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든에 대한 단상

음악 2014. 5. 31. 23:51

 하이든의 천재성(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가 이에 대해 자주 지적하고는 했다)에 대해 우리가 자주 간과하는 이유는 많다. 그 중 가장 큰 이유는 그가 만들어낸 독창적인 음악 언어가 이미 우리의 기본적인 음악 언어로 편입되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그가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겸비한 얼마 되지 않는 위대한 음악가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첫 번째 이유 때문에 하이든은 '18세기 고전 형식을 만든 작곡가'라는 형식적이고 교과서적이며 바지사장의 냄새가 나는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며, 두 번째 이유는 더 심각한 악영향을 끼쳐 거대하고 심각하고 장엄하고 권위적이며 압도적인 음악을 즐겨 찾는 이들이 그가 하찮은 작곡가(실제로 그는 전혀 하찮은 작곡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라는 편견을 가지도록 만드는 동시에 그를 '고전음악을 처음 들을 때나 거쳐가는 관문' 정도로 하대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 편견과 몰이해, 그리고 하대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우선 두 번째 이유에서 발생한 오해부터 뒤집어 보자. 하이든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모두 추구한 작곡가가 맞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고전음악을 처음 듣는 초심자부터 고전음악에 능통한 전문가까지 모두들 그의 음악이 뛰어나다는 점을 인지할 수 있다. 그의 주제들은 귀에 익숙해지기 쉬운 만큼 정교한 솜씨로 재단이 이루어져 음악학자들도 그 경이적인 재단 솜씨와 위트에 놀라고는 한다. 특히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끼워 넣는 재치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86번 교향곡 마지막 악장에서 드러나는 기가 막힌 전조, 마지막 교향곡 <런던>의 마지막 악장에서 보여주는 고도의 대위법적 기교(첫 악장의 주제를 역행으로 뒤집어 사용하고 있다. 이런 작곡 방식은 버르토크도 사용한 바가 있다), 화성적 전개와는 전혀 상관 없는 C♭음을 전면에 돌출시키는, 감상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99번 교향곡 첫 악장(베토벤이 나중에 이런 방법을 자신의 교향곡 8번 마지막 악장에 적용한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형태를 계속 바꾸어가며 마치 주제가 주제의 꼬리를 무는 것 마냥 다음 변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88번 교향곡 첫 악장 등...... 유명한 교향곡들만 대충 살펴봐도 이 정도다. 그는 독특한 리듬, 기괴한 화성, 심각하고 무거운 정서를 삽입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위대한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개방성과 유연함이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마이너스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이상하다.

 이제 첫 번째 이유에서 발생한 오해에 대한 반론도 제기해야 할 것이다. 하이든의 형식이 18세기 고전 음악과 이후의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음악 언어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음악 언어가 보편적인 음악 언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 것이다. 보편적인 언어는 무엇보다 기본 형태가 쉽고 단순하지만 수많은 형식으로 변화가 가능할 만큼 유연하고 창조적이어야 한다. 하이든의 음악 언어, 특히 소나타 형식은 이 조건을 훌륭하게 만족시키고 있다. 고무찱흙처럼 다른 모양으로 변형이 가능한 단순하고 작은 형태의 주제, 주요부와의 정서 대비를 주는 서주, 발전부를 배제한 소나타 형식을 주로 사용하는 느린 악장, 긴장을 풀고 편안함을 유도하지만 톡톡 튀는 구석이 꼭 한 군데씩은 숨어 있는 미뉴엣, 그리고 듣기만 해도 시원스러운 마지막 악장들. 이 형식은 교향곡과 현악4중주뿐 아니라, 피아노 소나타와 3중주, 협주곡을 포함한 거의 모든 기악곡 양식에 도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만큼 그 기본 양식은 비록 수많은 작곡가들이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그 양식을 도입하고 적용하면서 모습이 바뀌어 갔지만 어쨌거나 몇 가지 기본 틀만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신축성과 내구성이 좋은 형식을 오래도록 구축하는 것이 성공했기 때문에 프로코피예프가 하이든을 그토록 좋아했는지도 모른다(그는 체레프닌 클래스에 머무르던 시절, 하이든의 음악을 연구한 성과를 바탕으로 자신의 교향곡 1번을 작곡했다).

 하이든의 음악은 단순하고 간결하고 명쾌한 만큼 위대하다. 그의 악보 위에는 꼭 필요한 구성 요소들만 놓여 있기 때문에, 도무지 그의 음악에서 음표 하나를 더하거나 뺀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리게티도 하이든 음악의 그러한 특징을 통찰했는지는 몰라도, 자신의 음악에서 덜어내야 할 부분을 고심할 때마다 옆에 하이든의 음악을 놓고 그 단순성과 간결성을 참고했다고 하지 않은가. 

 

 "이 위대한 천재는 단 하나의 주제를 풍부한 변화로 발전시켜 끌어나갈 수 있다. 그렇기에 한 악상에서 다른 악상으로 계속해서 옮겨 다니는 창작력 빈곤한 여느 작곡가들과는 진정 다르다."

 - 1787년. 6개의 <파리> 교향곡을 들은 한 평론가가 기록한 말.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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