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일기 / 2018년 12월

음반 2018. 12. 30. 16:17


 2018.12.11 (화)


 베토벤 현악 4중주 12번 린지(Universial) vs 아르테미스(Erato)


 린지 : 결정 장애 없음. 부다페스트(Sony)의 고철 긁는 소리보다는 낫지만 다소 거칠다. 비브라토 적음. 1악장 7:30, 2악장 18:54로 느긋한 시간대를 잡았다. 다만 이것은 시간대에 한정되는 얘기일 뿐이다. 용암이 느긋하게 흐른다고 해서 용암이 차분하다고 얘기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가장 마음에 드는 연주를 해내는 부분은 4악장이다. 역시 린지는 돌진할 때 가장 아름답다.

 아르테미스 : 21세기 운지법(거트현 느낌). 비브라토가 적은 것은 린지와 비슷하나 운지법의 차이로 인해 린지보다 훨씬 부드럽고 유쾌하게 느껴진다. 린지가 박력 있게 느껴질 정도. 1악장 6:42, 2악장 14:55로 다소 빠르다. 참고로 1악장의 첫 유니즌을 아르페지오처럼 다룬다.



 2018.12.18 (화)


 베르티니 <대지의 노래> (EMI)


 <대지의 노래>의 연주기준은 생각보다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겉으로 배어나오는 공허한 환락을 얼마나 잘 살리느냐, 그리고 속에 깊이 배인 죽음의 정서를 얼마나 잘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말이 쉽다는 얘기지 이것을 성공시키는 연주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기이하게도 그 기준을 가장 잘 충족하는 연주는 두 성악가가 거의 모든 것을 주관하는 크립스 64년 실황(DG)이다. 베르티니는 아슬아슬하게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다시 말하자면, 이보다 못하면 연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얘기다. 가수는 두 명 모두 그저 그렇고 지휘자가 모든 난관을 도맡아 통과한다. 크립스와 정반대였기에 손익분기점을 통과한 연주.



 2018.12.20 (목)


 라이너의 버르토크 (RCA)

 톡케협 - 걸작, 절창, 명연. 어떤 찬사를 다 붙여도 모자라다.

 현타첼 - 톡케협에 비해 2% 모자라다. 리듬을 좀 더 유연하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텐데.

 헝가리 스케치 - 흥겨움. 곡도 연주도.


 로제스트벤스키 숏9 외 (Brilliant)

 교향곡 9번 - 숨겨진 걸작. 신랄한 유쾌함을 극한으로 표출하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재주가 놀랍다.

 미켈란젤로 가곡집 - 처음 듣는 곡. 네스테렌코 목소리만큼 어두운 곡. 그러나 그 와중에 피어오르는 밤의 이미지들이 기묘한 인상을 남긴다. …… 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곡에 작은 반전이 있다. 꼭 끝까지 들어보시길!


 기제킹 드뷔시 CD 4 (EMI)

 퍄! 이 한 글자면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드뷔시 연주는 해석이 아닌 음향으로 풀어내야 한다. 요즘 나오는 드뷔시 연주들이 실패를 거듭하는 이유도 음향이 아닌 해석에 지나치게 몰두하기 때문은 아닐까.



 2018.12.21 (금)


 뒤트와 라벨 관현악곡집 CD 1 (Decca)


 그럭저럭 괜찮은 라벨 연주.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음향을 너무 많이 만졌다. 뒤트와를 둘러싼 데카의 이런 장난질은 <1812년 서곡> (Decca)에서의 신시사이저 음향 삽입으로 정점을 찍는다.



 2018.12.30 (일)


 바일 하이든 교향곡집 CD 5 (Sony) (교향곡 85-87)


 나는 하이든을 좋아한다. 한 해의 끝을 하이든으로 끝내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담백한 주제의 풍성한 변형, 언제나 핵심만을 남기는 간결한 서법, 그리고 놀라운 자기완결성은 그를 반복해서 듣게 만드는 놀라움이자 원동력이다. <파리> 교향곡의 완성도는 <런던> 교향곡 못지않게 뛰어나면서도 조금 더 순수하고 풋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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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일기 / 2018년 11월

음반 2018. 12. 30. 16:02


 2018.11.2 (금)


 <전람회의 그림> 호로비츠 51년 라이브 (RCA)


 피아노 버전 <전람회>의 워너비. 호로비츠의 편곡은 신의 한 수였다. 난 피아노 버전은 이 연주로, 관현악 버전은 테미르카노프 실황(예당)으로 듣는다. 다만 <비들로>에서 자의적인 스타카토와 마르카토는 흉하게 들린다. 아마 이 연주의 몇 안 되는 흠일 것이다.

 (전부터 생각하던 것이지만, 전람회는 천재적인 아이디어에 비해 피아노의 이디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작곡가의 역량이 참 아쉬운 곡이다.)



 2018.11.5 (월)


 트레차코프 숏바협 1 (예당)


 애절하다 못해 통곡하는 비브라토가 인상적인 연주. 오이스트라흐가 숏바협의 표준을 제시했다면, 트레차코프는 가장 감정적인 숏바협을 들려준다.


 에트빈 피셔 평균율 2권 CD 1 (Naxos)


 미스터치, 신비한 음색, 소박한 해석. '최초' 이상의 가치가 있는 연주.



 2018.11.11 (일)


 로린 마젤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3번 (Decca)


 '열렬한 해석' 못지않게 '황홀한 소리'도 잘 끌어내는 연주. 1악장 첫머리 목관을 현악으로 살짝 덮어 두터운 질감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감각은 젊은 마젤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할 경지다.

 (내가 시벨리우스 연주에서 바라는 것은 단 하나다. 차가운 극한의 땅을 찬란한 오로라로 물들이는 것. 나는 '냉정하고 차가운 연주'랍시고 무감동하고 무가치하게 시벨리우스를 다루는 연주들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연주들을 좋아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시벨리우스에 대한 모독이다.)



 2018.11.25 (일)


 카라얀 브루크너 9번 76년 실황 (DG)


 지북…… 아니, 지복의 브루크너 9번. 3악장 클리아맥스에서 기어이 터져버리는 삑사리는 몇 번을 들어도 너무 통탄스럽다. 그러나 어쩌랴. 수정할 수 없는 결론인 것을.



 2018.11.27 (화)


 요훔 <카르미나 부라나> (DG)


 <카르미나 부라나>의 규범. 야노비츠의 고음(High D)도 디스카우의 발성도 놀랍지만, 피를 끓게 만드는 광포함이 없다. 역시 내 선택은,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케겔(Berlin Classics)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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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일기 / 2018년 10월

음반 2018. 10. 21. 00:38


 2018.10.4 (목)


 히긴보톰 헨델 <메시아> (Naxos)


 고악기 연주를 통틀어 가장 이색적인 존재. 트레블과 아이들의 파격적인 기용으로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던 <메시아> 판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 저그 같은 놈. 다만 성악가들이 좀 약하고, <할렐루야> 합창에서 발음이 심하게 뭉개지는 게 단점이다.



 2018.10.5 (금)


 카라얀 베토벤 교향곡 5번/6번 <전원> 70년대 (DG)


 5번보다 <전원>이 낫다. 난 예전부터 카라얀의 <전원>이 훌륭한 연주라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고 있다.



 2018.10.6 (토)


 카라얀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70년대) (DG)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 9번을 스튜디오 음반만 놓고 본다면, 50년대가 가장 뛰어나다고 본다. 70년대는 50년대에 비해 경직되어 있다. 50>70>60>80 순으로 좋은 듯.


 므라빈스키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6번 (DG) (다시 들음)

 

 어쩌다 보니 다시 들었다. 저번보다 부정적인 생각이 더 강해졌다. 차콥 교향곡에는 너무 많은 명연이 있어서 이것을 최고로 꼽기는 미안하다. 다만 스튜디오 음반 중에서 Top 10 안에 속하기는 할듯. 참고로 이게 내 첫 차콥 교향곡 음반이다. 생각해보니, 4번 1악장은 클라이맥스가 악장 끝이 아닌 중반부 끝부분에 있어서 이 클라이맥스의 긴장감을 코다까지 가져가는 게 중요한데, 므라빈스키는 거기서 너무 무심하고 무정한게 아닌가 싶다. 4번 3악장도 너무 소극적이다.



 2018.10.7 (일)


 발터 베토벤 교향곡 4번/6번 <전원> (Sony)


 4번은 너무 구려서 언급할 가치가 없으니 <전원>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발터의 <전원>이 아직도 생명력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 발터만의 독특한 해석도 있겠지만, 역시 후진 오케스트라와 과거의 신경질적인 성향을 버린 지휘자의 만남이기에 이런 놀라운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5악장 현 트레몰로의 디미누엔도 후 크레셴도는 지금 들어도 놀랍다.



 2018.10.13 (토)


 번스타인 말러 교향곡 9번 베를린 필 (DG)


 거칠고 난삽한 말러 9번. 그래도 85년 콘체르트허바우 실황(DG)보다는 이게 낫다. 악장 별로 따져보면 3악장이 제일 낫고 4악장이 제일 못한데, 4악장 클라이맥스 직전에서 연주 안 하는 트롬본은 아직도 미스테리(반유대주의 음모론이 또……). 아무리 생각해도, 4악장은 프레이즈 하나하나를 억지로 잡아 늘린 느낌이 심하다. 비브라토를 줄여 건조한 음향 때문일까. 그러면 뚝뚝 끊어지는 느낌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2018.10.14 (일)


 베르너 하스 드뷔시 피아노곡집 1집 (Philips)


 기제킹의 제자이자, 기제킹의 하위호환이자, 기제킹의 열화판인 베르너 하스의 드뷔시 연주. 색감이 풍성하지 않아 지루하고 단조롭다. 똑같은 색의 물감만을 쓴다고 해도 수묵화처럼 농담을 다채롭게 구사하여 음색의 지루함을 탈피하는 연주가 없는 것은 아닌데(대표적인 예가 헨케만스의 드뷔시) 이건 그것도 아니다. 비추.



 2018.10.15 (월)


 박하우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32번 (Decca)


 이 음반도 '첫 음반의 함정'에 제대로 걸려든 사례. 난 아직도 32번 2악장만큼은 박하우스의 연주에서 헤어나오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거 하나 듣자고 다른 악장들을 듣기에는 좀 지루하다.



 2018.10.17 (수)


 굴다/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9번/브람스 교향곡 1번 (Orfeo)


 멋진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연주와 뵘 최고의 브람스 교향곡 1번. 59년 베를린 필(DG) 연주보다 더 날렵하고 강렬하며 장쾌하다. 다만 이 연주가 최고의 브람스 교향곡 1번 연주는 아니다.


 

 2018.10.19 (금)


 카라얀 <짜라투스투라> 70년대 (DG)


 <짜라투스투라>의 표준. 정수리에 대못을 박는 충격과 공포의 서주, 슈트라우스의 원래 의도였던 서주 16분음표의 복원, 완벽한 연출 구도, 푸가토에서 끝까지 볼끝이 살아 있는 박력 넘치는 음향, 슈발베의 최상급 독주 바이올린 등등…… 흠 잡을 데가 없는 완벽한 스튜디오 레코딩 중 하나다.



 2018.10.21 (일)


 아르농쿠르 심포니 컬렉션 CD 1 (Teldec)


 (하이든 교향곡 94, 104번, 베토벤 교향곡 1번)

 아르농쿠르의 미덕 중 하나는, 비브라토를 쓰지 않으면서도 나오는 신선하고 상쾌한 소리다. 개인적으로는 그의 모차르트보다 하이든을 더 좋아하는데, 94번 <놀람>은 민첩하며, 104번 <런던>은 상대적으로 느릿하고 장엄하다. 특히 1악장은 꽤 느린데, 아르농쿠르가 중시하는 것은 빠르기만 한 템포가 아니다. 그가 중시하는 것은 음향이다.

 ※ <놀람> 2악장의 플루트를 듣가가 든 생각. 20세기 플루트 연주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뉘는 것 같다. 첫째는 오렐 니콜레를 비롯한 50년대 스타일, 두 번째는 골웨이로 대표되는 60~70년대 스타일, 그리고 파위로 대표되는 현대다. 50년대 스타일은 휘이이- 하는 바람 빠지는 소리가 강하게 들린다. 60~70년대 스타일은 요사스러운 비브라토가 두드러진다. 난 예전 플루트보다는 현대 플루트 소리가 더 청아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플루트만큼은 파위로 대표되는 현대가 더 마음에 든다.


 

 2018.10.24 (수)


 리히테르 라흐마니노프 전주곡/회화적 연습곡 (Alto)


 56세 때인 1971년 전주곡은 내가 라흐마니노프 전주곡을 생각할 때 바이센베르크(RCA)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연주들이다. 69세 때인 1984년에 녹음한 회화적 연습곡은 터치의 단단함과 명도가 덜하기는 해도 좋은 연주다.



 2018.10.25 (목)


 뵘 브루크너 8번 69년 실황 (Testament)


 약간 성급하다 싶을 정도로 빠른 템포, 몽케 트럼펫의 되바라진 소리 극대화, 어두운 저현과 밝은 호른의 극단적 대비, 강렬함을 넘어 폭력적인 강주. 하지만 너무 빠른 2악장이 아쉽다. 2악장이 딱 30초만 길었어도 별 다섯 개를 주었을 것이다.



 2018.10.27 (토)


 클렘페러 <독일 레퀴엠> (EMI)


 옛 스타일의 조합을 체현한 오케스트라 소리, 언제나 탁월한 디스카우의 발성, 두텁고 중후한 소리를 만드는 현악기 양날개 배치, 일부러 의도한 어두운 음향의 결합. 물론 클럼페러의 <독일 레퀴엠> 연주는 이것보다 56년 실황(ICA)이 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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