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Piano Sonata No.8 in C minor, Op.13 "Pathetique")

작곡 시기 : 1797년에서 1798년

출판 : 1799년. 빈의 에데(Eder) 출판사.

헌정자 : 카를 리히노프스키 후작

(베토벤 초기 소나타의 정점을 이루는 걸작으로, 극적이고 아름다운 악상 때문에 더욱 널리 알려졌다. 연주 기술 또한 비교적 어렵지 않아서 많은 이들이 즐겨 연주한다.

작곡 연대는 단정할 수 없지만 1798년 이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노테봄에 따르면 론도 악장은 원래는 피아노를 위해 구상한 것이 아니라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해 구상한 곡이었다고 한다. 스케치는 Op.9-1, Op.9-3(둘 다 현악3중주곡)의 스케치에 섞여 있다.

이 소나타를 출판했을 때 초판 표지에는 「Grande sonate pathétique(비창적 대 소나타)」라고 적혀 있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가운데 작곡가가 직접 표제를 붙인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며, 이후의 작품 중에는 Op.81a의 《고별 소나타》가 있을 뿐이다. ‘pathétique', 즉 ’비창‘이라는 말이 당시 베토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살펴본다면, 베커의 주장처럼 지금까지 소나타에 부분적으로만 나타나던 베토벤 특유의 감정이 여기서는 분명하게 결정체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창한 표제에 비해 아직 내용상으로는 후기에 나타나는, 정신을 뿌리째 뒤흔드는 비극적인 요소와는 거리가 멀다. 스코트는 이 곡을 「로미오와 줄리엣」에 비교한다. 그는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을 ’청춘의 애상감‘이라는 말로 표현한 바 있다. 어쨌든 애써 표제를 붙여서 듣는 이들에게 자신의 주장과 곡의 내용을 전달하려는 매우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은, 당시의 베토벤이 이미 하나의 음악에 뭔가 확실한 의미를 담으려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음을 알게 한다. 그리고 표제에서 드러나는 베토벤의 자신감은, 젊은 베토벤의 패기만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나타가 세상에 나온 1799년은 1800년을 예비하는 해이며, 1800년 이후 베토벤의 격동하는 삶을 생각하면 이 소나타는 그 삶에 대한 전주곡처럼 보인다.

자필악보는 현재 사라진 상태. 초판은 1799년 가을, 에데 사에서 출판했다.

헌정자인 카를 리히노프스키(Karl Lichnowsky. 1756~1814) 후작은 대단한 음악애호가로 모차르트와도 진했으며, 젊은 베토벤의 재능을 일찍부터 발견하여 그를 자신의 저택에 머무르게 하였다. 이 곡 외에 3개의 피아노 3중주곡 Op.1, 「교향곡 제2번」, 피아노 소나타 Op.26도 후작에게 헌정했다.

시종일관 명쾌한 선율과 복잡하지 않은 화음으로 일관하지만 내용이 워낙 충격적이라(시작부터 fp로 내려치는데다 감7화음의 효과적 사용이 많은 인기를 끌은 모양이다) 당시 빈의 음악학도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악보 품귀 현상까지 빚었다고 한다.)

 

1악장 (1.Grave 4/4 - Allegro di molto e con brio 2/2) (C minor)

(10마디의 서주를 가진 소나타 형식. fp로 울리는 비극적인 느낌의 그라베Grave 서주에는 기본 동기(C-D-E♭)가 들어 있다(이 동기는 나중에 차이코프스키가 자신의 교향곡 6번에 사용한다). 첫마디부터 (앞으로 지속적으로 쓰일) 감7화음(F#)을 내놓으면서, 감7화음의 교과서적인 용례를 보여준다. 이전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에는 이런 예가 없었지만,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KV.457에 이런 선례가 있다(바흐 파르티타 2번 BWV 826과의 연관성도 제기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세 곡 모두 C단조다). 서주는 마지막 부분에서 급격한 반음계적 하강을 보이며 알레그로 디 몰토 에 콘 브리오Allegro di molto e con brio의 주요부로 향한다. C단조의 1주제는 트레몰로에 실려 스타카토로 상승하는 격렬한 주제이며, 이어 주로 1주제에 토대를 둔 기복 심한 경과부가 이어진다. 2주제는 병행장조인 E♭장조가 아니라 E♭단조로 시작한 뒤 40마디 가까이 지나서야 E♭장조가 나온다. 이 두 개의 주제 중 어느 것이 진정한 2주제가에 대해서는 논의가 분분하지만, 동일 음계 위의 장ㆍ단조에 의한 두 개의 주제를 두는 것은 이미 Op.2의 소나타 1악장에서도 나타나며, 그 경우 모두 주제적인 성격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

이 두 개의 주제는 앞의 것이 화려하고 다듬어지고 유동적인 데 비해 뒤의 것은 막연한 리듬감을 차츰 고조시켜 가는 스타일로, 대단히 효과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계속해서 명쾌하게 흐르는 느낌을 선율을 연주하며, 그 후 1주제에 의한 코데타로 이어져 제시부가 끝난다.

발전부에서는 먼저 그라베가 G단조로 나타나고 다시 알레그로로 넘어가 1주제를 전개한다. 조성은 E단조로 시작해 B단조를 거쳐 D단조로 나아간 후 반음계가 붙는다. 발전부에도 그라베 음계가 나타나는 것이 특이하다. C단조는 재현부 직전에 돌아온다.

재현부에서는 1주제를 재현한 후 조금 길어진 전개 부분이 오며, 2주제 첫 부분은 F단조로, 둘째 부분은 C단조로 재현한다. 코다에서는 짧은 그라베의 재현 후 1주제로 간결하게 마무리한다.)

 

2악장 (2.Adagio cantabile 2/4) (A flat major)

(A-B-A의 3부 형식. 73마디의 짧은 악장이지만 베토벤의 느린 악장 중 가장 우아한 악장으로 손꼽힌다. 나겔(W. Nagel. 1863~1929)이 베토벤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것이라 평한 악장이다. 주제는 3성으로 중성(비올라)을 반주로 삼고 상성(바이올린)과 베이스(첼로)가 선율적인 흐름을 취한다. 짧게 말해 현악 3중주의 구도와 비슷하다. 베토벤 초기의 느린 악장 중 가장 아름답고 달콤한 선율을 들려준다(전문 용어로 ‘가요성’이라 한다. 선율선은 C-B♭-E♭-D/C-E♭-A♭-B♭-E♭). 베토벤이 이토록 아름다운 선율을 작곡한데는 신형 피아노인 발터제 피아노의 성능을 자랑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다고 한다. 주제는 약간 형태를 바꾸어 반복하는데, 반복할 때는 4성으로 나타난다. F단조의 짧은 부주제는 주요 주제보다 좀 더 폭넓은 음역에 걸쳐 있으며 바이올린의 선율을 연상시키는 단성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주제의 재현을 거쳐 A♭단조의 2주제가 나온다. 조성 자체는 우울하지만 셋잇단음표가 우울한 기분에 약간의 생동감과 활력을 부여한다. 2주제의 셋잇단음은 주제로 복귀한 이후에도 계속 반주부의 리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코다는 딸림음인 E♭으로 시작해 점차 긴장을 풀고 조용히 끝을 맺는다.)

 

3악장 (3.Rondo. Allegro 2/2) (C minor)

(A-B-A-C-A-B-A-코다의 전형적인 론도 형식. 1악장의 비장함은 덜고, 열정을 더한 악장이다. 속도감 있는 C단조의 1주제로 시작하는데, 이 주제는 1악장 그라베 및 E♭단조 주제와 동기 상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매끈하고 아름다운 선율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이 주제의 느낌은 3악장 전체를 지배하는 독특한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주제를 확실히 매듭을 지은 후 짧은 경과부로 들어가며, 이어 정서를 순화시키는 E♭장조의 2주제가 나온다. 론도 주제가 복귀한 후 81마디부터는 A♭장조의 감성적인 3주제가 나오지만(대위법을 능숙하게 사용하며 8분음표 차이로 오른손과 왼손이 엇갈린다), 이 주제의 후반부는 론도 악장에서 가장 격렬한 부분이다. 다시 1주제로 돌아간 후 2주제가 복귀하면 주제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2주제의 복귀는 6도 위에서 이루어지는데, 셋잇단음표 출현부분을 반복한 다음 제3요소인 E♭장조 부분도 C장조의 딸림음으로 시작(156마디), 후반부는 E단조를 거쳐 B단조로 이어지고 1주제가 C단조로 돌아온 후 이어지는 코다는 하강 악구에서 페르마타 한 후, 202마디에서 짧게 A♭장조로 론도의 주제를 회고한 후 C장조로 돌아가 돌연(pp→ff) F# 감7화음(F#/A/C/E♭)을 등장시킨 후 이것을 C단조 I로 해결하고 그대로 마친다. 감7화음은 이 곡의 처음과 끝을 하나로 묶으면서, 이 곡을 열고 닫는 키워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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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 협주곡 (Cello Concerto in B minor, Op.104)

작곡 시기 : 1894년 11월 착수, 1895년 2월 완성

작곡 장소 : 뉴욕

헌정자 : 첼리스트 하누슈 비한

악기 편성 : 독주 첼로,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3, 트럼펫 2, 트롬본 3, 튜바, 팀파니, 트라이앵글, 현악 5부

(“예술을 갖고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민족은 아무리 작더라도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우리는 희망을 가집시다.”

- 드보르작. 브람스에게 한 말 중에서)

(드보르작은 첼로 협주곡을 미국 체류 기간 동안 작곡했다. “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중음역은 훌륭하지만 저음역은 웅웅거리기만 하며 고음역은 코 먹은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라 할 정도로 첼로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던 드보르작이지만, 습작에 가까운 A장조 첼로 협주곡(1865)과 이 B단조 첼로 협주곡을 완성했으며, 특히 B단조 첼로 협주곡은 역대 최고의 첼로 협주곡으로 꼽힌다. 어쩌면 남다른 프로 정신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협주곡은 “첼로는 그다지 민첩한 악기가 아니다”라고 한 베를리오즈의 주장을 반박하는 최초의 협주곡으로 꼽을 수 있다. 생각해보라. 첼로 같이 무겁고 둔중한 악기에게서 민첩하고 섬세한 움직임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 협주곡이 명곡이라고 일컬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첼로라는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용적인 면에서도 역대 최고의 협주곡이라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하지만.

미국에서 작곡을 진행하던 중, 한 때 사랑했던 여인 요세피나의 타계 소식을 접한 드보르작은 그녀가 좋아했던 자신의 가곡을 2악장 중간부에 삽입했다. 그는 이 곡에 인디언과 흑인의 민요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편지로 그것을 반박한 일이 있지만, 곡이 보헤미안의 정서와 미국 민요의 정서를 같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드보르작은 곡을 완성한 후 1895년 6월에 체코 출신 첼리스트 하누슈 비한의 충고로 마지막 악장 독주 부분을 수정하였고, 1896년 초연 후에 프라하에서 마지막 60마디를 고쳤다(이 때 3악장에서 클라리넷이 요세피나가 좋아하던 가곡 선율을 회상하는 부분도 삽입한다). 이 때 작곡가는 자신이 미국에서 접한 오페레타 작곡가 빅터 허버트의 첼로 협주곡을 참고해 그 곡의 첼로 고음 기교와 관현악 편성(세 대의 트롬본)을 자신의 곡에 차용했다. 작곡가는 세 대의 트롬본을 사용해도 트롬본의 음향이 첼로의 음향을 누르지 않는다는 사실을 허버트의 첼로 협주곡을 통해 알게 되었고, 망설임 없이 그의 악기 편성을 차용했다고 한다.

이 곡의 초연 과정에는 잡음이 많았다. 드보르작은 비한이 이 곡을 초연하기를 바랐지만, 런던 필하모니 측은 초연 독주자로 레오 스턴을 강력하게 밀어붙였고, 결국 작곡가는 1896년 3월 19일 런던 필하모니, 레오 스턴과 초연을 치른다. 이 일로 인해 작곡가와 비한의 관계는 크게 틀어지게 되었지만, 헌정자는 결국 비한으로 정해졌다. 드보르작은 초연을 치른 후에도 이 곡을 연주할 진짜 적임자는 비한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애초에 드보르작이 첼로 협주곡을 쓰게 된 최초의 계기가 바로 보헤미아에서 접한 비한의 첼로 연주였다.

브람스는 이 곡의 악보를 접하자마자 곡의 진가를 알아챘다. “이런 첼로 협주곡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먼저 이런 작품을 썼을 텐데!” 하지만 아쉽게도, 그 당시 브람스에게는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1악장 (1.Allegro 4/4) (B minor)

(클라리넷이 저음으로 B단조의 1주제를 제시한다. 이 주제는 곧 확대되어 곧 투티로 이어진다. 관현악이 1주제와 2주제의 제시를 완전히 마치고 난 후에야 독주 첼로가 등장하는데, 독주 첼로는 1주제를 quasi improvisando(즉흥연주 풍으로), B장조로 제시한다. 첼로는 곧이어 D장조의 2주제를 제시한다. 발전부는 D장조로, 주로 1주제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재현부는 B단조가 아닌 B장조로 1주제를 재현하며, 2주제를 재현부 첫머리에 넣고 있어 일반적인 소나타 형식에서 벗어나고 있다. 독주 첼로는 아주 뛰어난 기교를 사용하고 있으며, 마지막에 가서는 연주하기 어려운 높은 B옥타브를 구사한다.)

 

2악장 (2.Adagio ma non troppo 3/4) (G major)

(드보르작이 가장 사랑했던 여인, 요세피나 체르마코바를 위해 만든 중간 악장에서도 첼로의 뛰어난 기교는 유감없이 드러난다. 작곡가는 첼로 협주곡을 작곡하던 중 요세피나의 사망 소식을 접했고, 그녀에 대한 모든 기억을 이 악장 속에 담았다.

주제를 처음 제시하는 것은 클라리넷인데, 9번 교향곡 2악장처럼 가슴 저미는 멜로디를 들려준다. 망향의 감정은 시대와 사상을 초월하는 것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던 작곡가에게 그것은 창작 활동의 원천이 되었다. 드보르작은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중간부에서 작곡가는 요세피나가 특별히 좋아했던 가곡인 <나 홀로 내버려 두세요>(Op.87, 1882)의 선율을 차용한다. 마지막에는 첼로 혼자 두드러지는 구절이 있는데, 더블 스탑 포지션에서 왼손의 개방현 피치카토를 사용하거나, 중음주법을 자유로이 구사해야 하며, 마지막 두 마디에서 볼 수 있듯 기교적으로 매우 어려운 자연적인 하모닉스를, 그것도 아주 작은 음량으로 사용하도록 지시하는 것으로 알 수 있듯 첼로에게 고난이도의 기교를 요구한다.)

 

3악장 (3.Finale. Allegro mderato 2/4 - Andante - Allegro vivo) (B minor)

(자유로운 론도 형식. 저음현의 유니즌 위에서 튜바가 기백 있는 B단조의 악구를 연주하면 곧 투티로 이어진다. 그리고 첼로가 나타나 튜바의 악구를 본격적으로 연주한다. 마지막 전투에 나서는 영웅의 기백이라고 해야 할까. C장조의 모데라토 구절은 전쟁이 끝나고 평화를 되찾은 영웅의 만년일지도 모른다. 클라리넷이 1악장 주제를 장조로 회상하고 난 후, 마지막에 독주 첼로는 몇 개의 악기와 함께 대화를 한다. 아주 느리게 A장조에서 C#장조, B♭장조를 옮겨 다니며 자신의 인생 역정을 회상한다. 그 과정에서 클라리넷은 요세피나가 좋아했던 선율을 다시 한 번 부른다. 다른 악기들은 이제 하나둘 물러나고, 이제는 현악기군의 피치카토와 독주 첼로만이 남는다. 카잘스의 말대로 독주 첼로의 숨이 완전히 소진되면, 오케스트라가 알레그로 비보로 힘찬 종결구를 연주한다. 하늘이 열리고 숨을 거둔 영웅의 영혼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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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악 4중주 4번 (String Quartet No.4 in C chord, Sz.91)

작곡 시기 : 1928년 7월에서 9월 사이 (추정)

작곡 장소 : 부다페스트

헌정자 : 프로 아르테 4중주단

(“현악4중주곡 제4번은 실제로 바르토크의 가장 위대하고 심오한 업적을 대표한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이에 가까이 도달해 있다. ……일단 그 비밀이 발견되면, 금세기에 이처럼 의미심장하고 보람된 작품은 드물다.” - 헐시 스티븐스)

(헐시 스티븐스가 버르토크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로 인정한 현악 4중주곡 4번. 전체적으로 A-B-C-B'-A'와 같은 가교형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두 개의 스케르초 악장이 중간의 느린 악장을 감싸고 있다(5번에서는 반대로 두 개의 느린 악장이 스케르초를 감싸고 있다). 이에 따라 3악장의 중간부가 곡의 중심이 된다. 작곡가의 무르익은 대위법적 기법과 구조적 통합에 대한 놀라운 통찰력, 그리고 다양한 음악적 소재가 복합적으로 움직이는 명곡이다. 이 곡의 카논 작법은 한두 마디로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한데, 거의 모든 음이 고도로 논리적인 전개에 따라 움직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에는 푸가나 푸가토가 하나도 없다. 오직 순수한 대위법적 기교를 동원해 곡을 만들고도 대위법 진행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푸가의 유혹에 전혀 빠지지 않은 셈이다.)

 

1악장 (1.Allegro 4/4)

(첫머리의 동기는 제1바이올린의 주선율에 대하여 제2바이올린이 단 9도로부터 완전 4도로의 사행진행을 하고, 첼로는 대조적으로 6도 음정 연접을 통한 상행진행을 하는 독특한 진행을 취한다. 곡을 통일하는 가장 중요한 동기는 7마디에서 등장한다. 주요 동기는 C#에서 E♭으로 상행한 후, C로 다시 하행한다. 동기는 무한한 전위와 음정적 확대 과정을 거치며 곡 전체를 지배한다. 2주제는 민요풍의 바이올린 연주로 제시하고 발전부와 재현부를 거쳐 긴 코다를 맞는다. 종지에서는 마르카토를 사용하여 음 하나하나의 강한 인상을 남긴다.)

 

2악장 (2.Prestissimo, con sordino 6/8)

(2악장과 4악장은 쌍둥이 스케르초(Gemini Scherzo). 같은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반음계적인 2악장은 글리산도로 연주하는 데 반해, 온음계적인 4악장은 바르톡 특유의 피치카토로 연주하다. 둘의 느낌은 너무 이질적이라, 둘이 같은 모티브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유추하지 못할 정도다. 같은 얼굴을 한 채 다른 목소리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쌍둥이의 모습이라 해야 할까. 현은 여기서 약음기를 부착하고 연주하며, 개시부의 주악상을 반음계적인 패시지로 반복한다. 2악장과 4악장의 세부를 들여다보면, 2악장이 반음계를 E에서 B까지 상행하는 부분을 4악장은 옥타브에 걸쳐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고도로 논리적인 대위법적 과정은 2악장에서도 변함이 없는데, 대위법적 전개에 따라 움직이던 7개음이 G음과 C#음 사이의 지점으로 모두 모여드는 71~72마디의 귀절은 정말 경이롭기 짝이 없다. 카논 작법에서도 작곡가는 훌륭한 재주를 보여주는데, 4대의 악기가 장2도 간격으로 움직이는 카논은 그 귀절이 포함하는 온음계와 증4도로 인해 색다른 느낌을 준다.)

 

3악장 (3.Non troppo lento 4/4)

(전곡을 통틀어 가장 중심에 놓이는 악장으로 앞뒤의 악장이 대칭적으로 놓여있다. 비브라토 없이 연주하는 첼로의 마쟈르 민요적인 전개가 첫머리를 열면 다른 악기들은 배분법에 따라 공통음 없이 화성을 진행한다. 중간부에 ‘새의 노래’가 들어 있는데, 1바이올린의 고음으로 연주한다. 오직 이 중간부만이 다른 악장들과 재료를 공유하지 않고 독자적인 소리를 낸다. 그 뒤 1부가 돌아온다.)

 

4악장 (4.Allegretto pizzicato 3/4)

(악장을 피치카토로 진행한다. 차이코프스키가 피치카토 악장을 만든 선례가 있지만 버르토크의 피치카토는 그가 발전시킨 주법의 확대로 인해 고유의 음악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여기서 현악기들은 다양한 피치카토 주법을 사용하는데, 대표적으로 손톱 피치카토와 스냅 피치카토를 꼽을 수 있겠다. 이 중 현을 튕겨 지판에 강하게 부딪히도록 하는 스냅 피치카토는 ‘버르토크 피치카토’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악상은 2악장의 악상을 온음계적으로 변형한 것이다.)

 

5악장 (5.Allegro molto 2/4)

(1악장의 모티브를 대위법적으로 재생산하는 피날레 악장. 강력한 중음주법의 유니즌으로 시작한다. 1악장의 음형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온음계적ㆍ대위법적으로 변형한 음형을 사용하는데, 그 변형의 과정이 복잡해 듣는 것만으로는 음형을 바로 확인하기가 힘들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1악장 주요 동기의 전위형을 더 확대한 형태가 5악장의 주요 동기로 쓰인다. 춤곡 풍의 리듬도 1악장과 5악장의 구조적 연결을 쉽게 눈치채기 힘들게 한다. 이 주요 동기도 계속 확대와 전위 과정을 거친다. 다만 마지막 악장 중간에서 기본 모티브의 원형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본 모티브는 악장 마지막 순간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계속해서 새로운 옷을 갈아입으며 점점 더 화려하게 변하던 모티브가 원래 형태로 돌아와 끝을 맺는 방식은 스티븐스가 지적하듯 신데렐라의 모습과 유사하다. 열두 시가 지나고 다시 재투성이 처녀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신데렐라 말이다. 그러나 버르토크의 모티브는 결코 재투성이 처녀처럼 볼품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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