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교향곡 7번 A장조 Op.92

영어 : Symphony No.7 in A major, Op.92

 

작곡 시기 : 1811년 가을 착수, 1812년 5월 13일 완성

작곡 장소 : 빈

초연 : 비공개 초연은 1813년 4월 20일에 루돌프 대공의 사택에서 이루어짐. 공개 초연은 1813년 12월 8일 빈 대학 강당에서 열린 전쟁 부상병을 위한 자선 연주회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짐.

출판 : 1816년

헌정자 : 모리츠 폰 프리스 백작

악기 편성 :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 팀파니, 현악 5부

 

개설

이 곡의 단편적인 스케치는 1806년경의 노트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현악4중주곡 《라주모프스키》나 《교향곡 제4번》과 같은 시기이다. 그러나 베토벤이 그 주제의 단편을 과연 교향곡에 사용하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본격적으로 작곡하기 시작한 것은 1811년 가을부터이며 이듬해 5월 13일 완성했다. 현재 베를린의 므로시아 국립 도서관에 있는 자필 악보의 표지에 <7 Symphonie 1812 … 13 ten>이라고 적혀있는데, 몇 월인지는 파손 때문에 알 수 없지만 5월 13일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쨌든 교향곡 7번은 《교향곡 제6번》과 3년의 시간적 거리가 있다.

이 3년 사이에 베토벤은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먼저 가장 커다란 타격은 전쟁에 의한 난리였다. 1809년 4월 9일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는 전쟁 상태에 들어가며 5월 12일 나폴레옹 군대가 빈을 침입한다. 이 때문에 베토벤의 후원자들은 빈에서 도피하며, 베토벤은 재정적인 후원도 받지 못한 채 정신적으로도 안정되지 못한 상태에서 창작도 생각만큼 순조롭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앓고 있던 귀를 포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하실에서 귀에 배게를 대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1809년 10월에 전쟁이 끝나고, 11월에 프랑스군은 퇴각한다. 이 기간 동안 베토벤은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된다. 게다가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았다. 귀족들이 빈으로 돌아온 것은 이듬해 1월이었다. 얼마 후 이 시기의 심경을 반영한 피아노 소나타 《고별》이 작곡되었다.

이 피아노 소나타 작곡을 계기로, 아울러 전쟁이 끝나면서 베토벤의 창작력은 서서히 회복되면서 이전의 공백 기간을 메워나갔다. 그리고 기분도 차분해지고 건강 상태도 얼마간 좋아지며, 다시 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

1809년 무렵부터 베토벤은 테레제 마르파티라는 대지주의 딸과 알게 된다. 작곡가는 《고별》 직전에 쓴 Op.78의 소나타를 헌정한 브룬스비크 백작의 딸 테레제와는 다른 이 테레제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품게 되었다. 베토벤으로서는 테레제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시기의 현악4중주곡 E♭장조 Op.74 《하프》에 나타나는 밝은 악상은 테레제라는 여인의 존재와 무관하지 않다. 1810년 4월에는 테레제를 위해 썼다는 소품 《엘리제를 위하여》를 작곡하며, 5월에는 테레제를 위한 Op.83의 두 가곡, 즉 첫 곡 <슬픔과 기쁨>과 둘째 곡 <그리움>이 작곡된다. 그 외에 군악대용 음악을 쓴 것을 보면 베토벤은 한편으로는 사회정서를 반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테레제에 대한 기분을 어떻게든 음악으로 나타내고 싶어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6월의 《에그몬트》를 위한 음악은 이런 두 가지 측면을 연결하는 음악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18세의 테레제는 40세를 맞은 베토벤의 연정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거의 일방적인 테레제에 대한 베토벤의 사랑은 결국 1810년 여름을 지나면서 없었던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다. 그 해 여름에 작곡한 현악4중주곡 Op.95 《세리오소》의 내면적이고 극적인 성격은 어쩌면 베토벤 내면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1811년에 나폴레옹은 절정을 과시하고 있었으나 베토벤은 테레제 폰 브룬스비크로부터 그녀의 상반신 초상화를 선물받고 실연의 아픈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베토벤은 그것을 보물처럼 여겨 방에 걸어놓고 평생 소중하게 여겼다. 이 해에는 건강도 좋지 않아 테레제와 그의 남동생이자 베토벤과도 친했던 프란츠와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할 예정이었다.

1811년 여름, 베토벤은 휴양을 위해 경치가 좋은 온천지 테플리츠에 간다. 그 곳에서 아말리에 제바르트라는 가수와 재회하여 친절한 대접을 받게 된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곳이 마음에 들어 이듬해에도 다시 방문하여 제바르트의 신세를 지게 된다.

실연 후 조금은 투쟁적으로 변모해 있던 베토벤의 기분은 테플리츠에서의 생활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런 즐겁고 밝은 기분이 작품에 반영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는 이전의 스케치를 다시 끄집어내어 작곡을 시작한다. 《교향곡 제7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1811~1812년에는 거의 밝은 장조 곡 위주의 작곡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곡은 또한 당연히 낭만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교향곡 제7번》은 디오니소스적인 즐거움을 지니고 있다. 동시에 이 곡에는 강한 의지나 음악에 의한 주장의 관철이라는 요소도 존재한다.

실제로 베토벤은 이 교향곡의 4악장을 가리켜 "나는 인류를 위해 좋은 술을 빚는 바쿠스(디오니소스)이며, 그렇게 빚어진 술로 세상의 풍파에 시달린 사람들을 취하게 하고 싶다."고 했다. 이 교향곡의 특성을 설명하는 말로 이보다 나은 것은 없다. 베토벤은 이 교향곡을 통해 리듬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리듬이 단순한 음악의 요소로 참여하지 않고, 교묘한 전개와 화려한 관현악법에 의해 몇 배나 위력이 증폭된다. 느린 악장은 하나도 없으며, 모든 악장이 리드미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큰 규모에 어울리는 광란의 축제는 특히 1악장과 4악장에서 빛을 발하는 데, 이 때문에 리스트는 '리듬의 화신', 바그너는 '무도의 성화'라는 말을 이 교향곡에 붙였다. 광란에 가까운 축전적 성향은 때로 로맹 롤랑이 지적한 '낭비의 즐거움'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지나치게 즐거움을 강조한 몇몇 연주들에서 이 측면을 엿볼 수 있다. 다만 이 교향곡은 조성적인 측면에서는 이전의 교향곡들보다 보수적이며(교향곡 6번의 1악장 발전부가 일반적인 전조에서 얼마나 멀어지는지 생각해 보자), 네 개의 악장은 각기 원조를 확고한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1813년 12월 전쟁 교향곡 <웰링턴의 승리> Op.91와 함께 초연했을 때 환영받았으며, 특히 2악장은 앵콜 요청이 있었을 정도로 사랑받았다. 애국적인 연주회 레퍼토리와는 별개로, 2악장이 큰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1악장 (1.Poco sostenuto 4/4 - Vivace 6/8) (A major)

서주가 있는 소나타 형식. 단순한 주제에 강세와 다이내믹을 주어 생명력을 획득한 Poco sostenuto의 서주(1마디-62마디). 서주 주제는 본질적으로 주요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f로 장려하게 시작하고, pp에 의한 음계의 상승이 있은 후 ff로 폭발한다. 첫 번째 폭발이 끝나고 오보에와 클라리넷, 바순의 삽입구가 찾아와 관현악 전체를 안정시킨다. 그리고 다시 ff로 폭발. 50마디가 지나면서 이 폭발마저 잦아들면 서주 전체가 잦아들고 주요부로 넘어갈 채비를 한다. 53마디부터는 단일음인 E음의 지속음 위에서 주요부 도입부를 불러들인다. 여기서부터 음형은 반으로 축소되고 또 다시 축소된다.

주요부인 비바체는 우선 플루트를 비롯한 목관이 악장의 기본 6박자 리듬을 제시하고, 이어 1주제를 제시한다. 1주제는 89마디에 이르러 폭발한다. 여기서 악기들은 대체로 리듬을 간직하는 부분, 16분음표의 경과구, 화성을 공급하는 목관악기로 나누어져 각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112마디부터는 짧은 경과구가 이루어져 있으며 119마디부터 시작하는 2주제는 1주제와 대비를 이룬다기보다는 오히려 종속적인 역을 맡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 이는 130마디부터 시작하는 경과적 버금 주제와 143마디부터 시작하는 1주제 파생 경과구에 의해 점차 소종결구로 이어진다. 152마디부터 시작하는 소종결구는 딸림조 위에 1주제가 나타나고, 현악기가 E장조의 장음계를 ff로 상행하면서 제시부를 마친다.

발전부는 제시부의 소종결구와 같이 음형이 "E"에서 "G"까지의 반음계 사이에서 움직이는데, C장조로 조바꿈한 뒤 2마디씩 카논 형식을 취하고 있다(185마디). 이후 조성들 사이를 두루 거친 후 254마디에서 트럼펫이 주도하는 엄청난 클라이맥스가 있다. poco a poco cresc.와 ff로 장려하게 절정을 이루면서 발전부는 끝난다. 참고로 발전부에서 100마디가 넘게 리듬이 원형의 지배를 받는 교향곡은 이 곡이 유일하다.

재현부는 275마디의 현악기군 암시에 의해 278마디부터 1바이올린으로 재현하는데, 299~300마디의 늘임 부분에 의해 다시 1주제를 경쾌하게 재현한다. 331마디부터는 2주제의 재현으로 이는 제시부와 동일하다. 다만 소나타 형식의 전통에 의하여 A장조로 되돌고 있다. 코다는 391마디부터로 393마디부터는 1, 2바이올린이 번갈아서 연주하는 바소 오스티나토로 최후의 종점으로 곡을 이끌고 있다. 이후 401마디부터 현악기의 낮은 음과 바이올린의 표정 풍부한 가락이 크레셴도 되면서 ff의 투티를 이루고 끝을 맺는다. 이 악장에서 쓰인 코다 바소 오스티나토는 같은 교향곡의 피날레 악장과 9번 교향곡의 1악장에서 다시 쓰인다. 악장의 대부분을 동일한 리듬이 지배한다는 점에서, 이 악장을 리듬이 주도하는 교향곡으로 보는 것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2악장 (2.Allegretto 2/3) (A minor)

3부 형식. 교향곡 7번에는 느린 악장이 하나도 없다. 알레그레토 악장이 사실상 느린 악장 역할을 맡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알레그레토는 '느린' 템포가 아니다. 그렇다면 알레그레토 지시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지시에 상관하지 않고 연주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작곡가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베토벤의 메트로놈 템포 지시에 관한 설득력 있는 일화가 하나 있다. 베토벤은 작곡을 하던 중 악보를 잃어버려 기억에 의존해 악보를 다시 작성했는데, 후일 잃어버렸던 악보를 되찾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두 악보의 메트로놈 템포가 일치하는 부분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잠시 이 상황을 황당해 하던 베토벤은 곧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악보 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독설을 내뱉었다 한다.

알레그레토 악장은 다른 악장에 비해 비교적 일찍 작곡했다. 연구자들은 <라주모프스키> 4중주와 비슷한 시기에 이 악장을 만들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향곡 7번은 처음부터 일관된 계획 하에 만들어진 교향곡이 아닌 셈이다.

니체는 아폴론의 정연한 꿈이 디오니소스의 흐릿한 현실과 만나는 순간 비극이 태어났다는 말을 남겼다. 베토벤의 교향곡 중 유달리 디오니소스적 경향이 두드러지는 교향곡이 이 곡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아폴론적인 경향이 여전히 굳게 버티고 있다. 중간 악장은 다른 악장들과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지만, 디오니소스적 경향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아폴론적 경향이 스며드는 것은 여전하다. 다만 그 경향이 희극에서 비극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니체가 정의한 '비극의 탄생'은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이 악장에 아주 잘 들어맞는다.

현악기 위주로 연주하는 1주제는 대위선율을 수반해 리드미컬하지만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이와 달리 A장조의 2주제는 (2/4박자) 목관악기가 주가 된다. 클라리넷이 온기를 불러오고, 패시지의 음역이 높아지는 순간 고음역 전문 목관악기인 플루트가 패시지를 이어나간다. 3부에서는 1부의 변주와 함께 푸가토도 두고 있다. 1주제로 마치는데, 마지막 현의 선율을 맨 처음에는 피치카토로 했다가 나중에 아르코(피치카토 상태에서 다시 활로 현을 그어야 할 때 쓰는 지시어)로 바꾸었다. 지휘자마자 아르코를 사용하느냐, 피치카토를 사용하느냐가 갈린다.  

 

3악장 (3.Presto 3/4 - Assai meno presto) (F major / D major)

스케츠로 악장인 3악장은 특이하게 F장조로 시작한다. 스케츠로 동기의 전반부는 앞꾸밈음이 붙어있고, 후반부는 4분음표 스타카토로 이루어져 있다. 트리오로 D장조를 채택해 굉장히 이례적인데, 엄격한 건축물의 위엄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치장해 놓은 꽃 장식을 연상케 한다. 밝고 따스하며 민요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하는데, 사실 트리오 선율은 오스트리아 지방의 순례의 노래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스케츠로와 트리오가 번갈아 두 번씩 등장하는 것은 교향곡 4번과 같다. 전체적으로 강약의 대비나 휴지, 스타카토를 교묘하게 사용하고 있다.

 

4악장 (4.Allegro con brio 2/4) (A major)

fff의 폭발적인 코다를 자랑하는 마지막 악장. 1주제를 제시하기 전에 주요 리듬을 제시한 후 휴지를 가진다. 날뛰는 악장임을 감안해 호흡을 고르라는 작곡가의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A장조의 1주제는 빠르고 능동적인데, 러시아 민요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베토벤은 《라주모프스키》 현악 4중주를 작곡하기 이전에 러시아 민요집을 갖고 있었으니, 아마 그 민요집에 있던 곡을 사용한 것이리라. 2주제도 약동적이고 유머러스하다. 발전부는 주로 1주제의 전개로 이루어지고, 재현부는 B♭장조로 1주제를 재현하고 곧 F장조로 바뀌어 2주제를 첼로로 재현한다. 이어지는 코다는 바소 오스티나토, 동기의 종합 등에 의한 각종 효과들로 엄청나게 장대해지는데, 모아진 힘이 두 번의 fff로 폭발하고 ff로 마친다.

 

 

각주

1) 빈의 귀족들은 1809년 베토벤에게 종신 연금을 주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그 직후 전쟁이 일어나 베토벤은 제대로 연금을 받지 못했다. 연금을 제대로 다시 지급받기 시작한 것은 1811년이 되어서였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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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의 교향곡만큼 유명한 서양 고전음악 레퍼토리는 많지 않다. 작곡된 지 20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어디선가 아홉 곡을 모두 연주하고 있다. 이런 행운을 누릴 수 있는 작곡가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당장 18~19세기만 생각해 보아도, 잊혀진 이후 지금까지도 연주조차 되지 않는 작곡가가 얼마나 많은가?), 정말 베토벤은 자신이 잃은 것 만큼 후세 사람들로부터 충분한 보상을 받은 작곡가라 할 수 있다.

 곡이 유명한 만큼, 그 곡에 바쳐진 글도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의 두 편의 글을 추려보았다. 한 편은 베토벤보다 한 세대 뒤의 사람인 프랑스 작곡가 베를리오즈의 글, 또 한 편은 베토벤이 살던 지역과 반대편에 살고 있는 20세기 후반 한국 시인의 시다. 두 편은 제각기 다른 품격을 갖추고 있으며, 둘 다 위대한 음악에 어울리는 훌륭한 글이라 할 수 있다.

 

(1) 베토벤에 대한 베를리오즈의 빠심을 느낄 수 있는 글 베토벤 교향곡 6번 4악장에 대한 베를리오즈의 글

 

 "나는 이 놀라운 곡에 대한 개념을 전하려고 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당신은 이 곡을 들어보아야만 베토벤 같은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룩될 수 있는 음악적인 회화의 진실성과 숭고성의 높이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들어보라, 비와 함께 몰아치는 바람소리, 베이스의 귀가 먹을 것 같은 으르렁거림, 곧 닥쳐올 무서운 폭풍을 알리는 피콜로의 높은 휘파람소리를 들어보라. 폭풍은 다가와서, 퍼져간다. 거대한 반음계적 낙뢰가 제일 고음의 악기로부터 시작하여 오케스트라의 가장 바닥까지 샅샅이 훑어내리며, 베이스를 낚아채어 그것을 끌고 다시 올라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뒤집어버리는 회오리바람처럼 몸서리치고 있다. 그러자 트롬본이 튀어나오며, 팀파니의 뇌성은 두 배로 격렬해진다. 이제는 더 이상 비바람이 아니다. 이는 무시무시한 지각변동이며, 대홍수이며, 세상의 종말이다…

 얼굴을 가리우라, 불쌍한 고대의 대시인이여, 불쌍한 불멸의 사람들이여. 당신들의 너무도 순수하고, 너무도 조화로운 관습적인 언어는 소리의 예술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당신들은 명예롭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정복당했다. 당신들은 오늘날 우리가 선율, 화성, 여러 음색의 결합, 악기의 음색, 전조, 처음에는 서로 싸우고 그 뒤에는 포옹하는 흉내낼 수 없는 음향의 계획된 갈등, 우리의 귀에 울리는 놀라움, 우리의 기묘한 악센트가 영혼의 가장 감추어져 있는 깊은 곳까지도 공명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몰랐었기 때문이다."

(베를리오즈, 「A travers chants」(Paris, 1898), pp. 42-43. C. 팰리스카 영역. 그라우트 『서양음악사』4판 수록)

 

(2) 김기택의 시 <전원 교향곡>

 

 베토벤은 제자 리스와 함께 숲길을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베토벤은 거의 청각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도 베토벤은 숲 속의 모든 소리에 즐겁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새소리, 시냇물 소리, 바람 소리…… 베토벤에게 오는 모든 소리는 더 이상 그의 귀에 살지 않고 이젠 아주 가는 떨림만 남아 그의 몸 곳곳으로 스며들어 가고 있었다. 귀 기울일 때마다 실핏줄과 심장과 살가죽과 뼈마디들은 모두 청각이 되어 일제히 떨며 열렸다. 그 떨림 속에서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정원이,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는 들판이 자라고 있었다. 스스로의 힘으로 숲속 가득 울리는 소리를, 나뭇잎 흔들림에서 시냇물 흐름에서 고요하게 일어나는 모든 소리를 온몸이 떨며 열어줄 때마다, 그는 귀가 먹었다는 사실을 잊었다. 오래오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가, 소리가 깊어지면 귀찮은 귀를 버리고, 귀에 달라붙은 말과 소음을 버리고, 귀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 속으로 한 없이 들어갔다. 산책 도중에 어디선가 한가로운 목동의 피리 소리가 들려왔다. 리스가 탄성을 질렀다. 아! 너무…… 너무나, 아름다워요. 선생님, 들리시죠? 베토벤은, 그때, 가슴을 후려치며 불어닥친 폭풍우에 휘말려 온몸으로 그 거대한 힘을 견디어내느라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베토벤이 피리 소리를 듣지 못하자 리스는 스승이 완전히 청각을 잃었다는 걸 알았다. 리스가 슬픈 표정으로 스승과 같이 집에 돌아왔을 때 베토벤은 오히려 밝고 활기차게 말했다. 리스야, 이제부터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마. 곧이어 베토벤이 건반을 누르자, 귀보다 행복한 곳에서 사는 소리들이, 핏줄을 지나 손가락과 건반을 지나, 일시에 방안 가득 솟구쳐나왔다.

(김기택, 시집 『바늘구멍 속의 폭풍』, 1994,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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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6번 F장조 <전원> Op.68

영어 : Symphony No.6 in F major, Op.68 "Pastorale"

 

작곡 시기 : 1808년 여름 완성

작곡 장소 : 하일리겐슈타트와 빈

초연 연도와 장소 : 1808년 12월 22일, 빈의 안 데어 극장에서 베토벤 자신의 지휘로 이루어짐. 이 연주회에서는 교향곡 5번과 6번 뿐 아니라 피아노 협주곡 4번의 초연도 같이 치러짐.

출판 : 1809년

헌정자 : 로프코비츠 후작과 라주모프스키 백작

악기 편성 : 피콜로(4악장), 플루트 2, 오보에 2, 클라리넷 2, 파곳 2, 호른 2, 트럼펫 2(4악장, 5악장), 트롬본 2(4악장, 5악장), 팀파니(4악장), 현악 5부

 

개설

우선 곡의 부제인 Pastorale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하겠다. Pastorale은 전원적인 분위기를 극적이며 문학적인 연극과 시와 같은 작품에서 사용하며 음악적인 표현은 기악 또는 성악 작품에서 표현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이 음악은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방 양치기들의 피리 소리를 모방한 곡으로, 6/8, 9/8, 또는 12/8박자로 자장가 분위기를 지니며, 유유히 흐르는 멜로디와 길게 지속하는 드로운 베이스(drone bass) 음이 특징이다. Pastorale은 명사형으로 쓰이는 것으로 전원곡, 목가곡, 그리고 전원극을 지칭할 때 사용하며, Pastoral은 형용사로 쓰이는 것으로 목가적인 분위기의 장면이나 시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이 곡의 주제 몇 개는 1806년의 스케치 노트에 적혀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 곡을 스케치하기 시작한 것은 1807 7월 전후로 보인다. 그리고 1808년 6월 경 그가 마음에 들어하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전체를 완성했다. 공교롭게도 이 곳은 그가 6년 전인 1802년에 요양 왔을 때 유서를 작성했던 장소였다. 

초연 때는 각 악장의 표제들이 오늘날의 그것들과 본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으나, 다만 곡 자체에 《전원생활의 회상》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사본과 초판 악보에는 단순히 《전원 교향곡》(신포니아 파스토랄레. Sinfonia Pastorale)이라고 적혀 나왔다.

여기서 우리는, 베토벤이 왜 자연을 대상으로 《교향곡 제6번》을 썼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같은 시기에 날카롭게 대비되는 대조적인 성격의 작품을 자주 썼다. 즉 자신의 내면을 불태웠던 격렬한 《교향곡 제5번》을 작곡하고 나서 바깥으로 눈을 돌려 밝은 《교향곡 제6번》을 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비교론적으로 흥미를 끌 수 있겠으나, 곡의 특성을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또 다른 이유는 이 곡을 작곡하던 전후에 자연의 즐거움을 묘사한 음악이 유행하고 있었으며, 베토벤도 거기에 다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J. H. 크네히트(1752~1817)의 5악장 구성의 《자연의 음악 묘사》나 프라이슈테틀러(1768~1841), 클레멘티(1752~1832)의 작품이 베토벤에게 영향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아울러 개인적인 사랑과 자연에 대한 애착도 빼놓을 수 없다. 요제피네에 대한 열정은 이 작품을 쓸 무렵에는 식어 있었다. 이 사랑의 종말로부터 전원으로 도피하려 했던 것이 《전원 교향곡》을 낳게 했을지도 모른다. 아울러 바깥 세계로 눈을 돌리려 했을 때 《교향곡 3번》을 쓸 때처럼 나폴레옹 같은 인물도 없었으며, 유쾌하지 못한 빈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실망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베토벤은 이런 모습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좋아하던 조용한 자연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베토벤은 이 전후에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가곡이나 피아노 소나타도 쓴다.

베토벤은 잘 알려진 대로 "사람은 속일 때가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 혹은 "숲 안에 있으면 기쁘고 행복하다"는 말을 비롯하여 자연을 사랑하는 말을 많이 남겼다. 테레제 마르파티에게 쓴 편지에서는 "덤불과 숲을 빠져나와 수목과 풀과 바위 사이를 산책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나처럼 전원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썼다. 세속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좋아하는 자연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 위안을 얻었던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이 곡을 작곡한 곳은 한적안 하일리겐슈타트였다. 종교적이라 해야 할 정도로 강한 자연 예찬이 나타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분명 이 교향곡은 《전원》이라는 제목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각 악장에 붙은 (시골 생활을 예찬하는) 부제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이 교향곡이 단순한 자연의 묘사로 그치는 표제음악이나 감상적인 음풍농월이 되어버리는 것을 경계했다. 베토벤은 자신이 직접 말한 것처럼 「묘사라기보다는 감정의 표현」이라는 태도를 취했으며 자연에 대해 자신이 느낀 감정, 경이롭고 신비로우며 근원적인 힘에 대해 자신이 받은 감동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물론 여기서 자연에 대한 회화적인 묘사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제4악장은 전형적인 묘사적 수법을 사용하여 폭풍우 장면을 효과적으로 구사하고 있으며, 그밖에 다른 악장에서도 시냇물 흐르는 소리나 새의 울음소리들이 들어가 있다. 물론 이들은 필연성을 지니고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또한 이 곡은 보통 교향곡이 3, 4악장으로 이루어지는 것과는 달리 5악장으로 이루어진다(다만 4악장을 5악장으로 들어가는 간주적인 역할에 억지로 끼워 넣으면 전통적인 4악장제에 아예 들어맞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제3악장부터 제5악장까지는 악장 간 단절 없이 계속 연주하도록 되어 있으며, 제4악장부터는 연속해서 일어난 일을 표제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처럼 표제에 맞춰 연주하게끔 한 것이다. 악장 사이를 쉼 없이 연주하도록 연주하는 것은 음악을 중단하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서 흐름을 자연스럽고 원활하게 하는 것이어서 후대의 슈만(특히 교향곡 4번), 멘델스존, 리스트를 비롯한 낭만파 작곡가의 교향곡 처리 방법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또한 이 교향곡 자체도 낭만파의 표제 교향곡이나 교향시의 발달에 커다란 도화선이 되었다.

베토벤이 《교향곡 제5번》의 반대항으로 이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작곡가가 짝을 지어 출판한 것은 두 교향곡의 특성을 비교해 보라는 의도를 분명 내포하고 있다. 《교향곡 제5번》이 강렬하고 단단하다면 《교향곡 제6번》은 유연하고 온화하다. 《교향곡 제5번》이 분석적이고 체계적이라면 《교향곡 제6번》은 생동감 있고 환희에 가득 차 있다. 이로정연한 《교향곡 제5번》의 관점으로 보면 《교향곡 제6번》은 낭만주의적이다. 피날레 악장을 대표하는 악기가 《교향곡 제5번》은 승리를 상징하는 트럼펫인데 반해, 《교향곡 제6번》은 목가적인 악기로 흔히 거론하는 호른이다.   

아울러 베토벤의 남겨진 스케치에 따르면, 처음에는 제5악장에서 성악을 사용하려 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실현되었더라면 《교향곡 제9번》에 앞서 성악을 사용한 교향곡이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베토벤이 곡에 부제를 붙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각 악장의 성격을 구분 짓는 부제를 기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그런 특성이 이 곡을 제외하면 <고별> 소나타밖에 없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다.

 

1악장 <시골에 도착했을 때 일어나는 유쾌한 기분> 

(1.<Erwachen heiterer Empfindungen bei der Aukunft dem Lande> Allegro ma non troppo 4/4) (F major)

소나타 형식. 밝고 명랑하며 한가로운 악장이다. 베토벤 교향곡에서는 첫 악장에서 효과를 내기 위해 알레그로 콘 브리오(Allegro con brio)라는 빠르기말을 많이 사용했지만,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Allegro ma non troppo)라는 지시어는 이 곡이 처음이다. 이 지시만으로도 이 악장에서는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느긋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긴장을 확 주는 것이 아니라, 느긋하게 긴장을 푸는 것이다. 1바이올린이 민요적이면서도 매우 전원적인 1주제를 제시하면서 시작한다. 이 주제는 오스트리아의 전원지대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슬로베니아나 모라비아의 농촌에서도 전해지고 있다. 이 주제만으로도 「시골에 도착했을 때의 즐거운 감정」이라는 표제가 타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시작 부분에서는 F음의 페달 포인트가 있으며, 16마디 이후부터는 C음의 페달 포인트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주제 마지막 음(G)에서 페르마타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베토벤이 즐기던 수법으로, 《교향곡 제5번》 4음 모티브 마지막에서도 찾을 수 있다. 46마디에서는 플루트가 고음의 아포지아투라로 새로리를 모방한다. 제2주제는 C장조로, 그다지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역시 즐거운 분위기로 먼저 현이 연주하고 목관이 그것을 받는다. 8분음표의 단순한 리듬이지만 물처럼 흐르는 펼침화음(Broken chord)의 형태를 취하며 하강 음형에서 한번 상승시켜 다시 하강하는 형태를 취하는데 아주 부드럽다. 대위선율이 같이 진행하며, 다소 리듬적인 특성이 두드러지는 1주제와는 달리 민요풍의 멜로디를 좀 더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발전부는 주로 1주제를 다루고 있다. 베토벤의 일반적인 발전부처럼 극적인 성격이나 강렬한 기복은 없으나 온화하며 다양하게 색채를 바꾸어 한가로움과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특히 발전부에서 같은 동기를 72번이나 반복하는 부분은 고전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지겨운 부분일 테지만, 교묘하게 악기의 조합을 바꾸며 반복하는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변하는 화성 색채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고전주의 음악 속의 낭만적 환상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발전부의 조성은 B♭장조에서 3도 관계인 D장조로 옮겨간 후, 잠시 쉰 후 G장조로 옮겨갔다가 E장조로 바뀌며 고전적인 전조에서 점차 멀어져간다. 1주제가 다시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면 곡은 재현부로 들어간다. 곧이어 2주제도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이어지는 코다는 전원의 느낌을 더욱 강하게 나타내며, 1주제를 반복적으로 제시하며 피어올랐던 감정들을 정리하듯 조용하고 따스하게 마무리한다. 468마디에서 B♭음과 B음의 대조를 보이는 새로운 반복이 나타난다. 483마디부터 491마디까지의 9마디는 목적 지향적 화음으로 예기치 않는 종지와 음악적 흐름을 유도하며, 클라리넷과 바순은 반복된 종지를 갖는 목가적인 음악을 연주한다. 이 주제는 앞의 레가토 부분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확대된 목관악기의 사용법과 단순한 종지는 3악장을 예고한다.

 

2악장 <시냇가의 정경> (2.<Szene am Bach> Andante molto mosso 12/8) (B♭ major)

소나타 형식. 「시냇가의 정경」이라는 표제와 완전히 일치하며, 박자도 길고 유연하다. 시냇물이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암시하는 미세한 움직임이 첼로를 비롯한 저음 현악기에서 거의 일관되게 주어진다. 1바이올린이 제시하는 사랑스러운 1주제를 반주하는 저음현은 8분음표의 펼침화음과 16분음표의 펼침화음 두 가지가 있다. 이런 지속적인 반주 위에서 전개되는 선율은 18세기 기악곡과 성악곡 느린 악장에서 흔하게 쓰였고, 기원은 17세기까지 거슬러 오른다. 전통적으로도 유유히 흐르는 시냇물의 정경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가장 적합한 음악적 형태라는 공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악장에서는 플루트의 고음으로 표현되던 새소리가 2악장에서는 바이올린의 트릴로 나타나는 것도 특징이다. 33마디부터 등장하는 2주제는 훨씬 밝게 바이올린으로 연주된다. 바순의 솔로가 넘치는 기쁨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흐르는 듯 평화로운 발전부 후에 91마디부터 재현부가 시작되는데, 플루트가 1주제를 재현한다. 저현은 제시부와 같이 시냇물의 반주를 맡으며, 바순, 클라리넷, 바이올린의 아르페지오가 추가되어 있다. 재현부가 끝나면 곡은 짤막한 코다로 들어가며 새소리를 모방한 악구가 등장한다. 물론 20세기 음악의 구체적인 새소리가 아닌 '듣기 좋은' 새소리다. 나이팅게일(꾀꼬리) 역할을 맡은 플루트가 F음과 G음을 불다가 F음의 트릴을 연주하고, 메추리 역할을 맡은 오보에는 D음의 부점 리듬을, 뻐꾸기 역할을 맡은 클라리넷은 D음과 B♭음을 연주한다. 새소리 묘사 이후 베토벤은 갑작스레 짧은 침묵을 내놓는데, 침묵은 황홀하면서도 경이로운 순간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새소리가 주화음에서 다시 등장하면서 막을 내린다.

 

3악장 <시골 사람들의 단란함>

(3.<Lustiges Zusammensein der Landleute> Scherzo. Allegro 3/4 - Trio 2/4) (F major)

스케르초와 트리오. 3악장부터 5악장까지는 아타카로 쉬지 않고 연주한다. 「시골 사람들의 단란함」은 스케르초에 해당하는 악당이지만, 농민들이 즐겁게 추는 음악을 연상시킨다. 연주하는 사이 술에 취해 잠든 악사도 있으며, 소박한 악기를 갖고 서투르게 연주하는 악사도 있다. 바순은 지속적으로 도(F)와 솔(C) 음을 연주한다. 트리오(a Tempo Allegro. ♩=132)는 실제 농민들의 춤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믹소도리안 조가 두드러진다. 역시 농부의 서투른 춤을 연상케 하기 위해 바순과 더블베이스가 기민하게 움직이는데, 바순은 무려 13마디 동안 C 옥타브만을 연주한다. 트리오의 반복이 끝나면 스케르초 1부의 코데타를 확대한 코다를 통해 4악장으로 들어간다.

 

4악장 <천둥. 폭풍우> (4.<Gewitter. Sturm> Allegro 4/4) (F minor)

특별한 형식이 정해지지 않은 (굳이 규정짓자면 자유로운 2부 형식에 가깝다) 간주곡. 전통적인 4악장 제에 간주곡이라 할 폭풍우 악장을 추가한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폭풍우 악장은 나머지 악장들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며, 논리적으로도 매끄럽게 이어진다. 4악장은 3악장과 5악장을 이어주면서, 동시에 충격적인 내용으로 우리의 뇌리에 남는다. 오케스트레이션 측면에서도 전 악장을 통틀어 피콜로와 팀파니는 오직 4악장에서만 등장하며, 트럼펫과 트롬본도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전 악장의 흥겨운 분위기는 삽시간에 자취를 감추고, 저음 현이 멀리서 들리는 천둥소리를 들려준다. 농민들은 춤을 멈추고 놀라 대피한다. 곧 투티에 의한 폭풍우가 감상자를 강타한다. 단지 음악적인 효과 뿐 아니라, 작곡가의 감정까지 강하게 개입해 정말로 소름끼치는 폭풍우 장면이 몰아친다. 묘사음악에서 이토록 박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작곡가는 베토벤 이전에는 그리 흔치 않았다. 관현악 측면에서는 피콜로와 트롬본을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급박함을 알리는 피콜로의 고음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에 폭풍우가 걷히고 햇살이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밀면, 플루트의 상승 음계가 클라리넷의 목가를 불러온다.

 

5악장 <목가. 폭풍우 뒤의 즐거운 감사의 마음>

(5. <Hirtengesang. Frohe und dankbare Gefuhle dem Sturm> Allegretto 6/8) (F major)

론도 소나타 형식. 클라리넷이 제시하는 목가 주제는 곧 호른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바이올린이 목가 주제에서 비롯한 1주제를 연주하면 그 주제가 곧 현악기로, 전 관현악으로 퍼져 나간다. 곧 바이올린이 2주제를 연주한다. 이어 1주제가 모습을 드러내며 전개되는데, 새로운 선율도 가세한다. 재현부에 이어지는 코다에서는 1주제를 따스하게 연주한다. 그 사이 1악장 1주제를 연상시키는 악구도 모습을 드러낸다. 마지막 악장다운 화려함이나 강력함은 없으나 그런 만큼 이 전원적인 교향곡을 밝고 평화로운 목가적 분위기로 마무리하는 역할을 맡는다 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곡을 편안히 마친다는 느낌을 주어 전 악장의 긴장감을 다분히 풀어주는 느낌을 던져준다. 끝부분에서 호른은 약음기를 사용해 멀리서 울리는 느낌을 던지며 편안히 악장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이 악장에서는 트럼펫이 연주할 수 없는 음정을 피하려고 다음과 같은 아주 이상한 성부진행을 한다. 219마디에서 223마디를 보면, 화음이 219-220마디의 F장조 화음에서 221-222마디의 D단조 화음을 경유하여 223마디의 G장조 화음으로 진행한다. C 트럼펫이 D단조 화음에서 넷째 줄의 D음 외의 어떤 음도 연주할 수도, 그리고 중복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일상적 어법에서 벗어난 장9도의 도약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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