의 현대음악 축제를 기념하기 위해 쓴 것이라 한다. 정치적 탄압 속에서 새로운 음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동료들에게 바치는 헌사로 볼 수 있다(리게티가 고국인 헝가리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생각하면 더욱 공감이 간다). 전체적으로 퍼셀 풍의 라멘토 베이스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곡이다. 독주자는 두 개 또는 세 개에서 최대 네 개의 다른 속도의 성부를 연주해야 하며, 그 비율은 3:4:5:7로 벌어진다. 폴리리듬에 대한 작곡가의 타고난 재능이 그대로 드러나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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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소나타 15번 <전원> (Piano Sonata No.15 in D major, Op.28 "Pastorale")

작곡 시기 : 1801년 완성

출판 : 1802년

헌정자 : 요제프 폰 존넨펠츠

(이 소나타는 소나타 Op.27과 함께 1801년에 작곡했다. 이 작곡 연도는 베토벤 자필악보에 분명하게 적혀 있지만 언제부터 구상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베토벤은 Op.26에서 27까지의 세 곡의 소나타에서 매우 새롭고 대담한 시도를 한다. 즉, Op.27-2에서는 격렬한 감정을 폭발시키지만, 이 소나타에서 그런 적극적이고 투쟁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형식이나 내용면에서 모두 온화하다. 강한 주관성의 세계와 평화롭고 조용한 객관적인 세계를 대립시켜 색다른 작품들을 만들어 나가는 방법은 베토벤 창작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일반인들이 베토벤에 대해 흔히 가지는 오해가 ‘베토벤은 단조의 작곡가’라는 것인데, 베토벤의 곡을 조금이라도 살펴보기만 한다면 그것이 터무니없는 오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곡 중 단조를 중심조성으로 채택한 곡이 불과 9곡이라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즐겁고 경쾌한 데서 그치지 않고 감정의 고양을 불러일으켜 <전원>이라는 표제가 붙은 이 곡 또한 장조 조성을 택하고 있다.

<전원>이라는 표제는 함부르크의 출판업자 아우그스트 크란츠(August Cranz, 1789-1870)가 1838년에 붙인 것이다(당시에는 전원풍의 음악이 유행을 탔다). 당시 존경받던 빈 음악계의 원로 요제프 폰 존넨펠츠(Joseph von Sonnenfels, 1733~1817)에게 헌정했는데, 베토벤과 그가 어떤 관계였는지 상세히 알려주는 문헌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존넨펠츠는 드물게 성실하고 인격이 온후한 음악 후원자로, 만년에 미술학교 교장을 지냈으며, 극작가로서 계몽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베토벤은 그의 도움으로 적절한 출판사를 찾을 수 있었다고 하지만 다른 헌정자들과는 달리 큰 도움은 받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받은 것에 감사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의 인격 자체를 헌정의 이유로 삼은 것일 수도 있다.)

 

1악장 (1.Allegro 3/4) (D major)

(총 461마디. 발걸음처럼 이어지는 베이스의 D음은 우리를 자연스레 전원으로 인도한다. 이 D음 위에서 따스한 1주제가 나온다. 주제는 옥타브 위에서 되풀이되고, 40마디부터 음의 세기가 약간 기복이 있는 상승 악구가 나온 후, 이것도 역시 되풀이된다. 여기서 39마디에 걸쳐 D음이 오르겔풍크트로 등장한다. 그리고 느긋하게 흐르듯 경과부로 들어간다(63마디부터). 도중에(77마디) pp의 새로운 경과구적 악상이 나타나고 90마디 후반부터 A장조로 제2주제가 평화롭게 나타난다. 화려한 패시지와 제2주제의 전개가 교대로 등장한 후, 코데타에서 다시 사랑스러운 새로운 악상이 등장하여 f까지 고조된다. 급격하게 데크레셴도하며 제시부를 마치고 다시 반복된다.

발전부에서는 제1주제를 소재로 한 매우 분석적인 전개가 이루어지고, 8분음표에 의한 흐르는 듯 느껴지는 대위법적 전개가 이루어진다. 후반에 긴 F#음을 지속음으로 장장 38마디를 등장시켜 주제의 재현을 기대하게 만들지만 끝부분에 코데타 주제가 나와 세 번 되풀이한(세 번째는 아다지오) 후, 그제서야 pp의 재현부로 들어간다. 원칙대로 재현부에서는 제2주제도 D장조로 재현하며 제1주제에 의한 코다로 매우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꺼질 듯 끝을 맺는다.)

 

2악장 (2.Andante 2/4) (D minor)

(99마디) (생전의 베토벤이 좋아했던(체르니의 증언에 따르면), 느긋한 분위기의 느린 악장. 조성은 D단조를 택했으나 스타카토 리듬으로 어두운 느낌은 별로 없다. 동기는 먼저 D단조로 제시한 후 바로 A단조로 반복한다. 중간부는 D장조로 점음표를 지닌 리듬과 2개의 셋잇단음표를 쓴 동기가 리듬적 특징을 보이는데, 이 부분의 스타카토는 현악기의 피치카토와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 해학적인 느낌으로 8마디 주제를 선보인 후 다시 반복한다. 코다(83-99마디)는 중간부의 주제를 회상하며 pp로 조용하게 끝난다. 참고로 초고에는 스타카토 부분이 스타카티시모로 표기되어 있었다.)

 

3악장 (3.Scherzo. Allegro vivace 3/4) (D major)

(Op.22 이후 오랜만에 등장하는 스케르초 악장이다. 극히 빠르며, 느린 악장보다 더욱 가볍다. 우선 4옥타브에 걸쳐 부드럽게 하강하는 F#음에 이어 주제가 되풀이된다. 주제에는 스타카토가 붙어 있는데, 희한하게도 이 스타카토 음을 제외한 나머지 음들은 잘 들리지 않는다.

71마디부터 94마디까지인 트리오는 B단조. 슬라브 농민들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매우 소박한 주제가 등장하고 이것을 반복한다. 반주는 유머러스한 오스티나토 음형으로 일관하며, 반주형과 조성만 바꾸어 다시 16마디를 더 등장시킨 후 스케르초 다 카포로 돌아가 곡을 끝맺는다.)

 

4악장 (4.Rondo. Allegro ma non troppo 6/8) (D major)

(이 악장의 전원적인 정서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동의한다. 카를 라이네크는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또는 산림들의 속삭임을 연상시킨다”고, 에르테라인은 “시끄럽게 뛰노는 시골의 건강한 아이들을 연상시킨다”고 했으며, 조지 그로브도 이 악장을 두고 “목가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한 적이 있다. 1악장처럼 D음이 오르겔풍크트로 깔린 채 시작하는데, 이 D음은 어떻게 들으면 종소리같이 들린다. 9마디부터 첫 동기가 복잡하게 얽히며 탁월한 주제 전개를 보인다. 28마디부터 등장하는 B파트(28마디~51마디)는 A장조로, A파트의 전원적인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A를 재현한 후(51마디~78마디) 등장하는 C파트는 G장조로, 3성부의 대위법적인 처리로 시작하여 100마디까지 진행하다 101마디부터 화려한 경과구로 꾸며진다. 112마디에서 D장조의 딸림음 위에서 빛나게 상승하다 페르마타로 잠깐 종지한 후 A파트로 다시 돌아간다. 192마디에서 Piu Allegro quasi Presto로 찬란한 코다를 선보이며 207마디에서 ff로 최고조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며 D장조의 딸림 7화음을 거쳐 으뜸화음으로 종지하며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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