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절과 통합 : 루비모프 콘서트 (2018.5.12. 土) (Part 1)




 지금껏 연주회 평을 여러 번 썼지만, 첫 머리를 이렇게 고민하게 만든 연주회는 처음이다.

할 얘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할 얘기는 너무 많다. 다른 사람을 붙잡고 열 시간이고 백 시간이고 떠들 수 있다. 문제는 서두를 어떻게 풀어야 이 소름끼치는 연주에 누를 끼치지 않을지 그 방법이 쉽게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연주회 후평을 둘로 나누기로 했다. 연주회 전에 있었던 일들은 1부, 연주회 자체는 2부로 나누었다. 1부와 2부의 어투도 다르니 참고할 것.


 일단 연주회를 보러 간 목적부터 솔직히 말하겠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두 번 다시 루비모프를 못 볼 것 같았다. 그는 1944년생. 올해 74세다(검색해보고 나도 놀랐다). 기교의 쇠퇴는 둘째 치고 슬슬 은퇴를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할 시기 아닌가.

 나는 레퍼토리를 확인하자마자 가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패르트, 하이든, 시메온 텐 홀트, 존 케이지, 드뷔시. 이건 12첩 반상 차려놓고 와서 안 먹으면 네 손해라고 말하는 거나 진배없다. 적금을 깨서라도 가야 하는 연주회건만 가격이 S석 5만원, A석 3만원. 세상에 교통비보다 싼 연주회는 처음 가 본다.

 가는 날 비 예보가 있어서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통영은 흐리기만 할뿐 비가 내리지는 않았다. 와 봐야 몇 방울 뿌리고 마는 수준. 통영은 관광하기 참 좋은 도시지만 여기 온 목적은 관광이 아니니 후딱 버스 잡아타고 음악홀로 향했다. 그래도 버스 안에서 주마간산으로나마 체감해서 다행이야.

 해안선을 따라 부드럽게 휘어진 도시를 뒤로 하고 음악홀 도착한 게 1시. 음악홀은 미륵도와 한산도 사이라는 천혜의 절경에 자리 잡았다.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기다리지 말고 관광이나 할 걸 하는 생각도 했지만, 아마 그랬으면 루비모프의 귀한 사인을 못 받았겠지.

 양 옆으로 해안선을 낀 카페에서 차 한 잔 마시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관계자분과 함께 남은 귀밑머리가 허연 노인이 들어온다. 자세히 보니 바로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 분 맞다. 연주회를 앞둔 연주자에게 사인을 받는 것이 무례한 행동일 수도 있어 고민하다가 어느 아주머니가 양해를 구한 후 사진을 찍고 차 대접을 하는 것을 보고 용기 내어 다가갔다.

 솔직히 무협지에서 눈빛만 마주쳐도 격의 차이를 느끼니 마니가 다 개소리인줄 알았는데 이번에 그게 사실인 줄 알겠드라. 눈을 정면으로 마주치는데 진짜 포스가 장난이 아니야. 포스에 눌린 탓인지 영어 울렁증이 도져서 하고 싶은 말의 반도 못 했다. 그래도 무사히 사인 받고 악수까지 했으니 다행. 마에스트로 죄송합니다.

 루비모프는 카페에 앉아 앞으로 있을 연주를 복기하는지 아니면 보는 사람까지 차분해지는 바다를 관망하는지 그저 관조만 하더라. 정신 차려보니 시간은 다가오고 난 30분 전부터 객석에 앉아 기다렸다. 레퍼토리 중에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사용하는 존 케이지 곡이 있던데 덩그러니 스타인웨이만 놓여 있어서 어떻게 해결하나 의문이 들긴 했다.

 드디어 5시. 노인이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일단 1부 끝. 인증 겸 자랑으로 사인 올려 봄.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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