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보름도 더 지난 이야기지만) 2019년 4월 16일, 피아니스트 외르크 데무스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0세.

 이미 장례식도 예전에 끝나고, 추모하던 사람들도 전부 다 일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항상 굼뜨고 늦는 일개 클래식 음악 덕후가 뒤늦게 그를 추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되어 있다. 고작 그의 음반을 들으면서 글을 몇 자 끼적이는 정도가 그런 일에 해당된다.

 

 데무스에 대해 사람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대개 단편적이다. 명 피아니스트 에트빈 피셔의 제자, 빈의 3총사라 불렸던 데무스/바두라-스코다/굴다의 한 축을 이루는 인물, 정묘한 음색과 엄격한 해석을 고수하는 몇 안 남은 독일 피아니즘의 거장. 이 정도를 기억하면 그래도 데무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데무스를 추모하기 위해 소개하는 음반은 그가 60년대에 녹음한 드뷔시 전집이다.

 사람들은 데무스의 드뷔시 하면 스튜디오 레코딩이나 실황에서 끼워 녹음한 단편적인 소품 연주만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데무스는 이미 60년대 후반에 CD 다섯 장 분량의 드뷔시 전집을 완성한 바 있고, 이 전집의 완성도가 (내가 그토록 높게 평가해온) 30년대의 기제킹 연주나 에리쿠르와 맞먹을 정도로 높기 때문에 이 기회를 빌어 소개하려 한다.

 부디 이 글이, 국내에서 유독 한정된 평가만을 받는 그의 위상 재고에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기를 빈다.

 

 수록 순서를 따라 전집을 완청하다 보면, 첫 레퍼토리인 <잊혀진 영상>부터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사실 드뷔시는 <영상>이라 이름 붙여진 작품집을 3개 만들었다. 1905년에 출판한, '물에 비친 그림자', '라모를 찬양하며', '움직임'이라는 부제가 붙은 3곡이 1집, 1907년에 출판한, '잎새를 스치는 종소리', '황폐한 절에 걸린 달', '황금 물고기'가 2집이다. 그런데 사실, 1894년에 만들고 출판하지 않은 드뷔시의 <영상>이 하나 더 있다.

 'Images Inedites'라 불리는 이 작품집은 번역하면 '출판되지 않은 영상'이며, '잊힌 영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각각 'Lent(느리게)', 'Souvenir du Louvre(루브르의 추억)', 'Quelques aspects de "Nous n'irons plus au bois" parce qu'il fait un temps insupportable(날씨가 나빠서 "숲에는 안 갈 거야"에 의한 몇 가지 아이디어)라는 제목을 단 이 곡들은, 드뷔시의 엄격한 자기 평가기준에 따라 출판되지 않고, 대신 2곡은 미세한 수정을 거쳐 <피아노를 위하여>의 2곡 '사라방드'로, 3곡은 전면적인 개정을 거쳐 <판화>의 3곡 '비 오는 정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내가 신선한 충격을 받은 부분은 희귀 레퍼토리여서가 아니라, 연주 때문이다. 보석을 가공하듯 섬세하게 직조하는 투명한 음색, 페달 포인트의 단단한 소리는 내가 알고 상상하던 데무스의 음색 그 이상의 것이었다. 특히 1곡에서 데무스의 오른손 고음부는 '혹시 다른 피아노로 연주하나?' 싶을 정도로 색다른 음색을 들려준다.

 <영상>은 동곡의 표준 레퍼토리인 미켈란젤리(DG)에 비하면 조금 더 조심스럽게, 조금 더 부드럽게 연주한다. 그런 점에서 이 연주는 이전의 기제킹이나 에리쿠르, 비슷한 시기의 미켈란젤리보다는 이후의 이스토민(Adda. 구하기 힘든 연주라 나도 유투브로만 들었다)과 비슷하다. '물에 비친 그림자'의 빛나는 E플랫장조 아르페지오, '라모를 찬양하며'의 좀처럼 들뜨지 않는 분위기 조성(적절하게 루바토를 넣어준다), '움직임'의 주요 동기를 유독 딱딱하게 연주하는 특이한 해석, '잎새를 스치는 종소리'의 곡 전체를 한 덩어리로 묶어주는 부드러운 레가토, '황금 물고기'의 전반부 차분한 분위기와 점점 고조되는 후반부의 대비가 모두 마음에 들었다. '황페한 절에 걸린 달'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 곡에서 나를 만족시켰던 연주는 에리쿠르를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에 논외.

 <보헤미아의 춤>, <슬라브 발라드>, <스티리아 타란텔라>, <낭만적인 왈츠>, <마주르카>, <앨범 페이지>는 꿈 꾸는 듯, 비에 젖은 정원을 감상하는 듯 이 세상에서 조금 이격된 느낌을 주는 소품들. 연주는 짤막하게 잘라 말하겠다. 완벽하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쓸데없는 부연을 덧다는 것만큼 이 연주들에게 누가 되는 짓도 없다.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워낙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쳐서 경쟁 상대도 많은데, 데무스는 '전주곡'의 압도적인 첫 연타부터 다른 연주들의 반발을 잠재운다. 에트빈 피셔를 위시한 독일 피아니스트들의 강점인 '단단한 포르테'는 데무스도 예외가 아닌데, 신기한 점은 그런 '단단한 포르테'가 감성과 음향의 예술인 드뷔시와 적절하게 잘 어울린다는 점이다. 이 연주는 데무스가 얼마나 음색, 루바토, 페달링에 관심이 많고 다채로운 스킬을 개발해왔는지에 대한 좋은 실례다. '미뉴엣'은 살짝 느릿하면서도 선명하지만, '달빛'은 뛰어난 연주임에도 완벽하다고 하기에는 2% 아쉽다. 그래도 '파스피에'는 마지막을 멋지게 마무리짓는다.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네 손가락 안에 들어갈 연주다(에리쿠르, 카펠(!), 기제킹 다음 자리ㅋ).

 <장난감 상자>는 관현악 버전만 알고 있었는데 사실은 피아노 버전이 원곡이다. 데무스는 전주곡과 에필로그를 뺀 4곡을 발췌해 연주했는데 귀엽고 흥겨우면서도 신비로운 만년 드뷔시의 특유의 감성을 놓치지 않는다. 곡 중에서는 2곡 '바타유'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녹턴>과 <가면>은 곡의 완성도와 긴장감이 조금 떨어지는 곡들이라 연주가가 커버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데, 데무스는 곡의 단점을 가릴 정도로 훌륭한 음색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 연주 취향은 <녹턴>보다는 <가면>의 은근한 연주가 더 마음에 들었다.

 <기쁨의 섬>은 연주시간이 5분을 넘기 힘든 짧은 곡이지만 단독으로 설명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곡인데, 드뷔시의 피아노 음악 형식이 집약된 곡이기 때문이다. 데무스는 처음에는 덤덤하게 치는 것 같지만 다른 곡에서 그렇듯 점점 온도를 올려가며 비등점에 근접해간다. 하지만 조금 더 자신의 감정을 풀어놓았으면 어땠을까 싶다. 참고로 마지막 처리가 독특하니 일청을 권한다(들을 수 있다면ㅋ).

 

 <어린이의 세계>는 교본인 미켈란젤리(DG)와 어쩔 수 없는 비교를 당하게 되는데, 첫 곡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 박사'는 <기쁨의 섬>처럼 마지막 처리가 독특하다. '어린 양치기'는 판본이 궁금해지는 연주이며, 마지막 '골리워크의 케이크워크'는 말 그대로 '확 깬다.'

 <피아노를 위하여>의 '전주곡'은 친구 굴다를 생각나게 하는 연주. 굴다가 드뷔시에서 전주곡 말고도 자기 이름을 내게 깊게 각인시킨 레퍼토리가 <피아노를 위하여>였는데, 데무스는 그 굴다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는 연주였다. '사라방드'는 뛰어난 연주지만, '7분에 육박한 느린 연주임에도 존재감이 압도적인' 에리쿠르가 너무 대단하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토카타'는 여타 연주와는 드물게, 속도감이 아닌 색채감으로 승부를 보는 연주였다.

 지금까지 에리쿠르와 비교하면서 데무스를 비교 열위로 보는 경우가 많았는데, <판화>는 다르다. 첫 곡 '탑'의 기묘한 색배합은 에리쿠르와 동급, 어쩌면 그 이상이며, 이렇게 화려한 음의 팔레트를 보유한 피아니스트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다채롭게 곡을 채색한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소리를 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 '그라나다의 밤'은 첫 곡에서 끌어올린 긴장감과 정서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색다른 것으로 만들어 듣는 사람을 마지막 곡 '비 오는 정원'으로 이끈다.

 페달링 많이 쓰는 드뷔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데무스의 <꿈>은 몇 안 되는 예외다. <작은 흑인>은 신선하며, <하이든 예찬>은 톡톡 튀는 터치가 일품이다. <렌트보다 느리게>는 어떤 연주로 들어도 재미가 없어서 데무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웅의 자장가>는 '아 이 곡은 원래 음울한 곡이지'라는 생각 말고는 드는 게 없었다ㅋ. <스케치북에서>는 좋은 연주지만 이미 에리쿠르의 섬뜩한 연주를 들은 후라 다른 어떤 연주를 들어도 성에 차지 않는 것 같다.

 

 앞의 연주들이 음의 색채감에 치우치는 연주가 많다면, <전주곡> 1권부터는 분석적인 연주가 두드러진다. 데무스는 첫 곡 '델피의 무희들'부터 특유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를 잘 잡아나간다. '돛'은 클라이막스 이후 화음 처리가 독특하며, '들을 스치는 바람'은 반대로 클라이막스 화음이 두드러진다. '아나카프리의 언덕'은 미켈란젤리(DG) 이후 경향이 보이지 않아 마음에 드는데, 끝부분 템포가 기이할 정도로 느리다. '눈 위의 발자국'은 페달링이 두드러지며, '서풍이 불 때'의 속도감과 루바토는 곡의 성격과 잘 맞아떨어진다. 스타일은 기제킹과 리히터, 미켈란젤리의 세 극단의 중간점에 위치해 있다. 반대로 '아마빛 머리의 소녀'는 순수하게 음의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연주다. 1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가라앉은 성당'은 프레이즈의 분절을 아주 적절하게 이용하며, 페달링을 적절하게 이용한 거대한 울림이 인상적이다(다른 어떤 연주도 데무스같은 울림을 못 만들었다). '민스트렐'은 안정적인 마무리를 들려준다.

 

 <전주곡> 2권 연주도 1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안개'와 '고엽'은 다소 차분하고 특징없는 연주를 들려주나, 데무스의 개성은 '비노의 문'부터 발휘가 된다. 첫 동기 리듬 처리가 정말 독특하다. '요정은 뛰어난 무용수'의 두 번째 동기는 아주 느릿하게 나오는데, 이게 의외로 잘 어울린다. '히스가 무성한 황야' 특유의 낙천적인 아름다움이나 '달빛이 비치는 테라스'의 신비로운 사색은 잘 살려내지만, '괴짜 라빈 장군'이나 '옹딘' 특유의 날카로운 리듬은 좀 뭉특하게 들린다. 하지만 '피크위크 경에 대한 경의'는 데무스의 뚝심이 잘 어울리는 특이사례. '카노프'는 여타 연주와는 색다른 소리를 들려주며, 마지막 '불꽃놀이'는 중반 곳곳에서 등장하는 루바토가 인상적이다.

 

 두 곡의 아라베스크는 멋진 소품에 어울리는 멋진 연주다.

 

 <연습곡>은 1권과 2권을 나누어 배치했다. 여타 뛰어난 연주들이 그렇듯, 데무스도 '소리'와 '해석' 그리고 '기교'를 잡기 위해 노력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다섯 손가락을 위하여'는 에리쿠르의 '소리'와는 달리 '리듬'이 두드러진다. '3도'는 만족스러운 연주이며, '4도'는 템포가 아주 변화무쌍하다(주요 동기를 처음에 느리게, 나중에 빠르게 제시한다). '옥타브'는 연습곡 연주를 통틀어 다이내믹이 가장 큰 연주를 들려주며, '여덟 손가락'은 매끄럽게 쏙 빠져나가는 느낌을 잘 살린다.

 

 <연습곡> 2권의 연주들은 1권보다 더 뛰어나다(개인적으로 <전주곡>과 <연습곡>을 통틀어 <연습곡> 2권이 가장 마음에 든다). 첫 타석을 장식하는 '반음계'의 연주는 최상급이다. 데무스는 '낡아빠진 반음계적 진행의 연출을 통해 새 시대를 예고하는 신선하고 자극적인 연습곡(슈미츠)'이라 일컬어지는 이 곡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꾸밈음'의 연주도 뛰어나며, '반복음' 특유의, 마치 자크 타티의 <플레이타임> 같은 묘하게 차갑고 퉁명스러운 느낌도 잘 살려낸다. '대비음'의 급진적인 정중동에 대한 데무스의 해석은 정말 특이하다. '아르페지오'의 극에 달한 아름다움을 거쳐 리듬의 활기가 가득한 '화음'으로 끝마치는 여정을 듣고 있으면, 데무스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 절대 적지 않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Requiescat In Pace, Maestro Demus (1928.12.2~2019.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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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3.1 (금)


 프레빈/LSO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8번 (EMI)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8번은 승리의 개가인 7번과 쇼스타코비치식 풍자의 걸작인 9번 사이에서 불안한 입지를 가진 작품이다.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염세와 불길함의 냄새를 풍긴다. 금관의 폭격은 희망을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며, 현악기는 60분 내내 비명을 지르거나 침묵해버린다. 5악장 마지막에 목관이 가녀린 희망을 이어나가려 하지만, 그 최후의 노력은 아무 의미없는 죽음이 되어, 아무도 모르게 잊힌다.

 학살 장면이나 전장의 참상을 스냅샷(공교롭게도 이 단어에는 '총을 난사하는 행위'라는 뜻이 담겨 있다)으로 찍어 고발하는 듯한 무궁동의 3악장을 제외하면, 나는 이 교향곡을 언급하는 것을 거의 본 일이 없다. 적어도 형식상으로는 엉성한 7번보다 더 잘 만들어졌음에도 말이다.

 프레빈의 8번은 내가 므라빈스키 다음으로 좋아하는 연주다. 그는 쇼스타코비치의 부인할 수 없는 권위자가 된 므라빈스키와는 다르게, 이 우울하고 염세적인 작품을 '듣기 쉽게' 만드는 것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듣게 쉽게' 만들었다고 해서 프레빈이 이 곡을 아무 의미 없는, 아무 생각 없는 키치로 타락시켰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잡아 쇼스타코비치를 공략해나간다. 다이내믹의 극한을 자랑하는 1악장 중반부에서는 그야말로 폭탄을 터뜨린다. 3악장의 리듬감은 므라빈스키와는 다른 의미로 훌륭하다. 무엇보다, 그의 손에서 잡힌 런던 심포니의 음향은 같은 오케스트라의 연주들 중 최상급이다.

 프레빈의 쇼스타코비치는 시카고 심포니와 함께 한 4번(EMI)도 훌륭한데, 다른 박스에 묶여 나온 8번과는 달리 이놈은 구하기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워너에서 프레빈의 쇼스타코비치를 전부 묶어 박스로 냈으면 한다. 뭐, 지금 세태를 봤을 때 언젠가는 전집에 전부 들어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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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2.3 (일)



 체자레 시에피 / 56년 잘츠부르크 가곡 리사이틀 (56.7.27) (Orfeo)


 시에피라는 위대한 가수의 위대한 역량을 아낌없이 체감 가능한 명연. 프랑스어/독일어/이태리어라는 3개 국어 프로그램을, 그것도 륄리에서 라벨까지 300년에 걸친 방대한 레퍼토리로 짜면서도 완벽한 리사이틀이 가능한 존재를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선악이 깃든 기품있는 목소리에 매끄러움에서 박력 사이를 마음대로 오고가는 호흡조절과 가창, 감정표현, 거기다 레퍼토리에 걸맞게 콘서트홀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완급조절까지 완벽하다.

 스타트를 끊는 륄리의 <아마디스>와 <알세스트>의 아리아부터 시작해 슈만과 브람스의 가곡,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보이토(<메피스토펠레>), 베르디(<시칠리아 섬의 저녁기도>와 <시몬 보카네그라>), 로시니(<세빌리아의 이발사>와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의 아리아를 거쳐 마지막 안토니오 카를로스 고메스의 곡까지 방대한 곡들을 떡 주무르듯 주무르지만, 이 리사이틀의 압권은 단연 라벨의 <둘시네의 돈키호테>. 이태리 사람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 완벽한 프랑스어 발음을 자랑하며 혀가 꼬일 것 같은 이 난곡을 너무 쉽게 풀어낸다. 시에피의 프랑스어 발음은 특히 r와 un에서 초강세를 보이는데, 특히 두 발음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2곡 <회고적인 노래> 중 'D’un rayon du ciel bénissez ma lame' 단락은 그야말로 절창. 3곡 <권주가>의 알딸딸한 사이키델릭 분위기도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왜 시에피가 위대한 가수인지, 그리고 위대한 가수가 어떻게 무대를 가리지 않고 빛을 발하는지를 잘 알고 싶다면 반드시 들어야 할 음반.



 2019.2.14 (목)


 미트로풀로스 슈만 2번/프로코피예프 5번 (54.8.21) (Orfeo)


 혼란한 합주력, 삐긋삐긋하는 음정, 가끔 이상해지는 다이내믹. 이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연주가 프로코피예프 5번 역사상 가장 무서운 연주인 이유는 단 하나, 지휘자의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프로코피예프의 곡은 곡에 내재한 '신랄함'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생명이 달렸는데, 이 연주는 그 측면에서 완벽하다. 실내악 규모로 줄어들었다가 갑자기 사정없이 폭발하는 다이내믹 또한 이 연주를 더 예측불허로 만들어준다. 그 모든 것은 불세출의 지휘자 미트로풀로스의 공이다.

 커플링된 슈만 2번은 프로코피예프의 곡과 닮은 점이 많은데, 피아노의 어법으로 관현악 작곡을 생각한 탓에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점, 그리고 관현악 특유의 다이내믹을 잘 살리는 대신 그냥 쿵쾅거리는 것으로 때우려는 부분이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람들이 슈만과 프로코피예프의 보석같은 아이디어를 거들떠보지 않는 것은 아쉽다. 후대 작곡가들에게 전범이 될 정도로 기묘한 슈만의 싱커페이션과 화성진행, 그리고 프로코피예프의 간결한 그로테스크함은 이 교향곡들에서도 잘 살아 있다.



 2019.2.16 (토)


 박하우스/뵘 브람스 2번/모차르트 27번 피아노 협주곡 (Decca)


 피아노와 반주 둘 다 하품 나오는 할아버지의 연주. 박하우스가 '건반의 사자왕'이었던 시절은 모노 시절이지, 다 죽어가는 7~80대가 아니다. 나는 모노 시대 박하우스의 기개를 엿볼 수 있는 연주로 37년 슈만의 환상곡(EMI)을 추천하겠다. 뵘의 반주도 같이 하품 나오기는 마찬가지. 비슷한 시기 바그너와 슈트라우스 반주를 생각하면 힘을 숨겨도 너무 많이 숨긴다(65년 로엔그린(Orfeo)과 엘렉트라(Orfeo) 실황을 비교해 볼 것). 브피협 2번의 내 선택은 어쩔 수 없이 길렐스/라이너/CSO(RCA) 쪽으로 기운다. 스튜디오 레코딩 중에서 고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니까.


 텔덱 리게티 프로젝트 CD 3 (Teldec)


 텔덱에서 내놓은 다섯 장의 리게티 프로젝트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3번 CD다. 3번의 수록곡은 첼로 협주곡-<시계와 구름>-바이올린 협주곡-<피리, 북, 깽깽이Síppal, dobbal, nádihegedűvel>로 되어 있는데, 이 배치는 리게티의 음악 노정인 아방가르드 시기(첼로 협주곡)-모색기(<시계와 구름>)-아방가르드 탈피(신조성 음악?)기(바이올린 협주곡과 <피리, 북, 깽깽이>)를 압축해서 보여줄 뿐만 아니라, 기악(현악 협주곡)-성악(아카펠라 합창곡)-기악(현악 협주곡)-성악(독창+앙상블)곡의 배치로 묘한 균형감까지 준다. 난 이렇게 음악의 발전과정을 논리적으로 보여주는 배치를 좋아한다. 순수하게 기량만을 평가하자면, <시계와 구름>을 노래한 카펠라 암스테르담의 솜씨가 가장 좋았다고 평하겠다. 코러스 마스터인 Daniel Reuss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마커스 클린코 프랑스 하프 음악집 (EMI)


 사람이 너무 오래 긴장하면 고장이 난다. 바깥을 오래 돌아다니면, 그것만으로도 긴장하고 피곤하게 된다. 여기저기 돌아다녀서 피곤한 김에 긴장도 풀 겸 별 생각없이 틀었다. 긴장을 풀기에는 하프 독주가 딱이니까. 마커스 클린코는 릴리 라스킨에게 수학했다는 이력이 돋보이지만, '그 이상'이 없는 '재능만 있는 일개 한량'이다. 그리고 이런 한량의 연주가 그렇듯, 전혀 대단한 구석이 없다. 자신이 음악에 미치지 않으면 절대 남을 미치게 만들 수 없다.



 2019.2.17 (일)


 뮌쉬/BSO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 드뷔시 <바다>, 이베르 <기항지> (RCA)


 십수 번을 들었던 음반인데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다. 생상스는 오르간과 오케스트라 황금비율을 맞추기 위해 관객석 1/3을 들어내고 거기에 오케스트라를 앉혀 녹음했다는 전설적인 일화가 남은 연주다. 이런 노력이 이후의 레퍼런스인 바렌보임(DG), 카라얀(DG) 음향 실험의 선구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연주는 듣기 괜찮은데 소리가 약간 거칠고, 동시기 스테레오 레코딩이 그렇듯 최강주에서 음향이 과포화된다. <바다>는 경이로운 뮌쉬 본인의 67년 실황(Altus)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다. 안정되지 못한 금관 테크닉도 그렇고, 3악장 막판의 트럼펫 패시지(초판 이후 일관되게 삭제되었지만 연주가들이 기어이 복구시킨 부분)는 매가리가 없다. 가장 뛰어난 연주는 역시 이베르의 <기항지>. 부점 리듬이 난무하는 이 곡을 뮌쉬는 능수능란하게 연주한다. 플루트 연주자가 죽어나는 소리가 들릴 정도.


 폴리니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1, 12, 21번 (DG)


 97년 빈 무지크페라인 홀 실황연주. 클래식 음악 처음 팔 때는 참 좋은 연주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들으면 당최 뭐가 좋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는 연주. 폴리니는 페달링 테크닉의 절반이라도 음향 계발에 힘을 썼으면 더 평가가 높아지지 않았을까 싶다.


 길렐스/아마데우스 sq. 브람스 피아노 4중주 1번 外 (DG)


 제대로 된 피아노의 음색을 듣기 위해 길렐스를 틀었다. 브람스 피아노 4중주 1번의 레퍼런스. 피아노와 현악기 모두 선 굵은 연주로 일관한다. 커플링된 4곡의 발라드 Op.10도 훌륭한 연주. 살인(그것도 존속살인)한 사람의 심리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1번과, 침잠한 감정들이 어물거리면서 아련함과 불길한 색채를 번갈아 암시하는 4번이 인상적이다.



 2019.2.18 (월)


 훔부르크 로시니 <이발사> CD 2 (Naxos)


 연주의 내용보다 낙소스가 내지에 저지른 만행을 좀 쓰고 넘어가야겠다. 리브레토가 CD 2 10번 트랙까지밖에 인쇄가 되어 있지 않아서(1막 로지나/피가로 듀엣 "Dunque io son"과 바르톨로 아리아 "A un dottor della mia sorte" 사이 레치타티보) 그 후의 내용이 없다. 이러면 호평을 하고 싶어도 못한다. <이발사>는 음반마다 빠지거나 들어간 내용도 많고 애드립도 많은 오페라라서 리브레토가 필수인데 이딴 짓을 해놓았으니 이 따위로 음반을 만드는 낙소스는 욕을 먹어도 싸다.


 스턴/로즈 오먼디/필리 브바협/이중협 (Sony)


 난 스턴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유의 톤은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40도 되기 전에 테크닉 측면에서 맛이 가 버린 사람을 고평가하기는 힘들다. 오먼디/필라델피아와 녹음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39세 때인 1959년에 녹음했는데, 테크닉은 맛이 갔는데 특유의 톤만 악착같이 살리려고 하다 보니 김 빠진 콜라를 졸여서 콜라청을 만든 다음에 억지로 멕이는 느낌이다. 1악장 22분이 66분같다. 이중 협주곡은 첼로를 켜는 레너드 로즈 때문에 참고 들었다. 로즈는 훌륭하지만 스턴은 그저 그랬다. 그래도 바이올린 협주곡만큼은 아니어서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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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1 (화)


 카를 리히터 오르간곡집 (DG) CD 3


 2~3년 전부터 내게는 새로운 습관이 하나 만들어졌다. 새해 첫 날 하루를 바흐의 전주곡과 푸가 F장조 BWV 540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한 해의 시작은 비처럼, 바람처럼, 별처럼, 햇살처럼 충만한 곡과 함께 하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올 한 해도 충만한 하루, 충만한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이 곡을 듣는 기억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다. 이 블로그를 찾아오시는 분들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9.1.4 (금)


 훔부르크 로시니 <세빌리아의 이발사> CD 1 (Naxos)


 오디오를 버전업하고 이 음반을 처음으로 틀었다. 역시 오디오를 버전업하면 들었던 음반이라도 다시 한 번 돌려봐야 한다. 허접한 오케스트라는 여전하지만, 성악가들이 빚어내는 앙상블이 만만치 않은 연주.



 2019.1.14 (월)


 뵘 베토벤 교향곡 5번/6번 <전원> (1975년 8월 15일 잘츠부르크 실황)


 고집이 세고 깐깐한 노인의 연주. 15분이나 되는 <전원> 2악장은 느려도 너무 느려 참기 힘들다. 과연 내가 나이를 먹는다고 이런 연주를 찾게 될지는 의문.



 2019.1.17 (목)


 요제프 크립스 슈베르트 교향곡 9번 <그레이트>/LSO (Decca)


 스테레오 초기의 야심찬 녹음. 쭉 뻗는 템포, 쨍쨍한 현악기, 칼칼한 금관악기 모두 마음에 드는데 목관악기가 아쉽다. 특히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나는 플루트는 정말…….


 메타/빈 필 말러 교향곡 2번 <부활> (Decca)


 메타는 내가 아는 메이저 지휘자 중 음을 가장 거칠게 다루는 편에 속한다. 최고의 음향을 지향하는 빈 필과 함께 할 때도 그런 그의 천성은 예외가 아니다. 다행인 것은 만년 연주들처럼 음이 날리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는 것. 빈 필과 데카를 총동원한 물량 공세만큼은 기가 막힌다.


 헝가리의 리히테르 CD 1 (BMC)


 페렌치크와 협연한 경이로운 슈만 피아노 협주곡. 이 곡을 생각할 때는 항상 리히테르의 템포로 머릿속에서 자동재생되는 것이 이제는 버릇이 되었다. 브람스의 Op.118 두 곡은 No.1보다는 No.6쪽이 더 취향이다. 리히테르는 6번 특유의 염세적 낙원을 정말 잘 살린다. <평균율> 발췌 연주 중에서는 2번과 20번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리히테르의 <평균율>은 장조 곡보다는 단조 곡을 더 잘한다. <프랑스 모음곡>은 인상이 흐릿한 연주.



 2019.1.24 (목)


 코간 브람스/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Melodiya)


 전설적인 몽퇴/보스턴 심포니와의 브람스 협주곡 실황. 악장마다 박수가 터지는 연주회는 이것이 처음이다. 코간의 바이올린은 돌로 찍는 것 같은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다. 왜 이 연주자의 미국 데뷔가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D에서 2옥타브 위의 E#(F) 중음을 단번에 찍어버리는 첫 프레이즈부터 코간은 안전장치 없는 야수를 보는 느낌이다. 요하임이 '나처럼 손가락이 큰 사람 아니면 제대로 연주 못한다'라고 경고한 곡, 평범한 연주가들에게는 손가락이 찢어질 것 같은 이 난곡 중의 난곡을 그는 아무 거리낌없이 마구 해치운다. 하지만 반주는 좀 김이 빠진다. 요즘 들어 몽퇴는 듣는 것마다 실망하고 기대치가 낮아지는 지휘자 중 한 명이다. 담백한 연주에 치중해 오케스트라의 소리에 무신경한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오케스트라는 빈 아니면 베를린인데, 문제는 그가 잡은 대부분의 오케스트라들이 음향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영미권 오케스트라는 것. 어떤 오디오로 돌려듣던 끽끽거리는 현악과 빽빽거리는 금관은 짜증이 난다. 특히 현악기가 강주로 유니즌을 연주하는 대목에서는 귀를 틀어막고 싶어진다.

 실베스트리/콩세르바투아와의 차이콥스키 협주곡 녹음은 의외로 실베스트리의 반주력이 마음에 들었다. 왜 EMI가 이 지휘자를 반주 지휘자로 삼았는지 이해가 간다.



 2019.1.25 (금)


 베르글룬드/본머스 심포니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EMI)


 속도전의 진수를 들려주는 예르비(Chandos)와 함께 가장 좋아하는 <레닌그라드> 연주.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지만 정말 '외인부대 특유의 처절함'을 제대로 자아내는 연주다. 적지에 고립되어 양질의 화력지원을 기대할 수 없고, 물량전도 힘들며, 소모전은 더더욱 힘든 외인부대가 연이어 기적을 연출한다. 73분의 분투 끝에 터지는 마지막 한 방의 카타르시스가 엄청나다. 다만 역량이 부족해 지루하게 들리는 3악장이 조금 아쉽다.

 * 난 이 곡과 '배부른 소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처절함 없는 <레닌그라드>는 내게 큰 의미를 주지 않는다.


 디터 체흘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14/23 (Berlin Classics)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뵈젠도르퍼스러운 연주. 중음역대의 특이한 소리를 잘 살린다는 장점을 갖추었지만, '터치와 페달링이 특출나지 않으면 음향이 지저분해지는' 뵈젠도르퍼의 단점도 갖추었다. 해석은 상당히 고집스러워서 약간 답답하다. 가끔 듣기에는 나쁘지 않지만 자주 들으라고 하면 못 들을 연주.



 2019.1.28 (월)


 슈리히트/콩세르바투아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Testament)


 슈리히트/콩세르바투아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스테레오판(EMI 전집에 들어 있는 연주는 모노 버전). 베토벤 9번을 통틀어 가장 매혹적인 사파. 초장부터 강렬하게 알싸한 현악기 소리로 조진다. 프랑스 오케스트라의 상대적으로 가볍게 들리는 현악기, 비브라토 특이한(이 당시 프랑스 호른은 피스톤 호른이었다) 관악기 소리와 독일 지휘자의 기묘한 조합이 이런 미친 시너지를 내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뭐 지금이야 이런 소리는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소리가 되었지만(앙드레 말로, 바렌보임 개ㅅ… 아닙니다).



(참고 사진으로 피스톤 호른을 올려본다. 셀마Selmer 사 제작품. 저 피스톤이 보이는가?)



 아드 리비툼 sq. 라벨, 포레 현악 4중주 (Naxos)


 '비단 위에 채색한 그림'. 곡도 연주도 이 비유에 잘 들어맞는 연주들. 운필은 자유롭고 농담은 선명하며 악상은 자유로이 뛰어다닌다. 색채는 부드럽게 스며들고 피치카토는 살포시 현을 튕긴다. 흔히 드뷔시와 커플링하는 라벨 현악 4중주를 그의 스승이자 음악적 연관성이 깊은 포레와 커플링한 것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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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일기 / 2018년 12월

음반 2018. 12. 30. 16:17


 2018.12.11 (화)


 베토벤 현악 4중주 12번 린지(Universial) vs 아르테미스(Erato)


 린지 : 결정 장애 없음. 부다페스트(Sony)의 고철 긁는 소리보다는 낫지만 다소 거칠다. 비브라토 적음. 1악장 7:30, 2악장 18:54로 느긋한 시간대를 잡았다. 다만 이것은 시간대에 한정되는 얘기일 뿐이다. 용암이 느긋하게 흐른다고 해서 용암이 차분하다고 얘기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가장 마음에 드는 연주를 해내는 부분은 4악장이다. 역시 린지는 돌진할 때 가장 아름답다.

 아르테미스 : 21세기 운지법(거트현 느낌). 비브라토가 적은 것은 린지와 비슷하나 운지법의 차이로 인해 린지보다 훨씬 부드럽고 유쾌하게 느껴진다. 린지가 박력 있게 느껴질 정도. 1악장 6:42, 2악장 14:55로 다소 빠르다. 참고로 1악장의 첫 유니즌을 아르페지오처럼 다룬다.



 2018.12.18 (화)


 베르티니 <대지의 노래> (EMI)


 <대지의 노래>의 연주기준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겉으로 배어나오는 공허한 환락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 그리고 속에 깊이 배인 죽음의 정서를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말이 쉽다는 얘기지 이것을 성공시키는 연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기이하게도 그 기준을 가장 잘 충족하는 연주는 두 성악가가 거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크립스 64년 실황(DG)이다. 베르티니는 아슬아슬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다시 말하자면, 이보다 못하면 연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얘기다. 가수는 두 명 모두 그저 그렇고 지휘자가 모든 난관을 도맡아 통과한다. 크립스와 정반대였기에 손익분기점을 통과한 연주.



 2018.12.20 (목)


 라이너의 버르토크 (RCA)

 톡케협 - 걸작, 절창, 명연. 어떤 찬사를 다 붙여도 모자라다.

 현타첼 - 톡케협에 비해 2% 모자라다. 리듬을 좀 더 유연하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텐데.

 헝가리 스케치 - 흥겨움. 곡도 연주도.


 로제스트벤스키 숏9 외 (Brilliant)

 교향곡 9번 - 숨겨진 걸작. 신랄한 유쾌함을 극한으로 표출하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재주가 놀랍다.

 미켈란젤로 가곡집 - 처음 듣는 곡. 네스테렌코 목소리만큼 어두운 곡. 그러나 그 와중에 피어오르는 밤의 이미지들이 기묘한 인상을 남긴다. …… 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곡에 작은 반전이 있다. 꼭 끝까지 들어보시길!


 기제킹 드뷔시 CD 4 (EMI)

 퍄! 이 한 글자면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드뷔시 연주는 해석이 아닌 음향으로 풀어내야 한다. 요즘 나오는 드뷔시 연주들이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도 음향이 아닌 해석에 지나치게 몰두하기 때문은 아닐까.



 2018.12.21 (금)


 뒤트와 라벨 관현악곡집 CD 1 (Decca)


 그럭저럭 괜찮은 라벨 연주.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음향을 너무 많이 만졌다. 뒤트와를 둘러싼 데카의 이런 장난질은 <1812년 서곡> (Decca)에서의 신시사이저 음향 삽입으로 정점을 찍는다.



 2018.12.30 (일)


 바일 하이든 교향곡집 CD 5 (Sony) (교향곡 85-87)


 나는 하이든을 좋아한다. 한 해의 끝을 하이든으로 끝내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담백한 주제의 풍성한 변형, 언제나 핵심만을 남기는 간결한 서법, 그리고 놀라운 자기완결성은 그를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놀라움이자 원동력이다. <파리> 교향곡의 완성도는 <런던> 교향곡 못지않게 뛰어나면서도 조금 더 순수하고 풋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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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일기 / 2018년 11월

음반 2018. 12. 30. 16:02


 2018.11.2 (금)


 <전람회의 그림> 호로비츠 51년 라이브 (RCA)


 피아노 버전 <전람회>의 워너비. 호로비츠의 편곡은 신의 한 수였다. 난 피아노 버전은 이 연주로, 관현악 버전은 테미르카노프 실황(예당)으로 듣는다. 다만 <비들로>에서 자의적인 스타카토와 마르카토는 흉하게 들린다. 아마 이 연주의 몇 안 되는 흠일 것이다.

 (전부터 생각하던 것이지만, 전람회는 천재적인 아이디어에 비해 피아노의 이디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작곡가의 역량이 참 아쉬운 곡이다.)



 2018.11.5 (월)


 트레차코프 숏바협 1 (예당)


 애절하다 못해 통곡하는 비브라토가 인상적인 연주. 오이스트라흐가 숏바협의 표준을 제시했다면, 트레차코프는 가장 감정적인 숏바협을 들려준다.


 에트빈 피셔 평균율 2권 CD 1 (Naxos)


 미스터치, 신비한 음색, 소박한 해석. '최초' 이상의 가치가 있는 연주.



 2018.11.11 (일)


 로린 마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3번 (Decca)


 '열렬한 해석' 못지않게 '황홀한 소리'도 잘 끌어내는 연주. 1악장 첫머리 목관을 현악으로 살짝 덮어 두터운 질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감각은 젊은 마젤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경지다.

 (내가 시벨리우스 연주에서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차가운 극한의 땅을 찬란한 오로라로 물들이는 것. 나는 '냉정하고 차가운 연주'랍시고 무감동하고 무가치하게 시벨리우스를 다루는 연주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연주들을 좋아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벨리우스에 대한 모독이다.)



 2018.11.25 (일)


 카라얀 브루크너 9번 76년 실황 (DG)


 지북…… 아니, 지복의 브루크너 9번. 3악장 클리아맥스에서 기어이 터져버리는 삑사리는 몇 번을 들어도 너무 통탄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수정할 수 없는 결론인 것을.



 2018.11.27 (화)


 요훔 <카르미나 부라나> (DG)


 <카르미나 부라나>의 규범. 야노비츠의 고음(High D)도 디스카우의 발성도 놀랍지만, 피를 끓게 만드는 광포함이 없다. 역시 내 선택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케겔(Berlin Classics)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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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일기 / 2018년 10월

음반 2018. 10. 21. 00:38


 2018.10.4 (목)


 히긴보톰 헨델 <메시아> (Naxos)


 고악기 연주를 통틀어 가장 이색적인 존재. 트레블과 아이들의 파격적인 기용으로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던 <메시아> 판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저그 같은 놈. 다만 성악가들이 좀 약하고, <할렐루야> 합창에서 발음이 심하게 뭉개지는 게 단점이다.



 2018.10.5 (금)


 카라얀 베토벤 교향곡 5번/6번 <전원> 70년대 (DG)


 5번보다 <전원>이 낫다. 난 예전부터 카라얀의 <전원>이 훌륭한 연주라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고 있다.



 2018.10.6 (토)


 카라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70년대) (DG)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스튜디오 음반만 놓고 본다면, 50년대가 가장 뛰어나다고 본다. 70년대는 50년대에 비해 경직되어 있다. 50>70>60>80 순으로 좋은 듯.


 므라빈스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6번 (DG) (다시 들음)

 

 어쩌다 보니 다시 들었다. 저번보다 부정적인 생각이 더 강해졌다. 차콥 교향곡에는 너무 많은 명연이 있어서 이것을 최고로 꼽기는 미안하다. 다만 스튜디오 음반 중에서 Top 10 안에 속하기는 할듯. 참고로 이게 내 첫 차콥 교향곡 음반이다. 생각해보니, 4번 1악장은 클라이맥스가 악장 끝이 아닌 중반부 끝부분에 있어서 이 클라이맥스의 긴장감을 코다까지 가져가는 게 중요한데, 므라빈스키는 거기서 너무 무심하고 무정한게 아닌가 싶다. 4번 3악장도 너무 소극적이다.



 2018.10.7 (일)


 발터 베토벤 교향곡 4번/6번 <전원> (Sony)


 4번은 너무 구려서 언급할 가치가 없으니 <전원>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발터의 <전원>이 아직도 생명력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발터만의 독특한 해석도 있겠지만, 역시 후진 오케스트라와 과거의 신경질적인 성향을 버린 지휘자의 만남이기에 이런 놀라운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5악장 현 트레몰로의 디미누엔도 후 크레셴도는 지금 들어도 놀랍다.



 2018.10.13 (토)


 번스타인 말러 교향곡 9번 베를린 필 (DG)


 거칠고 난삽한 말러 9번. 그래도 85년 콘체르트허바우 실황(DG)보다는 이게 낫다. 악장 별로 따져보면 3악장이 제일 낫고 4악장이 제일 못한데, 4악장 클라이맥스 직전에서 연주 안 하는 트롬본은 아직도 미스테리(반유대주의 음모론이 또……). 아무리 생각해도, 4악장은 프레이즈 하나하나를 억지로 잡아 늘린 느낌이 심하다. 비브라토를 줄여 건조한 음향 때문일까. 그러면 뚝뚝 끊어지는 느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2018.10.14 (일)


 베르너 하스 드뷔시 피아노곡집 1집 (Philips)


 기제킹의 제자이자, 기제킹의 하위호환이자, 기제킹의 열화판인 베르너 하스의 드뷔시 연주. 색감이 풍성하지 않아 지루하고 단조롭다. 똑같은 색의 물감만을 쓴다고 해도 수묵화처럼 농담을 다채롭게 구사하여 음색의 지루함을 탈피하는 연주가 없는 것은 아닌데(대표적인 예가 헨케만스의 드뷔시) 이건 그것도 아니다. 비추.



 2018.10.15 (월)


 박하우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32번 (Decca)


 이 음반도 '첫 음반의 함정'에 제대로 걸려든 사례. 난 아직도 32번 2악장만큼은 박하우스의 연주에서 헤어나오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거 하나 듣자고 다른 악장들을 듣기에는 좀 지루하다.



 2018.10.17 (수)


 굴다/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9번/브람스 교향곡 1번 (Orfeo)


 멋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연주와 뵘 최고의 브람스 교향곡 1번. 59년 베를린 필(DG) 연주보다 더 날렵하고 강렬하며 장쾌하다. 다만 이 연주가 최고의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는 아니다.


 

 2018.10.19 (금)


 카라얀 <짜라투스투라> 70년대 (DG)


 <짜라투스투라>의 표준. 정수리에 대못을 박는 충격과 공포의 서주, 슈트라우스의 원래 의도였던 서주 16분음표의 복원, 완벽한 연출 구도, 푸가토에서 끝까지 볼끝이 살아 있는 박력 넘치는 음향, 슈발베의 최상급 독주 바이올린 등등…… 흠 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스튜디오 레코딩 중 하나다.



 2018.10.21 (일)


 아르농쿠르 심포니 컬렉션 CD 1 (Teldec)


 (하이든 교향곡 94, 104번, 베토벤 교향곡 1번)

 아르농쿠르의 미덕 중 하나는, 비브라토를 쓰지 않으면서도 나오는 신선하고 상쾌한 소리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모차르트보다 하이든을 더 좋아하는데, 94번 <놀람>은 민첩하며, 104번 <런던>은 상대적으로 느릿하고 장엄하다. 특히 1악장은 꽤 느린데, 아르농쿠르가 중시하는 것은 빠르기만 한 템포가 아니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음향이다.

 ※ <놀람> 2악장의 플루트를 듣가가 든 생각. 20세기 플루트 연주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뉘는 것 같다. 첫째는 오렐 니콜레를 비롯한 50년대 스타일, 두 번째는 골웨이로 대표되는 60~70년대 스타일, 그리고 파위로 대표되는 현대다. 50년대 스타일은 휘이이-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강하게 들린다. 60~70년대 스타일은 요사스러운 비브라토가 두드러진다. 난 예전 플루트보다는 현대 플루트 소리가 더 청아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플루트만큼은 파위로 대표되는 현대가 더 마음에 든다.


 

 2018.10.24 (수)


 리히테르 라흐마니노프 전주곡/회화적 연습곡 (Alto)


 56세 때인 1971년 전주곡은 내가 라흐마니노프 전주곡을 생각할 때 바이센베르크(RCA)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연주들이다. 69세 때인 1984년에 녹음한 회화적 연습곡은 터치의 단단함과 명도가 덜하기는 해도 좋은 연주다.



 2018.10.25 (목)


 뵘 브루크너 8번 69년 실황 (Testament)


 약간 성급하다 싶을 정도로 빠른 템포, 몽케 트럼펫의 되바라진 소리 극대화, 어두운 저현과 밝은 호른의 극단적 대비, 강렬함을 넘어 폭력적인 강주. 하지만 너무 빠른 2악장이 아쉽다. 2악장이 딱 30초만 길었어도 별 다섯 개를 주었을 것이다.



 2018.10.27 (토)


 클렘페러 <독일 레퀴엠> (EMI)


 옛 스타일의 조합을 체현한 오케스트라 소리, 언제나 탁월한 디스카우의 발성, 두텁고 중후한 소리를 만드는 현악기 양날개 배치, 일부러 의도한 어두운 음향의 결합. 물론 클럼페러의 <독일 레퀴엠> 연주는 이것보다 56년 실황(ICA)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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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일기 / 2018년 9월

음반 2018. 10. 21. 00:22


 2018.9.1 (토)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29 (Brilliant)


 (리스트 피아노 협주곡)

 브렌델과 길렌은 의외로 죽이 잘 맞는다. 연주 자체는 무난하다(이 곡에서는 리히터/콘드라신 실황 같은 장쾌한 폭력이 필요하다). 오케스트라의 소리는 좀 멍멍하고 뻑뻑하다. 75년보다 58년의 연주가 더 좋다. 녹음 상태도 꿀리지 않는다. 17년 동안 정체를 거듭한 Vox의 녹음 기술이 들리는 듯하다. 마이너 레이블의 한계일지도.



 2018.9.2 (일)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30 (Brilliant)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첫 곡 피아노 소나타부터 아주 시원하다. Top 10 안에 들어갈 연주. 하나같이 힘차고 당당하다. 난해한 소품 <무조성 바가텔>을 레퍼토리에 끼워 넣을 정도로 선곡도 대담하다. 녹음 상태는 <우울한 곤돌라>와 <메피스토 왈츠 1번>이 조금 흐릿한데, 이유는 알 수 없다.



 2018.9.3 (월)


 바이센베르크 바흐 <골드베르크> 67년 녹음 (EMI)


 우주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오는 곡, <골드베르크 변주곡>. 바이센베르크의 연주는 좀 거친 표현을 동원하자면 '강철애무'가 가장 잘 어울린다. 10변주의 트릴, 21변주의 도약, 28변주의 트릴 모두 듣는 사람의 혼을 자극한다.



 2018.9.5 (수)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31 (Brilliant)

 

 (리스트)

 오페라 패러프레이즈와 편곡은 하나하나가 보석같은 연주들. <노르마 판타지>의 웅장함은 그 어느 연주와도 비길 수 없다. 파가니니 연습곡 또한 매우 뛰어난 연주들이다(특히 <라 캄파넬라>의 트릴).



 2018.9.9 (일)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32 (Brilliant)


 (리스트)

 브렌델 리스트 연주를 통틀어 최고봉인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 특히 <고독 속의 신의 축복>이 뿜어내는 숭고함은 아라우(Philips), 볼레(Decca)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2018.9.15 (토)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33~35 (Brilliant)


 (리스트, 무소르그스키,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프로코피예프 등등)

 드디어 완청!

 CD 33 : 유쾌하고 시원한 헝가리 랩소디들. 그리고 차르다슈. 그러나 다른 연주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약하다.

 CD 34 : <전람회의 그림>은 복스에서 시켜서 억지로 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럭저럭 괜찮다. <페트루슈카>는 바이센 영상물을 S, EMI 녹음을 A+급으로 봤을 때 B급 정도는 된다.

 CD 35 : 쇤베르크와 프로코피예프의 두 협주곡 연주는 모두 구리다. 비추.



 2018.9.16 (일)


 오이겐 요훔 브루크너 교향곡 5번 마지막 실황 (TAHRA)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도달한 숭고의 극치. 브루크너를 '바로크'라 할 정도로 예스러운 해석에 천착하던 요훔이지만, 마지막 연주에서 이해를 초탈한 경지에 도달한다. 그것이 그른 것은 버리고 옳은 것은 심화시킨 덕분인지, 아니면 '예기치 못한 무지의 미덕'인지는 오직 신만이 아시리라.

 (참고로, 요훔에게 브루크너를 가르쳐 준 이가 바로 지크문트 폰 하우제거다. 그는 제자에게 예스러운 분석을 주입시켜 주었으리라.)



 2018.9.17 (월)


 칼 뵘 베토벤 <장엄미사> 55년, 레거 모차르트 변주곡 (DG)


 구축력이 대단한 <장엄미사>. 뵘의 다른 모노 연주와는 달리 음향이 풍성해서 좋다. 보리스의 <베네딕투스>도 좋은 들을거리. 다만, 라데프의 메조는 할머니 목소리라 듣기 거슬린다. 레거는 전에 들을 때는 몰랐는데 오늘 들으니 참 좋은 곡이다. 다만, 연주는 <장엄미사>와 달리 얄쌍하다.



 2018.9.20 (목)


 로스트로포비치/카라얀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DG)


 로스트로포비치에 대한 인상이 전보다는 조금 나아졌다. 전에는 듣기 힘들었던 이 연주도 이제는 그럭저럭 들리니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리히테르와 함께 한 베첼소(Philips)의 지루함은 참기 힘들다.



 2018.9.21 (금)


 카라얀 브루크너 교향곡 7번 (70년대) (DG)


 요즘 브루크너가 계속 땡긴다. 몸과 마음이 긴 주제를 원하는 것 같다.



 2018.9.22 (토)


 텔덱 리게티 관현악곡집 (Teldec)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이 명제에 가장 충실했던 작곡가는 리게티 아니었을까. 오늘은 특히 <아트모스페르>의 원형인 <아파라시옹>을 집중해서 들었다. 정제되지 않으나 신선한 소리들이 새롭다. 물론 후반부를 강타하는 병 깨는 소리는 들을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오이스트라흐/오보린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컴필레이션 (Philips)


 오이스트라흐의 풍만한 바이올린 소리를 이렇게 쓰레기같이 녹음하기도 힘들겠다. 들을 때마다 오이스트라흐가 불쌍하다. 참고로 <봄>보다 <크로이처>가 더 끔찍하다.



 2018.9.25 (화)


 도큐먼츠 슈베르트 CD 1 (Documents)


 (카라얀 <그레이트> 46년, 멩엘베르흐 <미완성> 39년)

 레이블도 연주도 기대하지 않았다가 연주에 깜짝 놀랐다. 카라얀은 신선함! 그 자체다. 1악장 트럼펫 약주의 독특한 처리도 마음에 든다. <미완성>은 지독하게 안 들리던 곡이었는데, 멩엘베르흐의 39년 연주를 듣고 있으니 단숨에 들린다. 이 곡만큼은 멩엘, 푸벵 스타일이 잘 들리는 모양이다. 놀라운 점은 이게 실황이었다는 것.



 2018.9.26 (수)


 푸르트벵글러 베토벤 교향곡 9번 바이로이트 실황 (EMI)


 눅눅한 소리가 나는 옛날 스타일 베9. 푸벵의 베9는 42년 전시 실황(TAHRA)이 더 마음에 든다. 어떻게 들어도 곰팡이 슨 벽지 같은 느낌인데 옛날에는 이걸 어떻게 참고 들었는지 의문. 성악가 중에서는 한스 호프가 가장 기억에 남는데, 너무 최악이라서다. 낮고 둔중한 목소리는 들을 때마다 거슬린다.



 2018.9.27 (목)


 푸르트벵글러 베토벤 교향곡 1번/3번 스튜디오 (EMI)


 지루하고 재미없는 옛날 연주. 굳이 두 번 들을 가치가 없다.



 2018.9.28 (금)


 폴리니 쇼팽 연습곡 (DG)


 몇 번을 반복해서 들어도, 재미없는 연주에서 재미를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말 실기를 준비하는 음대생에게는 성서 같은 연주겠지만, 나는 들을 때마다 정말 숨이 막힌다. 상상력을 1도 자극하지 않는 연주.



 2018.9.29 (토)


 시메온 텐 홀트 <칸토 오스티나토> (Brilliant)


 지루함은 신비하면서도 매우 심오한 것이다. - 에릭 사티

 '미니멀리즘'이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에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얘기한 사티. 미니멀리즘은 지루함이다. 또한 신비하면서도 매우 심오하다. 하나의 동기를 가지고 천 번(실제가 아닌 비유다)을 반복하는 이 곡 또한 신비하면서도 매우 심오하다.


 굴드 바흐 <평균율> 1권 (Sony)


 자신만의 자폐적인 세계에 갇힌 <평균율>. 다만 굴드가 아무 기준 없이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강조하는 악구나 화음을 들여다보면 거의 예외없이 곡의 중심축을 이루는 중심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 자폐성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굴드 연주를 놓고 좋은 연주/나쁜 연주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2018.9.30 (일)


 리히테르 <송어> 5중주와 <방랑자 환상곡> (EMI)


 리히테르는 나이가 들수록 터치가 얕아지는 경향이 있다. 음색도 원래 무채색인데 터치까지 그리 되니 허옇게 죽은 느낌이 든다. <방랑자 환상곡>은 비슷한 시기에 녹음한 슈만의 환상곡(EMI)보다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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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일기 / 2018년 8월

음반 2018. 10. 20. 23:59


 이달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했다.



 2018.8.11 (토)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17~20 (Brilliant)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와 변주곡)

 CD 17 : 페달 많이 쓰는 8번. 반대로 페달링이 적고 건조한 11번 연주.

 CD 18 : 의외로 소리가 괜찮았던 피아노와 목관 5중주 Op.16, 그리고 흥겨운 론도.

 CD 19 : '룰 브리타니아' 주제를 듣고 빵 터졌다. '아 이 곡이 그 곡이었구나' 라는 느낌.

 CD 20 : 19번 CD에 있는 곡들보다 귀에 덜 들어온다.


 

 2018.8.19 (일)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22 (Brilliant)


 (베토벤 피아노 변주곡)

 <디아벨리 변주곡> 연주는 스튜디오로 나온 것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슈나벨, 굴다 포함). 조금 억세고 유머감각이 덜하긴 하지만 좋은 연주. 특히 강세가 또렷한 변주에서 빛을 발한다. 다만 마지막 미뉴엣은 들을 때마다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왜냐고? 너무 재미없게 연주해서. 그래도 앞의 평가가 무뎌지지는 않는다. 11개의 바가텔 또한 좋은 연주다.



 2018.8.20 (월)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23 (Brilliant)


 (베토벤 피아노 소품)

 브렌델은, 분명 폭넓은 레퍼토리에서 안정감을 주는 피아니스트다. 게다가 젊은 시절인 Vox 연주들은 지루함이 덜하다. Op.126은 그래서 마음에 든다.



 2018.8.21 (화)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24 (Brilliant)


 (슈베르트)

 D.958은 좋은 연주. 시원시원하다. <독일 무곡>도 나쁘지 않은데, 그런데 번호 배열이 왜 이럴까?

 (1~5, 7~8, 13~14, 9~12, 15~16, 6)



 2018.8.22 (수)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25 (Brilliant)


 (슈베르트 즉흥곡 D.899, 피아노 소품 D.946)

 브렌델은 유려한 곡보다 견고한 곡에서 더 잘 움직인다. D.899-1이나 D.935-1 같은 곡 말이다. 그러나 사실 D.899-1도 피셔(EMI), 루비모프(2013년 페름 실황)가 더 낫다. 같은 이유로 브렌델은 D.780보다 D.946을 더 잘 하는 것 같다. 그래도 D.946-3의 강주는 정말 대단하다.



 2018.8.24 (금)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26~27 (Brilliant)


 (슈베르트, 쇼팽)

 <방랑자 환상곡>은 평범. D.935는 1번이 가장 마음에 든다. 2번은 곡 자체가 좀 생소했는데 오늘 들으니 마음에 든다. 늘 그렇듯, 연주가 아닌 곡이. 3번은 어차피 피셔의 황홀한 연주(EMI) 미만 잡인데다 너무 느리기까지 해서 감점만 더 먹었다. 반대로 4번은 너무 성급하다. 리스트 편곡 버전 <방랑자>는 지휘자 길렌이 주인공인 연주다.

 쇼팽은 구리다. 브렌델은 '쇼팽을 연주하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코르토뿐'이라는 말만을 남기고 쇼팽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 것이 분명하다. 5번 폴로네이즈는 너무 재미없게 연주해서, 루빈슈타인 실황(64년 모스크바)의 그 기백이 내내 그리웠다.



 2018.8.31 (금)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28 (Brilliant)


 (슈만)

 환상곡은 싱커페이션과 루바토를 지나치리만치 강조한다. 예전에는 별 4개를 주었는데, 다시 들으니 별 3.5개짜리 연주다. 결론은 '소리가 크다고 다 명연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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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일기 / 2018년 7월

음반 2018. 10. 20. 23:46


 딱 이달까지가 저점.



 2018.7.5 (목)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12 (Brilliant)


 (베토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전체적으로 너무 차분하다(<고별> 3악장은 제외하고).



 2018.7.7 (토)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13 (Brilliant)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브렌델의 베토벤은 한 곡 한 곡 따로 들으면 지루하다. 그러나 자극적인 다른 연주들을 듣고 나면 이해가 가는 대목도 있다. 복스 브렌델은 첫 곡부터 끝까지 완주하기에 덜 피곤하다. 차분하면서도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해주는 부분이 있으니까. 나쁘지는 않은데 최고는 될 수 없다. 그는 항상 그렇다.



 2018.7.15 (일)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14 (Brilliant)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드뷔시보다 베토벤이나 바그너를 더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스티븐 킹의 소설 <스탠드>를 읽으면서 이 음반을 듣는다. 1번은 다른 연주들에 비해 색채감이 좋고 페달을 더 쓴다.



 2018.7.16 (월)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15 (Brilliant)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3번의 피날레 코다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코다는 굴다(Amadeo)처럼 자기 자신을 잊고 정신없이 달려야 한다.



 2018.7.29 (일)


 브렌델 브릴리언트 에디션 CD 16 (Brilliant)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페달을 조금 많이 써 가면서 움직이는 7번. 역시 내질러야 할 때 내지를 줄 아는 연주가 훌륭한 베토벤 연주다.

 2번 2악장은 언제 어떤 연주를 들어도 황홀하다.

 ※ 3번 1악장에는 협주곡의 원칙-카덴차-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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