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하게 쓴 글이라 퀄리티는 낮습니다. 그 점을 감안하면서 읽어주세요.


 2016년 11월 24일

피에르 로랑 에마르 ‘쿠르탁&메시앙’

LG 아트센터

 

 긴 말 필요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겠다. LG 아트센터에 도착해서 프로그램을 확인하니 원래 쿠르탁을 연주하고 슈만을 나중에 연주하도록 짜여 있는 1부 프로그램이, 슈만과 쿠르탁이 자유로이 뒤섞은 프로그램으로 변해 있었다. 변경사항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데얀 라지치가 스카를라티와 버르토크를 자유로이 섞어서 연주한 채널 클래식의 음반이었다.

 3층 자리에 앉아서 에마르를 기다리는데, 한 10분인가 기다리고 있노라니 연주자가 입장했다. 중키에 부리부리한 눈매가 인상적인 아저씨가 들어오는데, 나긋나긋한 몸짓과는 별개로 절도 있는 느낌이 나는 사내였다.


 페이지 터너를 옆에 둔 채 연주가 시작되었다. 1부는 슈만 소품을 하나 연주하면 쿠르탁 소품을 하나 연주하는 식으로 죽 이어졌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이 프로그램이 하나의 일관성을 가지고 꾸며졌다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었다. 첫 짝을 이루는 슈만과 쿠르탁은 즐거운 느낌을, 중간의 슈만 알붐블라트 1번과 쿠르탁의 <메달>은 빛나는 느낌, 알붐블라트 3번과 쿠르탁 <평온한 위안>은 부드러운 민요풍 느낌을, 알붐블라트 2번과 <발린트 전시회 서문>에서는 비르투오소티 느낌이…… 이런 식으로 각각의 개성을 기가 막히게 잘 끼워 맞춰, 마치 슈만이 쿠르탁을 위해 작곡하고, 쿠르탁이 슈만을 위해 작곡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멋진 프로그램이었다.

 이제 연주자의 능력치에 대해서 설명을 할 시간인데, 대개 에마르의 음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특징들은 ‘명료함’ ‘정확함’ ‘뛰어난 테크닉’ 정도로 압축할 수 있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교적인 실수를 하지 않고 명징하고 차가우며 세련된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에마르의 가장 큰 특징인데, 내가 음반을 통해 들은 소리를 연주회장에서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은 생각할 때마다 재미있는 점이다.

 그러나 실황에서의 에마르는 내가 연주회장의 어디에서 음악을 듣고 있던지 간에 자신의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명료하고 절도 있으며 정확한 소리를 쏘아 보냈다. 3층에서 음악을 듣고 있음에도 내가 마치 1층에 와 있는 느낌은 덤이었다.

 프로그램은 지속적으로 슈만과 쿠르탁을 교차하다가 쿠르탁을 몇 곡 이어서 연주하더니 클라이맥스인 스벨링크의 반음계 환상곡에 도달했다. 소품들 사이에서 대곡처럼 느껴지는 스벨링크의 환상곡은 1부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기에 충분한 곡이었다. 이어지는 곡들은 차분히 가라앉는, 사색하는 느낌의 쿠르탁의 신곡 소품들로 마무리.


 2부는 프랑스의 로코코 스타일을 대변하는 작곡가 중 하나인 다캥의 모음곡 발췌로 시작했다. 쿠프랭보다는 조금 더 각진 느낌이고, 라모만큼의 인상적인 날카로움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화려하면서도 세련미 있는 그 시대 프랑스 클라브생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작곡가인 다캥의 모음곡들에서도 에마르 특유의 명징함과 정확함은 어디 가지를 않았다. 정말 자신이 연주하는 모든 곡의 구조를 도식처럼 투명하게 보여주겠다는 그의 집념은 솔직히 듣는 사람의 기를 질리게 만들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최종보스 등장. 오늘 제일 컬처 쇼크를 먹었던 메시앙의 새도감 중 <마도요>. 우와…… 1부에서 자제하고 있던 에마르의 다이내믹에 대한 무시무시한 능력이 밖으로 분출하는 순간이 이 때였다. 고음의 아르페지오 다이내믹을 조절하는 기계 같은 능력하며, 최강주에서 홀 전체를 뒤흔드는 깨끗하면서도 강력한 터치는 단지 차갑고 명료한 연주자로만 생각하고 있던 에마르에 대한 나의 편견에 기분 좋은 뒤통수를 치는 순간이었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프로그램 전 곡을 통틀어 이 <마도요>가 봉우리 꼭대기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충격적인 <마도요> 연주가 있고 난 후, 막간곡인 쇼팽의 녹턴 1번을 연주했다. 연주 자체는 깨끗하고 차갑고 좋았지만(루바토가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메시앙을 사이에 두고 쇼팽을 들으려니 일부러 쇼팽을 끼워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메시앙-메시앙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무슨 곡이 무슨 곡인지 알아먹지 못할 사람이 태반이니, ‘쇼팽 중간에 끼워줄 테니까 알아서 메시앙 두 곡 구분하라’는 의미로 녹턴을 한 곡 집어넣은 것 같다. 프로그램 전체의 균형과 맞는지는 의문이었지만 어쨌거나 연주는 참 좋았다.

 마침내 오늘의 프로그램 마지막 곡 <숲 종다리>에 도달했다. 메시앙의 피아노곡집 중 하나인 <아기예수를 위한 20개의 시선> 중 <성모의 첫 영성체>와 비슷한 느낌도 나지만, 그보다 좀 더 자연의 거친 풍광에 동조하는 느낌이 강한 이 <숲 종다리>에서 에마르는 하행하는 첫 아르페지오에는 풍성한 감각을, 중간부의 날카로운 풍광 묘사에서는 특유의 명료한 이성을 잃지 않고 연주한다. 그러고 보니 다캥의 곡들도 새와 자연을, 메시앙의 곡들도 새와 자연을 노래하고 있다. 결과물은 굉장히 다르지만.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1부에서 참았던 환호성과 브라보를 터뜨렸다. 몇 번이나 관객의 박수갈채에 화답하던 연주자는 앙코르곡으로 노타시옹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배열은 5번에서 8번까지를 맨 먼저 연주하고, 그 다음 9번에서 12번까지를, 마지막으로 1번부터 4번까지를 연주하면서 이것만 임의대로 섞어 연주했다. 연주의 퀄리티? 지금까지 설명했던 것에서 딱 하나만 추가하자면, 토 나오게 어려운 패시지들을 기계같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올해 볼 공연 중 얀손스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 정도 퀄리티의 연주를 저렴한 가격에 긴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있어서는 큰 행운이었다. 몇 년 전에 리게티를 연주할 때 안 간 것이 사무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번 연주회를 보면서 어느 정도 보상받는 느낌이 들었다.


 한 줄 평 : 현음 피아노 = 에마르



 (2016.11.24)

Posted by 여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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