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율 1권의 푸가들

음악 2013. 10. 28. 00:25

 평균율 1권에는 24개의 푸가가 있다. 24개의 조성에 맞추어 24개의 푸가를 썼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지만(바흐와 동시대를 살았던 한 작곡가는 자랑스럽게 "나는 F#장조나 D♭장조로 곡을 써본 일이 단 한 번도 없다"라고 밝힌 적이 있다고 한다),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점은 그 푸가들이 하나같이 닮은 점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인벤션에 가까운 2성 푸가(10번 E단조)부터 고도의 대위법적 기교를 쌓아올린 5성 푸가(4번 C#단조와 22번 B♭단조 푸가. 공교롭게도 두 푸가 모두 수난곡 풍의 통절한 내용을 담고 있다)까지. 아주 짤막한 주제로 전개하는 17번 A♭장조 푸가부터 4마디에 달하는 긴 주제를 사용하는 22번 B♭장조 푸가까지(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푸가는 전혀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곡의 간결함 때문에 푸가라는 음악 형식을 익히는 데 쓰일 정도다). 복잡한 전개과정을 추구하는 1번 C장조 푸가부터 주제가 뚜렷이 두드러지는 2번 C단조 푸가까지. 쉴새없이 주문을 받고 정주 생활에 익숙하며(그는 평생 북독일 바깥으로 나가본 일이 없다) 정해진 일정에 맞추어 움직였던 '장인' 바흐가 평균율은 물론 수많은 곡에 한결같은 독창성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정말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라이프치히 시절, 그는 거의 1주일에 한 곡씩 새 칸타타를 써야 했다).

 평균율의 푸가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무궁무진해 도무지 지루해질 틈을 주지 않는다. 9음의 반음계 주제로 되어 있는 12번 F단조 푸가는 어떠한가(굴드는 이 푸가를 두고 'Webernsqu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참으로 적절한 단어가 아닐 수 없다). 24번 B단조 푸가는 반음계 동형진행 주제를 이용해 평균율 1권의 거대한 코다를 구축하고 있다. 심지어 다른 푸가들에 비해 그다지 높은 평을 받지 못하는 16번 G단조 푸가조차 동시대 작곡가들의 숱한 푸가들과 비교하면 수준높은 처리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전위와 확대 기술을 교묘하게 사용하는 4번 C#단조 푸가는 내용적으로도 기술적으로도 가히 최고라 할 만하다(이 푸가는 평균율 1권의 푸가들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무려 115마디).

 평균율의 푸가들은 독창성 뿐 아니라 논쟁점도 제시한다. 예를 들어 20번 A단조 푸가에서 마지막 다섯 마디에 걸치는 베이스 오르겔풍크트 A음은 어떤가. 이 음은 바흐가 살던 시대의 하프시코드나 클라비코드로도, 그 이후에 나온 포르테피아노로도, 현대 피아노로도 연주가 불가능하다. 오르간의 어법을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이 주법은 지금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평균율 1권에서 바흐가 전주곡보다는 푸가에 더 많은 공을 들였다는 서술은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푸가들이 모두 나름의 개성을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바흐는 그 일을 해내는 데 성공했고, 그가 의도한 대로 '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사용할 수 있음은 물론, 음악의 전문가들에게도 여가적 즐거움(물론 이 즐거움에는 '돈벌이'라는 단어도 포함되어 있다)을 제공하'고 있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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