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바그너 이전의 음악과 바그너의 음악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그너가 음악에 어떤 혁신을 가져왔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한다고 말할지라도 거의 피상적인 것만을 읊조릴 뿐이다. 바그너가 음악에 혁신을 가져왔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드는 첫 번째 이유는 그가 그 혁신의 결과물을 충분히 누리고 살다 갈 정도로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음악체계가 하나의 스타일로 자리 잡을 정도로 확고한 동시에 무수한 추종자들을 낳을 정도로 흡인력이 강했기 때문이다(그 추종자 중에 아돌프 히틀러가 있었다는 사실은 바그너의 비극인 동시에 음악 전체에 있어 크나큰 비극이다). 분명 만년의 영광과 추종자들의 숲은 그의 음악성을 바로 보는 데 있어 큰 장애가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그너의 음악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바그너의 음악에 가장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일은 1933년 이후에 찾아왔으며, 12년 동안 그의 음악에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혔다. 생전의 그는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자신의 음악이 그런 식으로 악용되는 것에 대해 경계했지만, 죽은 후의 일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많은 작곡가들이 한 번 이상은 바그너를 참고하고 그의 음악의 영향을 받았지만, 바그너 자신의 음악은 자신을 흡수한 작곡가들과 완벽한 차이를 보인다. 똑같은 반음계법을 사용하고 똑같은 이명동음정을 사용해도 바그너의 음악은 항상 다른 음악과 다른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무엇보다 음악적 동기의 발전에서 여타의 작곡가들을 능가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정된 라이트모티프와 운용이 좁은 세계관을 가지고도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바그너가 가져온 혁신은 무엇일까? 물론 트리스탄 코드로 대표되는 반음계법과 라이트모티프에 의한 전개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슈베르트와 쇼팽의 음악도 충분히 조성의 기초를 뒤흔들 정도로 대담한 반음계법을 구사하고 있으며, 주제의 유기적인 전개라는 관점에서 베토벤의 후기 음악은 놀라울 정도의 성취를 구축했다. 그렇다면 바그너가 이전의 음악가들과 다른 혁신은 어떻게 구축된 것일까?

바그너의 음악에서 화성은 더 이상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지 않는다. 딸림화음은 또 다른 딸림화음으로 대체되고, 그 딸림화음을 또 다른 딸림화음이 대체한다. 해결은 이루어지지만, 아주 늦게 등장한다. 과거에는 비상사태로 여겨졌던 것을 바그너는 정상 상태로 간주한 것이다. 과격하다고 여겨졌던 흐름이 오래도록 지속되면 어느 누구도 그것을 과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법이다. 작곡가는 그 사이에 화성의 법칙들을 충분히 망가뜨려 놓는다. 해결은 상대적인 시간의 차이지만, 아주 늦게 이루어지는 해결은 ‘영원히 해결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된다’라는 사고방식을 불러왔다. 바그너가 죽은 지 불과 6년 후에 말러와 슈트라우스는 교향곡 1번과 <돈 후안>으로 이 경향을 개인적인 음악의 공간으로 불러왔으며, 이것은 머지않아 찾아올 쇤베르크의 화성 혁명을 예고하고 있었다.

바그너의 동기 발전 수법은 대담한 동시에 섬세하다. 우리는 주로 바그너의 대담성과 무자비한 금관의 포효에 대해 생각하지만, 바그너는 동시에 섬세한 세밀화가로서의 재능을 갖추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토록 장면 하나하나를 생생하게 살려내고, 인물들에게 뚜렷한 성격의 차이를 부여하는 작곡가는 매우 드물었다. 그는 과거를 바라보는 인물부터 맹목에 사로잡힌 인물까지 모든 인물을 그려낼 줄 알았고, 한 인물에게 여러 속성을 부여하는 것을 즐겼다.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대조적인 두 성격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는 그 일을 나름대로 멋지게 해냈다. 우리는 쿤드리의 내면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자라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 세기 전의 라모가 그랬던 것처럼, 바그너 또한 진보주의자와 반동주의자의 속성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베토벤을 존경한다고 했으며 동시에 그것을 글로 표현했지만, 그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베토벤에게서 훨씬 멀리 떨어져 있다. 그는 자신의 모순된 인격을 음악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음악극은 자신의 성향과 동떨어진 도덕을 노래한다. 그러나 음악의 구조만으로도 그의 음악극은 충분히 혁신적이다. 스크리아빈 정도만이 그와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바그너가 바라보았던 ‘기능화성의 황혼’은 이제 시대에 뒤처지는가?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답하기 전에, 모든 시대의 음악은 언제나 한 번씩 낡은 것으로 치부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음악이 한 번씩 망각의 모래톱 속에 파묻혔다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시 구원을 받을 때, 시간의 흐름에 상관없이 그 음악은 빛을 발한다. 비록 거기에 이끼가 끼고 테두리가 닳아 둥글어졌다 할지라도.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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