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 (화)


 카를 리히터 오르간곡집 (DG) CD 3


 2~3년 전부터 내게는 새로운 습관이 하나 만들어졌다. 새해 첫 날 하루를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 F장조 BWV 540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한 해의 시작은 비처럼, 바람처럼, 별처럼, 햇살처럼 충만한 곡과 함께 하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올 한 해도 충만한 하루, 충만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이 곡을 듣는 기억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이 블로그를 찾아오시는 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9.1.4 (금)


 훔부르크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 CD 1 (Naxos)


 오디오를 버전업하고 이 음반을 처음으로 틀었다. 역시 오디오를 버전업하면 들었던 음반이라도 다시 한 번 돌려봐야 한다. 허접한 오케스트라는 여전하지만, 성악가들이 빚어내는 앙상블이 만만치 않은 연주.



 2019.1.14 (월)


 뵘 베토벤 교향곡 5번/6번 <전원> (1975년 8월 15일 잘츠부르크 실황)


 고집이 세고 깐깐한 노인의 연주. 15분이나 되는 <전원> 2악장은 느려도 너무 느려 참기 힘들다. 과연 내가 나이를 먹는다고 이런 연주를 찾게 될지는 의문.



 2019.1.17 (목)


 요제프 크립스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LSO (Decca)


 스테레오 초기의 야심찬 녹음. 쭉 뻗는 템포, 쨍쨍한 현악기, 칼칼한 금관악기 모두 마음에 드는데 목관악기가 아쉽다. 특히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나는 플루트는 정말…….


 메타/빈 필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Decca)


 메타는 내가 아는 메이저 지휘자 중 음을 가장 거칠게 다루는 편에 속한다. 최고의 음향을 지향하는 빈 필과 함께 할 때도 그런 그의 천성은 예외가 아니다. 다행인 것은 만년 연주들처럼 음이 날리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는 것. 빈 필과 데카를 총동원한 물량 공세만큼은 기가 막힌다.


 헝가리의 리히테르 CD 1 (BMC)


 페렌치크와 협연한 경이로운 슈만 피아노 협주곡. 이 곡을 생각할 때는 항상 리히테르의 템포로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되는 것이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브람스의 Op.118 두 곡은 No.1보다는 No.6쪽이 더 취향이다. 리히테르는 6번 특유의 염세적 낙원을 정말 잘 살린다. <평균율> 발췌 연주 중에서는 2번과 20번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리히테르의 <평균율>은 장조 곡보다는 단조 곡을 더 잘한다. <프랑스 모음곡>은 인상이 흐릿한 연주.



 2019.1.24 (목)


 코간 브람스/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Melodiya)


 전설적인 몽퇴/보스턴 심포니와의 브람스 협주곡 실황. 악장마다 박수가 터지는 연주회는 이것이 처음이다. 코간의 바이올린은 돌로 찍는 것 같은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다. 왜 이 연주자의 미국 데뷔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D에서 2옥타브 위의 E#(F) 중음을 단번에 찍어버리는 첫 프레이즈부터 코간은 안전장치 없는 야수를 보는 느낌이다. 요하임이 '나처럼 손가락이 큰 사람 아니면 제대로 연주 못한다'라고 경고한 곡, 평범한 연주가들에게는 손가락이 찢어질 것 같은 이 난곡 중의 난곡을 그는 아무 거리낌없이 마구 해치운다. 하지만 반주는 좀 김이 빠진다. 요즘 들어 몽퇴는 듣는 것마다 실망하고 기대치가 낮아지는 지휘자 중 한 명이다. 담백한 연주에 치중해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무신경한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오케스트라는 빈 아니면 베를린인데, 문제는 그가 잡은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들이 음향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영미권 오케스트라는 것. 어떤 오디오로 돌려듣던 끽끽거리는 현악과 빽빽거리는 금관은 짜증이 난다. 특히 현악기가 강주로 유니즌을 연주하는 대목에서는 귀를 틀어막고 싶어진다.

 실베스트리/콩세르바투아와의 차이콥스키 협주곡 녹음은 의외로 실베스트리의 반주력이 마음에 들었다. 왜 EMI가 이 지휘자를 반주 지휘자로 삼았는지 이해가 간다.



 2019.1.25 (금)


 베르글룬드/본머스 심포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EMI)


 속도전의 진수를 들려주는 예르비(Chandos)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레닌그라드> 연주.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정말 '외인부대 특유의 처절함'을 제대로 자아내는 연주다. 적지에 고립되어 양질의 화력지원을 기대할 수 없고, 물량전도 힘들며, 소모전은 더더욱 힘든 외인부대가 연이어 기적을 연출한다. 73분의 분투 끝에 터지는 마지막 한 방의 카타르시스가 엄청나다. 다만 역량이 부족해 지루하게 들리는 3악장이 조금 아쉽다.

 * 난 이 곡과 '배부른 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처절함 없는 <레닌그라드>는 내게 큰 의미를 주지 않는다.


 디터 체흘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14/23 (Berlin Classics)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뵈젠도르퍼스러운 연주. 중음역대의 특이한 소리를 잘 살린다는 장점을 갖추었지만, '터치와 페달링이 특출나지 않으면 음향이 지저분해지는' 뵈젠도르퍼의 단점도 갖추었다. 해석은 상당히 고집스러워서 약간 답답하다. 가끔 듣기에는 나쁘지 않지만 자주 들으라고 하면 못 들을 연주.



 2019.1.28 (월)


 슈리히트/콩세르바투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Testament)


 슈리히트/콩세르바투아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스테레오판(EMI 전집에 들어 있는 연주는 모노 버전). 베토벤 9번을 통틀어 가장 매혹적인 사파. 초장부터 강렬하게 알싸한 현악기 소리로 조진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상대적으로 가볍게 들리는 현악기, 비브라토 특이한(이 당시 프랑스 호른은 피스톤 호른이었다) 관악기 소리와 독일 지휘자의 기묘한 조합이 이런 미친 시너지를 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뭐 지금이야 이런 소리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되었지만(앙드레 말로, 바렌보임 개ㅅ… 아닙니다).



(참고 사진으로 피스톤 호른을 올려본다. 셀마Selmer 사 제작품. 저 피스톤이 보이는가?)



 아드 리비툼 sq. 라벨, 포레 현악 4중주 (Naxos)


 '비단 위에 채색한 그림'. 곡도 연주도 이 비유에 잘 들어맞는 연주들. 운필은 자유롭고 농담은 선명하며 악상은 자유로이 뛰어다닌다. 색채는 부드럽게 스며들고 피치카토는 살포시 현을 튕긴다. 흔히 드뷔시와 커플링하는 라벨 현악 4중주를 그의 스승이자 음악적 연관성이 깊은 포레와 커플링한 것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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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일기 / 2018년 12월

음반 2018. 12. 30. 16:17


 2018.12.11 (화)


 베토벤 현악 4중주 12번 린지(Universial) vs 아르테미스(Erato)


 린지 : 결정 장애 없음. 부다페스트(Sony)의 고철 긁는 소리보다는 낫지만 다소 거칠다. 비브라토 적음. 1악장 7:30, 2악장 18:54로 느긋한 시간대를 잡았다. 다만 이것은 시간대에 한정되는 얘기일 뿐이다. 용암이 느긋하게 흐른다고 해서 용암이 차분하다고 얘기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가장 마음에 드는 연주를 해내는 부분은 4악장이다. 역시 린지는 돌진할 때 가장 아름답다.

 아르테미스 : 21세기 운지법(거트현 느낌). 비브라토가 적은 것은 린지와 비슷하나 운지법의 차이로 인해 린지보다 훨씬 부드럽고 유쾌하게 느껴진다. 린지가 박력 있게 느껴질 정도. 1악장 6:42, 2악장 14:55로 다소 빠르다. 참고로 1악장의 첫 유니즌을 아르페지오처럼 다룬다.



 2018.12.18 (화)


 베르티니 <대지의 노래> (EMI)


 <대지의 노래>의 연주기준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겉으로 배어나오는 공허한 환락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 그리고 속에 깊이 배인 죽음의 정서를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말이 쉽다는 얘기지 이것을 성공시키는 연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기이하게도 그 기준을 가장 잘 충족하는 연주는 두 성악가가 거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크립스 64년 실황(DG)이다. 베르티니는 아슬아슬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다시 말하자면, 이보다 못하면 연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얘기다. 가수는 두 명 모두 그저 그렇고 지휘자가 모든 난관을 도맡아 통과한다. 크립스와 정반대였기에 손익분기점을 통과한 연주.



 2018.12.20 (목)


 라이너의 버르토크 (RCA)

 톡케협 - 걸작, 절창, 명연. 어떤 찬사를 다 붙여도 모자라다.

 현타첼 - 톡케협에 비해 2% 모자라다. 리듬을 좀 더 유연하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텐데.

 헝가리 스케치 - 흥겨움. 곡도 연주도.


 로제스트벤스키 숏9 외 (Brilliant)

 교향곡 9번 - 숨겨진 걸작. 신랄한 유쾌함을 극한으로 표출하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재주가 놀랍다.

 미켈란젤로 가곡집 - 처음 듣는 곡. 네스테렌코 목소리만큼 어두운 곡. 그러나 그 와중에 피어오르는 밤의 이미지들이 기묘한 인상을 남긴다. …… 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곡에 작은 반전이 있다. 꼭 끝까지 들어보시길!


 기제킹 드뷔시 CD 4 (EMI)

 퍄! 이 한 글자면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드뷔시 연주는 해석이 아닌 음향으로 풀어내야 한다. 요즘 나오는 드뷔시 연주들이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도 음향이 아닌 해석에 지나치게 몰두하기 때문은 아닐까.



 2018.12.21 (금)


 뒤트와 라벨 관현악곡집 CD 1 (Decca)


 그럭저럭 괜찮은 라벨 연주.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음향을 너무 많이 만졌다. 뒤트와를 둘러싼 데카의 이런 장난질은 <1812년 서곡> (Decca)에서의 신시사이저 음향 삽입으로 정점을 찍는다.



 2018.12.30 (일)


 바일 하이든 교향곡집 CD 5 (Sony) (교향곡 85-87)


 나는 하이든을 좋아한다. 한 해의 끝을 하이든으로 끝내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담백한 주제의 풍성한 변형, 언제나 핵심만을 남기는 간결한 서법, 그리고 놀라운 자기완결성은 그를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놀라움이자 원동력이다. <파리> 교향곡의 완성도는 <런던> 교향곡 못지않게 뛰어나면서도 조금 더 순수하고 풋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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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일기 / 2018년 11월

음반 2018. 12. 30. 16:02


 2018.11.2 (금)


 <전람회의 그림> 호로비츠 51년 라이브 (RCA)


 피아노 버전 <전람회>의 워너비. 호로비츠의 편곡은 신의 한 수였다. 난 피아노 버전은 이 연주로, 관현악 버전은 테미르카노프 실황(예당)으로 듣는다. 다만 <비들로>에서 자의적인 스타카토와 마르카토는 흉하게 들린다. 아마 이 연주의 몇 안 되는 흠일 것이다.

 (전부터 생각하던 것이지만, 전람회는 천재적인 아이디어에 비해 피아노의 이디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작곡가의 역량이 참 아쉬운 곡이다.)



 2018.11.5 (월)


 트레차코프 숏바협 1 (예당)


 애절하다 못해 통곡하는 비브라토가 인상적인 연주. 오이스트라흐가 숏바협의 표준을 제시했다면, 트레차코프는 가장 감정적인 숏바협을 들려준다.


 에트빈 피셔 평균율 2권 CD 1 (Naxos)


 미스터치, 신비한 음색, 소박한 해석. '최초' 이상의 가치가 있는 연주.



 2018.11.11 (일)


 로린 마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3번 (Decca)


 '열렬한 해석' 못지않게 '황홀한 소리'도 잘 끌어내는 연주. 1악장 첫머리 목관을 현악으로 살짝 덮어 두터운 질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감각은 젊은 마젤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경지다.

 (내가 시벨리우스 연주에서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차가운 극한의 땅을 찬란한 오로라로 물들이는 것. 나는 '냉정하고 차가운 연주'랍시고 무감동하고 무가치하게 시벨리우스를 다루는 연주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연주들을 좋아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벨리우스에 대한 모독이다.)



 2018.11.25 (일)


 카라얀 브루크너 9번 76년 실황 (DG)


 지북…… 아니, 지복의 브루크너 9번. 3악장 클리아맥스에서 기어이 터져버리는 삑사리는 몇 번을 들어도 너무 통탄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수정할 수 없는 결론인 것을.



 2018.11.27 (화)


 요훔 <카르미나 부라나> (DG)


 <카르미나 부라나>의 규범. 야노비츠의 고음(High D)도 디스카우의 발성도 놀랍지만, 피를 끓게 만드는 광포함이 없다. 역시 내 선택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케겔(Berlin Classics)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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