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의 불안감과 함께 이어지는 3막 1장이 끝나면, 보체크와 마리가 함께 걷는 2장으로 이어진다. 오케스트라는 각각의 옥타브에서 B음을 연주한다. 정묘한 12음 음악이 B음을 감추었다가 드러내기를 반복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달을 쳐다보면서 말한다. "달이 뜰 때는 붉은 색이네요(마리)." "피가 묻은 낫 같아(보체크)." 보체크는 그 말과 함께 무신경한 동작으로 칼을 꺼낸다. 팀파니의 불길한 리듬과 함께 보체크는 마리의 비명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찔러 죽인다. 오케스트라는 잠시 불길한 음표를 연주하는 듯 싶더니 이내 잠잠한 풍경을 연주하던 부드러운 음악으로 돌아간다. 보체크는 성급히 그 자리를 뜬다. 그러나 보체크가 자리를 뜨는 순간, 보체크의 광기, 죽은 마리의 원념, 온갖 고통, 집착, 그리고 인간성의 한계에 부딪친 안타까운 비명 소리 같이 부정적인 에너지들이 뭉치고 또 뭉쳐 B음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음향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이 음향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크레셴도하며 팀파니의 '죽음의 리듬'에 의해 중단, 아니, 더 커지는 계기를 통해 극한에 도달하면서 보체크를 뒤쫓아간다.

마치 영화에서 장면의 급속한 전환을 보는 것처럼, 장면은 호숫가에서 술집으로 넘어간다. 조율이 어긋난 업라이트 피아노의 폴카 소리에 맞추어 가난한 사람들이 술집에서 저녁의 짤막한 여흥을 즐기고 있다. 보체크는 손에 피가 묻은 줄도 모른 채 자리에 앉는다. 하지만 파멸은 이미 문 앞까지 와 있다. 팀파니의 '죽음의 리듬'이 폴카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듣는 순간, 우리는 보체크의 사회적 생명이 이미 끝나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잦은 학대, 그리고 정신적 고통을 대가로 얻어낸 쥐꼬리만한 봉급일 뿐이지만.

마르가레트는 보체크의 손에 묻은 피를 발견한다. 사람들은 춤을 추다 말고 보체크의 손에 묻은 피를 발견하면서 그를 살인자라고 비난한다. 그에게서 사람고기 냄새가 난다며 그를 비난한다. 이제 보체크는 거대한 음향 덩어리가 자신을 쫓아갔던 그 장소, 자신이 마리를 죽인 그 장소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호숫가로 돌아온 보체크는 이미 죽어 넘어진 마리를 다시 발견한다. 이 때부터 보체크의 모든 단어는 '칼'과 연관되어 있다. 마리가 대수롭지 않게 언급했을 때부터 그의 머릿속에 강박관념처럼 박혀 있던 '칼(Messer)!' 그는 마리의 목에서 흐르는 피를 보고 붉은 끈이라 말한다. 붉은 끈은 유죄판결을 받은 이의 증표. 보체크는 마리의 죄를 확신하고 있다. 그녀가 자신을 배신하고 간통했다고 확신한다. 미쳐버린 자에게 더 이상 물증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 것만이 가장 중요할 뿐이다. 아마 보체크는 마리가 간통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그것을 확신했을 것이다.

 이제 대사는 셰익스피어의 잔혹한 비극 <맥베스>와 비슷해진다. 맥베스는 씻으면 씻을수록 자신의 손은 물론이고 온 세상의 물이 새빨간 피로 물드는 고통스러운 느낌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보체크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몸을 깨끗이 정화하기 위해 물로 뛰어든다. 오케스트라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단지 깨끗하고 조용한 풍경 묘사에 집중할 뿐이다. 의사와 대위가 그 주변을 지나간다. 두 사람은 보체크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같다. 두 사람은 호수에서 이상한 것이 느껴진다, 호수에서 두려운 것이 느껴진다와 같이 시덥잖은 이야기만 하다가 지나갈 뿐이다. 의사와 대위의 세계, 그리고 보체크와 마리의 세계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이제 무대와 가수 대신 오케스트라가 활약할 차례가 나타난다. 3막을 이루는 여섯 개의 인벤션 중 다섯 번째 인벤션, 오직 관현악으로 이루어진 인벤션이 나타난다. 작곡가는 이 인벤션을 "이제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연극적 행동의 바깥으로 나선 작가의 고백……대표자들, 청중들을 향한 인류에의 호소문"이라고 불렀다. 알반 베르크는 이 오페라가 보체크와 마리,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둘러싼 특수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임을 확신하면서 그 두 가지를 잇는 위대한 연결구를 만들었다. 권위에 의한 폭력에 노출된 '보통 사람'의 고통은 모두가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으며, 나중에도 겪을 것이다. 그것을 하나로 묶는 이 D단조의 인벤션이 말러풍의 교향악적 아다지오라는 사실은 참으로 재미있다. 작곡가는 1908~9년에 썼던 소나타 스케치를 여기서 재활용했다.

 극은 여기서 끝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극은 마지막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끝난다. 많은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반드시 언급하고 지나가야 할 이야기, 바로 보체크와 마리의 아이 이야기다. 보체크와 마리의 아이는 자기 엄마 아빠가 죽은 줄도 모르고 목마를 타면서 놀고 있다. 하지만 곧 아이들이 달려와 자기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굳어버리지만, 계속 말을 타고 있다. 아이들에게 아빠와 엄마는 자기 세계의 거의 전부나 다름 없다. 자기 세계가 무너져 버렸다는 사실을 어떤 아이가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할까?

 아이들에게 마리의 죽음은 무섭지만 새롭고 흥미로운 '사건'일 뿐이다. 아이들은 그 '사건'을 구경하기 위해 뛰쳐나간다. 마리의 아이만이 여전히 말을 타고 있다. 하지만 아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곧 다른 아이들을 따라나선다. 다른 아이들이 '사건'이라고만 생각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아이가 떠나고 흔들거리는 목마의 움직임에 맞추어 G장조의 윤곽이 드러나는 화음이 흔들거리다가 멈춘다. 목마도 움직임을 멈춘다.

 아이는 어떻게 될까? 베르크는 아이에 대한 잔인한 결론을 내렸다. 코다는 오페라의 시작 부분과 이어져 있다고. 아이는 보체크의 인생을 그대로 물려받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른 결론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 더 비참하게 죽어가거나, 아니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억이 없는 다른 공간으로 떠나거나.

 

 참고자료

- 게오르크 뷔히너 원작, 알반 베르크 편집. 오페라 <보체크> 대본 한국어 번역본.

- 알렉스 노스 <나머지는 소음이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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