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악장의 주제에 관한 논쟁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멜로디 위에 리듬을 새긴 이 주제는 전통적으로 메트로놈 소리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하는데, 밑의 사실들을 조합하다 보면 정말 그런 것인지조차 의심이 간다.

 이 메트로놈은 요한 네포무크 멜첼(1772~1838)이 고안한 것이라고 한다. 멜첼과 그의 동생 레오나르트 멜첼(1783~1855)은 1812년 초쯤에 베토벤과 친하게 지내기 시작했을 것이다. 형 요한은 《전쟁 교향곡》을 베토벤에게 위촉하여 큰 돈을 벌었던 인물이다(베토벤을 위해 보청기를 만든 것은 동생 멜첼이었다). 그가 베토벤과 친하게 지내게 된 것은 크로노미터라는 장치를 만들면서부터이다. 1813년 10월 13일 빈의 한 신문에 이 크로노미터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멜첼 씨는 기계와 음악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여행에서 유명한 작곡가나 음악학교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함이 있는 것으로 판명된 기계를 개선하여 많은 사람이 쓸 수 있도록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멜첼 씨는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했으며, 최근 전시되었던 견본으로 빈의 작곡가들을 만족시켰다. 이것은 곧 국내의 여러 작곡가들의 주의를 끌게 될 것이다. 이 견본은 작곡가 살리에리, 베토벤, 비글, 기로베츠, 훔멜이 다양한 테스트를 했다. 궁정 악장 살리에리는 우선 하이든의 《천지창조》에서 이 크로노미터를 사용해보았다. 그리고 악보의 다양한 단계에 따라 다양한 템포를 맞출 수 있었다. 베토벤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템포가 자주 잘못 이해되고 있는 것에 대해 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발명품으로 인해 자신이 생각하는 템포로 화려한 악곡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이때의 크로노미터는 아직 메트로놈이라고 불리지 않았으며, 기계적인 메트로놈과는 달랐다. 메트로놈의 실제 발명자는 네덜란드의 기사 빙켈이라고 한다. 멜첼은 1815년 암스테르담에서 빙켈의 제품을 알게 되었고 그 아이디어를 그대로 빌려 파리에서 그것을 모델로 한 장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1816년 파리에서 메트로놈이라는 이름으로 이 제품에 대한 특허를 취득하였다. 멜첼이 빈에 돌아온 것은 이듬해인 1817년이다.

노테봄의 「제1베토베니아나」에 의하면, 멜첼은 1815년이라는 연대를 메트로놈에 새겨넣었다고 한다. 하지만 메트로놈에 대한 소식이 빈에 전해진 것은 1816년 가을로 추정된다. 멜첼은 파리에 메트로놈 공장을 세워 대량생산을 하게 되고, 1817년 초에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널리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나 멜첼이 목표로 삼았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그리 큰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쉰틀러는 그의 저서 「베토벤」에서 크로노미터와 메트로놈을 혼동하는 실수를 저질러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1812년 봄 베토벤, 기계 제조업자 멜첼, 브룬스비크 백작, 슈테판 폰 브로이닝 등의 여러 사람이 송별 식사를 위해 모였다. 베토벤은 린츠에 있는 동생 요한을 방문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교향곡 제8번》을 작곡한 후에 보헤미아의 휴양지로 가려했다. 멜첼은 그 유명한 자동식 메트로놈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영국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그 계획을 연기하였다. 이 기계 사업가가 발명한 박자 측정기 메트로놈은 이미 살리에리, 베토벤, 비글 등 유명한 음악가들이 그 효과를 인정하고 대중들에게 추천을 할 만큼 진보한 것이었다. 베토벤은 기지를 발휘하여, 풍자하듯이 그 기계를 "지휘자가 필요없는 물건"이라고 말하며 카논을 즉흥적으로 작곡, 연주하였다. 그것을 곧 친구들도 노래하였다.」 

쉰틀러는 이 책에 그 카논 악보를 실었는데, 이 카논에서 《교향곡 제8번》의 알레그레토 스케르찬도가 만들어졌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카논은 킨스키—할름 작품 목록 WoO 162에 해당하며 《교향곡 제8번》의 제2악장을 해설할 때 자주 인용되는 유명한 것이다. 이것은 《타타타 카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카논에 「타타타 사랑하는 멜첼 씨, 안녕, 안녕히 가십시오. 시대의 마법사, 위대한 메트로놈……」이라는 가사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저녁모임이 1812년 봄이었는지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1810년 3월부터 1813년 2월까지 브룬스비크 백작은 빈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백작이 그 자리에 없었던 것은 그렇다고 해도 당시 멜첼의 메트로놈이 유명해졌다는 것도 이상하다. 그리고 1820년 베토벤의 회화장에 의하면, 쉰틀러가 《교향곡 제8번》 제2악장 동기에 의한 카논의 오리지널 악보를 발견하지 못했으니 그것을 자신을 위해 써달라고 베토벤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또한 1824년에 《타타타 카논》을 노래했던 즐거운 저녁은 1817년 말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멜첼은 1817년 말이 되어서야 빈에 돌아와 메트로놈을 선전하였다. 식사를 한 것이 1812년 봄이라면 당시 노래한 카논가사는 현재 남아 있는 것과는 다른 것이며 메트로놈이라는 이름도 아니었을 것이다. 1817년 말에 노래한 카논은 현재의 가사와 같은 카논으로 보이지만 이 연도도 쉰틀러가 적은 것이기 때문에 확실치는 않다. 단, 쉰틀러가 자신은 소프라노를 노래하고, 멜첼이 베이스를 노래했다고 적고 있으므로 멜첼이 빈에 있었던 것은 확실하다. 또한 현재 남아있는 이 카논 악보에는 메트로놈 속도로 8분음표가 72라고 적혀 있다. 노테봄에 의하면, 이것은 쉰틀러가 《교향곡 제8번》 제2악장을 보고 적은 것으로 보이며 베토벤 자신이 기록한 것은 아니다.

노테봄은 이 카논이 1812년 여름에 즉흥적으로 작곡된 것이며 교향곡 제8번 제2악장의 스케치 연대와는 모순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카논이 제2악장에 이용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1812년 봄에 이 저녁모임이 실제로 있었는지 확실치 않으며, 그때 베토벤이 이미 이 악장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쓰는 것을 중단했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카논과 제2악장의 관계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위의 사실에서 도출할 수 있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1812년에 이미 크로노미터라는 이름의 박자를 재는 기계가 있었다.

 2) 베토벤은 1812년에 교향곡 8번 2악장을 착상, 완성했다.

 3) 크로노미터가 멜첼에 의해 개량되어, 메트로놈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1815년이다.

 4) 멜첼은 1817년 말에야 빈으로 돌아와 메트로놈을 선전했으나 많이 팔리지는 않았다.

 5) 쉰틀러는 1812년 저녁모임에서 베토벤이 메트로놈을 보고 카논을 작곡했으며, 이 카논에서 교향곡 8번 2악장이 유래했다고 말한다.

 6) 그러나 1812년에 위와 같은 저녁모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카논을 노래한 것은 1817년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것조차 확실치 않다.

 7) 만약 1812년에 저녁모임이 있었다면, 지금 전해지는 형태의 카논과는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1812년에는 멜첼이 빈에 없었고, 또 그 당시에는 '메트로놈'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진실은 미궁 속에 만악의 근원인 쉰틀러를 죽여야 합니다 아 이미 죽었지

 

 노테봄의 주장을 전용한다면, 카논의 작곡은 교향곡 8번과 비슷한 시기에 이루어진 것이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향곡 8번 2악장과 카논이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섣부른 행동이다. 물론 교향곡을 쓰다 중단하고 카논을 작곡한 후, 다시 마음을 바꾸어 교향곡을 완성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논과 메트로놈의 연관성은 너무 희박해서 제쳐놓지 않고서는 판단이 어렵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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