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1 (금)


 프레빈/LSO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 (EMI)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8번은 승리의 개가인 7번과 쇼스타코비치식 풍자의 걸작인 9번 사이에서 불안한 입지를 가진 작품이다.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염세와 불길함의 냄새를 풍긴다. 금관의 폭격은 희망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며, 현악기는 60분 내내 비명을 지르거나 침묵해버린다. 5악장 마지막에 목관이 가녀린 희망을 이어나가려 하지만, 그 최후의 노력은 아무 의미없는 죽음이 되어, 아무도 모르게 잊힌다.

 학살 장면이나 전장의 참상을 스냅샷(공교롭게도 이 단어에는 '총을 난사하는 행위'라는 뜻이 담겨 있다)으로 찍어 고발하는 듯한 무궁동의 3악장을 제외하면, 나는 이 교향곡을 언급하는 것을 거의 본 일이 없다.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엉성한 7번보다 더 잘 만들어졌음에도 말이다.

 프레빈의 8번은 내가 므라빈스키 다음으로 좋아하는 연주다. 그는 쇼스타코비치의 부인할 수 없는 권위자가 된 므라빈스키와는 다르게, 이 우울하고 염세적인 작품을 '듣기 쉽게' 만드는 것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듣게 쉽게' 만들었다고 해서 프레빈이 이 곡을 아무 의미 없는, 아무 생각 없는 키치로 타락시켰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잡아 쇼스타코비치를 공략해나간다. 다이내믹의 극한을 자랑하는 1악장 중반부에서는 그야말로 폭탄을 터뜨린다. 3악장의 리듬감은 므라빈스키와는 다른 의미로 훌륭하다. 무엇보다, 그의 손에서 잡힌 런던 심포니의 음향은 같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들 중 최상급이다.

 프레빈의 쇼스타코비치는 시카고 심포니와 함께 한 4번(EMI)도 훌륭한데, 다른 박스에 묶여 나온 8번과는 달리 이놈은 구하기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워너에서 프레빈의 쇼스타코비치를 전부 묶어 박스로 냈으면 한다. 뭐, 지금 세태를 봤을 때 언젠가는 전집에 전부 들어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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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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