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협주곡 1번 (Violin Concerto No.1 in A minor, Op.77(Op.99))

작곡 시기 : 1947년 7월 21일 착수, 1948년 3월 24일 완성

작곡 장소 : 모스크바

헌정자 :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악기 편성 : 독주 바이올린, 피콜로(제3 플루트와 겸함), 플루트 2, 오보에 2, 잉글리시 호른(제3 오보에와 겸함), 클라리넷 2, 베이스 클라리넷(제3 클라리넷과 겸함), 파곳 2, 콘트라파곳(제3 파곳과 겸함), 호른 4, 튜바, 팀파니, 탬버린, 탐탐, 실로폰, 첼레스타, 하프 2, 현악 5부

(이 협주곡은 즈다노프 비판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만든 곡이다. 쇼스타코비치는 살아남기 위해 자존심이고 뭐고 다 집어치운 채 일단 바닥에 납작 엎드려야 했다. 그는 낮에는 가혹한 인격살인과 협박이 그럴듯한 정치용어에 포장된 채 쏟아지는 위원회에 출석하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이 곡을 썼다. 곡에서는 어떠한 외부적인 압력의 흔적도 느껴지지 않지만(협주곡의 형식은 고전적인 형식과 현대성을 아주 잘 결합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것은 어쩌면 소비에트의 당이, 독재자가 원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범답안인지도 모른다), 곡의 모든 주제는 어둠 속에서 달빛을 받은 칼날처럼 번뜩이고 있다. 쇼스타코비치는 곡을 완성하고도, 자신의 평판(과 목숨)이 나락으로 떨어질까 두려워해 이 곡의 출판을 미루었다. 곡의 출판은 스탈린이 죽고 교향곡 10번이 성공을 거둔 후에 비로소 이루어졌다. 작품번호가 두 개인 까닭이 바로 그것이다(Op.77은 완성 시기에 맞춘 작품 번호이며, Op.99는 출판 시기에 맞춘 작품 번호이다. 처음에는 Op.99로 출판했으나 나중에 Op.77로 바꾸었다). 쇼스타코비치는 곡을 완성하자마자 오이스트라흐에게 맡겼지만, 초연까지는 8년이 걸렸다. 곡을 초연한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에게 헌정했다.

곡은 트럼펫과 트롬본 없이 진행한다. 트럼펫은 쇼스타코비치가 당을 위해 작곡한 공허한 선전용 음악에서 즐거운 팡파레를 맡곤 했다. 작곡가는 이 곡에서 그런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 1악장과 3악장은 각기 고통스러운 녹턴과 파사칼리아, 2악장과 4악장은 교활한 풍자와 칼날 위에 선 사람들의 아찔한 춤을 그리는 스케르초와 부를레스케다. 이토록 소름끼치는 풍자를 기악 음악으로 실현한 작곡가는 쇼스타코비치 말고는 없다. 쇼스타코비치도 이렇게 잘 벼려진 풍자 음악은 두 번 다시 만들지 못했다(이후의 풍자음악은 너무 노골적이거나 너무 어둡다). 그는 짓누르면 짓누를수록 더욱 강해지는 작곡가였지만, 결국 공포가 작곡가의 개인적인 의지를 눌러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1악장 (1.Nocturne. Moderato 4/4) (A minor)

(음울하고 고통스러운 녹턴 악장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주 길게 이어진다. 그러나 녹턴 악장은 동시에 부드러운 패시지도 담고 있다. 독주 바이올린을 반주하는 악기군은 완전히 둘로 갈라져 교대를 하듯 독주악기를 반주한다. 주로 악장의 분위기 조성을 맡는 것은 현악기군이며, 관악기군은 주로 보조 역할을 맡는다. 마지막 부분에서 바이올린은 약음기를 사용하고, 현악기군과 하프의 꺼질 듯한 반주와 함께 조용히 끝을 맺는다. 이 조용한 종지는 2악장의 개시가 던져주는 신선한 충격을 배가한다.)

2악장 (2.Scherzo. Allegro 3/8 - Trio 2/4) (D flat major)

(쇼스타코비치는 이 악장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음악적 서명 DSCH(D-Es-C-H/D-E♭-C-B)를 사용하고 있다. 이 서명은 이후 현악 4중주 8번과 교향곡 10번에서도 나타난다. 플루트와 독주 바이올린으로 시작하는 첫 주제는 공허하고 낙관적인 선전용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러나 그 공허한 미소는 어느 누가 보아도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의 웃음이다. 영혼 없는 인형의 춤 뒤에서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이면’은 트리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트리오 주제는 즐거움과 기쁨을 나타내지만, 쇼스타코비치의 교묘한 가공은 그 주제에 기묘한 광기를 불어넣는다. 곡은 다시 스케르초로 돌아오지만, 이제 꼭두각시는 자기가 억지로 웃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즐거워 웃는지도 구분하지 못한다. 미칠 것 같지만 동시에 미친 듯 즐겁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도 이러한 상황을 쇼스타코비치만큼 잘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특정한 조성이 없다고 할 정도로 변화무쌍한 스케르초 악장의 전조는 이 느낌을 증폭시킨다.)

3악장 (3.Passacaglia. Andante 3/4 - Cadenza) (F minor)

(3악장의 작곡 시기는 즈다노프 비판이 행해지던 시기와 일치한다. 20세기 작곡가들은 엄격한 파사칼리아 형식을 통해 강압적이고 거대한 수레바퀴와, 그 수레바퀴에 짓눌린 사람들을 묘사했다. <보체크>에서 의사의 실험대상으로 전락한 보체크를 묘사하는 데 파사칼리아를 사용한 데서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알반 베르크를 존경했던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협주곡에서 파사칼리아를 사용한다. 파사칼리아를 곡에 굳이 집어넣은 의도는 베르크와 같았으리라. 스탈린의 대숙청 시기, 강제수용소로 끌려간 많은 사람들은 다시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당했던 일이 어떤 것인가를 알리는 데는 역시 음악이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그 안에 담긴 뜻을 이해하기 위해 음악을 알아야만 하는 기악곡은 더욱 그렇다(성악곡은 드러내고자 하는 바를 너무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언급한다. 사실 그것이 성악곡의 가장 큰 위력이기도 하지만). 파사칼리아가 서서히 막을 내리면 절규와도 같은 독주 바이올린의 카덴차가 이어진다. 앞부분인 파사칼리아가 고전적인 형식인 것처럼, 이 카덴차 부분도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들을 연상시킨다. 카덴차는 앞의 악장들을 회고하면서 점점 분위기를 격렬하게 만들고, 그 분위기는 바로 4악장으로 이어진다.)

4악장 (4.Burlesque. Allegro con brio 2/4) (A minor)

(이 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의 연장인 동시에, 절규와도 같은 앞의 카덴차를 잘라버리면서 나타난다. 물론 그 절규를 잘라버리는 것은 팀파니의 강압적인 리듬이다. 팀파니의 호위를 받으며 나타나는 부를레스케 주제는 그 폭압적인 성격이 지나쳐 오히려 장난치는 것처럼 들린다. 주제가 끝나면 목관과 독주 바이올린이 어우러지는 광대의 춤이 이어진다. 독주 바이올린은 그 틈바구니에서 아슬아슬하게 춤을 춘다. 결국 코다에서 모든 주제들은 발작하는 것처럼 튀어나오고, 폭넓은 다이내믹(mf-f-ff, p-cresc.-ff)은 들뜬 분위기를 돋우면서 파국을 재촉한다. 결국 부를레스케의 등장을 장식했던 강압적인 팀파니가 그 모든 주제들을 묻어버리면서 곡은 끝난다.)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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