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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2.03 음반일기 / 2019년 2월


 2019.2.3 (일)



 체자레 시에피 / 56년 잘츠부르크 가곡 리사이틀 (56.7.27) (Orfeo)


 시에피라는 위대한 가수의 위대한 역량을 아낌없이 체감 가능한 명연. 프랑스어/독일어/이태리어라는 3개 국어 프로그램을, 그것도 륄리에서 라벨까지 300년에 걸친 방대한 레퍼토리로 짜면서도 완벽한 리사이틀이 가능한 존재를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선악이 깃든 기품있는 목소리에 매끄러움에서 박력 사이를 마음대로 오고가는 호흡조절과 가창, 감정표현, 거기다 레퍼토리에 걸맞게 콘서트홀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완급조절까지 완벽하다.

 스타트를 끊는 륄리의 <아마디스>와 <알세스트>의 아리아부터 시작해 슈만과 브람스의 가곡,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보이토(<메피스토펠레>), 베르디(<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와 <시몬 보카네그라>), 로시니(<세빌리아의 이발사>와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아리아를 거쳐 마지막 안토니오 카를로스 고메스의 곡까지 방대한 곡들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지만, 이 리사이틀의 압권은 단연 라벨의 <둘시네의 돈키호테>. 이태리 사람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 완벽한 프랑스어 발음을 자랑하며 혀가 꼬일 것 같은 이 난곡을 너무 쉽게 풀어낸다. 시에피의 프랑스어 발음은 특히 r와 un에서 초강세를 보이는데, 특히 두 발음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2곡 <회고적인 노래> 중 'D’un rayon du ciel bénissez ma lame' 단락은 그야말로 절창. 3곡 <권주가>의 알딸딸한 사이키델릭 분위기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왜 시에피가 위대한 가수인지, 그리고 위대한 가수가 어떻게 무대를 가리지 않고 빛을 발하는지를 잘 알고 싶다면 반드시 들어야 할 음반.



 2019.2.14 (목)


 미트로풀로스 슈만 2번/프로코피예프 5번 (54.8.21) (Orfeo)


 혼란한 합주력, 삐긋삐긋하는 음정, 가끔 이상해지는 다이내믹.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연주가 프로코피예프 5번 역사상 가장 무서운 연주인 이유는 단 하나, 지휘자의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프로코피예프의 곡은 곡에 내재한 '신랄함'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생명이 달렸는데, 이 연주는 그 측면에서 완벽하다. 실내악 규모로 줄어들었다가 갑자기 사정없이 폭발하는 다이내믹 또한 이 연주를 더 예측불허로 만들어준다. 그 모든 것은 불세출의 지휘자 미트로풀로스의 공이다.

 커플링된 슈만 2번은 프로코피예프의 곡과 닮은 점이 많은데, 피아노의 어법으로 관현악 작곡을 생각한 탓에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점, 그리고 관현악 특유의 다이내믹을 잘 살리는 대신 그냥 쿵쾅거리는 것으로 때우려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람들이 슈만과 프로코피예프의 보석같은 아이디어를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아쉽다. 후대 작곡가들에게 전범이 될 정도로 기묘한 슈만의 싱커페이션과 화성진행, 그리고 프로코피예프의 간결한 그로테스크함은 이 교향곡들에서도 잘 살아 있다.



 2019.2.16 (토)


 박하우스/뵘 브람스 2번/모차르트 27번 피아노 협주곡 (Decca)


 피아노와 반주 둘 다 하품 나오는 할아버지의 연주. 박하우스가 '건반의 사자왕'이었던 시절은 모노 시절이지, 다 죽어가는 7~80대가 아니다. 나는 모노 시대 박하우스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연주로 37년 슈만의 환상곡(EMI)을 추천하겠다. 뵘의 반주도 같이 하품 나오기는 마찬가지. 비슷한 시기 바그너와 슈트라우스 반주를 생각하면 힘을 숨겨도 너무 많이 숨긴다(65년 로엔그린(Orfeo)과 엘렉트라(Orfeo) 실황을 비교해 볼 것). 브피협 2번의 내 선택은 어쩔 수 없이 길렐스/라이너/CSO(RCA) 쪽으로 기운다. 스튜디오 레코딩 중에서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니까.


 텔덱 리게티 프로젝트 CD 3 (Teldec)


 텔덱에서 내놓은 다섯 장의 리게티 프로젝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3번 CD다. 3번의 수록곡은 첼로 협주곡-<시계와 구름>-바이올린 협주곡-<피리, 북, 깽깽이Síppal, dobbal, nádihegedűvel>로 되어 있는데, 이 배치는 리게티의 음악 노정인 아방가르드 시기(첼로 협주곡)-모색기(<시계와 구름>)-아방가르드 탈피(신조성 음악?)기(바이올린 협주곡과 <피리, 북, 깽깽이>)를 압축해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기악(현악 협주곡)-성악(아카펠라 합창곡)-기악(현악 협주곡)-성악(독창+앙상블)곡의 배치로 묘한 균형감까지 준다. 난 이렇게 음악의 발전과정을 논리적으로 보여주는 배치를 좋아한다. 순수하게 기량만을 평가하자면, <시계와 구름>을 노래한 카펠라 암스테르담의 솜씨가 가장 좋았다고 평하겠다. 코러스 마스터인 Daniel Reuss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마커스 클린코 프랑스 하프 음악집 (EMI)


 사람이 너무 오래 긴장하면 고장이 난다. 바깥을 오래 돌아다니면, 그것만으로도 긴장하고 피곤하게 된다.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피곤한 김에 긴장도 풀 겸 별 생각없이 틀었다. 긴장을 풀기에는 하프 독주가 딱이니까. 마커스 클린코는 릴리 라스킨에게 수학했다는 이력이 돋보이지만, '그 이상'이 없는 '재능만 있는 일개 한량'이다. 그리고 이런 한량의 연주가 그렇듯, 전혀 대단한 구석이 없다. 자신이 음악에 미치지 않으면 절대 남을 미치게 만들 수 없다.



 2019.2.17 (일)


 뮌쉬/BSO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드뷔시 <바다>, 이베르 <기항지> (RCA)


 십수 번을 들었던 음반인데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다. 생상스는 오르간과 오케스트라 황금비율을 맞추기 위해 관객석 1/3을 들어내고 거기에 오케스트라를 앉혀 녹음했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남은 연주다. 이런 노력이 이후의 레퍼런스인 바렌보임(DG), 카라얀(DG) 음향 실험의 선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연주는 듣기 괜찮은데 소리가 약간 거칠고, 동시기 스테레오 레코딩이 그렇듯 최강주에서 음향이 과포화된다. <바다>는 경이로운 뮌쉬 본인의 67년 실황(Altus)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다. 안정되지 못한 금관 테크닉도 그렇고, 3악장 막판의 트럼펫 패시지(초판 이후 일관되게 삭제되었지만 연주가들이 기어이 복구시킨 부분)는 매가리가 없다. 가장 뛰어난 연주는 역시 이베르의 <기항지>. 부점 리듬이 난무하는 이 곡을 뮌쉬는 능수능란하게 연주한다. 플루트 연주자가 죽어나는 소리가 들릴 정도.


 폴리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1, 12, 21번 (DG)


 97년 빈 무지크페라인 홀 실황연주. 클래식 음악 처음 팔 때는 참 좋은 연주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들으면 당최 뭐가 좋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연주. 폴리니는 페달링 테크닉의 절반이라도 음향 계발에 힘을 썼으면 더 평가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길렐스/아마데우스 sq. 브람스 피아노 4중주 1번 外 (DG)


 제대로 된 피아노의 음색을 듣기 위해 길렐스를 틀었다. 브람스 피아노 4중주 1번의 레퍼런스. 피아노와 현악기 모두 선 굵은 연주로 일관한다. 커플링된 4곡의 발라드 Op.10도 훌륭한 연주. 살인(그것도 존속살인)한 사람의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1번과, 침잠한 감정들이 어물거리면서 아련함과 불길한 색채를 번갈아 암시하는 4번이 인상적이다.



 2019.2.18 (월)


 훔부르크 로시니 <이발사> CD 2 (Naxos)


 연주의 내용보다 낙소스가 내지에 저지른 만행을 좀 쓰고 넘어가야겠다. 리브레토가 CD 2 10번 트랙까지밖에 인쇄가 되어 있지 않아서(1막 로지나/피가로 듀엣 "Dunque io son"과 바르톨로 아리아 "A un dottor della mia sorte" 사이 레치타티보) 그 후의 내용이 없다. 이러면 호평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이발사>는 음반마다 빠지거나 들어간 내용도 많고 애드립도 많은 오페라라서 리브레토가 필수인데 이딴 짓을 해놓았으니 이 따위로 음반을 만드는 낙소스는 욕을 먹어도 싸다.


 스턴/로즈 오먼디/필리 브바협/이중협 (Sony)


 난 스턴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유의 톤은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40도 되기 전에 테크닉 측면에서 맛이 가 버린 사람을 고평가하기는 힘들다. 오먼디/필라델피아와 녹음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39세 때인 1959년에 녹음했는데, 테크닉은 맛이 갔는데 특유의 톤만 악착같이 살리려고 하다 보니 김 빠진 콜라를 졸여서 콜라청을 만든 다음에 억지로 멕이는 느낌이다. 1악장 22분이 66분같다. 이중 협주곡은 첼로를 켜는 레너드 로즈 때문에 참고 들었다. 로즈는 훌륭하지만 스턴은 그저 그랬다. 그래도 바이올린 협주곡만큼은 아니어서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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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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