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의 엄숙한 노래> (Vier ernste Gesange, Op.121)

작곡 시기 : 1896년 5월 완성

작곡 장소 : 빈

(브람스의 가장 위대한 마지막 가곡은 클라라의 죽음을 전후한 1896년 5월에 만들어졌다(곡을 출판한 날짜는 브람스의 63세 생일인 1896년 5월 7일이다).1) 브람스는 이 곡을 클라라에게 들려주고 싶어 했지만, 클라라는 이 곡을 듣지 못한 채 1896년 5월 20일에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장지로 가는 기차도 제대로 잡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은 브람스는 클라라의 장례식이 끝난 후에야 장지에 도착한다. 클라라의 죽음은 평행선을 두고 이어져오던 두 선 중 하나가 완전히 지워진 것과 같았다. 평행선의 한쪽 선이 없어지면 다른 선도 더 이상 평행선으로 존재할 수 없다. 당시 브람스의 간에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이 네 개의 가곡은 클라라를 위한, 그리고 브람스 자신을 위한 마지막 가곡인 셈이다.

브람스는 마지막 네 개 가곡의 텍스트를 모두 성서에서 찾았다. 그는 자주 성서를 인용해 성악곡을 만들었고, 그때마다 수준 높은 텍스트의 사용과 음악성을 보여주었다. 이 가곡집에서 그는 이전의 음악을 한 차원 뛰어넘는다. 그가 발췌한 텍스트와 음악은 여러모로 다른 가곡보다는 그의 걸작 《독일 레퀴엠》을 떠올리게 한다. 두 음악은 본질적으로 같은 주제를 공유하고 있다. 모든 인간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죽음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고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브람스는 《독일 레퀴엠》에서도 그랬듯이 단지 죽음의 고통과 어두움만을 말하고 있지 않다. 마지막 곡에서 그는 죽은 이들의 평안과 남겨진 이들에 대한 위로와 사랑을 말한다. 죽음을 초극하는 ‘사랑’이건, 아니면 죽음과 초연한 ‘사랑’이건 죽음 속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 가곡의 위대함은 그 어려운 목표를 극히 브람스다운 방식으로, 짙은 음영을 보이면서도 인간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는 그만의 방식으로 해냈다는 점에 있다.)

 

Denn se gehet dem Menschen wie dem Vieh

(Prediger Salomo 3:19~22)

Denn es gehet dem Menschen wie dem Vieh.

wie dies stirbt, so stribt er auch:

und haben alle einerlei Odem:

und der Menschen hat nicht mehr denn das Vieh:

denn es ist alles ietel.

Es fährt alles an einen Ort:

es ist alles von Staub gemacht, und wird wieder zu Staub.

Wer weiß, ob der Geist des Menschen aufwärts fahre.

und der Odem des Viehes? unterwärts, unter die Erde fahre?

Darum sahe ich, das nicht besser ist.

denn daß der Mensch fröhlich sei in seier Arbeit:

denn das ist sein Teil.

Denn wer will ihn dahin bringen,

daß er sehe, was nach ihm geschehen wird?

사람에게 임하는 일은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전도서 3:19~22)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 짐승에게도 일어나니

짐승이 죽는 것 같이 사람도 죽느니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의 호흡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도 짐승보다 더 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은 허무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한곳으로 가는데

모든 것은 먼지로부터 만들어 졌고

또 다시 먼지로 돌아간다

누가 아는가, 사람의 영혼이 위로 올라가는지,

그리고 동물의 호흡이 땅 밑으로 가는지를?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자신을 일을 할 때

기뻐하는 것 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것을 보았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누가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보려고

다시 그들을 데려 오겠는가?

1곡 <사람에게 임하는 일은 짐승에게도 임하나니>

(1.Denn es gehet dem Menschen. Andante 4/4 - Allegro 3/4) (D minor)

(「전도서」의 냉혹한 구절은 사람이 짐승과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과장 없이 있는 그대로 고한다. 인간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자연은 어제와 똑같은 법칙을 반복할 뿐이며, 그 섭리는 오늘도 변함없이 나아간다. 그 섭리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갈 뿐이다. 흔히 말하는 인사를 다하고(盡人事) 천명을 기다린다(待天命)는 말이 바로 「전도서」의 이 후반부 구절과 일치한다. 「전도서」의 저자 솔로몬 왕은 모든 형태의 환락과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만년에 그의 빛나는 생애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이 글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손에서 왕국이 정점에 도달했고, 동시에 몰락의 시작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특유의 경이적인 통찰력으로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본 이 글을 남긴 것이다.

곡은 감화음이 주를 이루며 어둡고 허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안단테에서 알레그로의 템포 변화는 극단적인 감정 변화를 나타낸다. 첫 도입 부분에서 저음은 D-E-F-E-D-A 오스티나토 진행과 B♭ 페달 포인트로 시종 무거운 느낌을 불어넣는다. 성악 선율이라기보다는 연극에서의 독백과 흡사한 첫 선율 ‘Denn es gehet dem Menschen……'은 《독일 레퀴엠》 2악장의 첫 선율인 ’Denn alles Fleisch es ist……'와 흡사하다. 두 곡 모두 인간 육체의 덧없음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유사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특히 8마디의 ‘dies stirbt(이 죽음)’에서는 G#-D의 증4도와 F-C#의 감4도 진행을 사용해 극도로 불안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2) 안단테 파트는 ‘denn es ist alles eitel(모든 것은 헛되다)’라는 구절로 끝을 맺는데, 이 중 ‘alles(모든 것)’에서 피아노는 sf, 성악은 감5도로 강조하면서 알레그로로 들어간다. 알레그로에서는 피아노의 감7화음이 빠르게 움직이며 ‘es färht alles an einen Ort, es ist alles von Staub gemacht(모든 것은 먼지로부터 만들어졌으니)’라는 가사에 이르러 성악 선율이 상승하는 동안 피아노는 하행하는 반진행을 이루고, 다음 구절인 ‘und wird wieder zu Straub(또 다시 먼지로 돌아간다)’에서 성악과 피아노는 모두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구절에서 브람스는 무성음인 [t]와 [p]에 감7화음을 적용하여 텍스트와 음악을 결합하고 있다.

이제부터 브람스는 텍스트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Wer weiß(누가 아는가)’에 이어 나오는 피아노는 4분음표에 스타카토가 붙어 딱딱하고 강한 느낌을 자아낸다. 성악의 강세는 모두 강박에 붙어있는데 피아노의 음표는 모두 약박에 배치되어 감정의 골을 드러내고 있다. 이어 곡은 C#단조로 전조, 짤막한 피아노의 독주가 이어진 후 성악과 피아노의 발화와 응답이 한 동안 이어지다가 C#음이 다시 D단조로 들어가면서 첫 부분이 돌아온다. 첫 부분의 재현은 채 10마디가 되지 않으며, 82마디부터는 다시 Allegro의 빠른 두 번째 파트가 나타나는데 이번에는 스트레토 기법을 사용하여 발화와 응답이 점점 겹치기 시작하면서 둘은 서서히 얽힌다. 그런 극적인 상태에서 곡은 코다에 진입한다. 90마디부터 곡은 9/4박자로 변하고, 트릴이 셋잇단음표와 함께 곡의 마지막까지 함께 한다. 이 음형은 점점 디미누엔도한다. 성악 선율은 점점 음가가 길어지면서 길게 늘어져 흩어지는 느낌을 준다. 곡의 시작이 그렇듯 마지막 화음도 3음을 생략해 공허한 느낌을 더하는데, 돌연 강렬한 D단조 화음을 찍으면서 끝을 맺는다.)

Ich wandte mich und sahe an alle

(Prediger Salomo 4:1~3)

Ich wandte mich und sahe an alle,

die Unrecht leiden unter der Sonne;

und siehe, da waren Tränen derer,

die Unrecht litten und hatten keinen Tröster;

und die ihnen Unrecht täten, waren zu mächtig,

daß sie keinen Tröster haben konneten.

Da lobte ich die Toten, die schon gestorben waren,

mehr als die Lebendigen, die besser als alle beide,

und des Bösen nicht inne wird,

das unter der Sonne geschieht.

나는 모든 학대를 보았다

(전도서 4:1~3)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모든 억압을 보았다.

보라, 억압받는 이들의 눈물을!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그 억압자들의 손에서 폭력이 쏟아진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 줄 사람이 없다.

그래서 나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고인들이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 둘보다 더 행복하기로는 아직 태어나지 않아 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악한 일을 보지 않은 이라고 말하였다.

2곡 <나는 모든 학대를 보았다> (2.Ich wandte mich und sahe na alle. Andante 3/4) (G minor)

(첫 번째 곡이 고통에 대해 말하고 있다면 두 번째 곡은 불합리와 불평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권력자들은 권력을 남용하고, 피지배자는 그 권력 밑에서 신음한다. 이 모순으로 인한 고통보다는 차라리 죽음이 낫다는 비참한 외침이 이 곡의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피아노는 왼손의 동기에 오른손이 따라가는 형태를 취하며, 성악 선율도 역시 그 뒤를 따라간다. 주로 3도로 하강하는 이 동기는 브람스의 ‘죽음의 동기’라 불리는데, 브람스는 이런 형태의 동기를 그의 가곡 <들판의 적막>(Feldeinsamkeit) Op.86-2에서 먼저 사용한 적이 있다. 이 곡의 내용도 죽음의 명상에 관한 것이다. 이후 가사는 ‘Unrecht leiden unter der Sonne(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모든 억압)'에 대해 노래하고, 특히 ’leiden(고통받다)‘를 sf로 강조하고 있다. 이 부분은 감7화음으로 채색되어 있다.

15마디부터는 E♭장조의 느낌이 나는 화성을 사용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조성이 E♭장조로 이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고통 받으며 사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죽은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결론을 강조하기 위한 음악적 장치로 보아야 한다. 즉 비유를 위한 음악적 암시인 셈이다. 이것은 17마디에서 ‘Siehe(보라!)’는 명령형 문장이 sf, 증1도 화음과 함께 나타나는 것으로 확실해진다. 우리는 음악이 표현하는 고통과 학대를 텍스트의 지시에 따라 보고 듣는다. 이어지는 21마디의 Tränen derer(그들의 눈물)에서도 이탈음이 등장하여 위의 표현과 비슷한 효과를 낳는다. 23마디부터 곡은 극적인 정점에 도달하는데, 가사 ‘die Unrecht litten und hatten keinen Tröster und die ihnen Unrecht täten, waren zumächtig(그러나 그들에게는 위로해줄 사람이 없고, 그 억압자들의 손에서는 폭력이 쏟아진다)이 전하는 울분을 극대화하기 위해 반음계 화성, 성악 파트의 음정 도약과 피아노의 헤미올라3) 리듬, 급격한 전조(E♭ major-A minor-G minor)가 합쳐져 전에 없이 참혹한 감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분출한다.

2박자의 쉼표 이후 36마디부터 다시 죽음의 동기가 등장한다. 음량은 pp로 작아지는데, 그에 반비례하여 긴장감은 두 배로 높아진다. 이 부분에서 성악가와 피아노는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그러나 텍스트와 음악이 전하고자 하는 감정은 똑똑히 들려온다. 너무나 참혹한 상황을 접했을 때는 오히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낮은 목소리는 오히려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61마디부터 곡은 코다로 진입하고, 주 조성인 G단조와 같은 으뜸음을 쓰는 G장조로 ‘und des Bösen nicht inne wird, das unter der Sonne geschieh(태양 아래에서 자행되는 악한 일을 보지 않은)’에 대해 말하며 차분하면서도 우울하게 ‘차라리 죽음이 낫다’는 사실을 고한다. 음가도 그 우울함에 맞추어 두 배 늘어난 4분음표의 리듬을 사용하여 점점 사라지듯 노래를 마무리 짓는다.)

O Tod, wie bitter bist du

(Jesus Sirach 41:1~2)

O tod, wie bitter bist du,

wenn an dich degenkt ein Mensch,

der gute Tage und genug hat und ohne Sorgen lebet:

und dem wohl essen mag!

O Tod, wie wohl tust du dem Dürftigen,

der da schwach und alt ist,

der in allen Sorgen steckt,

und nichts Bessers zu hoffen noch zu erwarten hat.

죽음이여, 고통스러운 죽음이여

(집회서 41:1~2)

오 죽음아,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자기 재산으로 편히 사는 인간에게,

아무 걱정도 없고 만사가 잘 풀리며 아직 음식을 즐길

기력이 남아 있는 인간에게 너를 기억하는 것이.

오 죽음아, 얼마나 좋은가!

너의 판결이 궁핍하고 기력이 쇠잔하며

나이를 많이 먹고 만사에 걱정 많은 인간에게,

반항적이고 참을성을 잃은 자에게.

3곡 <죽음이여, 고통스러운 죽음이여> (3.O Tod, wie bitter bist du. Grave 3/2-4/2) (E minor)

(가톨릭 구약 집회서 41장에서 텍스트를 취한 세 번째 곡은 보통 사람들, 편안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닥쳐오는 죽음의 고통스러움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동시에 삶에 지친 자들에게 죽음이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곡의 빠르기말은 Grave, 전주와 후주가 없는 통절 가곡형식인 이 곡은 매우 느린 템포로, 피아노의 전주 없이 성악이 바로 등장한다. 이런 단도직입적인 개시 때문에 사람들은 첫 대사 ‘O Tod, wie bitter bist du(오 죽음아,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에 집중하게 된다. 이 대사 또한 노래라기보다는 오히려 연극의 독백처럼 들리는데, 빈사 상태에 빠진 사람이 고통에 겨워 몸부림치는 단말마를 연상시킨다. 3마디의 C-C# 증8도 상행과 낮은 음역에서 갑작스럽게 높은 음역으로의 상승은 이 곡의 난이도를 높인다.

6마디부터 리듬은 2박자 계열의 리듬에서 1박자 계열의 리듬으로 줄어드는데, 이것은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 죽음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다시 ‘O Tod……'의 대사가 나오면서 첫 부분은 끝난다.

18마디부터 조성은 E장조로 바뀌고, 삶에 지치고 고통 받는 자들에게 죽음이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조성은 장조로 바뀌었지만 분위기는 위로가 아닌 우울함을 담고 있다. 텍스트는 역설적으로 죽음이 위로가 될 정도로 삶이 막막하고 팍팍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첫 부분에서 3도 하행하는 ‘O Tod'와는 달리, 이 부분에서는 ’O Tod'가 6도 상승한다. 이 우울함은 27~28마디의 ‘und nicht Bessers', 'zu hoffen noch zu erwärten hat’에서 현실에 대한 한숨과 절규로 방향을 튼다.

이후 곡은 점점 고요해지며 분위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면서 마지막 곡의 등장을 유도한다.

참고로 이 곡은 네 개의 가곡 중에서도 특히 어려운 곡으로 꼽히는데, 갑작스러운 리듬의 변화, 음정의 도약, 긴 호흡, 무거운 텍스트의 표현과 감정 처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류 성악가들도 결코 좋은 연주를 만들어내기 쉽지 않다.)

Wenn ich mit Menschen und mit Engelzunge reget

(St. Pauli an die Corinther I, Kor.13:1~3, 12~13)

Wenn ich mit Menschen und mit Engelzunge redet,

und hätte der Liebe nicht,

so wär' ich ein tönard Erz, oder eine klingende Schelle.

Und wenn ich weisssagen könnte

Und wüßte alle Geheimnisse und alle Erkenntnis,

und hätte allen Glauben, also daß ich versetzte,

und hätte der Lieber nicht,

so wäre ich nichts.

Und wenn ich alle meine Habe den Arme gäbe,

und liebe meinen Leib brennen;

und hätte meinen Leib nicht,

so wäre mir nichts nütze.

Wir sehen jetzt durch einen

Spigel in einem dunken Worte;

Dann aber von Angesicht zu Angesichte.

Jetzt erkenne ich's Stückweise,

dann aber wird ich's erkennen,

gleich wie ich erkennet bin.

Nun aber bleibet Glaube, Hoffnung, Liebe, diese drei;

Aber die Liebe ist die Größeste unter ihnen.

내가 인간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코린토 첫째 서간 13:1~3, 12~13)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꽹과리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4곡 <내가 인간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4.Wenn ich mit Menschen und mit Engelzunge reget. Andante con moto 4/4) (E♭ major)

(이 가곡은 앞의 세 곡과는 다른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1892년 1월, 브람스의 친구인 엘리자베트 폰 헤르초겐베르크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작곡가는 그녀를 추모하기 위한 의미에서 이 곡을 만들었다.

이 가곡집은 어둡고 비참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 않다. 브람스는 사도 바울의 감동적인 고백으로 유명한 코린트서의 구절로 이 가곡집을 끝맺고 있다. 이 마지막 가곡은 고통을 초월한 곳에 있는 아가페적인 사랑이다. 고통을 겪지 않아본 이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첫 곡에서 세 번째 곡까지 인간의 쓰고 우울한 감정들을 모두 맛본 후에라야 마지막 곡에서 사랑을 논할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성악이 등장하기 전의 전주는 작곡가의 첼로 소나타 2번의 기교와 비슷하다. 작곡가는 첼로로 트럼펫의 소리와 비슷한 음향을 구사하는데, 역시 여기서도 작곡가는 피아노로 팡파르 소리와 비슷한 음향을 추구한다. ‘Liebe nicht(사랑이 없으면)’을 긴 음가로 처리, 버금딸림화음으로 불완전 종지를 하고 있으며, ‘Klingende Schelle', 'tönende Erz'에서는 피아노를 8분음표로 교차하여 등장하도록 하여 타악기적인 효과를 더하고 있다.

48마디부터는 B장조로 중간부가 등장한다. 박자도 3/4박자로 바뀐다. A파트의 수직적인 화음과는 대조적으로 셋잇단음표의 아르페지오 음형으로 바뀌어 차분한 분위기가 주를 이룬다. 특히 48-49, 62-63 마디에서는 성악 선율과 피아노 선율이 서로 3도 병행으로 노래하며, 56마디부터는 피아노 베이스가 F#음을, 60마디부터는 B를 페달 포인트로 사용하여 이전의 삶에 대해 생각하는 느낌을 준다. 또 68마디부터는 헤미올라 리듬을 사용,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을 준다.

72마디부터는 상승하는 선율과 cresc., poco a poco piu moto를 써서 A부분의 축소 부분인 A' 부분을 준비하는데 이 부분에서 쓰이는 화성은 비화성음에 의한 전조를 사용하여 후기 낭만주의의 영향을 드러낸다. 마지막 A' 파트에서 가사는 Glaube(믿음), Hoffnung(소망), Liebe(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특히 이 중에서 Liebe(사랑)를 가장 높은 음역에서, 가장 긴 음가로 표현해 믿음, 소망, 사랑 중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텍스트를 강조하면서 끝을 맺는다.)  

 

1) 다만, 마지막 곡은 1892년에 따로 만들어 둔 것이다.

2) 증4도는 말러 교향곡 7번의 중심 모티프 음정 간격이며, 감4도는 리스트가 <단테 소나타>에서 사용한 주요 모티프의 음정 간격이다. 둘 다 불협화적이고 어두우며 기이한 느낌을 준다.

3) 헤미올라(Hemiola) : 그리스어로 ‘하나 반’을 뜻하는 헤미올리스(ἡμιόλιος. Hemiolis)에서 온 단어. 15세기부터 음악이론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는 완전 5도를 가리키는 말로 현의 비율이 3:2일 때 이 음정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서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 그러나 주로 사용하는 뜻은 바로 지금부터 설명할 두 번째 뜻이다. 바로 3박자 리듬에서 등장하는 2박자 리듬을 가리키는 말로, 3개의 음표를 여섯 개로 쪼갠 후 이것을 둘로 합하여 사용하는 리듬이다. 예시를 들면 4분음표 3개가 있을 때 이를 각각 반으로 쪼개 8분음표 여섯 개를 만든 후, 8분음표를 세 개씩 합하면 헤미올라 리듬이 된다. 즉 ‘1+1+1’을 재조합해 ‘1.5+1.5’로 만든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보법은 3박자로 써야 하기 때문에 앞에는 점4분음표를 놓고, 뒤의 8분음표와 4분음표는 이음줄로 잇는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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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나 참혹한 사고가 터졌다. 그 사고가 왜 터졌는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사회의 병든 모습이 낱낱이 드러났다. 사고 이후 사회의 시계가 멈춰버린 것 같다. 음악 듣는 것도 무력하게 느껴져서 며칠 동안 음악을 듣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음악이 바로 이 곡이었다. 어둡고 비통하지만 어둡고 비통한 곳에만 머무르지 않는, 큰 슬픔을 온 몸으로 이겨내는 이 곡을 듣고 그 곡에 대해 쓰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럽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쓰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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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협주곡 1번 (Violin Concerto No.1 in A minor, Op.77(Op.99))

작곡 시기 : 1947년 7월 21일 착수, 1948년 3월 24일 완성

작곡 장소 : 모스크바

헌정자 :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악기 편성 : 독주 바이올린, 피콜로(제3 플루트와 겸함), 플루트 2, 오보에 2, 잉글리시 호른(제3 오보에와 겸함), 클라리넷 2, 베이스 클라리넷(제3 클라리넷과 겸함), 파곳 2, 콘트라파곳(제3 파곳과 겸함), 호른 4, 튜바, 팀파니, 탬버린, 탐탐, 실로폰, 첼레스타, 하프 2, 현악 5부

(이 협주곡은 즈다노프 비판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만든 곡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살아남기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다 집어치운 채 일단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했다. 그는 낮에는 가혹한 인격살인과 협박이 그럴듯한 정치용어에 포장된 채 쏟아지는 위원회에 출석하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이 곡을 썼다. 곡에서는 어떠한 외부적인 압력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지만(협주곡의 형식은 고전적인 형식과 현대성을 아주 잘 결합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것은 어쩌면 소비에트의 당이, 독재자가 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범답안인지도 모른다), 곡의 모든 주제는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은 칼날처럼 번뜩이고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곡을 완성하고도, 자신의 평판(과 목숨)이 나락으로 떨어질까 두려워해 이 곡의 출판을 미루었다. 곡의 출판은 스탈린이 죽고 교향곡 10번이 성공을 거둔 후에 비로소 이루어졌다. 작품번호가 두 개인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Op.77은 완성 시기에 맞춘 작품 번호이며, Op.99는 출판 시기에 맞춘 작품 번호이다. 처음에는 Op.99로 출판했으나 나중에 Op.77로 바꾸었다). 쇼스타코비치는 곡을 완성하자마자 오이스트라흐에게 맡겼지만, 초연까지는 8년이 걸렸다. 곡을 초연한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에게 헌정했다.

곡은 트럼펫과 트롬본 없이 진행한다. 트럼펫은 쇼스타코비치가 당을 위해 작곡한 공허한 선전용 음악에서 즐거운 팡파레를 맡곤 했다. 작곡가는 이 곡에서 그런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1악장과 3악장은 각기 고통스러운 녹턴과 파사칼리아, 2악장과 4악장은 교활한 풍자와 칼날 위에 선 사람들의 아찔한 춤을 그리는 스케르초와 부를레스케다. 이토록 소름끼치는 풍자를 기악 음악으로 실현한 작곡가는 쇼스타코비치 말고는 없다. 쇼스타코비치도 이렇게 잘 벼려진 풍자 음악은 두 번 다시 만들지 못했다(이후의 풍자음악은 너무 노골적이거나 너무 어둡다). 그는 짓누르면 짓누를수록 더욱 강해지는 작곡가였지만, 결국 공포가 작곡가의 개인적인 의지를 눌러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1악장 (1.Nocturne. Moderato 4/4) (A minor)

(음울하고 고통스러운 녹턴 악장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주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녹턴 악장은 동시에 부드러운 패시지도 담고 있다. 독주 바이올린을 반주하는 악기군은 완전히 둘로 갈라져 교대를 하듯 독주악기를 반주한다. 주로 악장의 분위기 조성을 맡는 것은 현악기군이며, 관악기군은 주로 보조 역할을 맡는다. 마지막 부분에서 바이올린은 약음기를 사용하고, 현악기군과 하프의 꺼질 듯한 반주와 함께 조용히 끝을 맺는다. 이 조용한 종지는 2악장의 개시가 던져주는 신선한 충격을 배가한다.)

2악장 (2.Scherzo. Allegro 3/8 - Trio 2/4) (D flat major)

(쇼스타코비치는 이 악장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음악적 서명 DSCH(D-Es-C-H/D-E♭-C-B)를 사용하고 있다. 이 서명은 이후 현악 4중주 8번과 교향곡 10번에서도 나타난다. 플루트와 독주 바이올린으로 시작하는 첫 주제는 공허하고 낙관적인 선전용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러나 그 공허한 미소는 어느 누가 보아도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의 웃음이다. 영혼 없는 인형의 춤 뒤에서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이면’은 트리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트리오 주제는 즐거움과 기쁨을 나타내지만, 쇼스타코비치의 교묘한 가공은 그 주제에 기묘한 광기를 불어넣는다. 곡은 다시 스케르초로 돌아오지만, 이제 꼭두각시는 자기가 억지로 웃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즐거워 웃는지도 구분하지 못한다. 미칠 것 같지만 동시에 미친 듯 즐겁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도 이러한 상황을 쇼스타코비치만큼 잘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정한 조성이 없다고 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스케르초 악장의 전조는 이 느낌을 증폭시킨다.)

3악장 (3.Passacaglia. Andante 3/4 - Cadenza) (F minor)

(3악장의 작곡 시기는 즈다노프 비판이 행해지던 시기와 일치한다. 20세기 작곡가들은 엄격한 파사칼리아 형식을 통해 강압적이고 거대한 수레바퀴와, 그 수레바퀴에 짓눌린 사람들을 묘사했다. <보체크>에서 의사의 실험대상으로 전락한 보체크를 묘사하는 데 파사칼리아를 사용한 데서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알반 베르크를 존경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협주곡에서 파사칼리아를 사용한다. 파사칼리아를 곡에 굳이 집어넣은 의도는 베르크와 같았으리라.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많은 사람들은 다시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당했던 일이 어떤 것인가를 알리는 데는 역시 음악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그 안에 담긴 뜻을 이해하기 위해 음악을 알아야만 하는 기악곡은 더욱 그렇다(성악곡은 드러내고자 하는 바를 너무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언급한다. 사실 그것이 성악곡의 가장 큰 위력이기도 하지만). 파사칼리아가 서서히 막을 내리면 절규와도 같은 독주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이어진다. 앞부분인 파사칼리아가 고전적인 형식인 것처럼, 이 카덴차 부분도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들을 연상시킨다. 카덴차는 앞의 악장들을 회고하면서 점점 분위기를 격렬하게 만들고, 그 분위기는 바로 4악장으로 이어진다.)

4악장 (4.Burlesque. Allegro con brio 2/4) (A minor)

(이 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의 연장인 동시에, 절규와도 같은 앞의 카덴차를 잘라버리면서 나타난다. 물론 그 절규를 잘라버리는 것은 팀파니의 강압적인 리듬이다. 팀파니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나는 부를레스케 주제는 그 폭압적인 성격이 지나쳐 오히려 장난치는 것처럼 들린다. 주제가 끝나면 목관과 독주 바이올린이 어우러지는 광대의 춤이 이어진다. 독주 바이올린은 그 틈바구니에서 아슬아슬하게 춤을 춘다. 결국 코다에서 모든 주제들은 발작하는 것처럼 튀어나오고, 폭넓은 다이내믹(mf-f-ff, p-cresc.-ff)은 들뜬 분위기를 돋우면서 파국을 재촉한다. 결국 부를레스케의 등장을 장식했던 강압적인 팀파니가 그 모든 주제들을 묻어버리면서 곡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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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곡의 피아노 소품 (6 Piano Pieces, Op.118)

작곡 시기 : 1893년 완성

출판 : 1893년

(이 곡집의 6곡은 1893년 여름에 바트 이슐에서 완성하였다고 전해지는데, 그 이전에 작곡한 곡도 섞여 있다고 한다. 브람스는 1893년 여름에 Op.118과 Op.119의 10곡의 소품을 완성한 것부터 순서대로 클라라 슈만에게 보냈는데, 그 보낸 순서는 다음과 같다, 먼저 5월에 Op.119의 제1곡, 6월에 Op.119의 제2, 3곡, 7월 2일에 Op.119의 제4곡, 8월에 Op.118의 제1, 2, 3, 6곡, 9월에 Op.118의 제4, 5곡. 그리고 브람스는 바트 이슐에서 이 곡들을 클라라 슈만의 제자인 여류 피아니스트 이로나 아이벤슈츠와 칼베르에게 연주해 들려준다. 확신하지만 않았지만, 칼베크는 이것들 중 몇 개는 브람스가 바트 이슐에 오기 이전에 완전히 완성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아이벤슈츠는 Op.118의 제3, 5곡을 1894년 1월 22일에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연주홀에서 초연하였다. Op.118의 전6곡을 정리하여 처음으로 소개한 것도 아이벤슈츠였다(1894년 3월 7일,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연주홀). 이 6곡의 악보는 1893년 11월에 짐로크에서 처음 출판한다.)

1곡 <간주곡> (No.1 Intermezzo in A minor. Allegro non assai, ma molto appassionato 2/2)

(만년에 접어든 브람스 특유의 쓸쓸함이 담긴 곡이지만, 남성적인 호방함도 충분히 담고 있다. 쇼팽의 전주곡 스케일을 한아름 크게 담은 느낌의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은 3부 형식을 취하면서도 형식감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데, 단숨에 쓴 인상을 주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단순한 3음 하행 음형을 기본적인 동기로 하여 전체가 짜여져 있고, 마지막에는 극히 효과적으로 이 동기의 확대를 꾀한다. 곡의 처음에 a단조의 버금딸림조의 딸림7이 나오므로, 조성적으로 불안한 느낌이 있다. 또한 이 곡에서는 프리지아 2도(음계의 반음 내린 제2도음)의 사용이 눈에 띄며, 이것으로 특유의 안타까운 느낌을 강하게 나타낸다.)

2곡 <간주곡> (No.2 Intermezzo in A major. Andante teneramente 3/4)

(브람스가 쓴 「가사 없는 노래」라고도 할 수 있는 곡인데, 주제를 다루는 대위법적 기교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나다. 첫머리의 동기는 제31마디 이하에서 저성부에 대위법적으로 놓여지고, 이어서 제35마디 이하에서 전회한다. 중간부는 f#단조로 시작하는데, 거기서 오른손은 모방을 이루며 F#장조로 돌아간 후에도 동일한 모방이 있다. 이후 다시 f#단조가 되면, 이번에는 전회의 모방이 이루어진다. 어쨌든 그런 기교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고 친밀해지기 쉬운 곡으로, 노작이라는 평가를 받아 마땅한 곡이며, 브람스의 만년 피아노곡 중에서도 널리 사랑받는 편에 속한다.)

3곡 <발라드> (No.3 Ballade in G minor. Allegro energico 2/2)

(이것도 만년의 피아노곡 중에서 널리 사랑받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그 이유로는 중간부의 B장조 선율의 아름다움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드물게도, 이 중간부에서는 제1부의 선율이 한 번 그대로 나온다. 브람스의 곡에서 이런 일은 거의 없다. 곡은 발라드라고 이름 붙여져 있지만, Op.10 <에드워드 발라드> 이외의 곡과 마찬가지로 어떤 특정한 이야기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야기풍의 극적인 힘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곡은 5마디 단위의 프레이즈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간부가 C장조의 딸림7을 독일6화음(증6도 음정에 3도와 5도 음정을 삽입한 화음)으로 의미를 바꾸어 B장조로 들어가는 것도 재미있다.)

4곡 <간주곡> (No.4 Intermezzo in F minor. Allegretto un poco agitato 2/4)

(경쾌하면서도 왠지 쓸쓸함이 느껴진다. 이 곡에서는 오른손과 왼손이 거의 항상 카논으로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곡은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F장조로 조용히 끝난다.)

5곡 <로만체> (No.5 Romanze in F major. Andante 6/4)

(바로크 시대, 또는 그 이전의 서법을 연상케 하는 고풍스런 느낌의 로망스. 3부 형식을 취하며, 그 제1부는 4마디 주제에 기초한 변주곡과 비슷하다. 주제는 기본위치의 화음을 많이 사용하며, 중간부에서 8도로 중복하여 주선율을 배치하고, 상성부는 하행풍으로 이 주선율에 대위법을 이룬다.

이어지는 제9마디 이하에서 이 두 가지는 전회한다. 중간부(알레그레토 그라치오소 D장조 2/2박자)도 8마디 단위의 변주처럼 쓰여 있다.

그리고 저성부가 오스티나토풍으로 되어 있는 것도 눈에 띄는 특징라고 할 수 있다. 제3부는 제1부의 단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회 종지한다.)

6곡 <간주곡> (No.6 Intermezzo in E flat minor. Andante, Largo e mesto 3/8)

(이 곡은 원래 교향곡 제5번의 느린 악장으로 생각했던 것이라 한다. 어쨌든 만년에 접어든 브람스의 심정을 잘 전해주는 곡으로, 애처롭고 쓸쓸하다. 단 3개의 음(G♭/F/E♭)을 느리게 움직이는 동기로 이런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G♭장조의 중간부는 약간 생기를 되찾아오지만, 역시 제1부의 동기가 모습을 감추고 있으며 내면의 그림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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